2018. 10. 20. 18:26ㆍ일반/생물·과학과생각
<42>幻影의 밤하늘Ⅰ
- 별빛은 수억광년전에 내뿜은 과거잔영 -
- 불법은 현상 뒷면에 존재하는 궁극원리 -
밤하늘은 별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똑 같은 밤하늘을 보는 것이지만 사람마다 그리는 세계는 저마다 다르다.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도 어제 그렸던 세계가 다르고 오늘 그리는 세계가 다르다. 사실은 잠시 전에 그렸던 세계도 지금 그리고 있는 세계와는 다르다. 같은 대상을 놓고도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달라지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이는 밤하늘의 별만이 아니다.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 혹은 오음(五陰) 모두가 결국은 우리의 마음이 그리고 있는 것 이상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마음은 유능한 화가와 같이 갖가지의 오음을 그려낸다(心如工畵師 畵種種五陰)”고 하였으며, 유마경에서는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心淨卽國土淨)”고 하였다. 마음의 문제를 잠시 덮어두고 마음의 작용이 전혀 없는 사진기같은 것이 찍는 밤하늘은 어떨까를 생각하여 보자. 사진에 나타나는 영상은 과연 지금 이 순간의 우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현재의 기술로는 100억 광년 정도 떨어진 지점까지 관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영역 안에는 1000억개 정도의 은하가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가령 50억 광년의 거리만큼 떨어진 어느 은하에서 초신성이 폭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사건을 50억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알 수 있다. 지금의 우리가 그 사건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란 원리상 불가능하다. 그렇게 범위를 확장하지 않고 그 반지름이 5만광년 정도되는 우리의 은하 안으로 눈을 돌린다고 하여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우리 은하의 반대 쪽에 위치한 별에서 오는 빛은 거의 10만년 전에 그 별을 떠난 것이다. 우주적 시간의 규모에서 볼 때 10만년이란 물론 아주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 동안에 그 별은 이미 없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이 맞다면 빛보다 빨리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으므로,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그 별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밤하늘을 바라본다.
사실 우리가 보고 있는 밤하늘이란 이렇게 무수히 많은 다른 시간의 사건들이 지금 이 순간에 중첩되어 나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 밤하늘에는 몇초 전에 달에서 출발한 빛도 있지만 10여만년전 우리 은하의 반대편에서 떠난 빛도 있고, 100억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 막 지구에 도착한 아주 먼 은하에서 온 빛도 있다.
우리가 보는 밤하늘이란 오직 개개의 다른 별들이 내뿜는 과거의 영상, 과거의 잔영일 뿐이다. 그건 우리 눈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며, 관측 기술이 덜 발달되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의 눈이 아무리 훌륭하고 관측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우주의 구조상 그럴 수 밖에 없다. 철학자 야스퍼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가해진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일 것이다. 우리가 우주의 구조가 강요하는 한계상황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기만 하다면, 우리가 보는 밤하늘은 오직 아름다운 하나의 환영(幻影)일 뿐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대상들 모두는 우리에게 환영으로 그렇게 보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자체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어서 마치 물거품과 같이 잠시 나타났다가 본래의 자리로 사라져 가는 것 뿐이다. 인연법에서 벗어나는 예외적인 존재란 없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일체의 유위법은 꿈이나 환상이나 물거품이나 그림자와 같고 또한 이슬이나 번개와 같다”고 하였다.
문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가 의미하는 진정한 뜻을 보면 글쓴 이의 의도를 알 수 있듯이, 자연을 보더라도 단순히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궁극의 원리를 본다면 그 안에서 저절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 바로 불법이다. 오직 하나의 진리의 불법은 시방삼세(十方三世) 어디에도 예외없이 상주불멸(常住不滅)하며 상주불괴(常住不壞)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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