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산의 목도 입도 막은 뒤

2018. 11. 18. 09:4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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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의 목도 입도 막은 뒤



[수시]

사람을 통쾌하게 하는 한마디 말이요, 말[馬]을 날쌔게 달리게 하는 하나의 채찍이며,

만 년이 한 생각[一念]이요 한 생각이 만 년이다.

단박에 깨치는 길을 알려고 하는가? 말하기 이전에 있다. 말해보라,

말하기 이전에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

위산(?山), 오봉(五奉), 운암(雲巖)스님이 함께 백장(百丈)스님을 모시고 서 있자

-껄껄껄. 처음부터 끝까지 까다롭군.

그대는 서쪽 진나라로, 나는 동쪽 노나라로 (모두 자신의 길을) 간다.



백장스님이 위산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을 닫아버리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훌륭한 장수 하나를 구하기 어렵다.



“스님께서 말씀해보십시오.”

-상대방이 할 말을 가로챘군.



“나는 사양치 않고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훗날 나의 자손을 잃을까 염려스럽다.”

-노파심이 간절하기도 하다. 낯가죽이 두껍기가 세 치나 되겠다.

이러쿵 저러쿵했구나. 다 털려서 벌거숭이가 됐다.



[평창]

위산, 오봉, 운암스님이 함께 백장스님을 모시고 서 있자, 백장스님이 위산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을 닫아버리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스님께서 말씀해보시지요.”

“나는 사양치 않고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훗날 나의 자손을 잃을까 염려스럽다.”

백장스님이 이처럼 말하기는 하였지만 (매일 사용하던) 밥그릇을 남에게 빼앗겨버린 격이다.

백장스님이 다시 오봉스님에게 묻자, 오봉스님은 말하였다.

“화상께서도 (목구멍과 입을) 닫아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마에 손을 얹고 멀리 있는 그대를 바라보겠노라.”

또다시 운암스님에게 묻자, 운암스님은 말하였다.

“스님은 할 수 있는지요?”

“나의 자손을 잃었구나.”



세 사람은 각기 일가(一家)를 이룬 자들이었다.

옛 어른(운문스님)의 말에

“평지에 죽은 사람이 무수하다. 가시덤불을 지나가는 자라야 좋은 솜씨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종사(宗師)들은 가시덤불로 사람을 시험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상정(常情)의 언구(言九)로써 사람을 시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납승이라면 반드시 구절 속에 기연을 드러내고 말 가운데에서 핵심을 알아야 한다.

판때기를 짊어진 자[擔板漢 : 외통수]들은 흔히 언구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목구멍과 입을 벌리지 않으니 다시는 입을 뗄 곳이 없다”고 말한다.

이에 변통할 줄 아는 자라면 역공격할 줄 아는 기상이 있다.

그러므로 물음 속에 한 가닥 길이 있어서 칼끝도 상하지 않고 손도 다치지 않는다.



위산스님이 “스님께서 말씀해보시지요”라고 말하였는데, 말해보라,

그의 뜻은 무엇인가를. 여기에 번뜩이는 전광석화처럼 그 (백장스님)를 내질렀다.

묻자마자 바로 답하여 빠져나갈 길이 있어, 한 오라기의 힘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활구를 참구하고 사구를 참구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백장스님은 문득 그를 그냥두지 않고 “사양치 않고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훗날 나의 자손을 잃을까 염려스럽다”고 말하였을 뿐이다.

대체로 종사가 사람을 지도하는 것은 못과 쐐기를 뽑아주는 것인데,

요즈음 사람들은

“이 답변은 그(위산스님)가 말뜻을 깨닫지 못해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는 (백장스님의) 말 속에 하나의 쌩쌩한 기연이 있어 천 길 벼랑처럼 우뚝하고,

빈(賓), 주(主)가 서로 교환하여 팔팔한 것을 전혀 모른 것이다.

설두스님은 그의 말이 풍류도 있고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솜씨가 완연히 자재하며,

또한 (적이 지나는) 통로를 꽉 거머쥐고 있음을 좋아한 까닭에 다음과 같이 송을 한 것이다.



[송]

스님이 말해보시오.

-하늘과 땅을 덮어버렸다. 벌써 칼끝을 상하고 손을 다쳤다.



뿔 돋힌 호랑이가 울창한 풀 속에서 나왔네.

-참으로 여러 사람 놀라게 하는구나. 대단히 기특하다.



십주(十洲)에 봄이 저무니 꽃잎이 시들한데

-곳곳마다 시원하다. 아무리 찬탄해도 다 찬탄할 수 없다.



산호 가지마다 햇살이 빛나는구나.

-(햇살이) 천겹 만겹이라.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을 어찌하랴.

대답이 하늘과 땅을 덮었구나.



[평창]

이 세 사람의 답변은 각각 다르지만 (위산스님은) 천 길 벼랑에 서 있는 듯도 하였고,

(오봉스님은) 조(照), 용(用)이 함께 하기도 하였으며,

(운암스님은) 결국 자신마저도 구제하지 못하였다.

“스님께서는 말씀해보시오”라고 하였는데, 설두스님은 이 한 구절 속에 기봉을

드러내어, 다시 그 가운데 사뿐사뿐 내지르면서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뿔 돋힌 호랑이가 울창한 풀 속에서 나왔다”는 것은 위산스님의 대답이 흡사 사나운

호랑이의 머리 위에 뿔이 돋힌 것과 같으니 어떻게 그 곁에 가까이 갈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듣지 못하였느냐. 어떤 스님이 나산(羅山)스님에게 물었던 것을.

“함께 살다가 함께 죽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소에게 뿔이 없는 것과 같다.”

“함께 살고 또한 함께 죽을 때는 어떠합니까?”

“호랑이가 뿔이 돋힌 격이다.”

설두스님은 이 한 구절에서 송을 끝마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겐 몸을 비낄 수 있는 재주가 아직 남아 있어, 다시

“십주에 봄이 저무니 꽃잎이 시들한데”라고 하였다.

바다에는 삼신산(三神山)과 십주(十洲)가 있는데,

 (?? 세상의) 일백 년이 거기에서는 한 번의 봄에 해당된다고 한다.

설두스님의 말에는 풍류까지 있고 완연히 드넓은 기상이 서려 있다.



봄이 다 갈 무렵 온갖 꽃나무들은 일시에 시들지만,

산호나무 숲은 시들 줄 모르고서

태양처럼 빛나고 그 빛이 서로 어려 있으니,

이러할 때야말로 참으로 기특하다 하겠다.



설두스님은 이를 이용하여 “스님께서 말씀해보시오”라는 것을 밝혔다.

십주는 모두 바다 밖에 붙어 있는데,

첫째는 조주(祖洲)이니 반혼향(返魂香)이 나오며,

둘째는 영주(瀛洲)이니 지초(芝草)와 옥석(玉石)이 나고 샘물은 술맛과 같으며,

셋째는 현주(玄洲)이니 선약(仙藥)이 나오는데 이를 먹으면 불로장생하며,

넷째는 장주(長洲)이니 모과(木瓜)와 옥영(玉英)이 나오고,

다섯째는 염주(炎洲)이니 불에 넣어도 타지 않는 화완포(火浣布)가 나오며,

여섯째는 원주(元洲)이니 꿀 맛 같은 영천(靈泉)이 있으며,

일곱째는 생주(生洲)이니 산천에 추위와 더위가 없으며,

여덟째는 봉린주(鳳麟洲)이니 봉의 부리와 기린의 뿔을 달여 만든 속현교(續弦膠)가 나오며,

아홉째는 취굴주(聚窟洲)이니 청동 머리에 무쇠 이마를 지닌 사자가 나오며,

열째는 단주(檀洲 또는 流洲)이니 곤오석(琨吾石)이 나오는데,

이를 칼로 만들면 옥돌이 진흙처럼 잘린다고 한다.



산호는 <외국잡전(外國雜傳)>에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진(秦)나라 서남쪽 장해(漲海) 속으로, 700~800리쯤 가노라면 산호주(珊瑚洲)가 있다.

산호주의 밑바닥은 반석으로 되어 있으며, 반석 위에서 산호가 돋아나는데

사람들이 이를 철망(鐵網)으로 채취한다.”

또한 <십주기(十洲記)>에는 “산호는 남쪽 바다 밑에서 나온다.

나무의 높이는 2~3자이고, 가지는 있으나 껍질이 없고, 옥처럼 생겼으며 빨갛고 윤기가 난다.

이는 달에 감응(感應)하여 나며, 모든 가지에는 모두 달무리가 망울져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제 70칙의 이야기는 권제8 처음의 첫째 공안(제71칙)과 함께 보라.


<벽암록>(송찬우 역, 장경각)





죽음에 대한 오독 / 이명윤

       
죽음은 선명한 색채를 띤다
묘비 옆 화병에 이미지로 피어있다,
계절은 죽음 앞에서 얼마나 공손한지
작년 가을에 뿌린 말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죽음을 새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도중에
어린 조카가 한 쪽으로 치워둔
죽음을 만지작거린다
죽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한 까닭이다
죽음은 세월을 조금 뒤집어썼을 뿐
부릅뜬 웃음은 예전 그대로다
죽음의 눈을 편안하게 감겨줄 수 없어 미안했다
우린 서로 다른 계절을 살고 있으므로
고인의 생전에 대한 이야기 혹은
향기가 사라진 꽃잎들을
주섬주섬 챙겨 떠나는 길
산 중턱 수많은 무덤에는
새롭게 눈을 뜬 죽음으로 화사한데
길 건너편
나이도 추위도 잊은 노파가
죽음 한 송이를 오천 원에 팔고 있다
차창 너머로 마른 과메기 같은 눈과
마주친다,
삶이 죽음을 한 아름 안고 있다
길은, 계절 너머로 접어들고 있었고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