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미분전(混沌未分前)

2018. 11. 18. 09:5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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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미분전(混沌未分前)


무착묘융(無着妙融) 선사가 세주의 죽견사에 계실 때인데 제주(祭主)가 와서 묻되,

“내가 일찌기 책을 보고 한가지 의심이 있는데, 여러 선지식을 찾아가서 물어보았으나

석연치 아니하여 아직 풀지 못하고 있사오니 원컨데 화상께서는 자비를 지시하여 주시옵소서.”

무착 선사가 묻되,

“무엇이 그렇게 석연치 아니한지 한번 물어보시오.”

하였더니 제주가 물었다.

“혼돈의 일기(一氣)가 맑으면 천(天)이 되고 탁하면 지(地)가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혼돈미분시(混沌未分時: 혼돈이 나눠지지 않았을 때)에는

청탁이 어떤 곳에 있습니까?”

“청탁도 아니요, 청탁미분도 아니라. 말을 했을 때[發語]한 때가 이 탁(濁)이요,

아직 말하지 않았을 때[未發語]한 때가 이 청(淸)이니라.

그런즉 발미발(發未發)밖의 일구를 일러보아라.”

무착 선사의 이 말을 듣고 제주가 입을 열고 무슨 말을 하려고 머뭇거렸다.

이때에 선사가 손바닥으로 뺨을 한대 때리고 말하되,

“이 서서 죽을 놈[死漢]이 무슨 말을 하려고 머뭇거니느냐?”

하고 일할을 주었더니, 제주가 겸연하여 마음 줄 곳을 몰라 하였다.


평왈:


청탁미분전, 음양미생전, 천지미개시에 무슨 물건(何物)이 옳고, 무슨 물건이 그르고,

무슨 물건이 얻음이며, 무슨 물건이 잃음인가, 일체의 차별을 소탕하여 버리고

혼돈미분의 면목을 어떻게 보는가. 이것이 소위 교가의 불심이 아닌가.

또 선가의 본래면목이 아닌가. 고인은 이것을 가리켜서 흑칠(黑漆)의 곤륜(崑崙)이라하고,

 아자(阿字)의 본불생이라 하였다. 만약 알 수 없거든 일차 묵언참구하여 보라.

대도가 어찌 알고 모르는 일에 걸릴 건가. 헤아려 상량(商量: 생각) 할 것이 있을 동안은

미로를 헤메이는 것이니, 앎이 다하여 철벽성 가운데 갇혔을 때가 귀한 것이다.


   -『연보전등록』-  






 청과 탁, 음과 양, 천과 지, 옳고 그름, 선과 악 등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좋고 나쁘다는 분별심과 가치 판단을 일으키지 않고 무심(無心)하게 볼 수 있다면 청탁, 음양, 천지, 선악, 시비 그대로가 혼돈미분의 ‘거시기’와 둘이 아니다. 천지든, 음양이든, 선악이든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찰나생, 찰나멸하는 무상한 것으로 알아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천지가 뒤집어져도 쫄지 않을 것이다.

“발미발(發未發) 밖의 일구를 일러보아라.”

이런 질문을 하는 놈이 있으면, 곧바로 주둥이를 틀어막아 버려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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