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부처이니 당장 부처로 살아라 / 도법스님

2018. 12. 1. 10:4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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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부처이니 당장 부처로 살아라  / 도법스님


참제업장원(懺除業障願), 즉 "존재의 실상에 대해 무지했고

무지했기에 무례하게 살아온 업장을 참회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대체 우리가 무엇을 몰랐고, 무엇을 잘못했기에 참회를 해야 하나요? 

 

첫째로 가장 먼저 참회해야 할 내용은 나 자신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에 대한 참회입니다. 

 본래부처(本來佛), 유아독존(唯我獨尊), 법의 실상(法의 實相), 존재의 실상(存在의 實相)

으로 표현되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 것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참회의 내용입니다. 

반드시 최우선으로 알아야 할 사실을 모르니까 당연히 다음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본래부처'라는 말 속에는 크게 다섯 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매우 존귀한 존재입니다. 천하에서 제일 귀한 존재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자신이죠.  내 목숨보다 더 귀한 존재가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즉 본래부처라고 표현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매우 주체적인 존재입니다.

내 인생은 누가 나 대신 살아 주지 않습니다.

내 인생을 내가 내가 주인으로 주체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숨도 내가 쉬고 밥도 내가 먹어야 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본래부처, 유아독존입니다. 

 

셋째, 우리는 매우 창조적인 존재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내 삶이 만들어집니다.

사기꾼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사기꾼의 삶이 창조되고,

부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부처의 삶이 창조됩니다. 

 

본래부처, 유아독존, 법의 실상, 존재의 실상, 본래면목, 참나, 본래성품을 달리 말하면

모든 가능성의 조건이 우리에게 본래 이미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부처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그대로 곧 부처이고 부처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본래 이미 완전하게 갖춰져있는 무한한 그 가능성을 활용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며, 그 가능성을 자신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지금 내 삶이 도둑놈의

삶도 되고 부처의 삶도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본래부처요 유아독존입니다. 

 

넷째, 우리는 매우 완성된 존재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인간처럼 완벽한 존재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가치는 얼마라고 값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래부처요 유아독존입니다. 

 

다섯째, 우리는 매우 고마운 존재입니다. 부모와 자식을 놓고 생각해 봅시다.

자식을 누가 낳았습니까? 당연히 부모가 낳았습니다. 그럼 부모는 누가 낳았습니까?

당연히 자식이 있기에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는 낳고 길러주신 고마운 존재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이 고마운 존재입니다.

엄마 아빠가 되고 싶을 때 자식이 없어도 엄마 아빠가 됩니까?

자식에 의지해서만, 자식과의 관계 속에서만 엄마 아빠는 성립됩니다.

자식 없는 부모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 입장에서 자식은 하느님

만큼 부처님만큼 고마운 존재입니다.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自然)은 어떤 존재인가요?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래부처요 유아독존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존재의 실상을 확인해 보면 이 세상에 존귀하지 않은 존재,

완성되지 않은 존재, 고맙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흙은 흙으로서 완성된 존재입니다.

흙이 완성된 존재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꽃도 피어나고 열매도 맺고 하는 겁니다.

물이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에 물에 의지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너무나 명명백백한 존재의 실상을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 청정한 본래부처,

청정한 본래면목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들 대부분은 이 엄청나고 엄연한 사실, 우리의 실상에 대해

너무나 무지합니다. 이런 무지(無知) 이게 최초의 죄이자 허물입니다.

무지의 반대는 무엇이죠? 바로 지혜(智慧)입니다. 

 

지혜로운 삶이란 바로 이런 사실, 우리의 실상, 존재의 실상을 사실대로 제대로 보고,

사실대로 제대로 이해하고, 사실대로 제대로 알고, 사실대로 제대로 확신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런 삶을 자비로운 삶이라고도 부릅니다.

똥도 모기도 파리라는 존재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똥이 없어도, 세상에 썩는 일이 없어도

괜찮을까요? 죽고 썩는 일이 있으니까 천만다행이지요. 이렇게 하나하나 사실을

확인해 보니 세상에 거룩하지 않은 존재, 고맙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두 번째로 참회해야 할 내용은 존재의 실상 이 사실을 모르고 함부로 살아 온 업장(業障)

입니다.  존재의 실상 이 사실을 확인해 보니 세상에 내 생명과 무관한 것도 없고

내 생명 아닌 것도 없지요.  모든 생명은 온통 다 그물코처럼 서로 연결되어 존재합니다.

이 세상에 내 생명과 무관한 존재나 내 생명 아닌 존재가 없고 모두 거룩하고 고마운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사람들이 함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존재의 실상 이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무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함부로 막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우리는 모두 본래부처인데 이 사실을 모르고

부처답지 않게 살고 있는 겁니다.  


-〈망설일 것 없네 당장 부처로 살게나 〉도법 스님의 화엄경 보현행원품 강의- 


如獅子聲不驚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如風不繫於網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如蓮花不染塵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如犀角獨步行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라

<수타니파타(Sutta_nipata)>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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