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13. 13:27ㆍ일반/생물·과학과생각
<55>상대론
- 일체 사물 서로 끝없이 의존하며 존재 -
- 마음에 그려지는 세계는 인식따라 변화 -
상대론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론이나 일반 상대론을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물리학에서 상대론의 역사는 적어도 갈릴레이에게까지 올라게게 된다. 갈릴레이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고전 물리학에서 상대론은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다. 일상 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우리가 어떤 물체의 속도를 관측한다고 하자. 정지하여 있는 채로 어떤 나무를 관찰한다면 그 나무의 속도는 물론 0 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나무의 속도가 0 이라는 관찰 언명이 과연 보편적인 것일 수 있는가? 시속 100km 의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같은 나무를 관찰한다면 그는 그 나무가 시속 -100km 의 속도를 가졌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물체의 속도라는 물리량은 그 물리량을 관측하는 사람의 운동 상태가 규정되지 않고서는 전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정의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관측자와 관측 대상 사이에 상대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고전적 상대론이다.
물리 이론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들릴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단순히 물리 이론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직접 체험 가능한 것이다. 기차 안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를 살펴본다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시속 100km 로 달리는 기차 안에 있는 사람이 관찰할 때 자신의 수저 안에 들어 있는 밥알은 정지해 있다. 그러나 기차 밖에 있는 사람이 관찰한다면 그 밥알은 시속 100km 로 달려 간다. 기차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밥알이 100km 로 날아온다면 식사같은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물리 현상을 추상적으로 이론화하여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어떤 물체가 정지하여 있는가 아니면 움직이는가 하는 질문도 또한 이를 관측하는 관찰자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규정해야만 비로소 가능해 진다. 다만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나무가 정지하여 있고 기차 안의 밥알이 100km 로 날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지구 위에 고정되어 있는 관측자를 전제하고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제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러한 관측자를 절대적인 것으로 믿게 되지만, 사실상 모든 운동은 상대적인 것이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니라 나부끼는 깃발을 보는 사람 자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로는 인연에 연하여 과가 생기한다는 인연기생(因緣生起) 혹은 인연에 의하여 과가 생한다는 피연생과(彼緣生果)라는 뜻이다. 연기의 두번째 의미는 상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일체의 존재는 자성을 가지고 독립자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끝없이 의존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연기는 곧 무상이고 무아이며, 이는 또한 공이나 중도와 연관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위에서 논한 상대론의 이야기는 연기의 세번째 의미와 상관한다. 이는 어떤 관념이 나에게 나타난다는 것과 연관이 있다. 세계에 대한 관념이 나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내가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이며 또한 세계가 나에게서 어떻게 구성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것도 역시 인과이기는 하지만 이의 원인은 객관 세계이며 결과는 주관 세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객관 세계는 주관과의 연관에서 볼 때 그 자체로서 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주관 세계는 객관 세계에 의하여 일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관 세계에 와서 객관 세계는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관찰자가 기술하는 객관 세계의 운동 상태가 나의 운동 상태에 의하여 규정되듯이, 내 마음에 그려지는 객관의 세계는 내 마음의 상태에 의하여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안(眼)과 색(色)에 의하여 안식(眼識)이 얻어지듯이 우리의 식(識)도 근(根)과 경(境)에 의존하는 상대적인 것이지만, 경에 의하여 식이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과 식의 역동적 상호 연관 아래서 우리의 인식 세계가 구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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