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도 선사는 대혜 종고의 제자로, 연평(延平)의 상서(尙書) 황상(黃裳)의 딸입니다.
그는 여러 큰 스님을 두루 친견한 뒤 경산의 대혜 종고 스님을 참례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깨달음은 몇몇 선사어록에서 더러 볼 수 있듯 조금 특별점이 있습니다.
선지식이 앞에 앉은 사람에게 일깨워줄 때 그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는 대신 가까이
있던 사람에게서 소식이 오는 경우처럼 묘도 선사도 그렇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대혜 스님은 방장실에서 한 승려를 앞에 놓고 물었습니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승려는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렸습니다.
대혜종고의 질문은 당나라 때 마조 도일 선사가 학인들에게 제시한 방편입니다.
마조 도일 선사는 어떤 사람이 부처를 물으면 마음이 부처라고 하고, 마음이 부처인
줄 아는 사람이 도를 물으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고 아는 사람에게는 한 물건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대혜 스님은 이 방편을 승려에게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승려에게는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문밖에 있던 묘도가 이 말을 듣고는 환하게 깨친 바가 있었습니다.
대혜 스님께 이 사실을 알리자,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인가해 주었다고 합니다. “화살이 뽕나무에 꽂혔는데 닥나무에서 즙이 나왔군!”
묘도 선사에 대한 기록은 『총림성사』 외에도 『속전등록』, 『속비구니전』에 잘
나와 있습니다. 개당법문, 비구니와의 문답이 소개되어 있고, 『선등세보』에
대혜종고의 제자로 이름이 등장합니다. 다음은 『총림성사』의 내용입니다.
그는 홍복사의 개당 법문에서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선이란 뜻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 뜻을 세우면 종지에 어긋난다.
도란 공훈과는 동떨어지니, 공을 세우면 도의 분수를 잃게 된다.
소리 밖의 말을 생각 속에서 구하지 말고 조용의 기틀을 지니고 불조의 수단과 방편
〔鉗鎚〕을 쥐고서 부처가 있는 곳에선 서로 손님과 주인이 되고 부처가 없는 곳에서는
바람이 냉랭하다. 마음이 편안하고 생각이 태연하면 메아리는 순조롭게 소리를 화답하니,
말해보라. 이와 같은 사람은 어느 곳에 있는가를 …...."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송하였다.
도롱이 걸치고 천 봉우리 밖에 비껴 서서 오로봉 앞 채소밭에 물을 끌어준다. 披簑側立千峰外, 引水澆蔬五老前.
또다시 설법하였다.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내렸다 하는 잘못은 눈뜨고 침상 위에다 오줌 싸는 격이요,
현성 공안을 함부로 쓰는 것은 꾀 많은 계집아이가 정조를 잃은 격이라.
도무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것이면, 신령한 거북이가 꼬리를 질질 끄는 격이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라’함은 허공에 못질하는 것이요,
부서진 짚을 떠난다 해도 오히려 썩은 물속에 잠겨있는 용과 같은 꼴이다.
깊은 물을 쏟고 높은 산을 무너뜨리는 한 마디를 어떻게 말할까? 거령(황하의 수신)이
손을 올리는 것은 대단찮은 일이나 화산을 천 겹 만 겹 산산조각 내었노라.”
뒷날, 수암 사일 스님은 한 스님이 이 법문을 거론하는 걸 보고서 손을
이마 위에 얹고 먼 곳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 일은 남녀 등의 상에 관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대장부들이 10년이고 5년이고
대중 가운데 살며 캐 보아도 알지 못한 경지이다. 그는 비록 여인이지만
의젓하게 대장부의 일을 해내었으니, 수많은 엉터리 장로들보다도 훨씬 낫다.”
-총림성사
도란 말할 수도 없고 세울 수도 없지만 분명한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용납이 되지 않지만, 거기에 주저함이 없고, 빈 곳이 없습니다.
여기에 통하면 온갖 말이 말이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진실하지 않은 말이 없습니다.
꺼릴 것이 없고 따질 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것도 용납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예외 없이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몸소 깨달아야 감당할 수 있지 생각으로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생각이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면서 이룬 성공이나
실패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본래 그런 것인데, 허공과 같은 마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에 머물고 성공과 실패에 집착합니다.
모든 것이 자기의 마음 바탕에서 일어난 생각과 느낌, 다양한 감각 의식이
어우러져 일어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어긋난 삶, 어긋난 일이 없습니다.
순간순간 모든 것들이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소리 밖의 말은 소리를 떠나 있지 않고, 생각할 수 없는 말은 생각과 하나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부처도 되고 중생도 되며, 이것으로 인해 나도 되고 남도 됩니다.
인연 따라 나의 일이 되고 남의 일이 되어 제각각 인연 따라 그때그때 작용하지만
작용이 멈추면 허공의 냉랭함처럼 아무런 모습이 없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개 어떤 개념이나 상태로 이 공부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개념과 상태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깨달음을 방해하고 있을 뿐
다른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눈을 깜박이는 것이 도’라고 여기거나,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판단하고 이해하는 것을 도라고 여기거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것에 머물러 있거나, ‘한 물건도 없는 것’이 도라고
여긴다면 법을 분별로 구하는 것이어서 미망으로부터 헤어 나오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런 방편의 말들이 선의 스승들에게서 나온 말들이기에 더욱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옛 선사들에게 도를 물으면 눈을 깜빡해 보이거나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하거나,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가도 삼십 방 나와도 삼십 방’이라 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거나, 한 물건도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은 학인이 어떠한 경계에도 머물지 못하게 하는 방편인데,
이것을 집착하니 스승들의 의도와 한참 먼 곳에 있습니다.
일깨우는 말을 듣되 그 소리와 뜻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고 곧바로 모든 모습의
본고향을 돌이켜야 합니다. 참된 의도를 알지 못하면 모두가 선지식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겨 거기에 의지해 있습니다.
묘도 선사는 대다수의 공부인들이 이러한 망상에 머물러 있기에 여러 사례를 들어
이 집착을 내려놓도록 방편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뒷날 수일 스님이라는 분이 묘도의 설법을 전해 듣고 십수 년 남자들과 함께
공부하였어도 이러한 안목을 가진 이를 만나기 어렵다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묘도 선사는 다른 비구니 선사에 비해 상당법문과 선문답이 자세하게 전해집니다.
물론 비구 선사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양이지만, 그의 안목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법문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속전등록』에도 묘도 선사의 뛰어난 안목과 자재함을 느끼게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온주(溫州) 비구니 묘도 선사는 연평(延平)의 상서(尙書) 황상(黃裳)의 딸이다.
개당(開堂) 하는 날 말하였다. “묻는 말은 이제 그만두라. 설사 봇물을 쏟아붓는 말솜씨와 산을 거꾸러뜨리는
기틀을 가졌다 할지라도 납승의 문하에서는 조금도 쓸모가 없다.
또한 부처가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아무 일이 없었거늘 우리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셔서 다시 허다하게 세운 것이 있어 여러 곳에서 서로 우러러보고
별을 쪼개 파를 나누어 오늘에 이르러 잘못이 자손에게 미쳤다.
마침내 산승으로 하여금 사람과 하늘의 대중 앞에서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켜 두 번째 문(방편)에서 한 소식을 통하게 하는구나.
말과 침묵 모두 다함없는 것이 큰 모서리를 가득 채우고, 설명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모래 수 세계를 둘러싸고 있으니, 온몸이 눈이어서 눈앞에서 기틀을
마주하면 번갯불을 말아 들이고 별똥이 떨어지듯 달리니 어떻게 발을 딛겠는가?
어떤 때 한 할(喝)은 살리고 죽임을 마음대로 하고, 어떤 때 한 할은 부처와
조사도 구별하지 않고, 어떤 때 한 할은 팔면에서 적을 받아들이고,
어떤 때 한 할은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다. 자, 말해보라.
어느 한 할이 살리고 죽임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고, 어느 한 할이 부처와 조사도
구별하지 않는 것이고, 어느 한 할이 팔면으로 적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어느 한 할이 자신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인가? 만약 여기에서 알아차린다면
갚지 못할 은혜를 갚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산승이 꿈도 꾸지 않고 꿈 이야기를 한 셈이다.”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고 말했다. “보았느냐? 만약 보았다면 견해의 가시에 장애를 입을 것이다.” 선상(禪床)을 치고 말했다. “들었느냐? 만약 들었다면 소리라는 경계에 미혹된 것이다. 설령 보는 것을 떠나고
듣는 것을 끊었다 하더라도 바로 이승(二乘)의 소과(小果)이다.
모양을 덮고 소리를 타는 것에서 한 걸음 뛰쳐나와 온전히 놓아주고 온전히
거두어들여서 주인과 손님이 서로 바뀌니, 그런 까닭에 ‘불성의 뜻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시절 인연을 살펴보라’고 한 것이다.
감히 여러분에게 묻노니, 바로 지금은 무슨 시절이냐?
넓고 넓은 어진 덕은 성인의 교화를 돕고 밝고 밝은 온화한 기운은 태평을 돕는다.”
불자를 던지고는 자리에서 내려왔다. 어떤 비구니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부처가 아니다.” 비구니가 말했다.
“어떤 것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뼈 속의 골수이다.” 비구니가 물었다. “말이 현상을 펼쳐 보이지도 못하고 이야기가 기틀에 들어맞지도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똥도 싸기 전에 구덩이에 떨어졌다.”
-속전등록 제32
묘도 선사는 육조 혜능 당시 세워진 온주 정거사(淨居寺)에 주석했습니다.
정거사는 선종 최초의 비구니 사찰로 비구니 학인들이 비구니 선사 밑에서
지도를 받은 곳입니다. 그만큼 선을 깨달으려는 여성 출가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묘도 선사의 개당법문을 보면 당시 내로라하는 선사들의 설법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부처가 세상에 나와 불법을 말한 것,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마음을
가리켜 보인 모든 언행이 후대 학인들의 혼란과 망상만 가중시켰다고 일갈합니다.
임제종 양기파의 후손답게 모든 망상을 부숴버립니다. 훌륭한 말솜씨와 산을
거꾸러뜨릴 만큼의 기세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한 물건’이자, 분별망상이니
쓸모가 없습니다. 설사 부처, 조사의 말과 행이라도 여기서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할’은 임제의현 선사에게서 시작된 방편력인데, 후대로 넘어오면서 선사와 조사들의
방편력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할(喝)이란 ‘꾸짖는다’는 뜻입니다.
분별망상에서 깨어나도록 꾸짖는 방편입니다. 선사들은 때로 살리고 죽이는 방편을
쓰고, 부처와 조사도 구별하지 않는 방편을 하고, 사방에서 망상을 받아들이는
방편을 쓰고, 이 방편이 자신도 구제하지 못할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편의 다양성은 선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학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선사의 방편을 통해 학인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부처와 조사의 차별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사방의 망상을 더하거나 망상이 온전히 법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자신을 더욱 얽어매는 구속이 되기도 합니다. ‘할’은 오직 한 할뿐인데,
그것을 보는 사람은 여러 개의 할이 될 수 있습니다. 선사의 모든 말과 행동은
오직 하나의 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인데, 말과 행동 따라 다른 것으로 본다면
자신도 구제할 수 없습니다.
진정 하나의 ‘할’에 통한다면 ‘할’이라는 물건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해나 관념이 아닌 진정 살아있는 부처를 보라고 말문을 닫아버립니다.
불자를 들어 보이며, 여기에서 본다면 본 것의 장애를 입는 것이고, 선상을 치며
소리를 내어 보이고는 여기에서 들었다면 미혹이고, 듣지 않았다면 없음에 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모양과 소리에서 뛰쳐나와 모든 것을 놓아주고, 놓아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거두어들여서 예전의 주인은 손님이 되고,
예전에 돌아보지 않았던 손님은 주인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인연을 떠나있지 않으니 잘 보라는 것입니다.
선사들의 설법 말미에 으레 그렇듯이 한 비구니 학인이 묻습니다.
부처를 물으니 부처가 아니라고 하고, 불법을 물으니 뼈 속의 골수라고 합니다.
부처는 부처 아닌 것까지 모두 부처이고, 불법은 모든 현상의 본질이니 뼈 속의
골수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안다면 묘도 선사의 참뜻을 모른 것입니다.
입을 열기 전에 분명하고 묻는 말 그대로 듣고 싶은 말인 것입니다.
말 한마디 한 마디 그 자체여서 따로 생각으로 헤아리고 따질 일이 아닙니다.
분별하면 ‘말이 현상이 되지 않고 이야기가 기틀에 맞지 않을 때’라는 것은 없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곧 분별 현상이요, 이야기는 마음 바탕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별하지 않고 보면 ‘말이 현상이 되지 않고, 이야기가 기틀에 맞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스스로 여기서 시원하지 않다면 여전히 똥을 싸려는 사람이
오물도 내버리기도 전에 똥구덩이에 빠져 온통 오물을 뒤집어쓴 격입니다.
묘도 선사의 설법을 보면 당송시대 선사들의 전형적인 설법 양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조어록이나 임제어록 등에 소개된 법문은 먼저 상당설법을 통해 모든 분별을
틀어막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고(不立文字)는 불자를 들거나 선상을 치는
방법으로 이것을 직접적으로 가리켜 보여(直指人心) 깨닫게 합니다(見性成佛).
그리고는 말미에 학인 중 한 사람이 선사에게 질문하면 선사는 그때그때 인연 따라
가리켜 보입니다. 이때 인연이 들어맞으면 깨치는 사람들이 더러 나옵니다.
묘도 선사는 스스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고 많은 비구니 승려에게 법을
편 것으로 여겨집니다. 법을 펴는 방편도 여느 선사들의 방편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규범을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묘도 선사가 남긴 기록을 통해 그가 선종의 주류로서 비구니 승려들을 대상으로 법을
본격적으로 폈다는 것은 의미 있습니다. 당시 출가자 사회에서 비구니는 비구에 비해
여전히 취약한 여건을 가졌습니다.
선의 안목을 갖추는 공부를 하는데도 현실적인 제약이 따랐을 것이며, 법상에 올라
뭇 대중들에게 법을 펴는 것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제약을 뛰어넘어 여느 선사들 못지않은 안목을 가지고,
모범적으로 법을 편 점은 높이 살만합니다. 들고양이들 (THE WILD CATS) 제2집 정든 부두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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