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종횡으로 뚫고 다니며 적장의 북과 깃발을 빼앗으며, 백겹 천겹 포위망도 앞뒤를
잘 살펴 적절하게 빠져나오며, 범의 머리에 걸터앉고 범의 꼬리를 잡는 솜씨가 있어도
아직 작가 선지식은 못 된다. 우두(牛頭)귀신이 사라지자 마두(馬頭)귀신이 다시 오는
듯한 신출귀몰이라도 기특할 게 없다. 말해보라.
뛰어난 사람[過量底人]이 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거량해보리라.
[본칙]
삼성(三聖)스님이 설봉(雪峰)스님에게 물었다.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무엇을 미끼로 해서 잡을까요?”
-종횡으로 자재하구나. 물음이 몹시 건방지군. 그대 스스로가 알아야지.
왜 이를 다시 묻는가?
“그대가 그물에서 빠져나오거든 말해주겠다.”
-남의 위신을 되게 깎아내리는구나. 작가 종사는 천연스레 자재하다.
“1천5백 인이나 거느리는 선지식이 화두도 모르는구나.”
-번개같이 빠르군. 뭇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멋대로 날뛰는군.
“노승은 주지의 일이 바쁘다.”
-승부에 놀아나지 않는군. 한 수 봐줬다. 이 말이 가장 독살스럽다.
[평창]
설봉스님과 삼성스님이 이처럼 들락날락하며 한 번 내지르고 터지고 주고받았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말해보라. 이 두 분의 큰스님은 어떤 안목을 갖추었는가를.
삼성스님은 임제스님의 가르침을 받고서 여러 총림을 두루 편력하였는데 어디에서나
그를 큰스님으로 대접하였다. 그의 물음을 살펴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대답하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 결코 이성(理性)이나 불법(佛法)에도 관계하지 않는다.
대뜸 “그물을 뚫고 나온 물고기는 무엇을 먹느냐?”고 물었다. 그의 의도가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말해보라.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평소에 향기로운 미끼를 먹지 않는다.
참 모를 일이다, 무엇으로 미끼를 해야 할까?
설봉스님은 작가인터라 무심하게 열 푼 중에 한두 푼 정도로 그에게 응수하였다.
“그대가 그물에서 빠져나오거든 말해주겠다.”
분양(汾陽)스님은 이를 해답을 드러낸 물음[呈解間]이라 하였고 조동종에서는 이를
현상을 빌린 물음[借事間]이라 하였다. 이는 뛰어난 사람이어야만 완전한 수용[大受用]을
얻고, 정수리에 안목이 있어야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설봉스님이 작가인데야 어찌하랴. 참으로 상대의 체통을 깎아내리는군.
그러므로 대뜸 “그대가 그물을 ?W고 나오거든 말해주겠다”고 하였다.
이 두 사람을 살펴보면 각기 영역을 거머쥐고 만 길 벼랑에 우뚝 서 있는 듯하다.
만일 삼성스님이 아니었다면 이 한마디를 듣고서 아무 말도 더 이상 못했을 것이지만
삼성스님 또한 작가인터라 그에게 “1천5백 인이나 거느리는 선지식이 화두도 모르시네”
라고 말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설봉스님 또한 곧바로
“노승은 주지의 일로 바쁘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좀 거칠었다 하겠다.
작가들이 서로 만나 사로잡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하고, 상대가 강하면 약해지고
상대가 미천하면 스스로는 고귀하게 상대하니, 그대들이 승부로 이를 이해한다면
꿈에도 설봉스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
두 사람을 살펴보면 처음엔 고고하고 당당한 기상을 지녔더니만 끝에 가서는
모두가 어물어물하였다. 말해보라. 그래도 얻고 잃음, 이기고 짐이 있는가를.
그들 작가가 주고 받은 것은 결코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삼성스님은 임제스님에게 있을 때 원주(院主) 소임을 맡았는데 임제스님이 입적하려는
즈음에 설법하였다.
“내가 떠난 뒤에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잃지 말라.”
삼성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어찌 감히 스님의 정법안장을 잃겠습니까?”
“이후에 어느 사람이 너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삼성스님이 대뜸 일갈(一喝)을 하자 임제스님은 말하였다.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먼 비구대에서 사라지게 될 줄이야.”
삼성스님이 곧 절을 올렸다. 그는 참다운 임제스님의 아들이기에 감히 이처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설두스님이 맨 끝에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에 대해서 송을 하여 작가가
서로 뜻이 맞았던 것을 나타내보였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그물을 뚫는 황금빛 물고기,
-일천 병사는 얻기 쉬우나 한 장수는 구하기 어렵다. 그런 물고기가 있는가?
모든 성인이라도 어찌할 수 없다.
물 속에 있다고 말하지 말라.
-저 구름 밖에 있구나. (물고기가) 파다닥 파다닥. 바보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늘을 흔들고 땅을 휘저으며
-작가로군. 그것이 기특한 것은 아니다. 봐준들 또한 뭐 어떻겠는가?
지느러미를 떨치고 고리를 흔드네.
-어느 누가 감히 그 핵심을 알랴. 뽐내며 나오더니만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고래가 뿜어대는 거대한 파도는 천 길이나 날고
-저쪽을 돌아 지나가버렸다. 대단하구먼. 온 대지 사람들을 한 입에 모두 삼켜버렸다.
진동하는 우레 소리에 맑은 회오리 바람 일어난다.
-눈과 귀가 있어도 귀먹은 듯 눈먹은 듯하다. 오싹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맑은 회오리 바람 일어남이여!
-어디냐? 쯧쯧!
천상과 인간에 아는 사람 몇일는지.
-설봉스님은 앞에 굳게 진을 치고 삼성스님은 뒤편에 굳게 진을 치고 있으니,
공격해본들 무얼 하려고?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한다. 그대들은 어느 곳에 있느냐?
[평창]
“그물을 뚫는 황금빛 물고기, 물 속에 있다 말하지 말라”는데 대해, 오조스님께서는
“이 한 구절에서 송을 완전히 다 끝냈다”고 하였다.
그물을 뚫는 황금빛 물고기라면 어떻게 물에 갇혀 살랴?
반드시 거대한 파도가 아득하고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리는 곳에 있을 것이다.
말해보라, 하루종일 무엇을 먹겠는가를.
여러분은 선상에 앉아 핵심을 거머쥐도록 하라.
설두스님은 말하기를 “‘이 일’을 상황에 적절하게 거량한 것이다”하였다.
황금빛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떨치고 꼬리를 뒤흔들 때 하늘과 땅이 흔들리며,
고래가 내뿜는 거대한 파도는 천 길이나 높이 난다. 이는 삼성스님이 했던
“1천5백 인이나 거느리는 선지식이 화두도 모른다”는 말을 노래한 것인데
이는 고래가 뿜어내는 거대한 파도의 기상과도 같다.
“진동하는 우레 소리에 맑은 회오리 바람 일어난다”는 것은 설봉스님이
“노승은 주지의 일이 번거롭다네”라는 말을 노래한 것인데, 이 또한 우레가 진동하는
한 소리에 맑은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하겠다.
이는 그들 모두가 작가였다는 점을 노래한 것이다.
“맑은 회오리 바람 일어남이여! 천상과 인간에 몇 사람이나 알는지”라고 하였다.
말해보라, 이 한 구절의 귀착점은 어디에 있을까? 회오리 표(飇)자는 바람을 말한다.
맑은 회오리 바람 일어날 때는 천상과 인간에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출처 : <벽암록>(송찬우 역, 장경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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