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들려주는 법문/릴라님

2019. 3. 3. 15:1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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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들려주는 법문



봄이 왔습니다. 하얀 매화, 연분홍 매화, 자주색 매화가 봉오리로 맺혀 있기도 하고,

속살을 보이며 꽃잎을 활짝 펴 보이기도 합니다.

불어오는 바람은 지난날의 독기가 다 빠지고 살랑살랑 제법 몸을 포근히 감싸며

돌아갑니다. 눈앞에 비치는 햇빛은 고운 빛을 더하고, 햇빛을 머금은 산과 바다가

설렘 가득한 모습으로 외출할 차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 겨울이었느냐는 듯이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있습니다. 봄은 생동감이 있습니다. 봄은 이 대지가 살아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봄은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합니다. 밝은 빛 아래 들어오는

피부는 곳곳이 푸석해지고, 늘어진 턱살과 뱃살, 생기 없는 머리카락, 예전과 다른

기력, 팔다리가 쑤시고 아픈 통증으로 나타납니다.

봄은 세월의 무상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변화의 물결 속에 있습니다. 봄의 자연은 때가 되면 생기로움을

느끼게 하지만, 봄의 몸은 생명력의 쇠퇴를 우리 앞에 가져옵니다.

우리는 봄의 자연을 사랑하지만, 몸의 노화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나아지기를 바라지만, 더 후퇴하는 것은 막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생기로운 변화이든 생기가 사라지는 변화이든 모든 것은 제 갈 길을 가는

것 같습니다. 무상함은 우리가 관심을 갖든, 그렇지 않든 늘 찾아오고 있습니다.

무상살귀(無常殺鬼)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지만, 또한 봄의 향연을 가져옵니다.

원하는 쪽으로든 그 반대 방향으로든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는 변화는

인간의 바람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 세계가 왜 이렇게 무상한지 물어보고 싶지만, 무언가 답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한때 구름이 일어난 것과 같아서 그 생각을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된 결론 역시 무상함을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늘에 일없이

구름이 일듯 생각과 느낌과 바람과 욕구가 이리저리 제멋대로 불어오는 봄바람 같습니다.

모든 것이 정해진 것이 없고, 머물러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것이라고

할 게 없고, 나라고 할 게 없습니다. 다만 그 모든 무상살귀가 바로 지금 눈앞에서

아지랑이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모양을 따라가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지키려 해도 지키지 못하지만, 이 잡을 수 없는 허공은 변함이 없습니다.

무상함이 무상함으로 하나이고 무상함이 출렁거림으로 깨어있습니다.

무상살귀는 모양을 집착할 때는 나를 잡아가는 귀신이 되지만, 그 모양이 본래 실체가

없음을 볼 때는 적멸의 춤이 되는 것입니다.

허공의 춤. 마음의 마법.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일어나는 묘용.

그 어떤 것도 정해진 모양이 없지만, 모양으로 그려지는 마법은 끝나지 않습니다.

영화와 같은 장면을 경험하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지만, 지나가버리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눈물을 닦고 자리를 떠날 일입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모두들 자리를 떴는데, 혼자 빈 객석에 남아 지나간 장면을

연상하고 안타까워하며, 회한에 젖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새롭게 펼쳐지는 영화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어디에도 머물 곳이 없고, 집착할 일이 없고, 지킬 나도 없는 데

혼자만 지난 영상을 집착하며 잠들어 있습니다.

모든 내용물에서 깨어나십시오.
허공에 발을 디디십시오.
허공에 발을 디딘다는 생각도 잊어버리십시오.
어디에도 마음이 머물지 않는다면, 봄볕 찬란한 이 산하대지가 곧 나임을 알 것입니다.



- 릴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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