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어떻게 해야 ‘나 없는 도리’를 확실히 증득할 수 있겠습니까?
< 답변 > “‘나 없는 도리’를 누가 증득하겠다는 거요?” “제가 · · · · · · ” ‘나 없는 도리’를 증득하고 싶다면서 그것을 다시 내가 증득하겠다고 하니, 그렇다면 ‘나 없는 도리’를 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영영 없는 거요. 지금 공부를 전부 그런 식으로 하고 있소. 전혀 진지하지도 않고 깊이 참구하려는 의지도 없고. 옛 선지식들은 이 공부를 정수리에 붙은 불 끄듯 하라고 했소.
그런데 그저 세속의 강의나 강연 듣듯이 오다가다 몇 마디 말이나 알아듣고 알음알이나 쌓고 있으니, 그렇게 얻은 얄팍한 지식으로 어떻게 부처의 경지를 넘보겠다는 거요.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지 주재자(主宰者)는 없는 거요. 그런데 본 것도 ‘내’가 봤고, 들은 것도 ‘내’가 들었고, 질문도 ‘내’가 했고, 깨닫는 것도 ‘내’가 깨닫고. · · · · · · 시종일관 그 ‘나’란 놈이 모든 걸 주재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 인연법은 도대체 어디다 저당 잡혀 먹은 거요? 인연법은 이 마음공부를 시작하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바닥까지
깊이 체달하고 넘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이치요. 나중엔 그것조차 다 흩어지지만.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지 짓는 자도 받는 자도 없는 거요. 그게 진실이오. 그런데 이 고깃덩어리를 ‘나’로 알고 지금껏 살아온 거요. 이 허깨비를 실제(實際)라고 확실히 믿는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도 전부 실제로 나타나오. 실제라는 건 없소. ‘나’라고 추켜들만한 것은 어디를 찾아봐도 없소. 전부 다른 그 무엇들의 인연화합으로 이루어진 환화공신(幻化空身)인데, 그런 허깨비가 뭘 알아듣고, 공부하고, 깨닫고 할 수 있겠냐는 말이오. 밥과 반찬과 물과 공기 없이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 같소? · · · · · · · · · · · ·
‘나 없는 도리’에 대해 묻지 말고 지금 그 ‘나 없는 도리’를 깨치고 싶어 하는 그 생각이 어디서 나왔는가를 깊이 참구해 보시오.
- 대우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