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놓치지 마라|…… 혜천스님설교

2019. 3. 3. 15:1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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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천스님 일요강론 2011. 12. 18

'마음을 놓치지 마라'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빨리 변화하고 움직입니다. 물질중에서 빛이 가장 빠르다지만 마음은 이보다 더 빠름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마음을 놓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방심하지 않는 것은 훌륭한 것 중의  가장 훌륭한 것이며 좋은 것 중의 가장 좋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심은 마음의 움직임이나 변화를 놓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을 발견하지 못 했다면 지금의 인간이나 문명은 없게 됐을 것입니다. 마음이 있어서 지금의 문명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마음은 모든 것의 출발점입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이 신을 만든 것입니다. 인간의 문명이나 역사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의 움직임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사티는 늘 깨어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마음을 알기위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마음은 천리마인데 나무늘보를 타고 어떻게 쫒아갈수 있겠습니까. 마음의 자취만 보고 놓쳐버리기 일쑤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조차 컨트롤 하지 못 합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이끌고 가야하는데 이끌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시키는대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본다는 말은 마음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는 지식을 습득합니다. 하지만 마음에 대한 공부는 하지 않습니다. 지식은 마음이 만들어 낸 제품입니다. 사람들은 제품설명서는 많이 읽지만 정작 그 제품에 대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얼마전에 휴대폰의 위치추적장치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제품사용서만 읽고 사용하는 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스마트 폰이 그 사람의 위치를 파악해 전송해주는 것인데 휴대폰 개발자의 실수로 그런 데이타를 수집하게 되었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이것은 내가 길을 가고 있는데 땅이 갑자기 일어나 나와 부닺쳤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그런 기능이 있는 줄 아직도 몰랐던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제품의 본래기능과 어떤 작동원리에 의해 움지기는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은 길을 다니다 보면 익숙해지고 편안해집니다. 하지만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게됩니다. 그러지만 새로운 길 앞에서는 주저합니다. 우리는 왜 새로운 길을 주저하는가? 거기에는 기대감과 함께 불안과 두려움을 복합적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20년전 전주에서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데 보기좋게 불합격했습니다. 이렇게 처음에 떨어지는 것은 익숙치 않기 때문입니다. 돌발상황은 연습장에서와 시험장에서는 다른 것입니다. 새로운 길에서는 언제 돌발상황이 발할지 모릅니다. 변화가 적다는 것은 편안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주의를 기울일 이유가 적게되고 마음을 놓치기 쉽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쥐와 고양이의 생존조건과 같습니다. 쥐는 어떻게든 고양이의 사정권을 벗어나야 살고,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그 쥐를 잡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고양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동족을 잡아 먹지 않습니다.  (무의식은 우리가 ~ )

 

새 길은  주의력을 엄청나게 작동하게 합니다. 늘 다니는 길에는 주의력 기울이지 않습니다. 익숙한길, 편안한길은 그러나 그 길에 대해 어떠한 매력도 느끼지 않게 합니다. 나는 걸을 때 일부러 같은 길을 다니지 않습니다. 행복은 이렇게 새로운 길을 만나는 것고 같습니다. 새로운 길을 보면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게 됩니다. 헌집은 아무리 고치고 수리해도 헌집입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길을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 혁신적 사고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항상 같은 길은 오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길에서는 새로움을 만납니다.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먼저 가는 사람들의 등을 보며 걷는 사람은 편안하지만 그의 등만을 본게 됩니다. 앞으로 나서야 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숭고주의에 기울어 있습니다. 옛것은 좋은 것이라며 긍정적인 사고를 합니다. 또 고구려 시대에 대한 강한 향수를 말합니다. 마치 고구려가 우리나라를 통일 했더라면 이모양 이꼴로 안 살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김유신, 김춘추 말고 광개토왕을 얘기하는 숭고주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대부분은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입니다. 공자는 대표적인 복고주의자입니다. 주나라 시대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이끌고 제후들을 만났지만, 대접은 받았지만 누구도 중용하지 않았습니다. 공자를 박대한다는 소문이 돌면 다른 뛰어난 인재를 받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지 그를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공자는 무공, 문왕 시대의 과거 찬양자일뿐입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는 칼과 피가 튀는 살벌한 시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의 주장은 난센스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자뿐만 아니라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사이도 선비정신을 강조하는 집단들이 많습니다.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그 시대는 소수의 양반과 다수의 평민, 노비들이 형성돼야 하는데 요는 누가 양반하고 노예가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도 투표로 해야 할까요... 제가 맨날 얘기하는 것이지만 공자 시대 선비정신 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가 아름답다 해도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조선시대로 돌아가면 숨막혀 죽을 것입니다. 여성은 작은 안방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가도 쓰개치마 같은 것을 쓰고 다녀야 합니다.

 

공자당 명나라당 하는 300년 전으로 돌아가면 남 녀 모두 숨막혀 죽습니다. 머리를 틀어 상투를 틀고, 과거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금의 사법고시 등은 정말 애들 장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초시부터 대과까지 아홉과정을 거치는데 춘천 같은 데서는 4,5년에 한명정도의 생원을 배출하는 정도입니다. 거기서 대과까지 가려면 올매나 어렵겠습니까.  또 한집안에서 3대가 과거에 급제를 하지 못하면 양반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과거에 급제를 못하면 학문적인 성과나 아니면 넓적다리를 베어 부모를 멕이는 효행이거나 청상의 며느리가 죽어 나가야 정녀...라 하는 열녀문이 주어지며 벼슬이 증직돼야 그 집안이 살아나게 됩니다. 3대가 지나 5대가 지나면 몰락하게 됩니다. 중인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직도 선비정신 얘길 하거나 고구려 통일 얘기를 하고 그랬으면 지금은 호의호식 할 것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게다가 스님들이나 종단도 부처님 시대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지금 어떤 스님도 2,500년전으로 돌아가면 3일도 못 버티고 원위치 해달라고 사정할 것입니다. 그때 나무아래서의 생활과 길 위에서의 잠, 하루 한끼 먹고... 지금 온갖 좋다는 보약 다 먹고 계시는 그들은 단 사흘도 못 버틸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똑 같은 길을 가는 것은 2,500년전의 길을 반복하는 것일뿐입니다. 이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믿는 과학문명도 새로운 것 같지만 필요한 것은 옛것을 쓰고있는 것일뿐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로시대를 마감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렇지만 태양광 발전도 굉장히 비싼 에너지입니다. 넓은 땅이 필요하고 집열판도 필요하고 투자대비 효과도 아직은 불확실합니다. 원자력 발전은 안전성 문제까지 더해 마찬가지 입니다. 이보다는 해뜨면 일 나가고 해지면 자는 시스템이 제일 값 싼 에너지 소비행위입니다. 의식은 빨리 움직이는데 나무늘보를 타고 덤비니 되겠습니까.

 

마음을 봐야 다르마를 본다고 했습니다. 방심하지 않는 것이 훌륭한 것중의 최고로 훌륭하고 좋은 것중의 최고로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방심은 스스로의 마음을 놓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상식은 다수가 인정하고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상식적인 것도 처음에는 다 비상식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고타마 싯달타를 부처님이라 부르고 상식이 됐지만 처음에도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처음에는 싣달타가 자신을 부처라고 하자 빠사나비왕은 '이시대 고승 어느 누구도 얘기한 적이 없는데 그대가 부처라고 지칭하는구나'하는 말을 했습니다. 부처님 35살때의 이야기 입니다. 요새야 예수 그리스로를 인정하지만 그 당시에는 까불다가 처형당한 것입니다. 지금은 성인이지만 그 시대는 죄인이었습니다. 처형장에서 처형당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이 상식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상식이란 그런거 아닙니까? 얼마 전에 조개구이집 열풍이 불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사람만 돈을 벌고 나중에 시작한 사람은 다 망했습니다. 낙지집, 떡복이집이 다 비슷한 과정을 겪습니다. 요새는 길 모퉁이 돌면 붕어빵 가게입니다. 대중화된 것이 상식이고 상식이 대중화되면 낡아집니다. 이것은 좋다, 나쁘다 하는 가치 판단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낡은 것은 버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숭고주의자가 돼 있습니다. 공자 삼천년전의 시대로 가자하고 대한민국을 고구려 광개토왕의 시대로 가자고 합니다. 이런 무인숭배주의자들도 정작 그 시대로 가면 탈출러시를 일으켜 병격기피자가 될 것입니다. 중국 전국시대가 시작될때 인국가 3천만명에서 오랜 전쟁이 끝난 진한 시대에는 750만명도 채 안됐다고 합니다. 지금 이라크에는 100만몀의 전쟁미망인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란, 쿠웨이트, 미국과의 모진 전쟁때문입니다.

 

우리는 낡은 의식을 개혁해야 합니다. 새로운 마음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움직이는 마음을 잡아내야 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단순한 것입니다. 빨리 움직이는 마음을 다 잡는 것.. 이것이 사띠입니다. 여러번 얘기하지만 삔야타는 환상이고, 빠라마타는 실재입니다. 마음이 빨리 움직여 놓치는 것이 삔야타이고 마음을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이 빠라마타 실재입니다. 어릴때 집에 있다가 썍쌕이 소리를 듣고 뛰어나와 하늘을 쳐다보면 비행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밤에 북극성 별을 보고 있는데 그 빛은 400년 전의 것이라고 하지요. 임진왜란때 떠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기야 별이 밝지? 하면 400년 전의 별빛'이라고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것이 삔야타입니다. 마음이 움직여 지나갔는데, 쌕쌕이가 소리른 내고 지났는데 그 자취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400년전의 것이라 얘기할 필요는 없지만 알고는 있어야 됩니다.

 

새로운 것을 본다는 것은 본질을 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마음만큼 빨리 움직이는 것은 없다"고 하셔씁니다. 그래서 문명을 만들고 달나라로 우주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음이 빨리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빨리 움직이는 그 마음을 놓치지 말고 그 마음의 움지임을 자세히 봐야 합니다. 과거나 현재를 통틀어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조선이 식민지된 것은 세계의 조류를 몰랐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할 이유도 없었고 또 그만큼의 힘도 없었습니다. 무능한 고종이 몇 척되지 않는 일본 배를 보고 떨었던 거지요. 기실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배상금과 조선에서 나는 물자를 수탈하면서 강대국의 기틀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백성의 고혈을 짬 고종도 벼슬팔아 재산 모으는데 혈안이 돼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말 계몽주의자들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을 콘트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싫던 좋던 과거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지금 여기, 현실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것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의 신념체계이기도 합니다. 2,500년전의 마음들이 그러한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면 지금의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의 움직임을 놓지치 마라 이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네 마음의 움직임보다 빠른것은 없으니 그 마음을 놓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느 분이 기도를 이끌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광고로 다음주부터 3주간 일요강론 시간을 1시간 늦춘 10시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싸두 싸두 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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