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7. 10:4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덜고 비우자
혜천(嵇瀳)스님의 일요 강론 : 불기 2556년 2월 12일
아이고 제가 요새 좀 사랑의 열병을 앓느라고 굳이 감기 몸살이 사랑을 안 해 줘도 되는데 일주일째 아~ 그 분을 모시고 삽니다. 이해해 주시오.
부처님의 일생을 세 시기로 나누어서 우리가 볼 수 있죠. 전반기, 중반기, 후반기. 부처님의 일생에서 전반기는 태어나서 보리수와에서 깨달음을 얻기 이전까지가 전반기에 해당되고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불철주야 부지런히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던 시기가 중반기죠. 35세에서 55세까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55세에 비로서 아난다라고 하는 시자와 동반하게 되는데, 아난다와 동반한 25년이 후반기에 해당되죠. 그래서 부처님의 일생을 우리가 전반기, 중반기, 후반기로 나누어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부처님의 일생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생도 부처님처럼 전반기, 중반기, 후반기가 있죠. 우리가 전반기에는 좋은 땅을 선택해서 거름을 내고 땅을 깊이 갈고 그리고 땅을 고르고 나서 거기에 씨앗을 뿌리고 열심히 김을 매고 부지런히 물을 봐주죠. 물을 본다고 하는 것은 물꼬를 본다는 거예요. 중반기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수확하죠. 그게 중반기예요. 후반기에는 덜고 비우는 시기죠.
우리가 보통 한 90년은 지금 삽니다. 1세부터 30세까지 전반기고, 30세에서부터 60세까지가 중반기가 되죠. 60에서 90까지는 후반깁니다. 전반기에는 부지런히 거름을 내고 씨를 뿌리고 그리고 김을 열심히 매야 돼요. 그러고 중반기에는 꽃을 피워야죠. 그리고 열매를 맺은 것을 수확해서 창고에다가 가득, 가득 채워야죠. 사실 우리가 여기까지는 가르치지 않아도 잘합니다. 인간은 재물을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는 가르치지 않아도 잘해요. 근데 우리가 이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하죠. 전반기 중반기는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전반기, 중반기까지는 차~암 잘해요. 그런데 후반기를 잘 몬하죠. 즉 마무리를 몬해요. 그저 축구로 말하면은 후반전 한 30분까지 3대 0으로 이기고 있죠. 후반전 35분 이후에 네 골을 먹어서 역전패를 당하는 것과 같애요. 우리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거는 후반기예요. 마무리죠. 후반기에는 덜고 비워야 됩니다. 전반기, 중반기는 부지런히 채우는 시기죠. 그저 부지런히 끌어 모으고 끌어 모은 것을 창고에 쌓고 그때는 그래야 합니다. 전반기, 중반기에 덜고 비운다고 설치면 그거는 삶이 위태로워지죠. 그러지마는 후반기에는 덜고 비우지 않으면 삶이 위태로워 져요. 우리가 후반기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덜고 비워야 됩니다. 더 이상 돈과 명예와 권력과 사랑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데는 거기에는 미움도 있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감정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하는 마음마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 후반기에는 모든 것을 덜어내야 됩니다. 그리고 비워야죠. 인생 후반기에 덜고 비우지 못하면 인생이 남루해져요. 우리가 많이 요새 보지 않습니까? 전반기, 중반기에 돈과 명예와 권력을 그걸 한 손에 거머쥐었던 사람들, 인생 후반기에 남루해지는 것을 말입니다. 아마 이런 말씀을 드리면 이렇게 반문하시는 분이 있으실지 몰라요. 나는 창고에 쌓아둔 것이 없어서 덜고 비울 것이 없다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반기까지 살았다고 하는 것은 그마만큼 많은 것을 쌓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후반기가 되면은 비워야 돼요. 비울수록 내 삶이 빛이 나죠. 우리가 삶이 남루하고 비루해지는 것은 비울 시기가 됐는데도 비우지 못하고 끊임없이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예요.
조선 순조 때 최고의 부자는 이목상(상도 임상옥)이죠. 조선 재정에 3분의 1에 해당되는 세금을 그 사람이 냈었으니. 그 당시에. 그 사람은 평생 계영배라고 하는 교훈을 잊지 않았다고 하죠. 계영배라고 하는 것은 가득차면은 없어진다고 하는 뜻인데 가득 채우지 않는다는 거예요. 비운다고 하는 것은 채우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는 가득 채워야 직성이 풀리걸랑요. 정점에 섰을 때 겸손하게 물러날 줄 알아야 돼요.
일본에 우에스키 료잔은 17살에 다이묘가 됐죠. 그에 번은 파산상태였어요. 다 망했죠. 빚이 무려 60만 석이나 됐으니깐. 그 번에 일 년에 생산되는 쌀의 양은 15만 석 밖에 안됐어요. 한 톨을 안 먹어도 맨 년 간 갚아야 하는 60만 석. 그는 17살에 다이묘가 돼서 일본에서 가장 부자인 번으로다 만들었죠. 그러지만 그는 절정기였던 서른다섯에 다이묘에서 은퇴했어요. 은퇴하고 자기의 양자였던, 정확히 말하면 자기 양부의 친자식, 우에스키 료잔은 양자였어요. 전임 다이묘가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예요. 우에스키 료잔을 양자로 들였는데 그 후에 친자식을 낳았죠. 그저 우에스키 료잔은 그를 양자로 삼았어요. 그리고 서른다섯, 한창 절정기에 영주 자리를 자기 양부의 친자식에게 물려주고 그 후 산에 들어가서 칩거했죠.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지도자 두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우에스키 료잔은 1, 2위를 다투는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죠. 난세를 평정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 망했던 번을 가장 부자 번으로 변모시켰지만 절정기에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았던 우에스키 료잔. 이 두 사람은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지도자예요. 우에스키 료잔이 진정으로 존경받았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을 거예요. 인간은 정점에 섰을 때 물러나고 싶은 생각이 아무도 없죠. 근데 그는 정점에 섰을 때 물러났어요. 비웠죠. 물러날 때 물러나지 못하고 자리에 버티고 있다가 남루해지고 비루해지는 것을 우리가 많이 보지 않습니까? 물러나지 못하는 것은 비우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우리 속담에 가진 놈이 더한다고 하는 말이 이 있죠. 부자가 더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단 말도요.
전반기와 중반기에는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우에스키 료잔처럼 집안을 일으키고 가문을 일으키려고 애를 써야 해요. 그러지마는 후반기가 되며는 채운 것을 비우고 또 비울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채우는 것은 비우기 위해서 채우는 거예요. 비우고 비우면 안락해지죠. 후반기에 너무 좋은 악세사리를 많이 걸치면 몸이 무거워져요. 내가 악세사리라고 하는 것은 돈, 권력, 명예 이런 것을 말하죠. 나이 먹어서 인생 후반기에 그것을 너무 많이 걸치게 되면 부자연스러워지죠.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권력자도 그 어떤 부자도 대중에 공적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게 된다는 거예요. 대중에 공적이 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정점에 섰을 때 비울 줄 모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인생의 후반기에는 중반기처럼 왕성한 활동을 덜하셨어요. 보다 더 내면화시키고 보다 더 깊이 있게 대중에게 다가가셨던 거예요. 우리 인생은 3, 3, 3이예요. 전반기 30년, 중반기 30년, 후반기 30년. 그 30년, 30년, 30년을 어떻게 매 시기에 살아가느냐는 거. 전반기, 중반기에 내가 채우고 누리지 못했다고 해서 후반기에 그것을 채우고 누리려고 하지 마시오. 인간은 쥐어보지 못하면 그것을 쥐어보고 싶은 욕망이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것을 쥐려고 하죠. 특히 젊은 날에 그것을 누려보지 못하면 인생의 후반기에 누리려고 해요. 그래서 과시적인 것을 보여주려고 하죠. 젊은 날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후반기에 남에게 과시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참 이상해요. 애초부터 과시하던 사람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시기하지 않습니다. 근데 인생 후반기에 과시하게 되면 시기심을 사게 되죠. 저게 엊그저께 바가지나 들고 다니던 놈이 어느 날 갑자기 박을 타서 부자가 됐다고 해서 저 하는 꼴 좀 봐. 흥부 놀부전이 있죠? 놀부가 과시하는 거는 사람들이 시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예요. 왜? 그는 본래 부자니깐. 그러지만 흥부가 과시하게 되며는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흥부는 매품이나 받았던 사람이니깐. 바가지나 들고 구걸하던 사람이니깐. 박타서 부자 됐다고 과시해 보세요. 후반기에는 비워야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비울수록 그의 삶은 빛이 나죠. 인생 후반기에 채우면 채울수록 도리어 그의 삶은 남루해져요.
부처님은 출가 이후에 남루한 가사를 걸쳤지만 가장 값비싼 옷으로 평가받았어요. 왜 그러냐면 부처님에 남루한 옷은 진실의 옷이었기 때문이죠. 비단을 몸에다 걸친다고 해서 거짓의 옷을 걸치고 있는 한 그는 조롱거리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의 옷을 찬양하는 자는 파리 떼 밖에 없죠. 내 일생의 삶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는 지 아시오? 내가 어려움에 처해보면 알죠.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내 비단옷을 보고 달려들던 파리 떼들은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내 욕망을 과시한다고 해도 그것은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하는 거에 불과해요. 지난날은 보상되지 않습니다. 또 그것은 채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올해는 덜고 비우는 그런 한 해가 되도록 우리가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덜고 비운다고 해서 거지가 되지 않습니다. 논농사를 지어보면 일 년 농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불대기와 물빼기입니다. 농부들은 그것을 물꼬를 본다고 하죠. 물꼬를 어떻게 보느냐가 일 년 농사의 흉작과 풍작을 좌우하죠. 그런데 반드시 가을에 벼를 수확 하려면 물꼬를 터서 논에 있는 물을 다 빼야 한다는 거예요. 완전히 논에 물을 비워야 만이 수확하기가 편하기도 할뿐더러 벼가 더 잘 여물기 때문 이예요. 농사를 짓는 거와 같습니다. 벼농사를 짓는거와. 인생의 후반기에는 논에 물꼬를 터서 물을 완전히 빼버리듯이 덜고 비울수록 우리 삶은 더 풍족해지고 안락하고 행복해지죠. 굳이 우리가 채울려고 채울려고 애쓰지 마시오. 채울려고 애쓰지 않아도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채워지기도 해요. 꼭 채울려고 했기 때문에 채워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채우려고 하는 데에 문제가 있죠. 첨에 말씀드렸지만 채우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우리는 합니다. 그거는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그거이 인간의 본성이야요. 그러나 비우는 것은 배워야 됩니다. 왜 그러냐면 인간의 본성은 비운다고 하는 것이 없어요. 채울 줄만 알뿐 비울 줄은 몰라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의 진리의 가르침에 귀를 기우리는 것도 거기에 있죠. ‘내 인생의 후반기에는 덜고 비워라. 덜고 비워야 네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 마음 또한 가벼워진다. 그래야 안락하고 행복하다’. 아마 나는 비울 것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죠. 마, 그런 분이 있다면 정말 축하드립니다. 덜고 비울 것이 없으니까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마, 제가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겨울만 되면 감기가 저를 사랑해가지고, 그분이 사랑해주면 금방 안끝나요. 오늘은 어떤 분이 마 기도를 이끌어 주실랑가요? 마~ 오늘 기도를 이끌어 줄 분이 없으면 기도는 각자가 마음으로 하시고 내려가시지요.
지난 주 강론을 용기있게 치다보니 게으름증이 발병하여 꾀를 부렸더니 문혜 선우님이 친절하시게도 지난 주 강론을 올리시겠다 하시며 이번 주 것은 제게 하라 하문 하시길래 그러마 했습니다. 감기님이 스님을 무진장 사랑하시어 다행히 짧게 끝내시어 쉽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올리겠다는 호기 찬 발언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데 스님은 괴로우시겠지만 그 때마다 감기님이 왕림하시어 제게 행운을 주셨음 좋겠다는 괘씸한 맘을 내봅니다.
해보니 그동안 고생하신 문혜, 석두님께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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