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시간)|******@불교의우주관@

2019. 4. 21. 11:52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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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불교와 시간

인간사회에서는 동일한 시간일지라도 사람의 감정상태에 따라 느끼는 시간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가령 꼭 봐야할 사람을 기다리거나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경우 그 1분은 한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반면에 좋은 사람과 함께 있거나 재미있는 일에 몰두할 경우 그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빠른 법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상황이 아니고 실제로 고속으로 움직이는 물질계에서의 시간이 느리게 관측된다는 소위 '시간지연'은 막연한 느낌도 단순한 이론적 모델에 불과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 많은 실험적 사실들에 의해 확고히 밝혀졌다.

  '시간 지연' 현상
1958년에 뫼스비우에가 보여준 실험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는 방사성 원자핵의 감마선을 이용해 10-11초까지의 미세한 시간변화도 감지할 수 있는 동일한 원자시계 두개를 회전원반의 중심과 가장자리에 고정시켜 놓고 고속으로 원반을 회전시켰다. 만일 상대성이론이 맞다면 정지상태에 있는 중심의 시계보다 대단히 빠르게 돌고 있는 가장자리의 시계가 느리게 갈 것이다. 실제 실험결과 바깥쪽의 시계가 중신의 것보다 느린 것으로 관측되었다. 그러나 혹시 우연일까 하여 그 두 시계의 위치를 바꾸어 실험한 결과 역시 빠르게 움직이는 가장자리의 시계가 느리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지구에 대해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계에 살고 있는 하루살이는 적어도 내 시계로 관측할 때 몇달 또는 몇년을 살 수도 있다. 물론 상대방의 시계도 그 만큼 느리게 갈 것이므로 그 계에서는 역시 하루살이에 불과하겠지만, 불교경전 여러군데에서 이와 유사한 시간개념, 즉 다른 세계에서는 시간단위가 다르다는 언급이 보이는 것은 흥미롭다. 

이제 우리는 시간개념의 절대성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원래 상대성원리는 아인슈타인이 두 장소에서 일어나는 두 사건의 동시성(同時性)과 같은 기본적 개념까지 비판함으로써 완성할 수 있었다. 동시성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단순한지 알아보기 위해 별의 관측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빛이 태양으로부터 지구까지 오는 데 8분 정도 걸리고, 태양계 밖의 가장 가까운 항성인 알파별에서는 4년, 은하계 중심으로부터는 3만년, 그리고 우리의 은하계 밖에 있는 다른 별무리인 안드로메다에서는 2백만년이나 걸린다. 우리가 지금 관측하고 있는 안드로메다의 빛은 실제로 2백만년 전에 그 별을 떠난 빛이므로 현재의 그 별이 물리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 즉 우리가 동시에 측정하는 별빛에 대한 지식은 실제로 시간적 '깊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존재의 '시초'에 관한 논란에 대해서도 우리는 냉철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천체물리학에서는 이 우주가 언젠가 순간적으로 대폭발(big bang)을 일으켰고 그 후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으며 이 팽창속도로 부터 역으로 계산하면 우주의 나이가 2백억년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창조론자들은 이것을 근거로 해서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서 창조되어 시작되었고 따라서 바로 그 누군가에 의해 종말도 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시작도 끝도 없다'
그러나 과연 그와 같은 전형적인 시간개념으로 우주의 시작과 끝을 설명할 수 있을까? 시간을 역으로 흐르게 해서 우주가 점점 축소될 경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온,고압의 고에너지 상태가 되는데, 이러한 특수상황에서 시간경과가 비선형식으로 무한정으로 느려진다면 절대로 우주의 시초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중력장내에서 힘을 받고 있는 경우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공간은 극도로 휘어질 수 있고, 만일 4차원의 시공간이 시간축쪽을 향해 닫혀져 있다면 우주는 수백억 년의 주기로 현재와 같은 시간이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폭발 이전의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우주팽창의 역으로 커다란 우주가 수축되어 왔고 마침내 대폭발 직전의 대수축된 불덩어리가 된다는 순환식 '흔들이 우주론(oscillating universe)'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능성은 동양적 성주괴공(成住塊空)의 반복 또는 불교의 윤회전생설(輪廻轉生說)을 뒤받침하고 있어서 창조론자들의 아전인수격 주장보다 '시작도 끝도 없다(無始無終)'는 우주의 운명에 대한 불교적 해석에 오히려 무리가 없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