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용이 즉해서 작용이 없다 / 대우거사

2019. 4. 21. 12:1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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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작용이 즉해서 작용이 없다 / 대우거사

< 질문 >

‘작용에 즉(卽)해서 작용이 없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 답변 >

넓은 바닷가 모래벌에 아이들이 모여 사람도 만들고 집도 만들고 다리도 만들고

온갖 것 다 만들어도 넓은 모래벌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 않소?

또 그 모래 사람, 모래집들이 부수수 쓰러져 사라져도 모래벌 자체에는 아무 변화 변천이

없지 않소? 모래벌 위에 온갖 것들이 생겨나건 또 그것들이 사라지건 간에 모래벌

그 자체는 아무 작용이 없는 거요. 생멸이 없단 말이오.

그 모래벌을 일러 소의(所依)라 하고 그 위에 나타나는 온갖 형상들을 능의(能依)라

하는데, 모래벌인 소의가 움직이는 일이 없으니 당연히 능의도 움직이는 일이 없는 거요.


물과 물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요.

모래벌과 물은 보고 만지고 하면서 우리가 존재론적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이해가 빠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그런 예를 들어 비유를 하고 있는

온 삼라만상의 본래 성품은 어디를 둘러봐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온갖 것들이 마치

각자의 독립적인 힘과 의지로 스스로 존재한다고 그렇게 홀딱 속고 있는 거요.

바람의 성품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지만 적당한 인연만 닿으면 바람이 나고,

소리의 성품은 어디를 둘러봐도 없지만 인연만 닿으면 손뼉 소리가 나지 않소?

그 바람을 일으키고 소리를 나게하는 그 근본 성품은 아무 작용도 없이,

다만 온갖 인연에 그저 묵묵히 응해줄 뿐인 거요. 


작용이 없기 때문에 물론 응한다는 생각도 없소 거기엔. 이 세상 일체 만법, 춘하추동이

바뀌고, 해가 떴다 졌다 하면서 지구가 1년 365일 팽이 돌 듯 돌고, 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등등, 그러한 것들이 전부 드러난 모습만으로 보면 틀림없이 무슨

작용이 벌어진 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한 일체 모든 작용이 의지해 있는 근본 성품은

늘 그대로 적멸하다 이 소리요. 모래벌과 물처럼 말이오.

그러니 어서 성품 보는 일 이외에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소?


- 대우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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