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가 근원의 힘|마음공부 생활수행

2019. 5. 5. 19:0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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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인터넷에 떠돌던 사진 한 장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인큐베이터에 쌍둥이 아이 둘이 태어났는데 태어나자마자 한 명의 아이가 죽었어요. 그런데 간호사 한 분이 그 아이가 죽은 지 미처 모르고서 죽은 아이 옆에 살아 있는 쌍둥이 아이를 같이 두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조금 있다 살아있는 쌍둥이 아이가 죽어 있는 아이를 그냥 끌어안았단 말이에요. 그렇게 끌어안고 있었는데 이 죽었던 아이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지요.

이것처럼 우리는 우리 마음 근원에 사랑이라는 아주 본질적인 흐름이 누구에게나 내포되어 있다는 말이죠.

그 어린 아이도 저절로 사랑을 향해 행동하게 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근원은 사랑으로 물결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사랑은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겁니다.

『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수행이야기』라는 책을 보니까 말이죠. 그 지리산의 스님 세 분이 독초를 먹고 죽을 지경까지 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도 약이 없다고 그러고, 그런데 세 분 모두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스님 세 분이 자기 몸을 걱정하기는커녕 서로 다른 스님들의 몸을 걱정해 주고, 약이 한 사람 먹을 양 밖에 없었는데, 서로 내가 안 먹겠다, 다른 스님보고 먹으라고 하고, 모든 스님들에게 ‘나’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한 스님이, 당신도 아파 죽겠지만 다른 스님들의 그 마음 씀씀이의 사랑을 보고, 안 죽는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겁니다.

‘아, 우리는 죽지 않겠구나’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이렇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 마음이 있는 이상 우리는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이죠.

병원도 안 갔는데 그 날 밤에 수행을 하고 앉아서 참선도 하고, 밤을 꼬박 새었는데 죽지 않고 다들 살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바로 자비와 사랑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를 살린 것이지, 이기적인 마음이 있었다면 나 먼저 살고자 했던 마음이 있었다면, 우린 다 죽었을 것이다 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시더란 말입니다.

사랑과 자비가 있었을 때 이처럼 우리 삶에는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자비심으로 할 수도 있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할 수도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모기 한 마리를 죽여야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화난 마음으로 짜증스럽게 죽일 수도 있고, ‘네가 미물로 태어나서 이렇게 고생스레 살고 있구나,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 수행하여 잘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자비스러운 마음을 내고 염불하고 기도해 주고 어쩔 수 없이 죽인다면 그건 앞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죽임입니다.

죽여도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아무리 하찮은 미물도 죽여선 안 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할 일이 생긴다고 한다면 마음을 이렇게 써야 한다는 거예요.

겉에 드러난 행위 이면의 의도가 ‘자비’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의 근원에 사랑과 자비가 언제나 춤추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이 우주법계의 근원에는 무한한 자비의 파장이 언제나 빛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자비와 사랑을 연습하면, 바로 그 순간 우리가 우주법계의 근원과 연결이 됩니다.

그 순간 우주법계가 함께 기뻐하고, 우리를 돕게 됩니다. 그 연결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근원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