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
만법이 허공성이고 무생성이고 무주성(無住性)이기 때문에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볼 것이 없고 · · · · · ·
< 답변 >
성인들의 말씀을 한번 들었거든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뭔가 하는 것을 철저히 사무쳐야 하오.
그래서 그 말의 참뜻을 체달할지언정, 말을 기억 해 짊어지고 다니면서 그 말말 가운데서
요리조리 요령 좋게 그럴싸한 말재주나 부린다면 그건 이 공부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더 낫소.
아무리 정교하게 딱 맞아 똑 떨어지는 소리를 한다 해도,
그건 영겁토록 눈먼 당나귀를 붙잡아 매어두는 말뚝과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완벽하게 알면 알수록, 정교하게 알면 알수록 허공에다 말뚝 박은 거요.
이 얘긴 절대 과장이 아니오.
여러분이 정교하고 완벽하게 알건 모르건 진심(眞心)은 부동(不動)이오.
맑디맑은 거울의 비추는 성품은 거기에 비친 그림자가 아무리 정교하고 알찬 그림자였건,
지지하게 궁상이나 떠는 그림자였건 그냥 있는 그대로 비출 뿐이지,
참되다 커니 허망하다 커니 하는 따위의 분별을 하지 않소.
비유를 들자면, 정한 모양이 없는, 다시 말해 정한 성품이 없는 바닷물은
바람이 불면 그냥 물결칠 뿐이오. 바다의 천파만파가 제 각각 스스로의 생각에 의해,
스스로의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일은 없소. 자체의 성품이 없기 때문이오.
자체로 성품이 없다는 것은, 마치 그림자와 같이 언뜻 겉으로 보기엔 있는듯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요. · · · · · ·
만법이 성품이 없으면, 만법이 성품이 없다고 말하는 그 자신도 성품이 없는 거요.
결국 만법이 성품이 없다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는다면
안팎으로 만법이 전부 다 빙소와해(氷消瓦解) 되오.
부처도 조사(祖師)도 나도, 범부도 성인도, 만법이 그렇소.
그 만법에 예외는 없소. 만법이 성품이 없음을 바닥까지 사무친다면
말길이 저절로 끊어지지 않겠소?
- 현정선원 대우거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