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도 미혹함도 모두 돌보지 않게 됐을 때는 어떻습니까?

2019. 6. 30. 09:3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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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깨달음도 미혹함도 모두 돌보지 않게 됐을 때는 어떻습니까?



 

<답>깨달음도 미혹함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온갖 이런 것과 온갖 저런 것 몽땅
돌보지 않겠다는 뜻 아니오? 그런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그렇게 모두를
돌보지 않게 되면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전혀 앞뒤가 안 맞는 말 아니오?

이 세상 아무것도 돌보지 않게 된 사람이 뭘 또 어떠냐고 물을 게 있겠소?

이래도 저래도, 맞아도 틀려도 아무것도 돌볼 것 없는 사람이 말이오. · · · · · · 

그러니 늘 하는 소리지만, 몇 마디 알아들은 걸 제 살림살이인양 여기고 있으면

천년 만년 가도 깨달을 분수는 없는 거요.

주변에 수행합네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가고 있소.
그러니 다 토해내고 비워내도 모자랄 판에 계속 꾸역꾸역 지견만 쌓아가고 있는데도
자신이 그걸 모르고 있는 거요.

오히려 거룩한 말씀 오묘한 말씀 잘 받들어 모시면서 자신은 아주 잘 가고 있다고

여기고들 있으니 말세(末世)란 말이 결코 과장된 얘기가 아니오.

아주 마디고 촘촘히 가야하오.

제가 하는 말의 뜻을 깊이 사무치지 않고, 그저 한토막 지견으로 붕붕 떠다니니,

아무리 몇 십년 공부를 했다한들 무슨 공덕이 있겠소?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훨씬 낫소.

최소한 온갖 지견으로 똘똘 뭉친 그 무불소통인 '나'란 놈, 누구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철옹성 같은 자만심은 없을 것 아니오. 물론 '나'란 놈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흔히 이 공부를 '나' 없는 공부, '나' 버리는 공부라 하는데,

그래 갖고서야 영영 가망 없는 것 아니겠소? 부처의 참뜻은 팔만사천 법문 그 말과

글 속에 있는 것이 아니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가 다 비었다고 했으면, 더 이상 할 말 없는 거요. 지수화풍
사대가 비었다면, 지수화풍 사대가 비었다는 사실을 누구한테 말할 것이며, 그와 같은
사실을 또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소? · · · · · · 

그러니 구경의 깨달음은 학인에 의해서 증득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거요.

'아, 이거로구나!' 하는 것은 없소. 이 말도 알아듣고 뭔가 수긍하는 게 있다면

벌써 걸려든 거요.

 

          

          -현정선원법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