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변하지 않아요?|…… 혜천스님설교

2019. 7. 13. 19:0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혜천스님 일요강론 질의응답 : 불기2556년 5월 13일

삶이 변하지 않아요?

 

 

매주 이렇게 일요법회에 나와 좋은 말씀을 듣지마는 구체적으로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요기서 삶이 변하지 않는 대상이 자신인지 타인인지 분명치 않아보이지만, 스님이 알아서 답변하심) 

 

질의 응답

오늘은 강론에 대해서 질문을 받죠.

 

(질문) 무아와 타자화된 나가 같은 건가요?

대답:타자화 되었다고 하는 것과 무아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지 않습니다. 네, 같은 뜻입니다. 어려운가요? 타자라고 하는 것이 뭐예요? 타자는 내 아닌 다른 사람이 타자잖아요. 다른 사람을 타자라고 그러죠. 야구 선수 타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요, 내가 말하는 타(他)는 다른 사람. 

 

그것보다는 한 발자국 더 나간 걸 말하죠. 우리가 자신을 객관화시킨다고 하는 말은 많이 써요. 그렇지 않습니까? 객관화라고 하는 말. 객관화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뭐 설명할 필요가 없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니까. 타자화라고 하는 말은 철저하게 나를 타자화시킨 거를 말해요. 무아라고 말과 이건 연결되는 말이예요. 

 

우리가 무아라고 하는 말을 쓰는데, 이 무아라고 하는 말이 솔직히 좀 애매하지 않습니까? 내가 애매하다고 하는 말은 쏙 들어오지 않잖아요. 여기에 '무엇이 있다'라고 하면, 들오 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말을 쓰잖아요. 믿는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전제하느냐면, 만져지지 않고, 보여지지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걸 전제하죠.  만약에 만져지고, 보여지고, 느껴지면, 믿는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왜? 그 말 자체가 필요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만져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믿는다 그러고, 확신한다 그러고 하는 거예요.  

 

선사들이 그런 말을 하죠. 물이 찬지 안 찬지는 먹어보면 안다. 물이 뜨거운 물인지, 찬 물인지는 마셔보면 안다는 거예요. 그 얘기는 뭐냐면, 물이란 건 실체가 있기 때문에 먹어보면 알아요.  그렇지만 무아라는 건 실체를 인정하지 않거든요. 자아라는 건 실체가 있다고 이야기해요. 실체가 있으니까, 실체가 있다는 걸 전제로 하니까, 우리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어요. 그러나 무아라고 하는 말은 차라리없다라고 얘기하면 간단히 끝나요. 있고, 없는 거니까.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이래 버리면 끝나요. 그런데 '없다'는 것이 아니라 '아니다' 그런단 말이예요. '있다'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없다'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다'라고 해요. 이 '아니다'라고 하는 이 말이 2,500년간 수없는 사람을 밟아 죽였죠. 내가 밟아 죽였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이해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타자화'라는 말도 내가 지금 쓰고 있지만, 사실 이게 쉽게 다가오는 말이 아니죠. 거울이라는 것은 실체가 있어서, 거울 앞에 서면, 내 모습이 비치죠. 반영되죠. 그런데 부처님은 마음의 거울에 반영하라 그런단 말이예요. 그런데 마음이라고 하는 건 실체가 있는게 아니걸랑요. 사실 이것은 무아의 말씀이나, 마음의 거울에 비친다고 하는 것이나, 마음이 실체가 없는 거나, 타자화된 나라고 하는 거나, 이것은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적인 것을 얘기하죠. 

 

한 번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비춰 보세요. 거울 속에 비친 나가 나인가요? 거울 속에 비춰지고 있는 나가 말이예요. 거울 속에 나가 있잖아요? 그 나가 나인가요? 나라고 할 수 있는가요? 아이 한 번 이야기해 보세요. 거울 속에 비춰지고 있는게 나예요? 그러면, 거울이 없으면? 거울 속의 나는 타자화된 나예요. 나는 나임에는 틀림없어요. 그러나 그는 타자화 되어 있어요. 다른 분은?

 

(질문) 매일 일요법회에 나와서 스님의 좋은 말씀을 듣지만,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구체적 삶이 바뀌지 않는데)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대답:우리가 장자를 읽는다고 그래서, 장자처럼 한 순간 변하는 것도 아니고, 한비자를 읽는다고 그래서 하루 아침에 한비자처럼 변하는 것도 아니죠. 불경을 읽는다고 그래서 한비자처럼 하루 아침에 변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한 순간에 바뀌어지지는 않죠. 내가 여러 번 말씀드렸지마는 사람은 한 순간에 변하지 않습니다. 또 변할 수도 없구요. 우리 금륜 선우가 이야기하는 그 지적은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죠. 아! 맨날 좋은 소리는 듣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변하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정말, 변하는 것이 없을까요? 금륜선우가 회의 하는 자체가 그만큼 변했다는 뜻이죠. 금륜선우가 그 변화를 갈구한다는 뜻이고요. 그것이 자신의 변화가 되었든, 타자의 변화가 되었든 간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죠. 변화라고 하는 것은 내가 변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는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봄이 오면, 대지의 모든 초목은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죠. 그렇지마는 마른 나무가지에 잎이 돋고, 꽃이 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른 나무가지에 봄기운이 없기 때문은 아니죠. 봄기운은 어디에도 있습니다. 마른 나무가지에도 있고, 살아 있는 나무에도 있고, 돌에도 있고, 어디에도 봄기운은 가득하죠. 그러나 싹을 돋울 수 있는 생명력이 없는 나무에게는 싹은 돋지 않고, 꽃은 피지 않는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변화의 의지를 키우는 거예요. 그 마음 속의 불꽃을 말이예요. 내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내가 변하지 않는한 대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변한 만큼만 대상은 변하죠. 거울 앞에 서는 거와 똑 같애요. 내가 왜 거울  앞에 선 나를 타자화된 나라고 그러냐며는,자! 거울 앞에 서 보십시요. 머리만 디밀면, 딱 머리만 보여줍니다. 몸 반 쪽만 보여주면, 딱 몸 반쪽만 비춰줘요. 절대 내 거울이라 그래서, 아이구 우리 주인님이니까하고, 머리만 디밀었는데 온 몸을 비춰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대상이 변하는 것을 원하면, 내가 먼저 변하고. 내가 먼저 변하면, 대상도 변합니다. 이 세상에는 일방적인 게임은 없습니다. 반드시 내가 변한 만큼만 대상이 변한다는 거예요. 금륜선우가 가지고 있는 그 생각은 우리의 다 공통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그 생각을 일으켰다고 하는 자체가 금륜선우가 그만큼 변화의 흐름 속에 발을 들여 놨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아마, 금륜선우는 난 변한게 없는데? 세상은 참 재밌습니다. 나를 가장 모르는 거는 나 자신이라는 거. 내 자신을 내가 가장 잘 알 것 같죠. 안 그렇습니다. 나 자신을 가장 모르는 사람은 나 자신이예요. 왜 그러냐면, 우리는 자의식이 너무 높기 때문에, 나를 몰라요.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내가 아니라 도리어 타자라는 거예요. 다른 분께서는? 

                  

(질문)타자화된 나, 대상화된 나 같은 거예요?  

대답: 뭐, 아까 그 이야기 했잖아요? 대상은 타자화된 나, 나는 타자화된 대상. 우리가 나와 대상을 구별하지마는 사실 구별짓는 자체가 의미가 없죠. 우리가 수행을 한다고 앉잖아요. 위빠사나. 앉을 때 어때요? 사실 나를 대상화시키는 거예요. 우리가 내 들숨을 보고, 내 몸을 보고, 내 느낌을 보고, 내 마음을 본다고, 우리가 표현을 하지마는, 그것은 나를 대상화시켜서 보는 거예요.   

 

왜 그러냐면, 나를 대상화시키지 않으면 나를 볼 수 없껄랑요. 그래서 대념처경에서 뭐라고 이야기해요. 안과 밖이라고 하는 말을 쓰잖아요. 밖이라고 하는 말이 뭔 말이예요? 대상화된다는 이야이예요. 타자가 된다는 이야기이고. 사실 우리가 대념처경을 읽어보며는 안과 밖이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밖이라고 하는 말은 그 말이예요. 부처님이 이유없이 안과 밖이라는, 내외라고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사들이 내외명철(內外明徹)이라고 하는 말을 쓰잖아요. 안과 밖이 명철해야 된다. 안이라고 하는 것이 뭐예요? 나예요. 밖이라고 하는 것이 뭐예요? 대상이예요. 나와 대상의 관계는 깎지를 낀 것과 같애요. 깍지가 껴져 있는 거예요. 내가 전에도 여러 번 얘기했지만, 나는 대상 속에 있는 거예요. 언제나 우리는 대상 속에 있어요. 지금 우리가 대상 속에 앉아 있짆아요. 아! 우리가 무슨 초절정 고수라고, 공중에 떠 있지 못하잖아요? 지금 마루바닥이 대상이예요. 우리 대상 속에서 지금 앉아 있잖아요. 그래서 대상이 없으면, 어떻게 되요? 뭐 간단하지요. 지구에서 추락하겠죠. 그래서 수행이라고 하는 것도 대상이예요.

 

내가 타자화된 나라고 하는 뜬금없는 새로운 용어를 들고 나와서 그렇지. 내가 강론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본질은 달라질 게 없어요. 그냥 그 때 그때. 아! 맨날 똑같은 단어를 가지고 똑같이 이야기하며는 앉아 있는게 고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때에 따라선... 타자화된 나도 내가 신조어로 만든 거예요. 부처님께서 라훌라에게 하신 그 말씀을 그 반조라고 하는 말을 우리가, 반영이라고 하는 말을... 우리가 반성이라고 하는 말을 쓰며는 학교에서 잘못하면, 선생님한테 반성문 제출하던 버릇이 있어 가지고, 반성하면, 그런 뜻이 있는 듯 들리지만, 반성이라는게 뭐예요? 살핀다는 뜻이잖아요. 돌이켜서 실핀다. 나를 돌이켜서 다시 본다는 이야기걸랑요. 그래서 이 반조나, 반영이나, 반성이라고 하는 말이, 뜻이 다르지 않아요. 결국 그것은 타자화해서 나를 보는 거예요, 다시.  

 

다른 분은 없죠. 그러며는 잠시 좌선을 좀 하겠습니다.

 

  

 

 

*사랑의 기쁨/은희            *코스모스 피어있는길 / 김상희
*새끼 손가락 / 정종숙        *석류의 계절 / 정은숙
*여인의 마음 / 다은희        *오늘밤 내게 / 장은아

*파도/정미조                   *님의 향기 /김란영
*어부의 노래/박양숙          *당신의마음/방주연
*가인/김란영                   *사랑/강영숙
*여심 /최진희                  *방울새/이수미
*우정 / 이숙                    *사랑했는데 /권윤경
*슬픈 고백 / 최진희           *어두워지지않는밤/ 이미배
*제비처럼 / 윤승희            *독백 / 혜은이
*겨울장미 / 이은하            *세월이 가면 / 박인희
*부초/ 박윤경                   *작은숙녀 / 혜은이
*고귀한 선물 / 장은아         *말은 하지 않아도 / 김수란
*눈물로 쓴 편지 / 김세화      *그대 떠난다 해도 / 방주연
*잎새의 꿈 /윤정아             *꽃 길 / 정훈희
*개여울 / 정미조                *당신은 모르실거야 /혜은이
*못잊을 건 정 / 김보민        *휘파람을 부세요 / 정미조
*한여자의고독/김향미         *당신만 있어 준다면/양희은
*인생/류계영                     *나도 모르게 /유가화
*기다리는 여심/계은숙         *나를 잊으셨나요 / 이숙
*기다리게 해놓고 / 방주연     *아름다운것 들 / 양희은
*안개/정훈희                      *비가/혜은이
*내곁에 있어주/방주연         *가시나무새/ 패티 김
*꽃밭에서/정훈희               *내하나의 사람은 가고 /임희숙
*여고 졸업반 / 김인순          *사랑도 미움도/권은경
*겨울바다/박인희               *끝이 없는 길 / 박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