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가 ‘나’이므로 ‘나’아닌 것이 없다

2019. 7. 21. 20:2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일체가 ‘나’이므로 ‘나’아닌 것이 없다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 미래. 현재가 아니로다. 


信心不二(신심불이)요 不二信心(불이신심)이니 

言語道斷(언어도단)하고 非去來今(비거래금)이다.

[신심명]


어떤 큰스님께서는 손님이 오면, 후원의 소임자를 불러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나와 한 고향 출신이다. 잘 대접하도록 하여라.” 소임자는 큰 스님과

동향출신이라는 말을 듣고는 최선을 다해 손님을 모셨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거의 오는 손님마다 한 고향출신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를 궁금히 여겨서 여쭈었더니, 큰 스님께선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사실 우리 모두가 한 고향출신이다. 

우리 모두가 본마음, 참 나 자리, 한 고향에서 온 것이지.”


인도에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밥 먹을 때 맨손을 사용하는

습관이 남아있다. 또한 시골의 화장실에는 아직도 휴지가 없다. 휴지 대신 작은 물통

혹은 물 컵 하나씩 놓여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용변을 보고나서 휴지로 뒤를 닦는 것이 아니라, 물을 사용해 손으로 세척하는 것이다. 

사실 휴지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개운해서 일단 맛을 보게 되면

물세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맨손으로 먹기도 하고 맨손으로 뒷물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손이

정해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먹는 것은 오른손, 뒤를 닦는 것은 왼손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오른손은 깨끗함, 왼손은 더러움을 상징하게 된다.

이러한 두 손을 합쳐서 인사하는 합장(合掌)인사에는 다분히 중도적(中道的)인 

의미가 담겨있다. ‘깨끗함과 더러움이 둘이 아니다. 그대와 내가 둘이 아니다.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중생이 둘이 아니다.

선과 악이 둘이 아니다.'는 불이중도(不二中道)의미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펼쳐진 나의 삶과 진리(眞理), 깨달음,

본마음, 참나 자리,한 고향이 둘이 아님을 확고히 믿는 것이 진정한 신심(信心)이다.

단위에 있는 조각된 불상을 향해서는 108배는 물론 삼천배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정작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고개 숙여 삼배조차 하지 않는 마음은 진정한 신심(信心)

이 아니다. 부처(깨달은 자)와 중생(깨닫지 못한 자)가 둘이 아님(不二)이라는

진실을 굳게 믿어야한다. 나아가 일상생활과 수행이 둘이 아님을 굳게 믿어야한다. 


이렇게 본마음, 참 나, 진리(眞理), 깨달음, 한 고향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둘이 아니다. 이렇게 본마음에서는 일체가 ‘나’이므로 나 아닌 것이

없어져서, 본마음에서는 언어도 끊어지고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인식도 끊어지고 

시간조차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 월호스님


 
 

 

 

       

      모음곡 다시듣고 싶은 노래


       


      01. 학 / 진보라 02. 부두 / 하남석 03. 마음은 두고 가세요 / 채은옥 04. 너 / 해바라기 05. 보고 싶은 얼굴 / 패티김 06.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 하수영 07. 정든새 / 최안순 08. 고향초 / 홍민 09. 연안 부두 / 희자매 10. 찬비 / 최병걸 11. 카페에서 / 최진희 12. 임찾아 가야겠네 / 진송남 13. 싫어 / 펄씨스터즈 14. 축제의 밤 / 트윈폴리오 15. 아하 / 진미령 16. 사모곡 / 함중아 17. 혼자 있어도 / 템페스트 18. 그대와 둘이서 / 하사와 병장 19. 서울 손님 / 하춘화 20. 장미의 눈물 / 최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