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선 無底船

2019. 9. 14. 10:0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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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선



無底船    

1> 돌아 봄, <구하는 것은 고통이다 >

사람은 스스로 不完全한 것이라고 자각이 올 때 겸허 해집니다. 
그리고 편안함은 저절로 옵니다.
완전한 것인 줄 알고 붙들고 있으면 그럴 수록 우리들의 마음은

헝클어 지고 새로운 시작이 더딥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완전한 것이지만 스스로 불완전한 것이라고 바로만 알면

그 불완전이란 思考는 사라지게 되 있습니다.
너무 추구하는 마음 때문에 일을 그르치니 그래서 구하는 마음을 그쳐라,
라고 옛 사람들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흰 구름 떠도는 곳에 푸른 하늘있고
푸른 하는 있는 곳에 구름 한폭 아름다워라! 
두어라,
푸른 하늘과 구름, 
나와 무슨 상관 있으리 !  
  
2>

나를 만나고 지나가는 이는 모두 나에게 法門 거리를 남겨 두고간다. 
일체 경계 또한 그렇다. 
오직 나 자신이 스스로 경계에 메달리느냐,
그 대하고 있는 경계를 놓고 法의 性品으로 돌아가느냐 가 관건이다.

3>

妙道는 虛玄하여 구속된 바가 없는데 스스로 잘 못 집착하여

있다 없다는등 요란 할 뿐이다. 
한法이라도 세워 두는즉 그 것이 구속이되 는 원인이 되니

특별히 정해져 있는 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없는 것에 떨어진즉 성한 눈을 잃게 된다.   

4>
이 공부는, 
우리에게 이미 있는 성품을 경험하는 공부이다. 
무슨  특별한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혹자들은,
책에서나 또는 어떤 특별한 이로 부터 듣고 많이 배워서

기억 할 것이 따로 있는 것 처럼 생각한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 배우고 아는 것을 가지고 들어가 공부를 하려고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 수록 이 공부는 어려워져 버린다.

그런 이 들에게는 바른 믿음도 안 생긴다. 
오직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 필요 할 뿐이다.

그래야사 바른 參句가 가능하다.  
  
5>
공부인은 공부하려고 하는 마음의 습을 그치어야 한다.
이 것을 알아 그치지 못하면 萬像이 어지럽게 뵐 것이다 !
이런 속에서 공부가 되겠는가 ?

6>
인정(人情)

寧以此身
代一切衆生
受地獄苦 


영이차신  대일체중생  수지옥고

終不以此口
將佛法以爲人情
瞎一切人眼 


종불이차구  장불법이위인정  할일체인안

차리리 이 몸으로 모든 중생들의 지옥 고통을 대신 받을지언정
마침내 이 입으로 인정을 위해서 불법을 가지고
모든 사람의 눈을 멀게 하지는 않으리라
- 서장, 대혜 종고 선사 -


7>
건강한 믿음의 노래 

자기가 섞어있지 않는 믿음! 
자신에게 있는 부처는 곳마다 미소 짓죠.

화장실에서나,산 봉우리에서나, 
방안에서나 거리에서나,
사람을 만날때에나 홀로 있을때나
눈을 감고 있을때나
눈을 뜨고 있을 때나

선방 좌복에 앉아 있을 때나
도량을 거닐때나 .........?

부처는 내가 빠져 나가버려야 부처행세를 합니다. 
내 안에 부처가 없어서 부처가 행세 안 하나요 ?


8>
태고보우 선사

덕산의 방을 꺽어버리고  임제의 할을 분쇄하여
어느 곳에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속임을 당하지 않게 된 다음에라야
비로소 풍월을 대할 만하다.
(태고어록)

뭣 에라도 붙들림을 당한즉 어찌 한가로울 수가 있겠는가 !
우리들의 눈은 많은 것들이 가려 버린게 아니고 오직 한생각 티끌인 것이다.

미세한 구름 한점 벗겨지고나면 
푸른 하늘 청청하여 오고감에 자유롭다.
이는 다 우리들의 心性을 말한 것이니 어려울 것도 없다.

어리석게 구하는 마음을 그치지 못하고
스스로 믿어 보지 못함이 아니겠는가 ?
여기에 잇어서 부처를 세운즉 부처를 가리며
마음을 두면  그것이 다시 마음을 가린다.

중생의 마음으로는 이렇고 저렇고 한들 혼자서 그림그릴 뿐 !
우리 성품에는 그림을 그려 놓을만한 그 어떤 것도 없다.
다 헛 수고 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이러고 있음을 자각 못 하고 있다. 

9>
이 공부는 性品을 보지 못 밝히면 헛 공부다. 
이 공부에 衆生心이 끼어 들면 心性은 어두어지기 마련이다.

성품을 보기 위하여서는 화두 참구를 해야한다. 
화두 참구를 바로 하기 위해서는 법문을 듣고 바른 신심을 일으켜

소견이 바로  정립 되어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심으로 궁구하면 마침내는 성품을 본다.

그때라야 심성을 알게 되니 옳 바른공부가 시작된다.
이런 경우 아예 중생심으로 헤아려서 공부를 짓어 가려고 하면 더욱 더 멀어진다.
그냥 공을 들여서 믿음으로 일체생각을 내려 놓고 해야 된 것이 이 공부이다. 

10>
田 岡(전강)스님의 짧은 노래 !


田岡스님(옛,인천용화사 조실스님) 

마음 ,
그것은 깊고 고요하고 맑고
평화하여 그 모양을 잡을 수 없네!

크다고 하나,  어느 구석진 곳에도
작다고 하나 ,어느 큰 것도 감싸지 못함이 없네,
있다고 하나 한결같은 모습 텅 비어 있고
없다고 하나 만물이 이로부터 나오는데,
무어라 이름할 수 없으므로
마음이라 불러보노라.

마음을 깨달은자 부처라 하고
마음이 어두운자 중생이라네.

수많은 사람이 마음을 깨달아
도를 얻었는데 
너는 너는 , 
무엇 때문에
괴로움 가운데 윤회하는가 ?


11>

이별 頌 ! 

가고 옴이 없다고 말 한다면 부처가 우리를 속이는  것이요 , 
가고 옴이 있다고 하면
또한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간다고 하고 온다고도 한다.

이 ! 어인 일인가  ?
우리는 서로 만나서 인사 할 때는 반가워 햇고 ,
갈 때도 역시 잘 가십시요,인사를 했다.

그렇지만,  오고 감이 흔적없어
먼 하늘이 푸르러 뵐 뿐이다.

뒷산에 ,
진달래, 철쭉, 목련, 푸른 소나무,
그리고 풀잎들은
우리들의 얼굴을 그렇게도 또렷 또렷이 보여준다. 

12>

돌아 봄

性品 을 보면 일체 것을 놓게 되어 잇다.
그러므로 붙들려 있던 것들이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홀가분 해지니  마음 길이 열린다. 
이럴때 이치가 밝아진다.
이 상태가 정혜 쌍수 이다.

이 때부터 자신의 性品을 바로 봤기 때문에 바른 믿음이

자리 잡혀 있어서 놓고 사는 생활이 된다.
그러나 깨치지 못하면 미리 아는 것으로 지켜 믿으니

사람이 복잡해지고 대승이 소승으로 변해 버린다.
대승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하는 사람이 어떤 法을 지키고 있으니 소승에 떨어진다.

대개 空 도리에 능한 이들이 이 병에 떨어져 잇다. 
空이란 사람이 지키고 있는 공이 아니며 지키고 있는 즉 공이 못 된다. 


無底船 

덧글 1개    

無底船
돌아 봄, 30 ,<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또한 부처도 아니다. 
법문을 듣고 기억 해 놓은 것이 있으나 그 것이 마음에와 닿아서

지혜로 변형되어 있지 못하면 짐으로 남는다.

오히려 기억되어 있는 법문은 공부에 방해만 될 뿐이다.
스스로 붙들리면 몸이 몸이기도하고 마음도 마음이기도 라고 한다.
그러나  
붙들리지 않으면 몸도아니고 마음도 아닌 것이다.

이게 뭐 겠는가 ?
대개는 붙들림속에서 구하고 잇으니까 얼키고 설킨다.
그리고 스스로 어려운 데로 들어 가 있는 것이다.

 / 현웅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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