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어디에나 그대는 있다 / 몽지님 바로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이 순간 의심할 여지없이 그대는 존재합니다. 이 글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대는 존재하며 그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글을 보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음과 그대의 존재함은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대의 존재, 진정한 그대의 정체성은 이 글을 보고 있는 하나의 몸과 마음, 한 사람, 하나의 인격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직접 탐구해 보십시오. 눈앞의 컵을 보십시오. 컵의 모양과 빛깔, 그것의 촉감, 그것과 관련된 관념과 기억이 의식됩니다. 따라서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에 의해 의식되는 대상 사물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보십시오. 컵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대상 사물로서 육체와 그와 관련된 감각, 감정, 생각들이 의식됩니다. 이 사람, 이 인격 역시 컵과 마찬가지로 내가 아니라 나에 의해 의식되는 대상 사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대상 사물들을 의식하는 참된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무엇’으로서, 하나의 대상 사물로서 있지 않고 그 모든 대상 사물들이 있음의 근원으로 있기에 마치 그것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모든 대상 사물을 의식하는 ‘무엇’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찾고 있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없는 줄 아는 그것은 진정 없는 것인가요? 하나의 대상 사물로서의 그대는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깜빡 잠이 들거나 깊은 삼매에 들거나 전신마취에 들어가면 하나의 몸과 마음으로서의 그대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의식하는 진정한 그대 자신은 사라졌을까요? 몸과 마음의 부재를 경험하는 진정한 그대, 의식이 사라졌다면 다시 몸과 마음의 나타났을 때 그 자신이 부재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의식의 공백이 있었음을 아는 그 의식은 어디서 그러한 정보를 얻었을까요?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그대는 진정한 그대가 아닙니다. 매일 밤 몸과 마음으로서의 그대는 사라졌다가 매일 아침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대 자신의 본질은 깨어있을 때나, 꿈속에서나, 잠이 들었을 때나 변함없이 항상 있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의식의 삼 분단, 깨어있음과 꿈 그리고 잠이란 분별은 불가능합니다. 모든 의식 변화의 배경, 바탕에는 결코 변함없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언어관습일 뿐이란 사실입니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그것’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대상 사물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본래 말해질 수도, 의식되어질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것 자신과 조금도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틈이 없이 온통 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 자신을 상대적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은 그것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의식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들을 떠나서 눈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는 특정한 대상들 속에서 눈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보이든 그것들이 바로 눈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눈은 결코 보이는 대상은 아니지만 보이는 모든 대상들을 통해 스스로를 현현합니다. 대상을 보고 있는 그것이 바로 눈입니다. 컵을, 몸과 마음을 의식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그대 자신입니다. 눈이 대상으로 보이지 않듯 그대 자신은 결코 의식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식되지 않음 역시 또 다른 의식이지 않은가요? 대상이 없는 순수한 의식 그 자체를 우리는 의식되지 않음, 모름이라고 판단할 뿐 아닌가요? 깨어있지만 아무것도 의식되지 않음, 그것을 전통적으로는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본래 상태, 우리의 본질이 바로 그러합니다. 이 순수한,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은, 중립적인 의식 상태 위에 온갖 다양한 의식의 경험들이 비춰집니다. 있음과 없음, 앎과 모름, 옳음과 그름, 좋음과 나쁨… 등등.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이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사물들이 바로 눈 그 자체는 아니듯 말입니다. 눈은 보이는 사물들에 영향 받지 않고 언제나 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의식하는 의식 그 자체는 의식의 내용물과 상관없이 언제나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렇게 있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렇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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