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에 맡겨라. [let it be]’
# ‘순리에 맡겨라. [let it be]’ 이 말은 비틀즈(Beatles)의 노래 가사 중에 있는 한 구절입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let it be].’라는 뜻입니다. 보리 달마는 4행(四行) 법문 가운데 수연행(隨緣行)을 설했습니다. 고통과 즐거움을 받는 것이 모두 인연에 따라 받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씨앗 뿌려 지은 업으로 일어나는 모든 결과를 조건 없이 다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만 특별히 고통을 겪는 것처럼 느끼고 타인의 행복과 비교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현대인들의 병은 세상을 둘로 나누어 보고 비교하는 버릇입니다. 비교하여 우등하면 우월감을 나타내고 자기 잘 낫다고 합니다. 비교하며 열등하면 화내고 짜증내고 시기하고 때로는 의기소침합니다. 하지만 이 상대적인 개념은 인간을 극도로 황폐화하게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것도 바로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정신건강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자살율이 높은 것은 정신건강에 적신호를 나타냅니다. 하지만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모두를 평등하게 보고 서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상대적 박탈감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 <유마경> 「불이법문품」에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해탈열반을 좋아하고, 세간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둘(二)이라고 한다. 반대로 해탈열반도 좋아하지 않고, 세간 또한 싫어하지 않는 것을 불이(不二)라고 한다. 속박이 있다고 한다면 해탈을 열심히 구하겠지만, 속박이 없는데 무슨 해탈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이에게는 정작 기뻐할 것도 없고, 슬퍼할 것도 없다.” 이 경에서 언급한 불이(不二) 사상은 대승의 상징적인 진리요, 중도(中道)요, 공사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중생이 있어야 보살이나 부처가 있고 사바세계가 있으니 열반 극락이 있는 것이니 해탈 열반에만 매달리고 중생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을 둘로 나누어 보는 것이 대립된 생각이요, 차별상입니다. 차별상은 갈등을 가져와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해탈 열반을 좋아해서 매달리고. 중생을 싫어하여 멀리하는 것이 차별상입니다. 이 차별상이 바로 중생들의 마음의 병입니다. 이는 내가 있다는 아상(我相) 때문에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모두를 하나로 보면 모두가 평등합니다. 이것이 둘이 아님인 불이(不二)입니다. 이것은 중도를 나타내고 어디에도 걸림 없이 조건 없이 다 받아들이는 공성(空性)을 나타냅니다. # 기쁜 일이 생겨도 기쁨에는 슬픔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요, 슬픈 일이 발생해도 바로 기쁜 일을 전제로 하는 슬픔입니다. 곧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명예로 이름이 오를 때는 그 명예가 생기는 순간부터 언젠가는 추락한다는 것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칭찬하면, 언젠가는 그 상대방의 비난이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 자연 현상으로 보아도 그러합니다.
꽃이 피었을 때는 그 꽃 속에 꽃잎의 떨어짐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사람이 태어났을 때는 생명이 길고 짧을 뿐 생(生)과 동시에 죽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또한 도자기가 만들어졌을 때는 깨질 수 있다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이 없이 오직 변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디에도 집착할 것이 없습니다.
# 대승경전에서 언급하는 진리나 선사의 말씀이 수행의 저 높은 경지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의 표상이요, 인생에서 터득된 내용을 담담하게 나타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입니다. 아침에 동쪽에서 해 뜨고 저녁에 서쪽으로 해 집니다. 해가 뜨면 낮이요, 해가 지면 밤입니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공(空)입니다. 허공은 삼라만상 모든 것을 다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이면서 어떠한 차별도 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조건을 달지도 않습니다. 담담하게 세상의 이치를 관할뿐입니다. # 그렇습니다. 그래서 좋은 것에도 싫어함에도 집착을 말아야 합니다. 좋은 것이 떠날 때 괴롭게 되고 싫어함을 만날 때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에도 싫어함에도 집착을 하지 않아야 평온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옳다는 마음에 집착을 하면 남을 업신여기게 됩니다. 남이 그러다는 마음에 집착을 하면 내가 우월하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업신여기는 마음과 우월하다는 마음은 생사의 인(因)이 됩니다.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 밝음과 어두움, 생사와 열반 등은 모두 제각각인 것 같지만 결코 다르지 아니합니다.(不一不二). 어떤 현상에 치우칠 필요도 없고, 그 어떤 것에 차별을 두지도 말며, 양쪽의 가치를 공정하게 보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중도의 마음으로 인연에 수순하여 순리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순리에 맡겨라. [let it be]’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