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과 업력 [밀린다왕문경 7강]

2022. 10. 9. 02:4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밀린다왕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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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과 업력 [밀린다왕문경 7강]

인과론이 업론이다

4대 연기설 중 업감연기설이 있는데

업감 연기설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업이다

그 이후 뢰야연기설, 진여연기설, 법계연기설 이어지면서

업이 가장 중요한 근간이고 기반이 되는 주제이다.

윤회의 원동력이 무엇인가?

윤회의 원리가 무엇인가?

업이 윤회의 원동력, 경험의 원동력, 세상의 원동력

명칭만 조금씩 바뀌면서 표면으로 드러나기도 숨기도 하여

그러나 항상 연기 세상이 드러나는 모든 현상의 드러남에 있어서

가장 중오한 위치에 있는 개념이 업이에요

법계 연기설로 가면 우주법계를 창조한 것, 공동창작자가 누구인가?

바로 중생이다

그래서 이세상의 창조주는 신이 아니라 범부중생이다.라는 결론까지 이르는 과정을

4대 연기설에서 다루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나, 너, 세상을 창조한 힘이 무엇이가? 업, 카르마>

카르마의 법칙

중생의 진정한 정체가 창조주다라는 법계연기설의 결론

주체가 없이도 경험은 이루어진다

무엇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가? 조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주체가 있어야 행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언어구조에 묻어있는 것인데

그렇지만 주체가 없이도 경험은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체가 없다는 건

원빈스님이 말을 하는데

원빈스님이라는 주체가 없어도 말은 이루어져요

그렇다면 원빈스님이 없다는 거에요, 몸이 없다는 건가요?

.몸은 있어야 되는데 몸은 원빈스님이 아닙니다.

몸은 몸인데 말한다는 경험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이에요.

몸이 있고 듣는 사람이 있고 ...

사실 몸이 있다는 것도 너무 추상적이죠.

입이 있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들을 사람이 있고 말할 내용도 있어서

다양한 관계조건이 형성이 되면 경험은 일어나는 겁니다.

거기에 원빈스님이라고 하는 캐릭터는 없어요

원빈스님이라고 하는 캐릭터는 

그조건이 화합되어 있는 걸 우리가 원빈스님이 말하는거다라고

환상으로써 가짜로써 개념을 약속했을 뿐이에요.

이입이 말할때와 저입이 말할 때에 어떤 입이 말했는지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편의상 말한 거에요. 이입이 말하면 원빈스님이 말했다고 하자

저입이 말하면 저자가 말했다고 하자. 이런 식이에요.

그런데 그 약속을 실체가 있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주체가 없이도 경험은 이루어진다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장이고

무아,윤회,무아와 윤회까지 공부하는 동안 꼭 기억해야 하는 명제에요.

주체가 없이도 경험은 이루어진다

주체가 없이도 경험은 조건에 의해 이루어진다.

주체가 있을 때 경험은 이루어진다. 주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우리는 착각합니다.

그럴 경우 경험의 원동력은 주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주체가 없이도 이루진다 했어요.

 그렇다면 조건이라는 원동력에 의해서 경험이 이루지는 거죠

그런데 그 조건의 정체가 무엇인가?

그 조건의 정체가 다양한 변수들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업이라는 거에요.

여러 조건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경험에 가장 유력한  아주 강렬한 영향을 미치는 조건중 하나인

업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겁니다.

밀린다 왕은 무아에 대해서 잘 알아들었다 하면서 반복적으로 무아에 대한 질문을 계속 이어나가

지난 시간 무아와 윤회 공부를 할때 원문의 비유가 있어요.

그것은 감각 기관을 통해서 바라보는 주체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비유를 이 몸이 창문이 나있는 성과 같다고 했어요.

그 안에서 영혼이라는 주체가 있어서 눈창문, 귀창문 등으로 왔다갔다한다는 거에요.

사실은 굉장히 논쟁이 유치해요.

왜냐하면 영혼이 있다면

몸과 같을까요? 다를까요? 다르죠(같다면 몸이 영혼이라는 소리가 돼)

몸 안에 있어야 돼뇨? 바깥에 있어야 돼요? 안에 있어야조(바깥에 있으면 유체이탈했다. 임사체험을 했다, 죽었다)

그래서 성안에 사는 영혼의 비유가 나온거에요.

논쟁은 이런식으로 단순화시켜 역점을 잡아내기때문에 대게 유치한 측면도 있죠.

성이 있는데 뛰어다니면서 감각기관을 통해 본다

그래서 감각기관의 주체는 영혼이다. 이런 관점을 아직도 가지고 있으니까 밀린다왕은 헷갈리리는거에요.

밀린다왕은 감각기관이 다른 업에서 생겨납니까? 동일한 업에서 생겨납니까 처럼

업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 같지만 감각기관이 동일한 원인에서 생겨난다는거죠.

그 원인이 뭐겠어요? 영혼에서 다섯가지 감각기능이 일어난다라고 자꾸 말하고 싶은거죠.

감각기관의 주체가 있다라는 생각을 다시 말하는 것(무아에서도 윤회에서도 이미 말했는데)

감각기관은 주체가 영혼으로써 실존한다라고 하는 관점에서 여전히 벗어나있지를 못하는 거에요.

이름을 바꿔서 영혼의 행위가 업이라고 생각하고

업이라는 단어로 바꿔서 다시 영혼을 묻는 격 다른 업에서 온다고 말하니 밀린다 왕은 멘붕이 올수도

왜냐하면 각기 다른 영혼이라고 답을 하는 셈이니까

즉 무아에서부터 끊임없이 영혼이라는 자아가 있다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전제 자체를 바꿔서 생각을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낡은 관념이 있는데

이 관념을 통해서 새로운 걸 배우려고 하면 절대로 익힐 수가 없어요. 특히 무아론은!

.처음부터 낡은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관념을 익숙하게 하고 그 눈을 가지고 세상읋 바라보면서

활용을 해야 새로운 관점의 힘이 생기는 거에요.

업의 일반적인 이론이 아니라 감각기관 그리고 영혼의 문제하고 결부되어 있는 질문과 답변인데요.

업이 인인 동시에 과이거든요

업 즉 인과라고 하는 것은 두리뭉실하게 뭉뚱그리는게 결코 아니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

선인선과, 악인악과인 것이죠.단어 정리부터 해보죠.

신구의-말을 하거나 행동하거나 생각하는 것까지 3가지 문을 통해서 행위가 이루어지기때문에

보이는 것(언행)부터 안보이는 것(생각)까지 전부 다 업의 영역이에요.

제가 앞에 있는 사람 머리를 탁 쳣어요 이 행위가 인이죠

그런데 연쇄적으로 또 앞에 있는 사람 머리를 쳤어요. 이건 과이죠.

결국 업이 업을 낳는 거에요.

개인적인 나, 너라는 단어를 빼면 업이 업을 낳은거에요.

다음 불교의 인과론에서 인과론을 잘 이해 못하는 이유가

자동차 전체를 하나로 보는 거에요.

이 하나가 인을 짓고 과를 낳습니다. 이렇게 단순한거라고 생각하는거에요.

불교의 인과가 복잡해 보이는 이유는

사실은 진실을 보면 자동차는 하나가 아니죠.

굉장히 다양한 부분으로 구분이 되고 다양한 조건들의 화합물이에요.

이 중에서 바퀴하나를 빼버리면 더 이상 자동차로 부르기 어려워지죠.

자동차가 아니라 폐차죠

온전히 자동차를 구성하고 있는 화합물이 다 갖추어져 있을 때 자동차로서의 경험을 이루어 낼 수가 있느거에요.

.나가세나 존자는 학자들이 설일체 유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죠

그래서 설일체 유부의 관점들이 많이 묻어있는데

초기 불교 포함 설일체 유부의 불교 기조 자체가 해체주의입니다.

해체주의는 직관을 쓰는게 아니라 사유를 쓰는 겁니다.논리를 쓰는 겁니다.분석을 쓰는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무아를 깨쳐가는가?

돈오가 아니에요. 화두 잡고 있다 무아를 깨쳤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건 직관을 쓰는 동북아시아 불교의 특징이고

인도불교의 특징은 분석하고 사유하고 논리를 씁니다.

계속 정사유, 정견에 걸맞는 사유를 해보는 거에요.그 사유의 내용중에 대표적인게 해체주의입니다.

뭉뚱그려서 합쳐진 개념(상)이라고 하는게 그래서 뭉뚱그린다. 합친다 이런 어원이 있거든요

뭉뚱그려서 단순하게 개념화시킨 것들을 해체해서 보는 거에요.

꿰뚫어 본다는건 해체해서 보니까 그 실체가 없다라는거에요

그래서 바퀴는 바퀴의 인과가, 문은 문의 인과가, 사이드 미러는 사이드 미러의 인과,

머플러는 머플러의 인과가 전부다 인과가 따로 따로 인거에요.

젊은 시절 암 걸린 사람이 나이들어 30년만에 암이 재발된 사람이 있는데

암에서 벗어나기 위해 운동도 하고, 착한 일도 많이 하고, 수행도 많이 하고, 그런데 암이 또 재발이 되니까

배신감이 드는 거에요.힘들다고...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느냐면

그런데 사람은 단일체인가, 유기복합체인가?복합체이죠.

그런데 자꾸 단일체로 생각을 하는 거에요. 단일체로서 총합은 잘살았다 이거에요.

그러면 어디에도 문제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거죠.

복합으로 총 구성 물질 중에 이부분은 잘 살고 플러스 마이너스 플러스 마이너스 해가지고 플러스라고 하더라도

마이너스인 부분들이 있죠. 이 부분들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거에요.

이렇게 인과는 

27기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한명이 잘못하면 다 같이 벌을 받는거에요.

그런 걸 연좌제라고 하나요.

인과는 연좌제가 아니에요.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의 기수로 묶이면 그 기수가 단일체라고 생각을 하는거에요.

단일체로 이해해야 인과를 쉽게 받아들일 수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단순한 개넘이 아니라는거에요.

연좌제로 받아야 되나요? 따로따로 인과를 받아야 하나요?

단체는 그때 그때 목적에 따라 효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간이 하는 행위이고

인과는 철저하게 구성요소 하나하나 따로 따로 적용이 됩니다.

그래서 다섯가지 감각기능이 하나의 주체로서 이루어지는게 아니다.각각 따로따로다.

1. 영혼이 한다는 것의 문제점 지적

2. 복합체이므로 구성요소 하나하나의 업이 따로 있다.하나하나의 인과가 따로 있다.

건강이 안좋아졌다와 병에 걸렸다(몸이 안좋아졌다)가 같은 것이 아님을 주변 사람들을 잘보면 알 수 있어요

서울에 있을 때보다 건강은 해졌지만 특정 구성요소가 병이 생긴거에요.

전체적으로는 건강해졌는데 특정 구성요소가 병에 걸리니까 특정 구성요소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내에서는 건강이 안좋아진거죠.

얼굴이 검어보이는데 이건 간이 안좋아서 그런거에요.신장이 안좋아지고.

특정부위가 안좋아서 얼굴은 검어 보일 지 모르지만 건강은 좋아진거에요.

공성의 의미를 정확히 아셔야 됩니다.

공성은 다양한 관점에서 적용이 되는 개념인데

자꾸 추상적으로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공성중에서 가장 적극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건

입체적이란 뜻이에요. 이면에서는 이렇고 저 면에서는 저렇고. 이 기준에서는 이렇다.

이 모든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복합체에요.

사람을 한가지 기준으로 재단하면 안된다는 거에요

그게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도를 도라 말하면 도를 가두어버리는 겁니다

얼마나 중요하면 도덕경 첫 구절이 되었겠어요.원래는 첫구절이 아니었어요.상하권중에 하권에 있었다 그러더라구요

 

우리는 경험을 하는데 내가 하는거에요. 조건이 하는 거에요?

조건이 하는거죠. 지금 원을 그리는데 조건이 원을 그리는거죠

그러면 조건의 정체가 뭐에요..?

조건이라고 하는 것의 정체를 업이라고 했는데

업은 나라고 하는 개념에게 상속되어 있나요? 아닌가요?

상속되어 있죠.

설일체 유부에서 나라는 개념대신에 자상속이라는 개념을 쓰거든요.

자상속이라는 개념은 나가 아니에요.

나가 아니라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끊임없는 업의 흐름

업이 상속되어서 이어지는 흐름을 나라고 착각을 하지만 실체는 끊임없이 상속되고 있는 업의 흐름이라는거에요.

나만 그런가 남도 상속되고 있잖아요.그래서 자상속과 타상속으로 구분하는 거에요.

유식에서는 압설을 종자식으로 잘 정리하고 있어

종자가 저장되는 마음을 아뢰야식이라 하고

아뢰야식을 필두로 8식들을 이야기 하는데

마음을 끊임없이 흘러내려가는 폭포수와 같다고 비유해

우리의 경험의 실체는 사실 그거에요.

우리의 경험에는 끊임 없는 상속으로서의 업의 흐름이 있고

업의 흐름으로 부터 나온 련상의 흐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그 현상을 경험이라고 하는거에요.

그 연결성이 분명히 있는데 그걸 자상속이라고 이름을 붙여

그걸 나라고 붙잡으면 윤회를 하는거고

나라고 집착하지 않고 자상속으로서 상속되는 흐름과 경험으로써 보고 있으면 그걸 해탈이라고 하는거죠

해탈한다고 해서 상속이 끝나는 건 아니에요.

 상속은 이어집니다. 상속은 이어지는데 어떻게 윤회에서 벗어나는가

집착하지 않으니까!자세한건 불교철학입문중에 수행론 참조

상속은 물결 전체의 이름이고 상속되는 과정은 자상속으로 이름 붙이고

업은 그 물방울입니다.상속을 이어나가는 구성요소들의 물방울

통장이 0원이면 상속할 수가 없어.100원이면 업이 100개 이런식으로

물이 흘러가요 이걸 상속으로 표현 결국 업을 상속하고 있었다

업=행위라는 뜻

업은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에요.

업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신구의 3업

업을 지으면 인과 과가 있어(여기서 상대방과의 인과의 설명은 제외)

자신 스스로의 경험속에서 인과가 있을 수 있어

그 인과를 놓고 따져보면

행위를 하나하면 그것이 인이 되어

이 인이 과로 이어지려면 업이 미래에 전달이 되어야 이게 상속인데

업이라고 하는 행위의 힘이 남아야 즉 업력으로 여력을 남겨야

업은 업력이라는 과를 낳고 다시 업력은 인이되어 했던 것과 비슷한 업을 만들어

쌍욕이라는 업을 지어 쌍욕을 한 업력이 남아(한번하면 두번은 쉬워)

업력은 쌍욕을 쉽게 도와주는 업이 남은 것

욕문이 터지면 종자가 충분히 있어 출가전에도 욕쟁이였고 노스님도 욕을 잘하셨어

업과 업력의 차이는 욕종자가 있어 이건 업력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은 씨앗이니까

욕의 현상은 내가 만드는게 아니라 업력을 자극해서 인내하지 못하도록 폭발시키는 조건이;되면

욕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것. 욕문이 트이기 시작하는것

그래서 말을 내뱉으면 그것이 업이라고 하는 것

아직 참고는 있는데 머리에서 욕이 지나갈 수는 있어요.

생각으로 지나가 이건 업이에요, 신구의가 업이니까요.

가능성으로서의 \여력으로 남아있는건 업력입니다.

업과 업력을 구분해야(업과 업력을 뭉뚱그려 업이라고 부르는 경향 그러면 헷갈리고 어려워지는 것)

업은 단순히 행위이고 업력은 가능성의 씨앗이다

또 행위와 업장도 하나의 단어로 써버려 그래서 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오해로 물들어버려

업장은 장애라는 부정적인 의미

사실은 업장이 아니고 업력이에요.업력은 중립적인 단어이고 업장은 부정적인 단어

그래서 업도 부정적인 것으로 남용돼

업력은 보기 어렵고 업은 눈에 보이는것 업의 순수한 의미는 원래 행위

그래서 구분하는게 좋다고 봅니다.이렇게 해체해서 봐야 명확히 보입니다.

업은 현상으로 드러난 것

업력은 가능성으로 있는것

업은 드러나자 마자 업력을 저장되는 것(쌍방간의 인과관계가 있다)

 

사람들이 각기 개개인이 다른 인과. 사람마다 인과가 다를 수 있다.

씨앗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식설에서는 업력을 종자로 표현

종자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 경험이 종자의 열매이기 때문이에요

업력과 업의 관계이죠 종자는 업력이고 업은 현상경험이죠.종자와 현상입니다.

사람은 그럴 수 있는데 몸의 부위부위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사람사람이 다른 인과를 받을 수 있다와

몸의 부위부위가 다른 인과를 받을 수 있다는 같은 이유다

그런데[ 전자는 쉽게 받아들이고 몸의 부위부위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니 나와 남은 구분이 잘돼 그래서 인과도 당연히 구분을 해야돼

몸의 부위가 다르다는건 다 내몸이라 이해가 잘 안되는것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

마음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아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의식의 지도를 만들었는데

의식의 지도상 용기의 영역이 있는데 주로 용기의 영역에 머무는 사람이 항상 용기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도 복합체에요.

심왕이 있고 거기서 활동하는 심소들이 다양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끊임없이 변해가

마음이 굉장히 복잡하고 과거에 지은 업력에 의해 저절로 꽃피는 마음들을 막을 수도 없고

막을 이유도 없어

수행이 잘되면 분노라는 생각이 안일어날까요?일어날까요?

일어날 조건이면 일어나겠죠. 공부가 된 사람도 화가 날 수가 있다.

공부를 잘한 사람이 검소한데 욕심이 역시 일어날 수 있다.

건전한 청년도 어느 날 강렬한 음욕이 일어날 수 잇어

복합체이지 결코 단일체가 아니다.

총점으로 승부를 보는게 아니에요.

각각의 개별점수들이 따로 매겨지는 겁니다.

수행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끊임없이 상속되어가는 경험들을 들여다보면 예상치 못한 것들이 많아

업은 어차피 흘러가는 애들인데 흘려보내는가 이것은 자유롭다는것

분노가 일어나는것과 분노를 잡아 빠진건 다른거에요.

자유로운 사람은 분노가 일어나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흘러가.

공부가 많이 될수록 금방 흘러가

공부가 덜된 사람은 분노가 일어나요.

내가 공부를 못했구나, 이러다가 지옥에 가겠구나. 무서운데 나는 어떡해야 되지.

공부한 건 헛것인가.. 

첫번째 화살은 누구나 있을 수 잇는데 공부가 덜될수록 두번째,세번재, 네번째 화살을 계속 맞아

그,래서 아주 멀리 가버려.이런게 사로잡혔다고 하는 것이다.

자상속이라는 업의 흐름에 빠져버려.그래서 끌려 가버려.

공부를 하고 마음을 보고 자유로워진다는건 누구나 흘러가는 강위에서 살고 있지만

빠져서 흘러갈 것인가? 아니면 벗어나서 보고 있을 것인가?

이 차이가 있습니다.

흘러가는 내용물은 깨달은 사람이나 깨닫기 시작한 사람이나 깨닫기 시작한 것에 조금 모자르거나

깨닫지 못한 사람이거나 수행의 정도에 상관 없이 내용물은 거의 비슷해

무한한 생을 거듭하는동안 나쁜 짓도 많고 선한 짓도 많기때문에.

씨앗에 의해서 업이 다르다. 즉 해체해서 더 자세히 봐야 된다는 것

복합체로봐야지 단일체로 봐서는 안된다.

인과가 적용되는 방식이 1000가지람녀 각기 다른 인과를 주겠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가깝다.

복합체로 보니 복잡해보이고 어려워보이는 것이다.

주체가 없이도 경험이 일어난다. 그 경험이 주체가 없으면

무엇을 원인으로 하는가? 업을 원인으로 경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개인의 경험을 놓고 지금까지 이야기해

다음시간 공업과 불공업을 공부할 예정

경험의 원동력은 개인의 경험인데 경험을 넘어서 대상을 포함하고 있는 세상은 어떻게 창조되었나

이것은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세상이라고 하는 경험

세상은 중생세간을 포함한 기세간의 복합체

개인을 보는거나 세상을 보는거나 똑같은 복합체 원리로 보는 것이다.

개인은 경험을 한다. 세상도 성주괴공의 경험을 하는겁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사람들이 자아가 없다고 생각하여

세상 너 나하고 친구할래 이런식으로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세상이나 나나 똑같이 자아가 없이 업으로 설명하는것은 같아

결론은 개인경험의 원동력은 업이다 

세상이 창조되고 변해가는 원동력 역시 업이다

공업과 불공업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볼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