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 이후의 수행? -특강 수심결18
2022. 12. 25. 17:0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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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 이후의 수행? -특강 수심결18
불성의 특징-유연한 잠재력(탈것)
1.불성인 마음
2, 공적영지하게 쓰라
생각에 빠지지않고 생각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공적영지의 꽃과 열매=불보살(설법은 씨앗)=순환과정=상응(법희)
쾌락(밖)<=>희열(안)
마음, 그 투명한 빛으로 /의연스님
마음 닦는 길 [修心訣] +++++++++++++++++++++++++ 13. 번뇌를 없애는 수행 그러나 번뇌는 두텁고 습기는 무거우며, 자기 마음의 본 성품을 밝게 살피는 관행(觀行)은 약하고, 마음은 들떠서 무명(無明)의 힘은 크고 지혜의 힘은 약해서, 선악의 경계에서 마음이 동요하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여 담담하지 못한 사람은 반연을 잊고 번뇌를 없애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육근(六根)이 경계를 대하여도 마음이 반연을 따르지 않음을 선정(禪定)이라 하고, 마음과 대상이 함께 공(空)하여 미혹함이 없음을 비추어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 이것이 비록 상(相)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로써 점문(漸門)의 열등한 근기의 수행이지만, 대치하는 문에서는 없을 수 없다. 만약 망상이 들끓거든 먼저 선정의 이치대로 산란을 거두어 마음이 반연을 따르지 않고 본래 고요함에 계합하게 하며, 만약 혼침이 더욱 심하면 지혜로써 사물을 판단하고 공(空)을 관하여 미혹함이 없음을 비추어 본래의 앎에 계합하도록 한다. 선정으로써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리고, 지혜로써 멍청함[無記]를 다스려 동요하거나 고요한 것도 끊어지고 대치하는 노력도 없어지면 경계를 대하여 생각마다 근본으로 돌아가고, 반연을 만나도 마음마다 도에 계합하여 걸림 없이 쌍으로 닦아야 일없는 사람[無事人]이 될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하면 참으로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져 불성을 분명하게 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라고 하신 것과 같다. |
마음 닦는 길 [修心訣]
+++++++++++++++++++++++++ 14. 깨달은 뒤에 닦는 수행 방법 【문】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깨달은 후에 닦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는 두 가지의 의미입니다. 첫째는 자기 성품의 선정과 지혜며, 둘째는 상을 따르는 선정과 지혜입니다. 자기 성품의 문은 '걸림 없는 고요함과 앎이 원래 무위(無爲)하여서 한 티끌도 대를 짓지 않으니 어찌 털어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며, 한 생각의 망령된 정도 일어나지 않으니 반연을 잊으려 힘쓸 것도 없다' 라고 하고 판단하여 이르시기를 '이것이 돈문(頓門)에 들어간 사람의 자기의 성품을 떠나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상을 따르는 문은 '이치에 따라 산란함을 거두며 사물을 판단하고 공(空)을 관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루 다스려서 무위(無爲)에 들어간가' 하고, 결론짓기를 '이것은 점문(漸門)의 열등한 근기의 수행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선정과 지혜에 관하여 의심이 없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수행할 경우, 먼저 자기 성품의 선정과 지혜를 쌍으로 닦은 후에 다시 상을 따르는 문의 대치의 노력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먼저 상을 따르는 문에 의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루 다스린 후에 자기 성품의 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만약 먼저 자기 성품의 선정과 지혜에 의지한다면 고요함과 앎이 자재하여 다시 대치의 노력이 필요 없을 텐데 무엇 때문에 또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가 필요합니까? 그것은 마치 흰 옥에 무늬를 새겨 그 바탕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먼저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로서 대치하는 노력을 완성한 후에 자기 성품의 문에 나아간다면, 그것은 완연이 점문의 열등한 근기의 깨닫기 이전의 점차로 익히는 것이니 어찌 돈문에 들어가는 사람의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노력 없는 노력을 쓰는 것이라 하겠습니까? 만일 동시여서 전후가 없다면, 두 가지 문의 선정과 지혜의 돈(頓)과 점(漸)이 다른데, 어떻게 한꺼번에 아울러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즉, 돈문(頓門)의 사람들은 자기 성품의 문에 따라 걸림이 없고 자유로워 노력할 것이 없고, 점문(漸門)의 열등한 근기는 상을 따르는 문에 나아가 대치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두 문의 돈(頓)과 점(漸)이 다르고 우열이 분명한데 어떻게 먼저 깨치고 뒤에 닦는 문 가운데에 두 가지를 아울러 말씀하십니까? 다시 잘 설명하시어 의심을 풀어 주십시오. 【답】 나의 해석은 분명한데 그대가 스스로 의심은 내는구나. 말을 따라 알려고 하면 의혹이 더욱더 생기고 뜻을 얻어 말을 잊으면 힐문을 필요가 없다. 만약 그 두 문에 관하여 각기 수행할 것을 판단한다면, 자기 성품의 선정과 지혜를 닦는 사람은 돈문에서 노력 없는 노력으로 움직임과 고요함을 함께하여 자기의 성품을 닦아 스스로 불도를 이루는 사람이다.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를 닦는 사람은 깨닫기 전에 점문의 열등한 근기가 대치하는 노력으로 마음마다 미혹을 끊고 고요함을 취하여 수행을 삼는 사람이다. 이 두 문의 수행은 돈(頓)과 점(漸)이 각각 다르니 혼동하면 안 된다. 그러나 깨달은 뒤에 닦는 문에서 상을 따르는 문의 대치함을 아울러 논한 것은 점문의 열등한 근기가 닦는 것을 전적으로 취한 것이 아니라. 그 방편을 취하여 임시로 쓸 뿐인 것이다. 왜냐하면 돈문에도 근기가 수승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도 있으므로 한 가지로 그 닦는 길을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번뇌가 엷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선악에 무심하고 여덟 가지 번뇌에도 동요하지 않으며 세 가지 느낌까지도 빈 사람은 자기 성품의 선정과 지혜를 의지하여 자유롭게 겸해 닦으면 천진하여 조작이 없다.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항상 선정이어서 자연한 이치를 이룰 것이니, 어찌 상을 따르는 문의 대치하는 방법을 빌리겠는가. 병이 없으면 약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먼저 돈오하였으나 번뇌가 두텁고 습기가 무거워서 경계를 대함에 망정이 쉬지 않고 일어나고, 반연을 만남에 대를 짓는 마음이 계속 일어나서 혼침과 산란에 떨어져, 항상 고요하고 밝게 아는 마음이 흐려지는 사람은 곧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를 빌려 대치함을 잊지 말고 혼침과 산란을 고루 다스려 무위에 들어감이 마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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