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천부경(天符經)해석(解析)

2007. 6. 4. 05:50사상·철학·종교(당신의 덕분입니다)/대종교(大宗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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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부경(天符經) 풀이

                 / 칠통 조규일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하나의 시작은 시작 없는 하나이고

 

 

(一) 析三極無盡本(석삼극무진본)
이러한 하나를 셋(三極:天.地.人)으로 나누어도 그 근본을 다함이 없다
즉 하나를 셋(三極:天.地.人)으로 드러내도 석삼극(析三極:天.地.人)으로
하나의 근본(本)을 다 드러내지를 못한다 할 것이며


 


하나(一)를
셋으로 쪼개어(析) 셋(三)으로 나누었을 때의 석삼극(析三極)은
天(천) 地(지) 人(인)으로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이삼)
天一一(천일일)  하나에서 첫 번째로 하늘이 생기고(나오고)
地一二(지일이)  하나에서 두 번째로 땅이 생기고(나오고)
人一三(인일삼) 하나에서 세 번째로 사람이 생겨났다(나왔다)

 

즉 하나(一)에서 맨 처음 틈이 생기고 틈이 생김으로 공간이 생기고
공감이 생김으로 허공이 생기고 허공이 생김으로
하늘(天)이 생기게(나오게) 되었으며

 

이러한 하나(一)의 대폭발로 인하여
틈과 공간 허공이 생김으로 본래 하나(一)는 산산조각 부서져 흩어지고
하나(一)가 부서져 흩어지는 틈과 공간 허공에
먼지와 티끌이 부서져 떨어져 나온 하나(一)의 원래 조각으로 인하여
하나(一)로부터 땅(地)이 생기고(나오고)

 

땅이 생김으로 인하여
땅에 의지하여 인간(人)이 출현하게(나오게) 된 것이다.

 

 

 

이렇듯 하나(一)에서 분리 되어 나온 석삼극(析三極)이

 

一積十鉅無 化三(일적십거무궤화삼) (빠져 있는 궤자는 櫃에서 木을 뺀자)

 

一積(일적)
하나 하나 쌓아서(닦아서)
一積十鉅(일적십거)
 하나 하나 쌓아서(닦아서) 가늠할 수 없이 크고 큰 십(十)으로 완성되고
十鉅無櫃(십거무궤)
십(十)으로 완성된 큰(가늠할 수 없는) 틀(궤짝. 모양. 모습. 형상. 상)없는
鉅無櫃化三(거무궤화삼)
가늠할 수 없이 크고 큰 하나(一:거무궤(鉅無 ))는 틀이 없으나
삼(三: 天.地.人:만물)으로 변화되고 나누어져 드러나 있다.
여기서 인(人)이라기보다는 만물이 더 맞는다 할 것이다.
거무궤(鉅無櫃)가 화삼(化三)이 되어 있다

즉 틀 없는 하나(一)가 삼(三: 천(天). 지(地). 인(人:만물))으로 변화되고 나누어져
천(天). 지(地). 인(人:만물)이란 틀 그릇에 담겨져 드러나 있다는 뜻이다.

 

즉,
하나 하나 쌓아서(닦아서) 거무궤(鉅無 )
즉, 하나(一)를 십(十)으로 완성해야 하고
십(十)으로 완성된 하나(一)의 거무궤(鉅無 )는
천(天). 지(地). 인(人:만물)으로 이미 변화되고 나누어져 형상의 형태로
천(天). 지(地). 인(人:만물)이란 틀 그릇에 담겨져 드러나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천(天). 지(地). 인(人:만물)으로 이미 변화되고 나누어져 형상의 형태로
천(天). 지(地). 인(人:만물)이란 틀 그릇에 담겨져 드러나 있는 속에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지이삼인이삼)

 天二三 (천이삼) 
하늘에 둘이 셋으로 있고
즉, 하늘에 땅과 사람(만물)이 천지인(화삼:化三)으로 하나(一)가 있고
 地二三 (지이삼)
땅에 둘이 셋으로 있고
즉, 땅에 하늘과 사람(만물)이 천지인(화삼:化三)으로 하나(一)가 있고
人二三 (인이삼)
사람에 둘이 셋으로 있다.
즉, 사람(만물) 안에 하늘과 땅이 천지인(화삼:化三)으로 하나(一)가 있다.

 

즉, 앞에서 십(十)으로 완성된 하나(一)의 거무궤(鉅無 )는
하늘(天). 땅(地). 사람(人)으로 나누어져 있고
나누어져 있는 하늘(天). 땅(地). 사람(人) 각각에

화삼(化三)으로 변화 나누어져 드러나  있어
하늘(天) 안에 화삼(化三)으로 변화 나누어져 드러나 있는 땅과 사람이

천지인으로 완성된 하나(一)가 있고
땅(地) 안에 화삼(化三)으로 변화 나누어져 드러나 있는 하늘과 사람(만물)이

천지인으로 완성된 하나(一)가 있으며
사람(만물) 안에 화삼(化三)으로 변화 나누어져 드러나 있는 하늘과 땅이

천지인으로 완성된 하나(一)가 있다.

 

 


이렇듯 
하늘(天). 땅(地). 사람(人:만물)이 하나의 세상(세계) 삶으로

 

大三合六生七八九運(대삼합육생칠팔구운)

 

大三合(대삼합)으로 六生(육생)하는 것이 七八九運(칠팔구운)한다.

 

큰 하나는 이 하나의 세상(세계) 한 번의 삶 한생(一生)을 말하는 것으로
大三(대삼)은 한번 한번 한번의 삶(生)으로 전생 현생 내생을 말한다 할 것이니

 

大三合(대삼합) 큰 셋(전생 현생 내생)이 합하여져서
六生(육생: 육도) 여섯으로 태어나고
즉 삼악도(三惡道: 지옥 아귀 축생)와 삼계(三界:수라(修羅) 인간 천상)로 태어나고
여섯(六道)으로 태어나는 것이
앞에서 말한 일적십거(一積十鉅無 )가 될 때까지
즉 하나 하나 쌓아서 십(十)으로 완성되는 십거무궤(十鉅無 )
즉 본래의 하나(一)가 될 때까지
七八九運(칠팔구운)
순서 순리 이치 법... 진리대로 움직이며 운행하고

운행하면서 생겨나고 생겨남으로 윤회한다.

 

즉 大三合六生七八九運(대삼합육생칠팔구운)은
大三合(대삼합: 전생 현생 내생이 합하여져서)으로 육도(六道) 윤회(윤회)하고
하나 하나 쌓아서(닦아서) 십(十)으로 완성되는 본래의 하나(一)가 될 때까지
육도(六道) 윤회(輪廻)하며 칠(七) 팔(八) 구(九)로 발전해서
십(十)을 이루어 본래의 하나(一)가 될 때까지
大三合(대삼합)에서 진리 안에서 움직이며 윤회하게 된다.

 

 


이렇듯
大三合(대삼합)에서 육도(六道) 윤회(輪廻)하며 칠(七) 팔(八) 구(九) 로 발전
완성의 십(十)을 이루어 본래의 하나(一)가 될 때까지
육도(六道) 윤회(輪廻)하는 가운데 인간으로 태어나

 

三四成環五七一 (삼과성환오칠일)
 
三四成環(삼사성환) 三五成環(삼오성환) 三七成環(삼칠성환) 三一成環(삼일성환)의 뜻으로

三四成環(삼사성환)
삼(화삼(化三)의 사람(人))으로 돌아(태어나)와 4(4의 경지를 이루고)가 되기도 하고
三五成環(삼오성환)
삼(화삼(化三)의 사람(人))으로 돌아(태어나)와 5(5의 경지를 이루고)가 되기도 하고
三七成環(삼칠성환)
삼(화삼(化三)의 사람(人))으로 돌아(태어나)와 7(7의 경지를 이루고)이 되기도 하며
三一成環(삼일성환)
삼(화삼(化三)의 사람(人))으로 돌아(태어나)와 하나(一)를 이루게 되기도 한다.

 

즉 大三合(대삼합)으로 육도(六道) 윤회(輪廻)하며 칠(七) 팔(八) 구(九)로 발전
완성의 십(十)을 이루어 본래의 하나(一)가 될 때까지
육도(六道) 윤회(輪廻)하는 가운데
화삼(化三)의 사람(人) 인간으로 태어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하나 하나 쌓아서(닦아서) 4 5 6 7 8 9 십(十)의 경지를
저마다 이룰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렇듯
삼일성환(三一成環)해야할 본래의 하나(一)는
즉 인간으로 완성하여 본래로 회귀해야할 하나(一)는 

 

(一) 妙衍萬往萬來(묘연만왕만래)

 

(一)묘연(妙衍) 
이 하나(一)가 묘연하여
만왕만래(萬往萬來)
만번 오고 만번 가며 즉 수없이 또는 끊임없이 오가며

 

즉 하나(一)의 묘한 이치가 수없이 끊임없이 변하고 변화하며 바뀐다.

 

 

 


이렇듯
하나(一)가 끊임없이 변화 무쌍하게 바뀌는 하나(一)의

 

用變不動本 (용변부동본)

用變(용변)
쓰임은 바뀌어도
不動本(부동본)
그 하나(一)의 근본바탕은 바뀌지 아니 한다.

 

즉, 하나(一)가 묘연하여 그 쓰임이나 드러남이 끊임없이 변화 무쌍해도
그 근본 바탕은 변함이 없다

 

 


이렇듯
변함없는 하나(一)의 근본 바탕 본성은
 
本心本太陽昻明(본심본태양앙명)

 

本心本(본심본)
그 본래 마음의 근본은
太陽昻明(태양앙명)
태양의 밝음을 우러러 보는 것과 같다.

 

즉, 본래 마음의 근본 바탕 본성은 태양을 똑바로 보았을 때
보름달과 같되 보름달 보다 더 밝은 태양의 밝음과 같이
본래 마음의 근본 본성이 밝다.

 

 

 

이렇듯
본성이 마음이 태양과 같이 밝은 사람
또는 이를 아는 사람은

 

人中天地一 (인중천지일)
사람 가운데 천지가 하나로 들어와 있는 것을 안다.

 

즉, 사람 안에 천지(天地)가 있고 하나(一)가 있는지를 안다.

 

 


이렇듯
사람 안에 천지와 함께 있는 하나(一)

 

 一終無終一 (일종무종일)
그 하나의 끝은 끝없는 하나이다.

 


 2005. 7. 13. 13:41


 

 

 

아래 글은 일전에

명상 수행 글의 뎃글로 썼던 것을 정리하여

일적십거무궤화삼  부분에 넣을 까 하다가

풀이 마지막에 넣음으로

조금이라도 더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올립니다.

 

 

 

십거무궤(十鉅無櫃)란

 

완성의 십(十)인 하나는 가늠할 수 없이 크고 큰 하나는
어떤 모양 모습 형상 상없고 어떤 틀 없이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이것이 하늘(天)에도 있고 땅(地)에도 있으며
사람(人)에게 있는 지 알아야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형상 것들에
형상 없이 모습 없이 상없이 두루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러한 십거무궤(十鉅無櫃)는
큰 하나를 말하는 것으로
전체의 하나를 말하기도 하고
이를 우주라 말하기도 하고
본성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일체의 하나를 말하기도 하고
오직 하나의 신 유일신을 말하기도 하고
오직 하나인 하나님을 말하기도 하고
불(佛)을 말하기도 하고 마음이라고 한다.

 

일적십거무(一積十鉅)의 이러한 이름들은
무궤(無櫃)인 일적십거(一積十鉅)를
이름하여 부르는 궤(櫃:궤짝. 틀, 상표)에 넣은 것이다 할 것이며
이러한 이름들이 하나의 궤짝이고 그릇이고 틀이며
이것의 상표나 다름없다 할 것이다.

 

그리고 완성된 가늠할 수 없는 큰 하나를 이루고 있는 속성
즉 궤(櫃:궤짝. 틀, 상표)에 들어 있는 것을 두고
우주가 성주괴공한다 하고 불성이라고 하고 법이라고도 하고 진리라고도 하며
법성이라고도 하고 대생명이라고도 하고 대영혼이라고도 하며 성령이라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를 본성의 속성이라고 하고 주인공이라고 하며
기(氣)라고도 하고 마음작용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의 이름들은 그것의 이름이 그러한 것이고
그것은 정작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그 어떠한 상도 없고  그 어떠한 틀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담겨질 그릇이 없이 여여하다 하겠으나

 

저마다 "나"라고 하는 이름의 상표를 가지고
일적십거(一積十鉅) 안에서 "나"라는 틀을 만들고
"나"라는 틀을 만들어 "내" 안에서 작용하는 것을 내 마음이라 하고
내 마음을 이루는 틀을 내 마음의 그릇이라 저마다 말하니
가늠할 수 없는 일적십거(一積十鉅)를 이렇듯 이름하여 지칭하니
지칭하여 이름한 모든 이름들이 일적십거(一積十鉅) 안에 있고
일적십거(一積十鉅)를 벗어나 있지 않으니
지칭하는 모든 언어의 이름들은
그 이름을 떠나 따로이 일적십거(一積十鉅)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이름을 떠나 따로이 일적십거(一積十鉅)가 있지 아니한 곳(것)없이
두루 있다 하겠으니
십거무궤(十鉅無櫃)의 차원의 이란
이름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름한 모든 것을 관장하며
이름한 모든 것이며
이름하지 모든 것이기도 하고
상이 있고 없고
틀이 있고 없고
모습이나 모양이 있고 없고를 떠나
없는 곳(것)없이 있고 있는 듯 없기도 하여
통하여 있는 않은 곳(것)없이 통하져 있다 하겠다.
막힘 없이 전체가 하나로 통하여 있다 하겠다.
사방 팔방 시방으로 막힘 없이 확 뚫려 통하여 있는 십거무궤(十鉅無櫃)가
이미 삼(三: 천 지 인(만물))로 변하되고 나누어져
형태의 형상 천(天). 지(地). 인(人:만물)으로
천(天). 지(地). 인(人:만물)이란 틀 그릇에 담겨져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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