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는 진실한 마음의 바탕이 아니다

2007. 6. 9. 11:4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원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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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세상이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영혼과 육체는 같은가 다른가? 같은 사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증명될 수 없는 질문엔 대답치 않고 독화살의 비유를 들었다.

진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무.공을 가리키는 것으로 유.무는 증명할 수 없는 무기다.

 

분별심은 유.무를 근거로 일어난다. 눈병이 나면 허공의 꽃이 인다.

생사는 허공에서 허공의 꽃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열반은 허공에서 허공의 꽃이 멸하는 것과 같다. 묘각의 원만한 비춤엔 본래 미혹과 깨달음이 없고 또한 생사와 열반이 없다. 이는

마치 눈에는 눈병이 없고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는 것과 같으니 원각은 원래 유.무를 떠나

있다. 유는 반드시 무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무심은 도에 계합하나 유심은 도에 계합할 수 없다.

 

사물을 단순히 볼 때 그 자체는 생각이 아니다. 사유는 언어에 의해 일어나고 언어는 사유에 의해 일어난다. 그 길은 언어도단 심행처멸 이다. 사유를 하면 그 부분만 보게 된다. 주변은 안 보인다. 

 

선남자여 사유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모두 육진 망상이 서로 인연한 기운일 뿐 진실한 마음의 바탕이 아니니 이미 허공의 꽃과 같다. 죽고 난 뒤에도 사유의 문제가 있다. 죽을 때 스크린처럼 돌아간다. 그래서 법문을 하는 것이다. 사유의 실체를 알고 사용해라. 모든 정보가 물 속의 막대기처럼 사유를 통해서 굴절해 버린다. 관은 무분별이다. 그래서 관을 해야 한다. 과거 기억은 번뇌일 뿐 없애라.

 

사유로 원각을 증득할 수 없는 까닭은 사유는 망이고 각성은 진이기 때문이다. 진과 망이 서로 계합하지 않는 것은 마치 밝음과 어둠이 서로 어긋나는 것과 같다. 망으로 진을 분별하나 진이 그 분별을 받아들이지 않아 망의 노력이 헛되게 되니 그러므로 망 위에 거듭 헛되이 허망을 더하는 것이 마치 허공의 꽃이 다시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이상 원각경 금강보살장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