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욕이 바로 윤회의 근본이다

2007. 6. 9. 11:5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원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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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수<감각> 심<마음> 법<마음의 현상>을 관찰 대상으로 삼아라.

중생은 고통의 대명사다. 탐진치 삼독을 버리면 도를 이룬다.

 

자비란 기독교의 사랑 유교의 인과 달리 벌레 천상의 신등 모든 중생에 적용된다.

= 평등심적 중생을 향한 사랑.  애 = 자기중심적 사랑.

남편이 죽어 애통한 것도 결국 자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기를 사랑해줄 장난감이 없어져 그런 건 아닌가?  애욕 – 욕망 – 목숨이 바로 윤회의 근본임을 알라. 애욕을 끊어라.

<번뇌> - 업<선 악 무기 의도성 맹목적 습관> 행위 카르마 – 고<고통>

 

자비란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고 기쁨을 준다는 말이다. 자신이 존재하려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남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자기 스스로 태어났는가? 아무 원인 없이 태어났는가? 무생의 자리가 열반의 자리다. 모두 무생법인의 성품을 갖고 있다.

 

부처 보살 연각 성문 천상 인간 아수라 아귀 축생 지옥 – 십법계

인간이 상이 많으면 천상으로 가지만 애가 많으면 인간 아래로 떨어진다. 왜냐고? 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애욕명은 중생을 얽매는 번뇌의 도구다. 그러나 연꽃은 습한 곳에서 산다. 수행도 업이지만 선업으로 자각의 행위다. 가면 가는 줄 누우면 눕는 줄 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안다면 그 게 바로 수행이다.

 

고를 싫어하여 욕망을 끊고 생사를 벗어났더라도 이런 이치를 보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아직 장애를 면치 못한 것이니 이를 이승성이라 한다. 사장<현상의 장 정적 번뇌>을 벗어나고 이장<이치의 장. 지적 번뇌>을 항복 받았으나 아직 영원히 제거하여 끊지 못했다면 이를 보살성이라 한다. 사장과 이장을 이미 영원히 끊어 보리와 대열반을 원만히 구족하였다면 이를 불성이라 한다. 선지식이 성취한 인지법행에 의지하여 수습의 과정에서 돈과 점이 있으나 부처님 최고의 바른 수행길을 만나 불과를 이룬다면 이를 부정성이라 한다.

 

이상 원각경 미륵보살장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