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은 육진을 구별하는 그림자다

2007. 6. 9. 11:5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능엄경

728x90

너는 왜 나를 좋아하니? 여래의 형상을 눈으로 보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과 눈은 지금 어디 있나? 몸 안에 있지요. 그러면 몸 밖에 있나? 그러자 내외 등

7처를 부정하시고 진심은 방소가 따로 있지않고 상주하며 대상에 따라 생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신다.

 

사음에 빠져 진심의 소재를 모릅니다. 사마타의 길을 알려주소서.

모든 중생은 무시로 마음이 전도되어 업식 삼장<혹업고>에 얽매여 어지럽게 살기 때문이다.  수행자가 무상보제를 이루지 못하고 성문 연각 외도 하늘의 마왕이 됨은 이종근본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사람은 대상에 끌려 마음을 짓는데 이를 반연하는 마음이라 한다.  

이종근본 1.무시생사의 근본<망> 2.보리열반<원적 원명 적조 적멸>의 원청정체

 

이종근본 중 허망한 망심을 처 부수고<파망> 굴지하여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눈으로 봅니다. 부처님이 마음의 소재를 묻는 것이다. 너의 눈은 볼 수 있으나 무엇을 가지고 마음이라 추궁하고 찾아보느냐. 이 것은 너의 마음이 아니다. 그 것이 마음이 아니라면 무엇인가요? 이는 육진경계의 허망한 모양의 생각이다. 자성을 미혹해 네가 무시로 전생의 도적을 아들로 여겨 너의 으뜸이고 항상 한자리 그 마음 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생사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육진을 떠나 실체가 없는 것은 허망하다. 생각을 해도 마음을 가지고 한다. 그 게 마음이

아니라면 흙과 나무 같지 않은가요? 왜 이 걸 마음이 아니라고 하시나요?

모든 법의 생기는 바가 오직 마음에서 나타난 바이며 일체 인과와 세계 미진이 마음으로

인하여 그 자체를 이루었다. 수목도 근원을 따져보면 뿌리 근본인 체성이 있다.

비록 허공이라도 명칭도 있고 빈자리라는 모양도 있다. 하물며 청정하고 맑고 깨끗한

마음의 실체가 어찌 없겠는가? 몸과 마음이 서로 대신하지 못하는 걸 알지 못하여

저의 본심을 잃어버렸습니다. 다문이라도 수행치 않으면 부처님 법을 듣지 않음과 같습니다.

설식부초 = 아무리 음식 얘기를 해도 배는 부르지 않다. 번뇌장<아집> 소지장<법집>

 

분별로 느껴 그 것을 마음이라 한다면 육진을 떠나 따로 온전한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네가 내 법을 듣는 것도 소리로 분별하고 안으로 지키더라도 그 것은 참 마음이 아니다.

내가 마음이 아니라고 고집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라. 만약 분별성이

육진을 떠나 실체가 없다면 이 것은 곧 육진을 구별하는 그림자인 것이다. 공부는 분별만

떠나면 된다. 분별과 심기를 모두 놓아라. 식정원명은 제 8식으로 불성의 자리다.

<순수한 마음자리> - 공적<경종.자체>영지<경명.조명> 분별 – 경영<허영 그림자>    

 

이상 각성 스님의 능엄경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