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삼십송

2007. 6. 9. 12:3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유식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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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나는 무엇인가? 나란 실제 존재하는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유식삼십송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세상을 주재하는 것은 오직 마음 뿐이라고. 유가설아법 유종종상전 피의식소변 차능변유삼 – 아와 법을 가설하므로 가지가지 모양과 가지가지 변화가 있다.

그 것은 마음에 의해 변하는 것이며 이 모든 변함은 오직 마음 세 가지 뿐이다.

 

- 일체만법을 인식하는 주체로 천지를 주관하고 나에게 있어 나를 주재하는 아. 영원하여 상주불멸하는 아. 법계와 하나인 법계일신의 아인 진아를 의미한다.

주재의<아언아행 주재 지배> 상주의<상주불멸의 아> 일체의<법계일신>

만약 아가 있다면 이 몸 그대로 내생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무아의 아 때문에 바뀌어질 수 있다. 개인의 마음 소인의 마음 군자의 마음에서 보살의 마음으로 바뀌어라! 

 

지금이 임오년이라면 언제를 기점으로 잡아 임오년이라 하나? 법계의 중심은 어딘가? 히말라야 꼭대기 인가? 아니다. 내가 서 있는 이 곳이다. 오직 가설일 뿐이다. 아도 오직 가설로 존재할 뿐이다. 법=법칙이고 물 흘러가는 법이다. 세간법이란 세상의 이치다.

세간법엔 함이 있어<유위법 무루법> 나라는 상이 생기는 세상이다.

세간법 – 법측궤범 일체사물 일체사상 75법 성실종 84법 대승법상종 일백법<설법8 일심소법51 색법11 불상응법24 무위법6 등>

세상을 무엇으로 살 것인가? 아무리 힘이 좋아도 남의 종노릇 밖에 못한다.

지혜와 덕으로 살라. 보시는 남을 위한 것이므로 출세간법이다. 세간법은 모두 나를 위하므로 공덕을 바란다. 그래서 달마가 양무제에게 공덕이 없다고 출세간법을 말한 것이다.

 

6.마음은 모양이 없다. 나란 실제 존재하지 않고 가설이다.

종종상 - 상대적인 인과법칙에 의해 존재하는 모습의 가지가지 형태. 당초에는 무아 무법이지만 가설하여 아법이라 한다. 똑 같은 물건이라도 사람의 역량에 따라 모두 달리 보인다. 내가 보기에 나쁘다고 해도 다른 쪽은 나쁘다는 것만 취하는 사람이 있다. 미인도 각자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다. 호랑이는 하얀색을 못 본다. 개도 눈을 못 본다. 개에겐 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눈만 오면 뛰어댄다. 고추 속 벌레는 고추 속이 자기 세상이다. 좋고 깨끗한 곳으로 옮겨 놓으면 죽는다. 아무리 물 속 고기들이 멋져보여도 우리가 그 속으로 들어가 살 수 없다.               

 

찰나에 900번 변한다는데 우리 눈엔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이미 변해버린 것만 보므로 실제 변하고 있는 실상은 볼 수 없다. 아가 없는 눈에서만 보인다. 변하는 모습을 보려면 눈이 집중할 때 귀도 코도 같이 집중해줘야 한다. 사람이 위급하거나 다급할 적엔 다른 생각 안하고 몰입한다. 수행이란 그런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성인은 성인이란 이름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모두 다 주고도 주었다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상의 모습에서 벗어나 있다.

 

7.마음의 세가지. 능변이란 능변식을 뜻하는데 주체적으로 변화를 주관하는 식이다. 이는 일체만물이 변하고 인간의 운명을 주도하는 실체로 곧 주관적인 의식을 말한다.

변하는 주체는 삼식 뿐이다 <안이비설신의 의식이 총괄 + 말라식 + 아뢰야식>.

말라식은 탐욕과 아집의 자리다. 말라식이 나를 꼭 붙들고 집착한다. 아집 때문에 분별이 생기고 평등이 깨진다. 거울은 때가 없을 때 거울 노릇을 한다<대원경지>. 분별하는 놈이 바로 때다. 아타피타가 평등한 진리를 깨달아 서로 상응하는 것으로 평등성지라 한다.

 

유식을 배우는 목적은 오관을 전하여 성소작지<모든 중생을 요익하는데 필요한 온갖 변화의 사업 동작을 두루 갖추어 자재하며 성취완성하는 것>를 이루고 제6식을 전하여 묘관찰지<관찰을 철저히 해서 얻어지는 지혜. 응주벽관 - 응시하고 머무른다. 이로써 성소작지가 이뤄진다>를 이루고 제7식을 관하여 평등성지를 이루고 제8식을 관하여 대원경지를 이루는 전식득지<마음을 바꾸어 지혜를 얻는다>에 있다.

     

8.일체유심조. 모든 건 마음이 만든다. 태어날 때가 나냐? 죽을 때가 나냐? 그런데 여기 있는 이 것은 무어냐? 사실 인간은 자기 실상을 못 본다. 이 세상 갖가지 모습은 내 개념에 의해 존재할 뿐이다. 팔만대장경도 가설이다. 마음이 변하니 차별이 생긴다. 탐욕의 근본은 결국 애욕이다. 부정관을 해야 탐욕이 끝어진다. 식=알음알이 지=소견이다. 손트는 약도 지혜를 가진 이는 널리 달리 쓴다. 하늘이 보내준 지혜는 없다. 다 자기 마음이다.

 

이상 혜거스님 유식삼십송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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