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자성이 없다

2007. 6. 9. 13: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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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은 세상의 음성을 관찰한다. 관자재보살은 천수천안이 있어 관찰이 자재하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의 눈 심안으로 보는 것이 관이다. 어디 놓든지 불의 뜨거움이란 본성은 다르지 않다. 물도 그렇다. 부처님 49년 법문 중 최초 화엄경을 다음 아함경을 12년 방등경을 8년 반야경을 21년 최후 법화경을 설하셨다. 한 생각 청정한 생각을 가지는 것이 도량이다. 수도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칠보로 탑을 쌓는 것 보다 한 생각 청정한 생각이 깨달음을 얻는다. 이상 <명성스님 강론 중에서>

 

오이 향 때문에 오이를 못 먹는 여자가 있었다. 오이를 좋아하는 애인 때문에 오이 맛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입력된 정보가 달라졌다. 음식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대로 맛을 본다는 것이다. 일체 마음이 만든다. 부처님 보살들 마음만 갖고 살면 된다. 보리심은 씨앗과 같다. 모든 나쁜 것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선지식 같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등불 같다. 얼마나 오랬동안 어두웠느냐에  상관 없이 한꺼번에 전체가 밝아진다. 모든 것은 자성이 없어 모양이 없다. 그 것을 봐야 고통이 없다. 우리는 오온을 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사라진다. 임시로 화합한 나에 집착하니 내 것이라고 물건에도 집착한다. 모든 법의 자성이 없는 줄 요달하라. 자성이 공한 것이 곧 부처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 모양이나 음성으로는 여래를 절대 볼 수 없다.   

이상 <해주스님 강론 중에서>

 

일주무영목 이취화중재 불가삼춘우 홍화난만개 – 한 그루 그림자 없는 나무를 저 불구덩이에 옮겨 심었더니 봄비가 오지 않아도 붉은 꽃이 어지럽게 피어나더라. 서산 문하 선승 소요태능의 글이다. 왜 그림자 없는 나무라 했나. 마음의 나무다. 음양에 관계되지 않으므로 그림자가 없다.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젖지도 않는다. 물이 없어도 나무로 자란다. 봄비도 필요없고 훈풍도 필요없다. 불속에 나무를 심는다는 건 중생의 번뇌와 욕망의 불길이다. 속에서도 깨달음의 곷은 핀다.

 

중생상이란 남과 차별이 있다는 생각이다.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중생상이다. 물질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행복의 열쇠라고 생각하면 큰 일이다. 명예 재물이 떠날 때 감당이 안되는 것이다. 중생상이 깊어지면 수자상이 나타난다. 나는 그림자 밖의 그림자다. 우리 목숨은 한숨에 달려 있다. 이 순간 내 자신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줘라. 70–80까지 약속도 안해줬는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70-80이 되면 그런 생각 또 갖을 정도로 우리는 어리석다. 태어난 자는 죽는다. 늘 죽는다는 생각을 하라. 풀잎 하나도 바람도 그렇다. 모든 것은 나란 특별한 것이 없다. 자성이 없다. 그냥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늙는다는 것도 병든 것도 그대로 받아들여라. 이 것을 하다보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모두 내려 앉는 걸 본다는 것이다. 화두 들면 의심 하나만 살아 있다. 이상 <설우스님 강론 중에서>

 

아미타불을 한 번만이라도 부르면 80억겁의 수승공덕을 얻는다 했다. 부처님 말씀은 진언이다. 믿어라. 태양은 밤낮이 없다. 지구에 와서 밤낮이 생긴다. 세계 3대 생불 달라이 라마는 세계평화의 상징이며 틱낫한 스님은 걷는 성자다. 숭산은 하늘에 뜬 태양이 언제 이름이 있었나? 하며 Zen으로만 알고 있던 서양인에게 참선을 가르친 대가로 통한다. 날마다 108배 하라. 한 달이면 3000배 한다. 3000배 한 사람과 안한 사람이 같겠나? 이상<광옥스님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