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9. 13:2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꿈과 현실
참선을 하지 않은 이들이 참선을 말한다. 상추가 왜 이리 작지요? 작게 보면 작고 크게 보면 큽니다. 저자 거리 상인도 일상생활 속에서 선을 말하고 있다. 마음이요 지혜요 실천이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는 것은 전혀 잘못됐다. 있는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는대로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다르다. 모기가 보는 세상 사람이 보는 세상이 다르다. 우주를 누가 만드나? 각자 만드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순간순간 만든다. 기분 좋을 때 소나무 보면 보면 좋게 보고 실연 당해서 유행가 들으면 그렇게 싫다.
고향에 있으면서 고향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중생이다. 앉으면 앉은대로 누우면 누운대로 남아 도처가 고향이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객수<나그네 설움>중에 있는가? 마음이 진짜 고향이다. 우리는 고향을 모르고 항상 밖으로 밖으로만 찾는다.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버리고. 만해 한용운은 한 물건 떨어지는 소리에 삼천대천세계가 부서진다고 했다. 지금까지 근심걱정으로 만들어낸 세상이 없어졌다. 삼천대천세계는 내 생각이 만드는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야 우주가 보인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세계가 안 보인다. 마음이 일어난 만큼만 보인다. 좋은 세계 따로 있는 줄 알고 돌아다닌다. 이 것이 윤회다.
고향이 도대체 어디있나? 틱낫한 스님이 40년 동안 가지 못한 고향에 가서 한 말이다. 조상이 어디 있나? 내 몸에 조상이 있다. 이 몸은 조상이 물려준 거다. 당신 몸 속에 조상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당신 몸을 잘 이해하면 조상을 만날 수 있다. 몸부터 살펴 봐라. 어떻게 숨 쉬며 사는지. 참 마음이 고향이다. 일어나는 생각 사라지는 생각을 깊이 관찰하라. 귀에 들리는 것만 따라다니면 그 게 윤회다.
삼장스님이 한참 유식을 퍼뜨릴 때 원효는 충남 직산 한 토굴에서 잤다. 해골 물 사건은 그 이전 나온 송고승전엔 없다. 해골 무덤인줄 알고 자니 잠을 잘 수 없었다. 여기서 깨닫는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짖는다고. 마음이 생기면 세상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세상이 사라진다. 조금도 거짓이 아니다. 일상 생활 속에 공부가 다 있다. 말보다 화장터의 해골을 보는 순간 진짜 무상을 깨닫는 것이다. 마음이 열릴 때 세상이 열린다. 그런데 우리는 바꿔서 하고 있다. 우리는 돈 벌고 출세하고 환경만 바뀌면 행복할 것으로 안다. 하지만 마음이 열려야 행복하다.
육조스님<638년>은 원효<617년>와 동시대 태어났다. 마음을 특히 깨달으신 분이다. 좌선해서 깨달은 것이 아니다. 시장 바닥에서 금강경 응무소주 이생기심<응당 머무는바 없이 그 마음이 난다>을 듣고 깨친다. 깨달음은 어디에든 있다. 늘 생활을 단조롭게 하고 살피는 생활을 하면 저절로 보이고 들린다. 꿈만 깨면 자기 집은 저절로 나타난다. 깃발이 흔들리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은 눈으로 귀로 내 마음 만큼만 보고 듣고 느낀다. 마치 자기 그림자 같다. 거울 안에 보면 그림자가 보인다. 자기 모습인데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는 자기 모습인지 모른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자기다. 꿈에 보이는 모든 것도 자기다. 꿈이 사라지면 꿈 속의 내 생각 수상행식 모두 사라진다.
좋다 나쁘다는 전부 몸을 의지해서 생긴 것이므로 죽는 순간 다 허망한 것이다. 본래 공이다. 환경에서 얻은 것은 환경이 바뀌면 사라진다. 마음 고향으로 돌아가 얻는 것이 불생불멸이다. 눈으로 보는 게 그 게 마음이다. 울 때 슬픈 마음이 어디서 왔는가 찾아 들어가면 금방 깨친다. 듣는 마음을 찾아 가면 정체를 안다. 몸이 사라진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그 게 자기 주인이다. 보는대로 쫒아가지 말고 보는 마음을 돌이켜 반조해 보라.
어제 몸과 오늘 몸이 다르다. 사람은 가만히 있다 늙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변해 이뤄진 거다. 죽는 순간만 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순간순간이 무상하다. 무상을 알면 집착하게 되지 않는다. 어떤 이가 죽어도 자신은 천당 간다 믿었다. 그런데 가 보니 까치 집이었다. 어리석은 마음으로 보면 전부 좋게 보인다. 보는 마음 듣는 마음으로 돌아가면 생사가 없는 진짜 고향이다. 반야경의 불생불멸은 거짓이 아니다. 고향집에 들어가려면 단계가 있다. 마당을 지나 당에 올라 문 안에 들려면 신심을 내야한다. 믿지 않으면 입문 자체를 못한다. 비로소 방에 들면 앉아도 누워도 편하고 자유롭다. 이 곳에선 자신을 위해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못 들어온 이들을 위해 인도하는 일만 남았다.
생각을 조금만 멈추면 편해진다. 모두 쓸데 없는 생각이다. 멈춰라! 놓아라! 보아라! 그대로 고향이다. 경허가 말했다. 삼천대천세계가 나의 집이라는 걸 몰록 깨우쳤다. 생각으로 세상을 보니 안 보인다. 지혜로 봐야 한다.
이상 종범스님 고향 나그네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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