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찾은 나그네의 삶

2007. 6. 9. 13:2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꿈과 현실

728x90

고향을 찾으면 어떤 삶을 사는가? 해탈 열반 극락이 고향이다. 인간=사람이 모여 사는 공간이란 뜻이다. 빈부상하가 생긴다. 지식도 재산도 많이 가진 사람이 있다. 정부에선 직위 높은 것이 최고다. 고향에선 나이 많은 것이 최고다. 세상을 돕고 사람을 돕는 것은 덕이 제일이다. 인생은 생노병사다. 이 것만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생노병사를 해결할 수 없다. 깨달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 법이다.

 

삼계가 화택이다. 무상의 불이 타고 있다. 젊은이도 죽고 생겼다 사라지고 변하고 바뀐다. 무엇을 얻어놓아도 안전한 게 없고 바뀐다. 아무리 어떤 곳에 피해도 불길을 면할 수 없다. 화택에서 나와야 한다. 깨달음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깨어나는 순간 사라진다.

 

깨달음이란 궁극적 실제와 만나는 것이라 했다. 원초적 진실상 참 그대로 진여고 전혀 변함이 없어 여여다. 물이 얼음 수증기 구름 이슬로 변하고 바뀌는 성격은 변역성이다. 하지만 물이라는 속성은 바뀌지 않는다. 깨달음은 변역성에서 불변성을 보는 것이다. 본성이 불성이다. 구름을 보되 구름의 형상만 보는 것은 인간을 보되 생노병사를 보는 것과 같다. 사회적 지위 빈부상하를 보는 것은 지금 얼음이냐 이슬이냐 그 것만 보는 것이다. 변역성에서 변역성을 알 수 없다. 구름이 남아있으라고 남아있나?  늙음 속에 늙음이 없는 죽음 속에 죽음이 없는 진실상을 보라. 우리 중생은 진실상을 못 본다. 그래서 생사의 고통이 있다. 죽음이 없는 진실상을 볼 때 편안함을 얻는다. 만족이 온다.

 

왜 싸우나? 내 마음이 평화되지 않아 그렇다. 변역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만족 그 게 부처님 만족이다. 그러니 죽는 순간도 만족한다. 도가 높으면 이 세상 만족하지 않을 일이 없다. 이 세상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없다. 무념이다. 모든 이에게 의존심을 끊어야 마음이 편안하다. 의존하니 기대한대로 안돌아온다고 욕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미워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은 기쁨을 준다. 이렇게 되려면 항상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큰 스님 법문 시 주장자를 든다. 보이는 게 다 이유가 있다. 형상 이름<변역성>을 보지말고 불변성을 보라는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 원초적 진실상이 다 드러나 있다. 오늘도 여기고 내일도 여기다. 항상 살피면 변하는 속에 불변성이 보인다. 그러면 고향에 돌아가는 거다. 

 

서양문화는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만 든다. 구지선사는 손가락 하나들고 요것 뿐이다 했다. 손가락 법문 하나로 깨달은 이가 엄청 많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정의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진실상을 보는 순간 깨닫는다. 바다에 떠도는 눈 먼 거북이 나무판자 하나 띄워준 거와 같다. 경 잘 보면 바로 깨닫는다. 형상을 깊이 보면 원초적 진실상을 만나게 된다.

 

이상 고향찾은 나그네의 삶 강론 중에서   

'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 > 꿈과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안과 안락  (0) 2007.06.09
행위와 만족  (0) 2007.06.09
고향 나그네  (0) 2007.06.09
세간법과 출세간법  (0) 2007.06.09
꿈과 현실  (0) 2007.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