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는 사람

2007. 6. 9. 13:5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숫다니파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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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중국의 종교는 소와 관계가 깊다. 붓다의 성은 바로 최상의 소를 의미하는 고타마이며 도교의 시조 노자의 최후는 소를 타고 함곡관 너머로 사라지는 신비스러운 이미지로 남아있다. 붓다는 자주 소치는 일을 불도의 수행에 비유해서 설했다. 증일아함경 권39의 목우품 권46의 방우품에서 불도의 수행과정을 소 치는 일에 비유해서 설하고 있고 법화경에서는 대승 보살도의 가르침을 소가 끄는 큰 수레에 비유하고 있으며 열반경에서도 우유를 농축시켜 만든 제호를 불법에 비유하고 있다.


특히 중국 당대의 선어록에 등장하는 소는 더 이상 인도의 소처럼 종교적 신성을 상징하지 않는다. 즉 논밭을 갈거나 짐을 나르는 일소가 되어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건강한 일상 속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다. 따라서 소는 다른 짐승들보다도 당대 선종과 관계가 깊다. 이처럼 선종에서 소는 심법의 상징이었으며 소 치는 일은 선의 마음을 깨닫는 일이었다.

 

선승들은 인간에게 묵묵히 봉사하는 소의 과묵함과 생명력에서 순일한 심법의 완성을 향해 정진하는 자신들의 본분을 발견한 것이다. 소의 마음은 바로 선의 마음이었으며 바로 붓다의 마음이었다.

숫타니파타에는 소치는 사람과 부처님이 교대로 만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치는 삶은 처자를 거느린 사람으로 현실에 만족하고 있고 부처님은 처자가 없이 모든 속세를 초탈한 스승으로 평화로워하고 있다. 그래서 소치는 사람과 부처님이 현재의 흡족한 상태를 이야기하면서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라는 구절을 반복해서 붙인다.

소치는 사람이 말한다.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습니다.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움막 지붕에는 이엉을 덮어 놓았고 집 안에는 불을 지펴놓았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성내지 않고 마음의 끈질긴 미혹도 벗어 버렸다.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쉬리라. 내 움막에는 아무것도 걸쳐 놓지 않았고 탐욕의 불은 남김없이 꺼버렸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마히 강변에 처자와 함께 사는 소치는 삶은 밥과 우유 등불이 준비되어 있어서 아무런 걱정이 없다. 반면 마히 강변을 건넌 부처님은 탐진치 삼독의 불은 완전히 꺼지고 마히 강을 곁에 하고 하늘을 지붕삼아 하룻밤을 쉬기 위해서 자리를 잡았다. 편안하다. 아무런 걱정이 없다.

내 아내는 착하고 허염심이 없습니다. 오래 함께 살아도 항상 내 마음에 흡족합니다. 그녀에게 그 어떤 나쁜 점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오랜 수양으로 잘 다스려졌다. 내게는 그 어떤 나쁜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소치는 사람은 아내가 착하고 허염심이 없으며 어떤 나쁜 점도 없는 데 만족해한다. 이에 비해 부처님은 오랜 수행을 통해서 해탈한 마음이 아무런 나쁜 점도 없이 순종하게 된 것을 만족해한다. 아내의 순종과 마음의 순종.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내 처자와 내 아랫사람들이 나에게 순종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면 부처님은 순종시킬 생각 말고 먼저 자기 마음이 자기에게 순종하도록 하라고 말할 것이다. 내 마음의 순종 평화를 얻는 게 중요한 첫걸음이다.

나는 놀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아이들은 모두 다 건강합니다. 그들에게 그 어떤 나쁜점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나는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다. 스스로 얻은 것에 의해 온 세상을 거니노라. 남에게 소속될 이유가 없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소치는 사람은 놀지 않고 일함으로써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점을 말하고 부처님은 모든 소유를 버림으로써 부림받지 않는 자유를 말한다. 이 세상 무슨 일을 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도움을 받다 보면 보답해야 된다. 상대방이 일부러 나를 고용하고 부리려 해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구조가 서로 고용하고 고용당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치는 사람은 일하는 데서 독자의 힘을 생각하지만 부처님은 버리는 데서 독자의 힘을 찾는다. 인간은 아무리 버린다 해도 몸이나 마음 심지어는 깨달음이나 깨달음의 포교에까지도 얽매이게 되어 있다. 무한정 버리는 것이 불가능한 한계상황의 인간이 어떻게 버리지 않으면서도 고용되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이상 도문스님 소치는 사람 – 숫타니파타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