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과 대장정2

2007. 6. 9. 14: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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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 정치적 리더에 의한 평화. 리더란 성인을 의미. 일종의 정치철학 유가 도가 법가

– 진시황제. 법가사상에 의해 최초 통일. 중국 China지명은 진에서 유래

– <춘추전국시대 진 한까지 유가사상. 제자백가 법가 유가사상을 갖는 고유성의 시대>

 

위진남북조시대 – 주로 북방민족이 통치하던 시대

– 고구려 때문에 멸망. 불과 몇 십년 가지 못했음.

– 국제적 다양성 <위진남북조 수 당 - 불교로 인한 개방성의 시대>   

 

– 주자학 <송 원 명 청 - 폐쇄성의 시대>

– 징기스칸 중국 전체 지배. 元나라의 원은 중국식 표현. 원은 결국 한화되고 폐쇄성을 가진다

– 명 태조 주원장에 의해 원 멸망

– 만주족 지배

 

중국인 입장에서 불교는 이방인의 것이었음. 중국고유 한족 입장에서 최고의 전성기는 당시대였고 수당대가 중국화된 불교가 완전 토착화 했음. 화엄+선사상.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 한다. 부처에 매이면 그 것은 부처가 아니다. 자기 부정하면서 끝없이 나가라는 종교는 불교밖에 없다. 당시 장안은 세계의 중심도시였다<융합-화엄사상>. 집착하지 마라. 무주상 보시는 개방성을 말한다.

 

<본질적인 것> 事<드러난 것> 서로 원융하는 화엄사상. 일즉다 다즉일. 서양 사람 입장에선 말이 안된다. 하지만 군주의 입장에선 좋은 지침이 된다.

 

당의 문화와 사상체계 – 당나라의 문화는 외래문물이 대량으로 교류되는 속에서 이뤄진 일종의 융합문명으로서 다양성과 개방성의 시대였음. 이 때 중국화된 불교가 정립됨. 그 대표적인 것이 화엄불교와 선불교다. 특히 화엄불교의 원융무애적 사상체계는 당문화의 융합적 성격과 잘 어울리는 것이었음.      

 

송청시대의 중국문화와 사상체계 – 사상체계 역시 다양성과 개방성을 대표하는 불교 사상체계가 송대에 이르러서는 주자학이라는 폐쇄적인 사상체계로 나가게 된다. 현대는 다양성과 개방성의 시대로 각광 받는 사상은 불교다. 단순히 1000년 동안 이어진 동양 전통사상이 아니다.

 

현대사화와 불교 – 다양성과 개방성을 지녔던 당나라 때 불교의 사상체계가 그 전성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역시 다양성과 개방성의 시대로 불교적 사상체계가 필요하다.

쿠빌라이 Khubilai<세조 1215 – 1294> - 몽고제국 제 5대 칸이며 중국 원나라의 시조. 징기스칸의 손자로 1251년 형 몽케가 제 4대 칸의 자리에 오르자 그는 중국 방면 대총독에 임명된다. 몽고의 족장회의 Khuliltai<일종의 국회>에서 자기가 칸이 됨. 형제들과 권력투쟁. 킴차크+일+자카타이 칸국   

 

고려 왕전<1219 – 1274> - 고려 제 24대 왕으로 원종. 고려 고종의 맏아들로 1260년 몽고에서 귀국 즉위 삼별초의 난을 몽고군과 함께 평정했으며 원나라로부터 일본정벌을 위한 전함 300척을 만들라는 요청을 받았고 결혼도감을 설치해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당시는 무인정권으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42년간 항전했는데 이런 처참한 상황에서 대장경을 찍었다. 문신들이 화친을 주장하자 왕전이 중국으로 가던중 쿠빌라이를 만났다 함. 쿠빌라이가 왕이 된후 무인정권 타도.

 

삼별초 – 고려 무신정권 때 특수군대. 몽고와의 전쟁 때 유격전술로 몽고군을 괴롭혔고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몽고와 강화가 성립되자 반란을 일으켰다.

 

남송은 해군이 100만이었음. 너무 병력이 많아 일본을 칠 때 10만을 이민 보내듯 보냈음. 모두 신풍 가미카제 폭풍에 죽음. 고려는 부마국으로 말 관리를 사위한테 시켜 생긴 말로 원은 장인 원종은 사위 입장이었음. 가장 반몽고적이었던 사람이 가장 친몽적으로 바뀜. 조에서 충렬왕같이 왕으로 왕의 아들이 태자에서 세자로 격하. 이 때부터 중국에 대해 저자세로 나감<조공>. 고구려 뿐만 아니라 신라도 당과 싸웠지만 고려말부터 중국의 속국이 되었음.

 

항몽투쟁의 산물 고려대장경 –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으로 번역. 경율논을 합쳐 놓은 것. 번역이 끝났다는 것은 중국불교가 완전히 정리되었다는 의미. 문화적으로 최고봉 이룸. 번역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다. 문명과 문명의 이전이다. 거란족을 물리치기위해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졌고 효험을 봤지만 몽고군이 들어오면서 다 타버렸다. 과연 42년간 그렇게 싸울 이유가 있었나? 불경을 만들어 대든다는 게 이해가 가나?

 

고려 대장경의 의미 – 1.대몽항쟁의 산물로 군사적 폭압 앞에 문화적으로 저항 극복하려 했다는 세계 역사상 보기드문 사례다. 즉 삼국유사와 함께 문화적 주체성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2. 한역 대장경은 중국화된 불교라는 문명사적 종합의 최종결집으로 다양성과 개방성시대의 최후 만개를 상징한다. 3. 아쉽게도 목판 인쇄였기 때문에 금속활자가 지닌 지식 보급의 파격적인 파급효과를 보지 못했다. 지식보급도 안됐고 권력분산도 되지 않았다.

 

오늘날 활자매체는 정보매체로 바뀐다. 전산화된 고려대장경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이상 김종욱 교수의 징기스칸과 대장정2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