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과 개화파4

2007. 6. 9. 14:3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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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혁명과 계몽주의. 팩스 시니카=정체:팩스 브리타니카=혁명. 시민혁명을 통해 왕권신수설이 사회계약론으로 절대왕정이 의회민주제로 집단이 개인주의로 바뀐다. 통치권은 입법권 행정권 연합권<외교권> 이 중 입법권은 최고권력<주권>이며 의회민주주의 기초가 된다.

 

John Locke<1632-1704> - 영국 철학자. 정치 사상가. 계몽철학 및 경험론 철학의 원조. 그의 정치 사상은 명예혁명을 대변하고 프랑스혁명이나 아메리카 독립등에 큰 영향을 주어 서유럽 민주주의의 근본 사상이 됐다.

 

국가 목적은 소유 보호에 1차적으로 직결되는 것이 입법이다. 국가 최고권력은 왕권이 아니고 주권이며 국민 시민은 선거권 저항권 혁명권을 가진다. 국가가 충실하지 못할 때 뒤집어 엎는 권리도 가졌다. 그리스는 직접 민주정-로마는 귀족적 공화정-중세는 지방 분권적 봉건제-16.17C 근대는 중앙집권 절대왕정 시대였다. 절대왕정 시대는 중국에선 진 이후 청까지 거의 2000년간 이어졌지만 서양은 불과 200년의 짧은 역사만 있다.

 

중국은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을까? 하늘이 명했다는 왕권 천명설이라는 보다 세련된 이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의 천은 의리천이다. 도덕적 근거로의 하늘천이다. 서양의 인격신이 아니다.  하늘이 천자에겐 덕이 있어 준 것이라는 논리다. 왕은 덕이 있으려면 끊임없이 수양을 해야 했다.

 

천인합일<중국> – 천 – 하느님 – 의리천 – 도덕성 – 수양

신인일치<서양> – 신 – 하나님 – 창조주 – 유일성 – 신앙       

완전히 길이 다르다. 공자 맹자 속에도 창조주 얘기가 있어야 했다. 기독교는 네 것도 크게 보면 내 것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는 배타적 종합주의를 야기한다. 화해하려면 다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계몽주의<Enlightenment> - <과학혁명–합리주의–자연.이성해결><시민혁명–계몽주의–사회문제도 이성이 해결>할 수 있다는 합리성 시대로 돌입한다. 몽매 이치에 어두운 걸 일깨운다. 빛을 던져 어둠을 밝게 한다. 이성의 확대와 지식의 보급을 통해 합리적 이치에 어두운 몽매한 대중을 일깨워 정치적 진보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 

이성의 확대는 출판인. 지식의 보급은 백과사전이었다. 당시 백과사전은 금서였다. 인쇄술-지식보급-권력분산 계몽주의야 말로 이 이치의 압축판이다. 봉건적 위계질서-신분족쇄<피가로의 결혼>-국왕 전횡.

 

계몽주의의 정치적 진보란? – 기독교적 봉건 위계질서와 출생에 따른 신분구별의 족쇄 절대군주의 전횡 등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켜 개인을 국가권력의 주체로 삼는 것. 즉 이런 의미에서의 계몽주의는 진보적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다.

 

개인 Individual<In부정+divid나눈다> -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 이성을 지니고 있기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자신의 소유권리<생명 자유 재산>을 지닌 자. 사회의 기본단위. 그리스식으로 Atom<A부정+tom나눈다>은 물질세계 이야기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것. 자연의 기본단위<원자론> 개인의 결합=사회. 원자의 결합=자연. 부품의 결합=기계은 모두 기계론적 발상이다. 먼저 분할하고 다시 조합하면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

 

근대는 합리성의 시대이며 또한 기계론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개인을 침해할 수 없는 이유는 이성 때문이다. 개인을 침해할 수 없는 대상은 소유 때문이다. 이성을 지녔기에 소유권을 지닌 자 재산 소유자. 인간=개인. 이성은 합리적 분별력이다. 미성년은 합리적 분별력이 없다. 그래서 미성년자 여성은 이성인 취급을 하지 않았다. 이성인=재산을 소유한 성인 남자=개인=시민. 이성인=정치적 개방성.

 

시민혁명은 개인의 해방과 권력의 분산이라는 정치적 개방성을 달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적용범위의 제한으로 인해 그 개방성은 지극히 배타적인 개방성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무산자 미성년 여성은 시민이 아니었고 착취의 대상이었다.

 

계몽주의와 불교 – Enlightenment 계몽은 불교에선 깨달음으로 쓴다. 계몽은 이성을 말하고 불교는 불성을 말한다. 불성이란 붓다 될 수 있는 자다. 불성은 dharma를 본 자다. Dharma란 연기고 무상이며 무아<고립.고정된 것은 없다 – 자성이 없다>며 공이다. 불성은 연기성 공성에 대한 자각 가능성이다. 연기성이란 상호의존에 대한 network 인드라 망이다. 모든 것은 연기한다. 일체중생 실유불성이다. 계몽주의는 배타적 개방성이지만 불교는 포용적 개방성이다.     

 

이성 - 재산소유 성인남자<시민> - 계산력 - 실체성

불성 – 모든 생명<중생> - 공성 – 비실체성

그래서 무주 무집착 무소유를 말한다. 그러면 이성은 아무 값어치가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인류사적 의미를 부정한다는 게 아니다. 이성 인간 중심주의로 가다 보면 못 가진 자 약자 여성은 소외된다. 또한 자연도 파괴된다. 불교는 이런 결점을 보완하고 존중하자는 자비 사상이다. 이성 인간 중심주의로 가면 편협성이 있다. 불교는 그 어떤 중심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 탈중심주의다.

 

계몽주의와 불교 – 이성의 계몽을 통해 이뤄낸 시민혁명의 성과는 존중되야 겠지만 이성과 인간 중심주의로 인한 배타적 개방성은 불교의 불성에 함축된 포용적 개방성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즉 편협적인 중심주의에 대한 집착을 거부하는 탈중심의 공성적 사유가 현대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상 김종욱 교수의 아편전쟁과 개화파4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