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족과의 힘 겨루기

2007. 6. 9. 14:5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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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광 2년명 선정불좌상<429년>장안 지방 사가형 옷 주름. 관동 지방 옷 주름 같지만 옷 주름만으로는 이해 못함. 건무 4년명 선정불좌상<338년>미천왕 시대. 낙랑군은 108-313년까지 400년동안 관리를 파견해 중국이 다스림. 우리 영토 속에 있지만 간다라 처럼 문화적으로는 중국화 되었음. 모용씨 형제 싸움 치열. 고구려 어부지리. 336년 모용 차지.

 

황해남도 동수묘 전실 서쪽 방 입구<357년>황해도 안악에서 발견. 도로공사 중 발견. 무덤의 주인공 동수. 한국 최고 오래된 벽화고분. 우리 무덤의 특징. 우리 국토는 산과 들이라 돌로 무덤을 쌓는다. 중국은 돌보다 황토가 많아 벽돌 만들기가 편하다.

 

동수<289-357년> - 본래 전연 모용 황의 중신이었으나 모용인이 반란을 일으키자 토벌을 감행했다. 그러나 패배하고 모용인의 포로가 되어 포섭된 후에 모용인의 패색이 짙어지자 도종을 이끌고 고구려로 망명하였다. 당시 고구려는 모용씨와 숙적 관계로 투항해 올수록 좋았다. 중국 사서에도 삼국사기에도 이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336년 투항. 대방 태수로 지내다 69세 타계.

 

황해남도 동수묘 묘지명 부분<357년>낙랑 요동에도 있다. 황해남도 동수묘 묘지명 내용<357년> 천황이 되려면 군이 157개 인구 1000만은 되어야 했다. 따라서 한반도 전체와 요동은 가져야 천자를 칭할 수 있었다. 전차 1만대x40명=40만 황제군이라야 천자군이라 했다.

 

중국 북조 전진왕조 명군 부견. 도안대사 국사. 10만 군사 양양 함락. 황금 5천량 주고 도안대사는 미리 빼냈다. 383년 비수의 전투에서 패배 몰락. 북방 이민족 가운데 가장 큰 판도 형성. 장안과 낙양 점령. 당시 고구려는 기고만장 은나라는 신중. 국도 깨짐 환도성 함락. 하지만 멸망까지는 안 간다. 왕족 포로로 잡힘. 왕후는 물론 미천왕 시신까지 끌고감. 묘용황의 정벌에 무릎 끓음. 13년간 억류 55년 돌아옴. 동수 보내라 하지만 안 보냄. 대신 북경과 더 정반대 쪽인 고구려 남쪽 대방 태수로 지내게 함.

이상 최완수 간송 미술관 연구실장 선비족과의 힘겨루기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