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도(中道) Ⅰ

2007. 6. 9. 21: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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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는 나알리부락 깊은 숲 속의 대빈사(待賓舍)에 계셨다.
그때에 존자 산타가전연은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견이란 어떤 것이 바른 소견입니까.
세존이시여, 어떻게 바른 소견을 시설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산타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에는 두 가지의 의지함이 있으니 혹은 유(有)요 혹은 무(無)다.
취함[取] 때문에 부딪쳐지고, '취함'이 없으면 마음이 경계에 매이더라도 취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며 헤아리지 않게 되어, 내게 괴로움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두고
괴로움이 멸하면 멸하는 대로 두어, 그것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으며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아나니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이것을 여래가 시설한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세간의 집기를 바르고 참되게 알고 보면,
혹은 세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이요, 세간의 멸함을 참다이 알고 보면,
혹은 세간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일러 두 극단을 떠나 중도(中道)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나니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무명을 연하여 결합이 있고‥‥‥내지 아주 커다란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산타가전연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중 도(中道) Ⅱ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셨다.
때에 집을 나온 어떤 바차 종족은 부처님께 나아와 합장하고
문안을 드린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여쭈었다.
"어떠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내가 있습니까."
이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물었으나
세존께서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으셨다.
때에 바차는 생각하였다. '나는 세 번이나 물었으나
사문 고오타마는 대답하지 않으신다. 나는 그만 돌아가리라' 그때에
존자 아난은 부처님 뒤에서 부채로 부쳐 드리고 있다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바차는 세 번이나 여쭈었는데 세존께서는 왜 대답을 하지 않으시나이까.
그것은 저 바차로 하여금 '사문은 내가 묻는 것을 대답하지 못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더하게 하지 않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하셨다.
"내가 만일 '나'가 있다고 대답한다면 그가 가진 삿된 소견을 더하게 할 것이요,
만일 내가 나는 없다고 대답한다면 그가 가진 의혹을 더욱 더하지 않겠느냐.
본래부터 '나'가 있었는데 지금 끊어졌다고 말하여야 하는가.
만일 본래부터 '나'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상견(常見)이요.
지금부터 끊어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단견(斷見)인 것이다.
여래는 그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 서서 설법한다.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나는 것이다'고. 즉 무명을 연하여 결합이 있고
내지 남·늙음·앓음·죽음과 근심·슬픔·고통·번민이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잡아함경 제34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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