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아니다, 의료서비스 업체다

2007. 7. 17. 19:11일반/노인·의료·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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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고친 경영자들

차병원을 찾는 고객들은 주차문제가 없다. 무료 발레파킹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치과 현관에 들어서면 어디로 갈지 간호사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코디네이터가 먼저 안내를 해 주기 때문이다. 함소아한의원은 어린이 환자들이 겁내지 않는다. 한약을 먹기 좋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이 바뀌고 있다. 환자들이 변하고 의료시장 환경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은 왕’이란 말은 이제 병원에서도 통하는 얘기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경영자’들이 있다. ‘서비스’ ‘마케팅’을 강조하는 경영자들은 ‘의사 중심’의 병원을 ‘고객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차광렬 차병원그룹 학원장…“20여개 병원 인수해 나스닥 상장”

차광렬 포천중문의과대학교 학원장(53·의학박사)은 요즘 눈코뜰새 없다. 주로 미국 뉴욕에서 컬럼비아대 강의와 뉴욕 CC불임연구소에서 연구를 하며 지내는 차박사는 지난해 11월 LA의 ‘할리우드장로병원’을 인수해 활동 폭이 부쩍 넓어졌다. 하루에 4시간밖에 못 잔다는 차박사는 이제 뉴욕과 LA, 한국을 모두 보며 의학과 경영을 함께해야 한다.

차병원그룹의 할리우드장로병원 인수는 국내 자본이 처음으로 해외 대형 병원을 인수한 사례다. 차박사는 “의료시장은 개방되는데 국내 병원들끼리 경쟁하다가는 선진 병원에 밀려 도태될 수 있다”며 “글로벌 시대를 맞아 과감히 해외에 진출해 선진국과 경쟁하며 우위를 획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할리우드장로병원 인수 배경을 밝혔다.

연간 매출 1조원 규모의 할리우드장로병원 인수는 단순히 병원을 하나 더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로벌 수준의 서비스가 도입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인수로 선진 의료시장의 경영시스템과 환자에 대한 질 높은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국내에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특히 의료시장 개방에 맞서 국내 병원들의 체질 강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960년에 서울 중구에서 차산부인과로 시작한 차병원은 이미 국내 굴지의 병원전문 그룹으로 성장했다. 강남 차병원을 비롯해 분당·구미·대구 등지에 병원을 가지고 있고 여성연구소,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불임센터와 의과대학을 보유한 명실상부한 의료전문 그룹이다.

대학이나 재벌의 지원에서 시작한 병원과 달리 조그만 산부인과에서 시작해 현재 규모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차광렬 박사의 경영자적 안목이 큰 역할을 했다. 차박사는 강남 차병원 개원을 결심하고 강남지역 지도를 구했다.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강남은 오늘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당시 차박사는 병원 위치를 정하면서 강남지도를 가로로 한번, 세로로 한번 접어서 꼭짓점 부분을 찾았다. 지리적으로 강남 정중앙을 찾기 위한 것. “병원은 방문 서비스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터를 잡느냐가 중요하죠.” 그렇게 자리잡은 곳이 오늘날 차병원 사거리로 유명한 강남 차병원 자리다. 자리부터 이렇게 잡은 차병원은 병원 경영에서 여러 가지 차별화를 시도했다.

84년 기업에서도 시도하지 않던 CI(기업이미지통합)작업을 실시했다. 오늘날 영문자 원·사각형·삼각형으로 이뤄진 CHA라는 로고는 그때 탄생한 것이다. 향후 있을 지방 차병원과 각종 연구센터와 부속 사업을 염두에 둔 것이다. “병원은 서비스다.” 차박사가 항상 병원 임직원들에게 하는 말이다.

실제 차병원은 대형 병원답지 않게 세심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지난해 산모들을 위한 휴게 공간으로 황토방을 만든 것을 비롯해 올해에는 병원 전체에 친환경적인 원목마루를 깔았다. 또 내원하는 환자들에게 무료 발레파킹(valet parking)서비스도 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만으로 차병원이 지금처럼 세계적인 의료기관으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차병원의 실질적은 핵심 경쟁력은 바로 연구개발 능력이다. 차병원의 ‘CHA중앙개발연구소’에는 100명이 넘는 연구인력들이 있다. 이들은 전적으로 연구에만 매달리는 인력들이다. 이 정도의 박사급 인력을 연구에만 투입하기는 쉽지 않다. 차병원그룹의 한해 R&D 예산만 150억원에 달할 정도다.

이런 투자 덕에 각종 연구발표에서 국내 최초 기록은 수십차례, 세계 최초 기록도 수차례 보유하고 있다. “국내 의료시장만 생각한다면 서비스 경쟁으로 돌파할 수 있죠. 그러나 해외 병원들까지 염두에 둔다면 확실한 기술력이 있어야 합니다.” 차박사는 처음부터 차병원을 국내 병원에 한정시키지 않았다.

이처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와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융합돼 오늘의 병원 그룹으로 성장한 차병원은 앞으로 글로벌 브랜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차병원 그룹은 5년 내에 대체의학과 한의학을 조화·통합·특화해 미국과 일본 등에서 병원체인을 계획하고 있다. 또 20여개의 병원을 인수해 미 나스닥 상장도 계획하고 있다.

차박사는 “우리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불임과 생식의학 분야를 비롯해 각종 줄기세포 치료연구, 차병원만의 대체의학과 한의학을 접목해 미국·일본·중국 등 세계 20개 병원 지사를 설립, 국제 의료서비스 중심병원으로 위상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인출 예네트워크 대표…“의료는 서비스, 특급호텔과 경쟁”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예치과 본점. 꽃과 유리, 조경수로 둘러싸인 이 건물이 지금 54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예네트워크’의 출발점이었다. 건물 앞에 호텔 도어맨 차림으로 서 있는 두 남자를 지나 현관으로 들어서자 미모의 여성이 방문객을 맞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치과에 오는 사람에게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의사 16명이 근무하는 강남 예치과에서는 사전 예약 없이 손님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자기 담당 의사와 시간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코디네이터’라고 불리는 이 여성은 치과에 들어선 ‘고객’이 서성거리거나 쭈뼛거리기 전에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대개 항공사 스튜어디스 출신을 뽑는다. 이러니 병원 첫인상이 ‘서비스’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예치과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환자’나 ‘치료’라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건물 앞에 도어맨을 배치하고 발레파킹을 하는 것도 그렇고, 응접실처럼 잘 꾸며진 환자 대기실과 스파·마사지 시설을 갖춘 지하의 웰빙 센터도 그렇다. 예약된 환자 외에는 다른 환자를 받지 않는 것도 그렇다.

가령 3시부터 4시까지 예약한 환자가 오지 않더라도 그 시간에 담당의사와 진료실은 그대로 비워둔다. 이렇게 예치과의 원장들은 하루 평균 10~15명의 환자만 받는다. 50명 이상을 받는 다른 치과와는 차이가 있다. 대신 진료비는 그 지역 평균 진료비의 1.5~2배 수준이다.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부합하는 대가를 받는 셈이다.

의사들 가운도 양복 재킷처럼 바꿨다. ‘강남스러운’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의사의 상징인 가운까지 짧게 잘랐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치과의사들은 대개 앉아서 진료합니다. 긴 가운을 깔고 앉기 때문에 불편하죠. 그래서 잘랐습니다.” 예치과 대표원장이자 메디파트너의 CEO인 박인출(52) 대표의 지극히 실용적인 대답이다.

짧은 가운은 박원장의 현실적인 면을 잘 보여준다. 병원 경영도 마찬가지다. 병원 경영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의사들이 경영에 신경쓸 여력이나 소질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예치과에 가입된 병원은 모두 별도로 경영지원부를 둔다. 경영에 대한 박원장의 소신은 굳건하다. “우리는 병원과 처음 계약할 때부터 불평등 계약을 합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네트워크에서 탈퇴시킨다는 조항이 있죠.” 그럼 예치과는 어떻게 네트워크에 가입된 병원의 서비스 질을 평가할까? 우선 가격이다. 인근 치과 진료비의 1.5배 이상을 받게 한다. 둘째는 진료 환자 숫자다. “일단 진료 환자 수가 많으면 좋은 서비스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가격을 비싸게 받으면서 문을 안 닫으려면 좋은 서비스를 할 수밖에 없죠. 이런 간접적 기준을 모아보면 그 병원의 서비스 질을 평가할 수 있죠.”

1992년에 개원한 예치과는 병원경영에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예치과 이후 각종 병원 네트워크가 생겼을 정도다. 박원장은 예치과의 서비스를 “특급호텔과 경쟁하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의료는 서비스입니다. 의사들은 의학도이기도 하지만 의료인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서비스 정신은 필수죠.”

이런 서비스 정신을 바탕으로 예치과는 이제 병원경영, 특히 개인병원의 경영에 관한 한 모델처럼 굳어졌다. 이제는 성형외과, 한의원까지 포함한 예네트워크로 확장된 상태다. 이미 지난해 4월 중국 베이징에 SK 애강병원을 열어 해외 진출도 시작했다. YMG(예 메디컬 그룹)라는 해외법인을 통해 다국적 기업화도 추진하고 있다.

올해에는 베이징과 상하이에 ‘예 메디컬 센터’를 개원할 예정이다. YMG는 국내 다른 병원과 합작으로 베트남 진출도 준비하고 있고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병원 인수 협상도 진행 중이다.

최혁용 함소아한의원 대표…“처방전·서비스 등 모든 것 표준화”

함소아한의원은 최근 가장 두드러지는 병원 네트워크 중 하나다. 2001년 말 ㈜함소아라는 법인을 세운 뒤 불과 3년 만에 27개(미국 1개 포함)의 함소아한의원 네트워크가 탄생했다. 한방이라는 차별화된 서비스로 소아과 진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함소아한의원을 처음 시작한 최혁용(34) 대표원장은 원래 경희대 한의학과 출신의 평범한 한의사였다. 한방소아과를 전공한 최원장은 한방소아과의 장점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저는 한방소아과가 아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토피를 비롯, 각종 소아질환이 늘어가는 추세에서 한의학은 좋은 치료법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막상 한방소아과를 전공한 선배들도 대부분 산부인과 진료를 겸하거나 일반 한의원으로 개업하는 실정이었다.

결국 최원장은 99년 누구도 하지 않은 첫 시도를 했다. 국내 최초로 소아과 전문 한의원을 연 것. 한 선배가 “너 그러다 굶어 죽는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였다. 기다렸다는 듯 손님이 몰려왔다. “2000년 한해는 정말 말도 못하게 바빴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죠. 아마 그때는 전국 한의원 중 우리만큼 잘 된 곳이 별로 없을 겁니다.”

최원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방소아과의 성공을 “잠재된 수요를 우리가 채워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들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달랐죠. 한방소아과가 분명 소아과 치료에 큰 효과가 있고 부작용도 훨씬 적습니다. 시장이 없었던 게 아니라 어린이를 전문적으로 보는 한의원이 없었던 거죠.”

2001년 법인을 세운 함소아한의원은 틈새 개척이라는 전략적 성공 외에도 몇 가지 새로운 시도로 한방소아과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우선 어린이가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한약을 개발했다. 한의원은 외과적 조치보다 한약을 통한 처방을 많이 하는데 어린이들에게 한약을 먹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약제의 성분에 따라 일부는 증류한약을 만들어 맛과 냄새를 줄였고, 일부는 향을 첨가해 향기탕약으로 만들었다. 이런 탕약들은 어린이들에게 ‘하마주스’로 불릴 정도로 거부감이 없다. 하마는 함소아한의원의 캐릭터다.

서비스도 철저하게 고객 중심으로 만들었다. 의사는 진료실에 앉아서 손님을 맞지 않고 반드시 대기실로 가서 손님과 함께 들어온다. “어린이들은 진료실에 들어오면 일단 긴장하거나 웁니다. 그래서 의사가 직접 대기실로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들어오면 아이들이 긴장도 덜하고 진료도 훨씬 편해지죠.”

눈에 보이는 친절만이 아니다. 함소아한의원은 진료 뒤 반드시 환자나 보호자에게 의사의 처방전이 적힌 메모를 건네준다. 단순히 의사나 약사만 알아볼 수 있는 처방이 아니라 일반인이 알아볼 수 있는 약의 복용법·주의사항·생활 관리·진료 소견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진료실에서 일일이 적지 못해 놓친 처방이나 얘기들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더욱이 함소아한의원은 이런 일이 다 매뉴얼화돼 있다. 앞서 언급한 환자용 처방메모도 전국 함소아 의원 공통이다. 개원·진료·교육·서비스 등 각종 업무가 매뉴얼화돼 있고 처방전 역시 전산화돼 있다. 개량화나 표준화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한의원의 단점을 보완한 셈이다. 함소아한의원은 올해 미국에 2개점 추가 개원과 미국의 병원을 인수해 양·한방 협진 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동구 대구의료원장…“환자가 아니라 연공서열제를 수술했다”

지방공사인 대구의료원의 변화도 눈에 띈다. 대구의료원은 의료계는 물론 전국의 공기업 가운데 경영혁신에 성공한 대표적인 의료기관으로 꼽힌다. 2004년에도 행정자치부의 2003년도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지난 7년 동안 한 번도 수석 자리를 내놓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대구의료원은 시립병원에서 공사로 전환된 이후 15년 동안 45억원의 누적 적자를 내면서 한때 경북대학병원에 위탁경영을 맡겨야 할 정도로 부실 공기업의 전형을 보였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대구시 입장에선 ‘골칫덩어리’였던 셈이다.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대구시는 1998년 전국 지방공기업으로는 최초로 의료원장을 공개 채용해 대구의료원을 ‘수술대’에 올렸다. ‘집도 의사’는 이동구(59·해부병리학 전문의) 의료원장. 경북대 의대 교수 출신인 그는 당시 대학을 떠나 ‘돈 잘 버는’ 개원 의사로 소문이 날 정도였으나 뜻 있는 일을 하고픈 욕심으로 ‘메스’를 잡았다.

당시 대구의료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주인의식의 부재였다. 이원장은 경영에 관한 모든 정보를 노조와 직원들에게 공개했고, 구조조정 한파로 떨고 있는 직원들에겐 고용의 안정을 약속했다. 대신 환부는 드러냈다. 당시 총 5명의 행정직 간부 중 4명을 퇴직시켰다.

이동구 의료원장은 “당시 그들에게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혁을 위해선 누군가는 상징적이나마 과거 경영에 책임을 질 사람이 있어야 했고, 그래서 그들을 설득시켰다”고 말했다.본격적인 수술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전문의들에겐 계약제를 도입해 진료 실적에 따른 차등 연봉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조직에 활기를 주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팀제를 시행했고, 전략적인 경영을 위해 기획조정실을 신설했다. 최근 팀장 인사에서는 입사한 지 20년쯤 된 팀장이 물러나고 10년 후배가 팀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의사 사회의 불문율과 같았던 연공서열제가 사라진 것이다.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도 노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환자를 가족같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직원 교육을 통해 친절 운동을 벌였다. 이원장은 환자들의 불편과 건의사항을 직접 듣기 위해 한 주에 한 번 자리를 만들고 있다. 또 1년에 두 차례 환자만족도 설문조사를 실시해 병원 운영에 반영하고 있다.

지적받은 부서나 직원들은 재교육을 하고, 좋은 점은 사례발표를 통해 조직 전체로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일들은 대개 기업들이 경영혁신, 서비스혁신을 할 때 사용하는 방법들이다.이 같은 노력의 결과는 경영지표로 확인된다. 경영개선 전인 1997년의 경우 7억4,900만원 적자였으나 98년부터 지금까지 소폭의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공기업의 성격상 과도한 흑자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97년 78%에 불과했던 병상가동률도 지난해 99.8%로 높아졌으며, 연간 진료 환자 수는 97년 23만8,000여명에서 지난해 28만8,000여명으로 증가했다. 환자들이 병원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경영성과가 개선되면서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도 강화되고 있다. 경영개선 이후 연 평균 6억원의 예산을 들여 복지시설과 무료급식소, 노숙자 등을 상대로 무료 진료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구의료원은 경영성과에 힘입어 중앙정부와 대구시의 지속적인 재정 지원을 얻어내 특수질환전문센터, 치매요양센터, 종합건강증진센터 등의 설립을 추진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동구 의료원장은 요즘 바쁘다. 지방공사와 자치단체, 의료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강의 요청과 현장 견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2005년 01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