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싶은 대로 해도 어긋남이 없다. (제 2편 위정)

2007. 11. 11. 16:45사상·철학·종교(당신의 덕분입니다)/유교(儒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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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대로 해도 어긋남이 없다. (제 2편 위정)

 

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뜻이 확고하게 섰고, 40세에 모든 일에 혹함이 없게 되었고, 50세에는 천명을 알았고, 60세에 남의 말을 순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70세에는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게 되었느니라."
(子曰, 吾 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慾不踰矩)

 

 

<강독>

자율적 인간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렇게도 성숙의 단계를 밝히고 있는 성현이 있었을까 하는 감동을 맛본다.
지천명(知天命)이라 하면 요즘으로 말하면 진리를 깨달았다는 뜻인데, 그 다음 단계가 이순(耳順)이라는 것이 특히 다가온다.
진리를 알았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확신이 강해 여간 해선 다른 사람의 말이 잘 들려오지 않는다.
정치적 사상적 종교적 확신이 강한 사람이나 집단일수록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그 동안 수 많은 종교 분쟁·사상분쟁·정치투쟁 등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도 세계가 그것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知天命보다 耳順이 한 단계 더 성숙한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안되면 아무리 대화나 상생을 강조해도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從心所慾不踰矩의 단계가 되면 자유인으로서 인격의 완성을 이처럼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극대화하는 풍조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멋대로의 세계로 되는 경우가 많아 결국 다른 사람과 부딪치게 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이나 집단과 만나게 되면 심한 부자유를 느끼게 되어 진정한 자유와는 거리가 멀게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을 때라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오늘 날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나 옛날에 비해 자유도가 높아진 새로운 세대가 진정한 자유를 위해 스스로 어떤 인격을 갖춰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 공자의 이 말씀은 큰 지표(指標)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례>

A; 이런 단계들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닐까요.

 

B; 저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오는 것 같아요.

 

C; 그거야 말로 잘 사는 사람이지요.(웃음)

 

D; 知天命 다음에 耳順이 오는 것이 저에게는 다가와요. 천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내가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말이 잘 안들리거든요.

 

E; 그렇다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잘 모르는 사람끼리 평화롭게 잘 하리라고 보이지 않아요. 실제로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완고한 것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점에서 보면 뭔가를 알았다고 생각하면 다투게도 되지만 그것은 보다 더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요.

 

F; 진리(천명) 그 자체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별개의 것이라는 자각이 필요한데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것이 너무 꽉 붙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기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을 보면 진리 자체가 훼손되는 것같이 느껴서 참지 못하는 것 같아요.

 

G; 천명을 아는 사람이 이순이 안된다면 천명을 정말 아는 것일까요.
천명을 아는데도 정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웃음) 아마도 머리로 알아서 점차 체득해 가는 과정 또는 점점 익어 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H; 從心所慾不踰矩라는 구절은 참 감동적인데, 그냥 목표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나이가 들어 체력이나 에너지가 떨어져 욕구가 감소해서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욕구의 질이 바뀌는 것을 바탕으로 이런 자유가 가능하다고 생각되요. 육체적인 나이라기 보다는 인격의 성숙 또는 영적 성숙이 전제되는 마음의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욕구의 질이 바뀌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에 의해서도 가능하겠지만 생존에 필수적인 욕구들을 충분히 만족시켰을 때 가능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는 물질적 풍요나 사회적 자유의 확대는 욕구의 질을 바꿀 수 있는 좋은 토양(土壤)이라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