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禮와 樂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제 3편 팔일)

2007. 11. 11. 16:52사상·철학·종교(당신의 덕분입니다)/유교(儒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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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禮와 樂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제 3편 팔일)

 

③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예(禮)는 무엇을 할 것이며,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악(樂)은 무엇을 할 것인가?”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④ 임방(林放)이 예의 근본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훌륭한 질문이다. 예는 사치함보다는 검소해야 하고, 부모의 상(喪)을 당하면 형식을 갖추기 보다는 진심으로 슬퍼해야 하느니라.”
(林放 問禮之本 子曰 大哉 問 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

 

⑧ 자하(子夏)가 묻기를,“<시경>에 ‘방긋 웃는 웃음에 입술이 더욱 곱고, 아름다운 눈동자에 눈매가 더욱 고우니, 마치 흰 바탕에 채색을 한 것 같구나.’하고 말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채색을 하여 아름답게 됨을 말하는 것이니라.”   자하가 다시, “예를 뒤에 하겠군요.(덕을 갖춘 후에 예가 따른다는 말씀이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일깨워 주는 사람은 바로 상(商)이로구나.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만 하구나.”
(子夏 問曰 巧笑?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지키되 공경스럽지 않고, 상(喪)에 임하여 슬퍼하지 않으면 내 이런 사람에게 무엇을 보리요!”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강독>

허례 허식을 비판할 때 유교나 공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공자께서는 그 해악을 몇 차례 씩 거듭 경계하고 있다.  공자가 중히 여긴 예와 악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외부에 나타난 것이다. 외부로 나타난 형식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인간의 본래 성정인 인(仁)이며 측은지심(惻隱之心)인 것이다. 요즘 경조사에 임하는 실태나 혼수(婚需) 준비, 장묘((葬墓), 과시적 소비를 볼 때 더욱 다가오는 바가 있다.
8장의 공자와 자하의 대화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대화>

A; 공자는 이상적인 질서를 예(禮)와 악(樂)이라는 두 기둥으로 세우려고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기둥을 어떤 바탕에 세울 것인가가 이 장들에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인(仁)?덕(德)?경(敬)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B; 실질이 형식을 이끄는 것은 무리가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무리가 따르는 것 같아요.

 

C;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형식이 강요되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과시로 되면 안되겠지만 때로는 형식이 본질이 약해지는 부분을 보완하는 경우도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내용과 형식은 서로를 끌어주는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D; 제 경우는 제사(祭祀)를 기도회로 대신하고 있는데 때로는 ‘내가 편하려고 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제사를 통해 조상에 대한 경모(敬慕)의 정이 살려지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E;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대신 단식(斷食)을 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어요. 일반적으로 권하기는 어렵겠지만요.(웃음)

 

F; 강요된 형식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자신이 변화하려는 욕구가 없는 사람에게 그 욕구가 생기도록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헛되이 시도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누군가를 가르치기 보다는  삶의 모습으로 다가갈 때 스스로 변화의 욕구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G; 제 경우는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참 어려워요. 저는 주로 매로 다스리는데요.(웃음)

 

H; 필요할 때는 매를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매를 드는 심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에 대한 사랑과 집착은 다른 것 같아요. 자식에 대한 부모의 태도에는 이 두 가지가 혼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잘 구별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알거든요. 뭐라고 할까 심층의 마음은 서로 교감되는 것 같아요. 흔히 ‘사랑의 매’라고 하지만  자신이 화가 나서 매를 드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