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와 貴, 貧과 賤 (제 4편 이인)

2007. 11. 11. 16:56사상·철학·종교(당신의 덕분입니다)/유교(儒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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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와 貴, 貧과 賤 (제 4편 이인)

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와 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나 도로써 얻은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빈과 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도로써 얻은 것이 아니라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군자가 인을 버린다면 어떻게 이름을 이룰 수 있으리요.
군자는 밥 먹는 동안이라도 인을 어기는 일이 없는 것이니 황급한 때에도 반드시 그것을 지키고 위급한 때에도 반드시 그것을 지켜야 하느니라."


(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君子去仁 惡乎成名 君子無終食之間 違仁 造次 必於是 顚沛 必於是)

 

 

<강독>

 

부와 귀를 좋아하고 빈과 천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따라서 일부러 부귀를 멀리하거나 빈천을 선택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보통의 인간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부귀보다도 더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 과정의 정당성이다. 그것을 공자께서는 도(道)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정당하게 얻은 부귀가 아니면 그것은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결국은 불행의 원인으로 된다. 이것은 그 동안의 수 많은 개인과 집단의 삶 속에서 예외 없이 증명되어 왔다.
 도(道)는 개개인의 덕목일 뿐 아니라 집단(사회)의 덕목이기도 하다. 불의한 사회(도가 실현되지 않는 사회)일수록 과정의 정당성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조금만 길게 보면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또는 그 자손의 삶 속에서 반드시 증명된다. 항구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행복은 개인과 사회가 도(道)에 부합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지자(知者)이고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인자(仁者)인 것이다.
사람으로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모두가 부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 온 것이 인간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선진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같은 지금의 제도도 이러한 역사의 산물로 나타났고 또 끊임없이 변화해 갈 것이다.
빈과 천이 도로써 얻은 것이 아니라도 피하지 말아야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운명이나 팔자로 알고 체념하며  받아들이라는 말씀은 아니라고 보고 싶다.
빈과 천에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하는 그 과정에서 무리를 범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이 아닐까.
요즘 말로 하면 개인의 불행이 사회적 모순에 기인한다고 보여질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에의 길일까. 그 동안의 사회 변혁과정을 비롯한 수 많은 개인사 속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바탕으로 검토해 갈 테마라고 생각되었다.

인(仁)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또 인(仁)의 실현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밥 먹는 동안이라도 인을 어기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추상적인 목표나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삶 속에 녹아드는 것이 진짜인 것이다.
그렇게 될 때라야 황급하거나 위급한 때라도 인(仁)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장을 읽으면서 입으로는 늘 도(道)나 인(仁)을 이야기하다가도 막상 다급하거나 위기에 처할 때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데 급급한 우리의 실태를 보는 것 같다.

 

 

<대화>

 

A; 부자가 되려는 욕구가 세상에 팽만한 요즘 이 장이 어떻게 읽힐까요.

 

 

B; 부자가 되려는 욕구 그 자체는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문제는 그 과정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항아리를 사러 갔는데 그 가게의 영감님이 상도(商道)를 실천하시는 분 같아서 거래를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어요.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된다면 좋은 일 같아요.

 

 

C; 착하게 살아도 가난을 면할 수 없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장은 가혹한 말씀이 아닌가요.   심하게 말하면 가난이 사회적 모순 때문일 경우에도 그것을 감내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D; 그렇게 읽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좀 다른 식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빈천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너무 당연하지만 그 방법이 도(道)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요.
만약 어떤 사람이 체념한 나머지 자포자기의 삶을 살거나 자주적 인간으로서 긍지를 잃어버리는 것 보다는 그 빈천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당당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지 않는다면 그것은 훌륭한 것이 아닌가요.
빈천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 아무리 절박하다 해도 범죄나 비리를 범하려는 유혹에 지고 만다면 결국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겠지요.
또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도 무리(無理)나 폭력(暴力)을 수반하거나 밥그릇을 서로 빼앗는 싸움으로 되고 만다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일까요.

 

 

E;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 단순소박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이런 경우에는 가난을 참고 견딘다기 보다는 오히려 소박한 삶을 즐기기 때문에 실제로는 풍요로운 삶이 아닐까요. 요즘 '자발적 가난'이라는 말도 많이 하는데 그 의미는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F; 저는 성격이 조급한 편인데 어떤 일에 처해서 당황하거나 하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어요. 타고난 성품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 않고 의식해서 노력해 보고 싶어요.

 

 

G; 성격이 굳어지기 전에 어렸을 때부터 연습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성격 탓으로 돌리지 않고 늘

仁을 의식하면서 노력하다보면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