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강 반 야 바 라 밀 경 각문장 부분해설

2008. 1. 21. 20:4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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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강 반 야 바 라 밀 경 각문장 부분해설
1.장
① 나는 이와 같이 들었노라(如是我聞) : 여시아문
원문은 Evam mya srutam이다. 불교 경전의 제일 첫 부분은 의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노라(如是我聞)'로 시작됩니다.
세존(석존)이 열반에 든 이후,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은 교법의 준수를 위해 저마다 '들어서 암송하고 있는 것'을 모아 경전편찬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것을 결집(結集)이라 한다. 세존이 열반에 든, 기원전 544년에 왕사성(王舍成) 칠엽굴(七葉窟)에서 세존의 수제자인 마하가섭(魔訶迦葉)을 상수(上首)로 하여 500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경 · 율] 이장(二藏)을 편찬하였으며,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결집사업이 시행되었다.
세존(석존)의 제자들은, 교법을 그대로 믿고 순종한다는 뜻으로 '나는 이와 같이 들었노라'로 기록했던 것이다.
금강경'에 나오는 "나는 이와 같이 들었노라"의 '나'는 석존의 10대 제자의 한 사람인 아난존자(阿難尊者)이다. 아난존자는 세존의 종제(從弟)인데, 이름을 아난타(阿難陀)라고 한다. 그는 8세에 출가하여 석존이 열반에 드실 때까지 조석으로 모시던 시봉자였다.
금강경은 아난존자가 훗날 석존과 그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수보리(須菩提)와 문답한 내용을 모아서 기록한 것이다. '이와 같이'의 '이와'는 이 '금강경'의 내용은, '석존이 친히 설하신 설법을 들었다'고 하는 뜻이며, '들었노라'는 아난존자의 독단적(개인적)인 생각이 아님을 뜻하는 것이다.
☞육성취(六成就)
모든 經(경)의 冒頭(모두)에 붙인 '여시아문(如是我聞) · 일시(一時)'등 육사(六事)를 이름. 이 六事(육사)가 합하여 부처님의 설법이 성립되므로 六成就(육성취)라 한다.
①如是(여시)는信成就(신성취)로,信(신)은 阿難(아난)의 信順(신순)을 뜻함.
② 我聞(아문)은 聞成就(문성취)로, 阿難(아난)의 自聞(자문)을 뜻함.
③ 一時(일시)는 時成就(시성취)로, 法(법)을 說(설)하던 때를 뜻함.
④ 佛(불)은 主成就(주성취)로, 법을 설하던 주인공을 뜻함.
⑤ 在某處(재모처)는 處成就(처성취)로, 법을 설하던 道場(도량)을 뜻함.
⑥ 與大比丘衆(여대비구중)등은 衆成就(중성취)로,
한 자리에서 다같이 법문을 들은 대중을 뜻함.
※佛과 處를 합하여 오성취, 또는 我와 聞을 분리하여 칠성취 라고도 한다.

② 불(佛) :
나집(譯本)만이 불(佛)이라 하고, 다른 '유지본 · 진제본 · 급다본 · 의정본' 등은 불바가바(佛婆伽婆) 또는 간단히 바가범(婆伽梵)으로 번역하고 있다.
범어는 Bhagavat로서 세존으로 번역되지만, 일반적으로 제자가 스승에 대해서 부르는 호칭으로 이 말이 사용된다
③ 사위국(舍衛國) : 사위성(舍衛城)_수도 성(城)
원어 스라바스티( sravast&itilde )의 번역어. 실라벌(室羅筏), 실라벌실저(室羅筏悉底), 시라바제(尸羅波提)라고도 음역한다. 부처님 당시 인도 중부지방에 있던 가비라국 서북쪽에 있던 코살라(K sala)라는 나라의 수도이다.
현재 인도 곤다(Gonda)州의 사하헷마아헷(Sahet-mahet)이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에 그 곳에는 파사닉왕(婆斯匿王:Prasenajit)이 있어 불교를 신봉하고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본래 코살라국의 수도를 사위(舍衛)라 했지만, 그 도시의 이름을 가지고 나라이름으로 삼아서 사위국(舍衛國 _'사위'라는 말은 '물자가 풍부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사위성의 남쪽에는 부처님이 25년간의 긴 세월에 걸쳐 설법 · 교화를 했던 유명한 기원정사(祇園精舍)가 있다.
④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 수달다↘
기수(祇樹)는 제타바나(Jetavana)의 번역어로서 사위국 "제트리 太子의 숲"이라는 뜻이다. 제트리(Jet )는 '전승자'(戰勝者)라는 뜻으로 파사닉왕 태자의 이름이다.
급고독(給孤獨)은 인명으로 아나타빈다타(Anatha-pindada)의 번역어이며, '고독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고독한 사람이란 늙고 병들고 외로운 사람을 말한다.
'급고독'은 이름 그대로 불교를 위해서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물질적인 선(善)을 베풀었던 부호인 수달(須達:Sudatta)의 다른 이름으로 수달다(須達多) · 소달다(蘇達多)라고도 음역하고 있다.
수달장자가 부처님께 절을 지어들이고자 하는데, 그 후보지(장소)가 제타태자의 소유여서 그는 그 토지(땅)을 팔라고 청했으나 태자는 팔 생각이 없었으며, 오히려 엄청난 값을 부르는 장난을 했다.
그래도 장자는 거침없이 그 많은 값을 치르고 라도 사겠다고 하므로, 이에 태자가 이유를 물어보니, 인류의 스승이신 부처님께 절을 지어 헌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말에 감동이 된 태자는 그 지상물인 숲 값은 감면하고 자기의 이름으로 헌납할 것을 제의하자, 이를 수락하여 "제타태자의 숲과 급고독장자가 세운 절"이라는 긴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한다.
보통 생략해서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하는데, 사위성 남쪽 1마일 지점에 있다. 정사(精舍)는 수도하는 도장으로서, 수도승이 거처하는 집 , 곧 절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⑤ 대비구(大比丘) ⇒ 큰스님 :
대비구라 함은 덕 높고 점잖은 비구란 뜻이다. 지금은 큰스님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비구는 범어 Bhiku의 음역으로서 '포마(怖魔) · 정계(淨戒) · 걸사(乞士)'의 세 가지 뜻이 있다.
☞'포마'는 악마를 겁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정계'는 계행을 깨끗이 지닌 이라는 뜻이며, '걸사'는 걸식으로 삶을 이어가는 이라는 뜻이니, 종합하면 부처님의 제자 중 성문(聲聞)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범문(梵文) 원전에는 대비구중(大比丘衆)에 이어서 많은 보살 마하살(sambahulais ca bod hisattvairmahasa- ttvaih)을 덧붙이고 있는데, 단지 의정역만이 그렇게 되어 있을 뿐 다른 역에는 없고 유통분(流通分)에도 없으므로, 한역(漢譯)에 따름이 좋을 것이다.
⑥ 천이백오십인(千二百五十人) :
천이백오십인이라 함은 이 경(금강경)을 말씀하실 때 당시의 제자들이 모두 다 모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교진여(橋陳如) 등 다섯사람이 처음에 제도되었고, 다음에 가섭파(迦葉波) 등 삼형제를 합친 무리 千(천여명)의 사람들을 제도하셨고, 세번째로 사리불(舍利佛) 등 二百 사람을 제도하셨으며, 이후 야사(耶舍) 등 五十(오십) 사람을 제도하셔서 정확히 하면 千二百五十五人(천이백오십오인)을 대략 말씀하신 것이 된다.
⑦ 세존(世尊) :
부처님을 부르는 10가지 호칭 중의 하나. 부처님에게 있는 공덕상(功德相)을 일컬어 10가지로 표현하는데, 이것을 여래 10호(如來十號)라 한다.
☞ 여래 10호(如來十號)
 1. 여래(如來; Tath gata) : 열반(涅槃)의 피안(彼岸)에 이르는 분
 2. 응공(應供; Arhat) : 온갖 번뇌를 끊어 인간, 천상의 중생들로부터 공양을 받을만한 덕이 있는 분
 3. 정변지(正遍知; Samyak sambuddha) : 일체지(一切智)를 갖추어 우주의 모든 시공을 알지 못함이 없다는 뜻
 4. 명행족(明行足; Vidy cara a-sa panna) : 계(戒) · 정(定) · 혜(慧)의 삼학(三學)을 두루 갖추어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
 5. 선서(善逝; Sugata) : 깨달음의 피안에서 이 생사(生死)의 바다에 빠지지 않는 분
 6. 세간해(世間解; Lokavit) : 세계의 온갖 일을 다 아는 분
 7. 무상사(無上士; Anuttara) : 모든 생물 가운데에서 가장 높으신 분으로, 위가 없는 큰 분
 8. 조어장부(調御丈夫; Puru adamyas rathi) : 대자대비(大慈大悲)와 대지(大智)로써 중생에게 때로는 부드러운 말, 때로는 간절한 말로 제어(制御)하며 바른길을 벗어나지 않게 조절하는 분 _☞지혜(智慧)
 9. 천인사(天人師; Devamanu ya str) : 하늘과 땅의 스승이라는 뜻
10. 세존(世尊; Bhagavat) :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
⑧ 식사때가 된지라(食時) :
부처님은 하루 한 끼. 사시(巳時; 오전 9시 11시)에 식사를 하시었다고 한다
⑨ 바리때를 드시고(持鉢) :
바리때는 비구(比丘)가 사용하는 '밥그릇'을 뜻한다.
이것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밥을 비는 것을 탁발(托鉢)이라 한다.
바리때라는 말은 원어 파트라(Patra)의 음역인데, 한문으로는 발다라(鉢多羅) 또는 발우(鉢盂)라고도 하며, 줄여서 발(鉢)이라고도 한다.
쇠로 만든 철발(鐵鉢), 오지로 만든 와발(瓦鉢) 등이 있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나무로 만든 목발(木鉢)을 쓰고 있다.
⑩ 탁발(托鉢) :
출가한 승려가 바리때(鉢盂;발우)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음식 등을 비는(구하는) 것으로, 이를 '탁발걸식'이라 한다.
걸식(乞食)에는 엄격한 규율이 정해져 있어서, 걸식의 대상에는 빈부나 귀천의 차별을 두지 않고 한 집 한 집 차례로 평등하게 한다. 또한 이 걸식에는 얻거나 못 얻거나 하루에 일곱 집으로 정해져 있는데, 이는 色과 物에 대한 욕심, 즉 탐심에의 집착을 버리며 참고 견디는 정신을 기르기 위한 수행의 한 방법인 것이다.
☞ 걸식을 할 때 비구가 지켜야 할 네가지를 걸식사사(乞食四事)라 한다. 즉,주정계(住定戒)라 하여 심신을 바르게 가져서 정계에 주(住)하고,
주정의(住定儀)라 하여 용모를 단정히 하고 예의바르게 하여 상대로 하여금 공경케 하고 믿게 하는 것이며,주정명(住定命)이라 하여 부처님의 법도에 따라서 걸식하고 부정한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고,주정각(住定覺)이라 하여 몸은 괴로움의 근본인 줄 알고 음식은 겨우 몸을 지탱할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⑪ 공양(供養): 원어는 Pjan 로서 공시(供施)라고도 한다.
출가한 승려가 하루 세끼 음식을 먹는 것, 또는 금품이나 옷·음식·꽃 · 향 등을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게 혹은 '부모 · 스승 · 죽은 이'에게 바치는 것을 말하는데, 근래에 와서는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⑫ 성문(聲聞) :
범어(梵語) sravak 로 三乘(삼승)의 하나. 부처님의 말씀을 듣거나 敎法(교법)을 보고 苦(고)·集(집)·滅(멸)·道(도)의 이치를 관하여 '아라한'이 되려는 이를 말하는데,
모든 중생을 다 건지겠다는 큰 원을 세우지 않고, 자기의 공부만을 힘써 소승의 四諦[苦(고), 集(집), 滅(멸), 道(도)]법을 깨쳐서 번뇌 망상을 끊고 자기 자신의 해탈 만을 위한 이(者)를 이름하는 것이다.
 ☞ 승(一·二·三乘)
⑬ 출가(出家) :
'집에서 나온다는 말'로 쓰여, 在家生活(재가생활)을 벗어나 沙門(사문)의 淨行(정행)을 닦는 일. 즉 가정을 떠나 수도와 포교를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몸의 출가(身出家)'보다는 '탐, 진, 치 삼독'등 번뇌 망상의 화택에서 뛰어 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가 진정한 출가다. 출가를  출리(出離)라고도 하는 것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2.장
① 장로(長老) :
yu mant의 번역어. 학식과 덕망이 높고 나이가 많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불교 승려의 존칭이다. '장로'외에도 구수(具壽), 명자(命者), 혜명(慧命), 장자(長子), 대덕(大德), 존자(尊者) 등으로도 번역되고,  유지, 진제, 급다, 현장, 의정은 각각 혜명(慧命), 정명(淨命), 명자(命者), 구수(具壽)라 변역하고 있다.
② 수보리(須菩提) :
수부티(Subh ti)의 음역.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며, 또한 16나한 중의 한 분이기도 하다. 사위국 왕의 장자로 태어나 천성이 총명하였으나 성질이 고약하여 늘 화를 잘 내 부모로부터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와,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기원정사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공(空)사상을 깨달았으며, 그 후부터는 자비로워져 많은 선업(善業)을 베풀었다고 한다.
'공(空)의 도리'를 제일 잘 이해한 사람으로 알려져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고도 불리웠다. 태어날 때 부친이 꿈을 꾸니 창고가 텅비어 보여서 공생(空生)이라 이름을 지었는데, 1주일 후 다시 꿈에 창고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선현(善現)이라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또 그의 장래를 점상가(占相家)에게 물으니 '오직 길하다'고 하여 이름을 선길(善吉)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그래서 선현(善現)· 선길(善吉)· 묘생(妙生) 등의 여러 가지로 불리우고 있다.석가모니의 10대 제자로는
1) 만행(萬行)을 가장 잘 하는 두타제일(頭陀第一)인 마하가섭존자(魔訶迦葉尊者):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데 제일 뛰어난 제자였다.
그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서 성전을 편찬하는 일을 주도하였으며, 교단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2) 지혜제일(智慧第一)인 사리불존자(舍利佛尊者):목련존자와 함께 당시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사람인'산자야'의 제자였다.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은 인연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라는 가르침을 전해 듣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지혜가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되었다.  3)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건련존자(目鍵蓮尊者):신통력이 뛰어나 다른 사람들이 감히 할 수 없는 일(神通)들을 잘 해 내는 재주를 가졌다.그러나 부처님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4) 지계제일(持戒第一)인 우바리존자(優婆離尊者):천민계급인 수드라 출신의 이발사였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 후 불교교단의 행동 규범 · 윤리인 계율을 기억하고 지켜,부처님(석존) 열반 후 계율부분인 율장(律藏)을 암송하여 편찬 함.  5) 설법제일(說法第一)인 부루나존자(富樓那尊者):총명하고 영특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재주가 있었다.뿐만 아니라 이교도가 많고, 성품이 거칠고, 먼곳에 위치한 '수로나' 지방까지 가서 수많은 절을 세우고 포교하는 업적을 남겼다.  6) 해공제일(解空第一)인 수보리존자(須菩提尊者):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서 항상 마음이 자유롭고 걸림이 없었다. 특히 불교 사상의 핵심인 '공(空)'의 도리를 잘 설명하기로 유명하다. 7) 다문제일(多聞第一)인 아난존자(阿難尊者):부처님의 사촌동생. 25년간 부처님의 시중을 들며 가장 가까이서 모셨던 제자였다. 그는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으며 기억력도 뛰어나, 훗날 불교 성전을 편찬할 때, 들었던 법문 내용을 암송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8) 밀행제일(蜜行第一)인 라후라존자(羅후羅尊者):부처님의 아들로서, 주로 사리불에게 가르침을 배웠으며,엄한 규칙 아래에서 수도에 힘썼다.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착한 선행을 많이 하였다. 9) 논의제일(論議第一)인 가전연존자(可傳蓮尊者):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함께 토의하고 논의하는데 있어서,탁월한 이론을 세워서 널리 칭송을 받았다. 10) 천안제일(天眼第一)인 아나율존자(阿那律尊者) :부처님의 사촌동생.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동안 졸다가 꾸지람을 듣고, 다시는 졸지 않고 열심히 수행하리라 결심, 잠을 자지 않다 결국 두 눈이 멀게 되었으나, 강한 정신력으로 마음의 눈(心眼)을 얻어 천안통(通)을 얻게 되었다.

(참고) 달마 존자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반야다라에게 도를 배워 28대 조사가 되었다.양나라 무제 때 중국에 건너와 선을 전함. 숭산 소림사에서 9년동안 벽을 향하여 좌선.조계종이란 명칭은 달마대사의 법통을 계승한
중국 선종 6조인 혜능대사가 교화를 편 조계산에서 비롯되었다.
※삼십삼세조사(三十三世 祖師)※
석존의 열반 이후 (법통을 계승한) 인도와 중국을 합하여 33대째인 조사를 말하는 것으로 삼십삼인의 이름을 그 순서대로 차례로 적어보면,
1) 摩詞迦葉(마하가섭)   2) 阿難尊者(아난존자)  3) 商那和修(상나화수)  4) 優婆毬多(우파구다)  5) 提多迦(제다가)  6) 彌遮迦(미차가)  7) 婆須密多(파수밀다)  8) 佛陀難提(불타난제)  9) 伏陀密多(복타밀다)  10) 脇尊者(협존자)  11) 富那夜奢(부나야사)  12) 馬嗚(마오)  13) 迦毘摩羅(가비마라)  14) 龍樹(용수)  15) 迦那提婆(가나제파)  16) 羅候羅多(라후라다)  17) 僧迦難提(승가난제)  18) 迦那舍多(가나사다)  19) 鳩摩羅多(구마라다)  20) 도夜多(도야다)  21) 世親(세친)  22) 摩拏羅(마라라)  23) 鶴勒那(학륵나)  24) 師子(사자)  25) 婆舍斯多(파사사다)  26)  不如蜜多(불여밀다)  27) 般若多羅(반야다라)  28) 菩提達磨(보제달마)  이후,
達磨(달마)가 중국에 와서는 ①28) 菩提達磨(보제달마;初祖초조가 됨)  ②29) 慧可(혜가)  ③30) 僧璨(승찬)  ④31) 道信(도신)  ⑤32) 弘忍(홍인)  ⑥33) 慧能(혜능)의 순으로 이어진 것으로 전해짐.
 
③ 옷을 벗어 오른쪽 어깨에 메고(偏袒右肩) :
단(袒)은 [옷 벗어 멜 단]으로, 편단(偏袒)은 한 쪽 소매를 벗어 멘다는 뜻이다.
고대 인도의 예법으로 웃옷의 한 쪽 소매를 벗어 오른쪽 어깨에 걷어 메고 어깨를 드러내는 것으로, 자진해서 시중을 들겠다는 의사표시라고 하는데, 지금도 동남아시아의 승려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는 예법으로, 승려의 가사에는 이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④ 오른쪽 무릎을 땅에 끓고(右膝著地) :
착(著)은 착(着)과 통한다. 고대 인도 예법의 하나로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존경의 뜻을 표하는 방법이다.

⑤ 합장(合掌) :
합장배례(合掌拜禮)라 하여 두 손바닥을 앞으로 합쳐서 모아 올리고 고개를 숙여 절하는 예법(예를 표현하는 모습)이다.

⑥ 여래(如來) :
원어 타타아가타(Tath gata)의 한역. 부처님의 10가지 호칭 중의 하나(제1주해의 5항 참조).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 달타벽다(恒他檗多)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원어인 Tath gata라는 말은 tath 라는 말과 gata, 또는 agata라는 두 낱말의 합성어이다.
tath 는 여(如)를, 여(如)는 진여(眞如)를 말하고, gata는 가다(去), agata는 오다(來)의 뜻이다. 그래서 tath + gata란 말은 진여(眞如)에 가다(去), 오다(來)가 되고 열반의 피안에 간 사람, 즉 도피안(到彼岸)의 뜻이 된다고 풀이하고 있다.
또한 여래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3가지의 뜻을 갖는 다고도 한다.
1. 전세(前世)의 모든 부처님들과 같은 길을 걸어서 이 세상에 나타나신 분으로, 이 세상에 진리를 보여주신 분.
2. 전세의 부처님들처럼, 같은 길을 걸어서 열반의 피안에 도달하신 분.
3. 진리에 도달하신 분.
위 세가지 뜻으로 해석하여 '여(如)로 내생(來生)'한 사람이라고 해서, 여래(如來)라고 한 것이다. 여(如)는 진여(眞如), 즉 항상 불변한 것이므로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⑦ 보살(菩薩) :
원어는 보리살타(Bodhisattva). 보살은 보리살타(菩利薩陀)의 준말로서 각유정(覺有情), 고사(高士), 개사(開士), 대사(大士), 시사(始士) 등으로 의역하고 있다. 보살이란 일반적으로는 대승불교에 귀의하여 성불하기 위해 수행에 힘쓰는 이를 말한다.
원래 보살이란 큰 마음을 내어 불도에 들어와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으며, 위로는 부처를 따르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에 버금하는 성인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살이란 3아승기(阿僧祇 :산수로서는 표현할 수가 없는 가장 많은 수를 가리키는 인도어.아승기겁은 겁의 수가 아승기란 말)의 100억 겁(劫 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세상에 나와 자기와 남을 모두 이롭게 하기 위한 자리타리(自利他利)의 行을 닦으며 51位의 수양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얻은 이를 말한다. 그 중에는 중생의 제도를 위해 영영 성불하지 않겠다는 대비천제(大悲闡提)로서의 지장보살도 있고, 관세음보살도 있다.
보(菩)는 슬기를 닦음이요, 살(薩)은 복을 닦음이라고 풀이하는 학자도 있다.
소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은 오직 석가모니 한 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살로서는 석가모니불이 성불하기 전의 호명보살 밖에 없다고 하고 있으나, 대승불교에서는 성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석가모니 한 분만이 아니고 한없이 많은 부처가 있다고 말하고, 또 재가나 출가를 막론하고 불도를 수행하는 이를 모두 보살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우바이, 청신녀(淸信女)의 존칭으로 흔히 쓰이고 있으며, 여승(女僧)을 보살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⑧ 호념(護念) :
원어 파리그라하(Parigraha)의 번역어. 모든 부처, 보살들이 선행을 닦는 중생들에게 온갖 어려움을 없애주며 옹호하고, 깊이 억념(憶念)하여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⑨ 부촉(付囑) :
다른 이에게 부탁하고 위촉하는 것. 부처님(석존)은 설법을 마친 후에 청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을 가려내어 그 법의 유통을 촉탁하는 것이 상례(常例)였다고 한다.
이것을 부촉(付囑) 또는 촉루(囑累), 누교(累敎)라고 하기도 한다.
경전 가운데서는 이러한 부촉의 일을 말한 부분을 촉루품(囑累品), 또는 부촉단(付囑單)이라고 해서 대개 경전의 맨 끝에 자리잡고 있다.
 
⑩ 선남선녀(善男善女) :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을 줄여서 하는 말. 원어는 쿨라푸트라(Kula-putra), 쿨라 두히트리(Kula-duhi ). 직역하면 출생이 좋은 올바른 아들, 딸의 뜻이다.
선남선녀는 선인(善因)의 결과 전생에서 지은 선사공덕(善事功德)이 현세에 나타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믿는 이, 현세에서 불법을 믿고 선을 닦는 이,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염불하며 선을 닦는 남자와 여자라는 뜻. 또한 죄악이 많은 자라도 마음을 돌이켜, 참회하고 염불하며 선을 닦으면 선남자 선여인이 된다고 한다.
이 선남자 선여인이 보살승에 나아간다는 것은,
나집역 · 진제역 및 범본(梵本)에 있는 것이고, 유지역 · 급다역 · 현장역 및 의정역에는 선남자 선여인이 없으며, 보살이 대승 가운데에서 보리심을 일으킨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나 경 가운데서는 선남자 선여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본래는 '선남자 선여인이 보살승에 나아간다'고 하는 나집역이 본래의 뜻에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⑪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뇩多羅三먁三菩提) :
원어 아누타라삼약삼보드히(anuttara-samyak-sa bodhi)의 음역. 직역하면 '위 없이 올바른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이란 뜻이고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또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한역한다.
범부는 불각(不覺)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무상정등정각은 미계(迷界)를 여의고 각지(覺智)가 원만하여 일체의 진상을 모두 아는 부처님의 전지전능한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뇩다라는 '위가 없다' 즉 무상(無上)이고, 삼먁은 '바르고 평등하다'는 뜻으로 정등(正等)이고, 삼보리는 세 가지의 道, 즉 성문보리(聲聞菩提) · 연각보리(緣覺菩提) · 제불보리(諸佛菩提)를 말하는데, 모든 진리를 똑바로 밝게 깨달은 부처의 마음(正覺)을 뜻한다. ☞삼보리(三菩提)
따라서 부처님의 무상승지(無上勝地)를 말하는 것이다.
한편 조선 초기에 간행된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서 육조 혜능은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아(阿)는 무(無)를 말하고, 뇩다라(뇩多羅)는 상(上)을, 삼(三)은 정(正)을, 막(막)은 변(偏)을, 보리(菩提)는 지(智)를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3.장
① 마하살(摩訶薩) :
원어 Mah sattva 마하살타(摩訶薩陀)의 준말로서 보살의 미칭(美稱)이다.
마하(摩訶)는 "크다"는 뜻이고, 보살은 나와 남을 이롭게 하기위하여 대행(大行)을 닦는 사람이므로 큰 보살, '마하살'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을 제외하고, 중생(衆生) 가운데 맨 윗자리에 있으므로 [大]를 더하여 대중생(大衆生) 또는 대유정(大有情)이라고 한역하고 있다.

② 일체 중생의 종류(一切衆生之類) : 유정(有情)
범어의 Satta를 중생이라고 한역했다. 보통 미계(迷界)의 생물들을 통틀어 중생지류(衆生之類)라고 한다. 예전에는 '정식(情識)이 있는 생물'로 풀이 되어 왔으나 唐나라 현장법사가 유정(有精)이라 번역한 이후로 이것이 계속 쓰이고 있다.
중생의 의미에는 첫째, 여러 생(生)을 윤회한다. 둘째, 여럿이 함께 산다. 셋째, 많은 연(緣)이 화합하여 비로소 생(生)한다 라는 세 가지 뜻이 있다.
③ 난생(卵生) :
원어 A aja의 번역어. 알에서 태어나는 모든 생물들을 말한다. 원생동물이나 포유동물 이외의 새종류, 뱀이나 물고기류가 이에 속한다.
④ 태생(胎生) :
사람이나 소, 말과 같이 어미의 뱃속에서 사지와 형태가 갖추어진 채 출생하는 모든 생물들을 말한다. 포유동물이 이에 속한다.
⑤ 습생(濕生) :
원어 Sa svedaj 의 번역어. 습한 곳에서 태어나는 생물을 말하는데, 모기, 개구리, 지렁이 따위가 그것이다.
⑥ 화생(化生) :
원어 Upap duka. 자체가 없으며 의탁한 데가 없이 홀연히 생겨나는 생물을 말한다. 모든 천상이나 지옥에 나거나, 우주가 처음 생길 때인 초겁(初劫) 또는 천지개벽 시초에 나는 존재들을 말한다.
⑦ 사생(四生) :
육조(六祖) 혜능(慧能)은 '금강경오가해'에서 이 사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난생(卵生)은 미(迷)한 성품, 태생(胎生)은 습성(習性), 습생(濕生)은 사견(邪見)에, 그리고 화생(化生)은 견취성(見趣性)에 이끌린다.
이 모두는 어리석기 때문에 업을 짓고, 습성에 젖어 있기 때문에 생사윤회에 유전(流轉)하고, 사(邪)에 끌리기 때문에 마음이 인정(印定)되지 못하여 타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사론 제8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어째서 난생(卵生; anda-ja)인가 ? 유정(有情)의 부류 중 난곡(卵穀)을 따라 나오기 때문이며, 그래서 이것을 난생이라 이름한다. 올빼미 · 공작 · 앵무새 · 기러기 등이 그러하다.
어째서 태생(胎生; jarayu-ja)인가 ? 유정의 부류 중 태장(胎臟)을 따라 나오기 때문이며, 그래서 이것을 태생이라 이름한다. 코끼리 · 말 · 소 · 돼지 · 양 · 당나귀 등이 그러하다.
어째서 습생(濕生; samsveda-ja)인가 ? 유정의 부류 중 습기를 쫓아 나오기 때문이며, 그래서 이것을 습생이라 이름한다. 벌레 · 나방 · 모기 · 빈대 · 지네 등이 그러하다.
어째서 화생(化生; upapaduka-ja)인가 ? 유정의 부류 중 의탁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그래서 이것을 화생이라 이름한다. 사락가(師落迦), 천(天), 중유(中有) 등이 그러하다.<'대정신수대장경' 29, p.43 下 및, p.44 上, 또 '중일아함경' 卷 17, '대정신수대장경' 2, p.632 참조>

⑧ 유색무색(有色無色) :
중생이 살고 있는 세계를 욕계(慾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3개로 나누는데, 이것을 삼계(三界)라 한다. 이 중에
욕계(慾界)는 하늘 ·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의 6개의 욕천(慾天)이라 하여 육욕천(六慾天)이라 한다. 이곳은 식욕(食慾), 음욕(淫慾), 수면욕(睡眠慾) 등이 가득찬 세계이다.
색계(色界)는 욕계의 위, 무색계(無色界)의 아래에 있는 세계로서 욕계에서와 같은 탐욕은 없어졌으나, 물질적인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해 전적으로 정신적인 것이 되지 못한 중간인 물적인 세계이다. 즉 아직 형상이 남아 있어 유색이라 한다.
무색계(無色界)는 색계의 위에 있어 물질적인 것에서 벗어난 순 정신적인 세계, 즉 무색천(無色天)을 말한다. 여기에는 형상이 없다고 하여 무색이라 한다. 이 무색계에서는 형색(形色)은 없고, 수(受) · 상(相) · 행(行) · 식(識)의 정신적인 작용만 있다.
삼계 가운데에서 맨 위의 차원 높은 하늘이라고 해서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한다.


⑨ 유상무상(有想無想) :
생각하는 번뇌나 망상이 있는 상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유상(有想)이고, 일체의 상념이 없는 것이 무상(無想)이다. 그러나 깊은 번뇌, 곧 잠재의식은 남아 있으므로 역시 중생임을 면치 못 한다.
 > 비유상 · 비무상(非有想 非無想) :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은 것

⑩ 무여열반(無餘涅槃) :
원어는 아누파디세사 니르바나(Anupadhi e a-nirv a)이다. 멸(滅) · 적멸(寂滅) · 원적(圓寂) · 멸도(滅道)라고도 번역하고 있다.
혹은 무작(無作), 무생(無生)이라고도 한다. 도를 완전히 이루어 일체의 미혹과 번뇌를 끊고, 삶과 죽음을 초월한 불생불멸의 법을 증험한 해탈의 경지를 열반이라 하여 불교의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다. 열반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일체의 번뇌와 미혹을 끊어버리고 미래의 生과 死의 원인을 없이 하였으나 아직도 과거의 업보로 받은 몸을 멸하지 못 하고 남기고 있는 경우의 유여열반(有餘涅槃; Sopadhi e a-nirv a)과, ☞반열반(般涅槃)
2) 미혹과 번뇌가 전혀 없는 상태로 죽어서 몸체까지도 모두 영원한 진리에로 들어가는 경우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이다. 그러나 이는 부파불교(部派佛敎)의 견해로서 이에 대하여 대승불교에서는, 열반을 진여실상(眞如實相)과 같은 뜻으로 해석하여 본체 또는 실재라고 보고 있다.
그리하여 자성청정열반(自性淸淨涅槃)과 무소주열반(無所住涅槃)을 설명하고 있는데, 전자는 진여의 이(理)를 말하는 것이고, 후자의 것은 비(悲)로 인해 생사에 住하지 않고 또 지(智)로 인해 생사에 住하지 않는다는 보살의 불교를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이 '금강반야경'의 제32장 및 제27단의(斷疑)는 이 기간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⑪ 아상(我相) :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의 네개를 아인사상(我人四相) 또는 사상(四相)이라 하는데, 이것은 중생들이 범하기 쉬운 집착상을 경계하는 말이다. 아상은 '나'라는 相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오온(五蘊)이 가합하여 이루어진 가변의 존재인 자기 자신을 마치 무슨 실재가 있고 또 "내가 있다"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견해이다.

⑫ 인상(人相) :
아상처럼 집착하는 모습의 하나인데, '남'을 의식하는 데에서 오는 행동과 생각을 말한다. 우리는 사람이므로 지옥취(地獄趣)나 축생취(畜生趣)와는 다르다고 집착하여 소나 개같은 짐승이나, 성인과 범부 등의 상대방과 비교하여 차별의식, 경멸감 · 열등감 등을 느낌으로써 일어나는 대립적 행동이나 생각의 현상을 말한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고 육식(肉食)을 하는 것은, 짐승인 다른 중생을 나보다 열등하다고 보는데서 오는 人相이라고 할 수 있다.
 
⑬ 중생상(衆生相) :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등 현실주의적인 행동이나 상념의 집착을 규정하는 말인데, 중생들이 그릇된 의미에서 "나의 몸은 오온(五蘊)이 가합되어서 생겨난 것"이라는 아집에 집착하여 그릇된 생각에 빠지는 오류를 말한다.
⑭ 수자상(壽者相) :
인간은 선천적으로 길든 짧든간에 일정한 수명을 하늘에서 받아 그 수명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의 집착을 말한다.
자은(慈恩)대사의 찬술(贊述)에서는, "세친의 <아(我)라는 것은 일괄하여 삼세오온(三世五蘊)의 차별을 관하는 집착이고, 과거의 我가 서로 계속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고 오는 것을 중생상이라 이름하며,
현재의 명근(命根)이 끊이지 않고 住한다고 보는 것을 명자상(命者相)이라 이름하며, 명근이 과거에 단멸하여 뒤에 육도(六道)에 태어난다고 보는 것을 수자상(壽者相)이라 한다>라는 말을 들어 명자상은 人相을 말한다고"도 해석하고 있다.<'대정신수대장경' 33, P.131 中> '주해'도 또한 이것에 근거하고 있다.['대정신수대장경' 33, p.229 中]
이 사상(四相)을 독일의 학자인 발레저(M.Walleser)는 각각 "Ergreifen eines Selbstes, Ergreifen eines Lebewesens, Ergreifen eines Lebenden, Ergreifen einer Person 또는 Begriff von Person"(즉 자기라는 존재에 사로잡히는 것, 생물적 존재에 사로잡히는 것, 살아있다는 것에 사로잡히는 것, 사람에 사로잡히는 것 또는 사람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이라고 번역하고 있다.(M.Walleeser, Die Vollkommenheit der Erkenntnispark, [인식의 완성]
⑮ 의식(意識) :
중생의 열 단계의 심리상태중에서,
「제 1 안식(眼識) : 눈으로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기초 의식」
「제 2 이식(耳識) : 귀로 소리를 듣고 판단하는 기초 의식」
「제 3 비식(鼻識) : 코로 냄새를 맡고 판단하는 기초 의식」
「제 4 설식(舌識) : 혀로 맛을 보고 판단하는 기초 의식」
「제 5 신식(身識)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판단하는 기초 의식」
「제 6 의식(意識) : 뜻으로 판단하는 기초 의식」을 말한다.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無意識)'을 벗어난
10번째 단계를 불심(佛心)=반야지(般若智) : 불성(佛性)·자성(自性)·법성(法性)·진성(眞性)·진여(眞如)·본성(本性)」이라 함.
육근:
안(눈,시각,색경,색깔) 이(귀,청각,성경,소리) 비(코,후각,향경,냄새)
설(혀,미각,미경,맛)   신(몸,촉각,촉경,촉감) 의(뜻,합,법)


4. 장
① 보시(布施) :
원어의 Da- na의 의역. 불교에서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 조건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법이나 재물을 남에게 베푸는 것을 말한다.
6바라밀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여섯가지로, 생사의 고해를 건너 열반의 피안에 이르는 대승불교도의 실천덕목이다.
보시는 그 베푸는 성질에 따라서
첫째, 돈이나 제물 등으로 하는 물질적인 보시인 재시(財施),
둘째, 설법으로서 선근을 자라게 하는 정신적인 보시인 법시(法施),
셋째, 戒를 지켜서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남에게 두려움이나, 근심 · 걱정을 없애주고 또한 위태로운 목숨을 구해주거나 병을 고쳐주고 곤경을 면하게 해 주는 보시인 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다.
베푸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정시(淨施)와 부정시(不淨施)가 있다.
정시(淨施)는 보시하면서 그 대가나 어떤 보람을 바라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하는 보시를 말한다.
부정시(不淨施)는 어떤 보람이나 보답을 바라고, 즉 보시함으로써 어떤 복을 받는다거나 혹은 남의 칭찬이나 감사를 기대하면서 하는 보시를 말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法에 머무는 바 없는 보시(無住於相布施)'란 '내가 무엇을 베풀었다'는 자만이 없이 오로지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내가 보시를 했다'라는 상념이 있는 보시라면 진정한 의미의 보시라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내가 베풀었다'하는 의식은 집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이 걸림이 없고 머무름이 없는 보시를 무주어상보시(無住於相布施)라고 한다.
② 머무는 바 없음(無所住) :
구마라집의 역본에는 '보살은 法에 있어서 住하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해야 한다. 이른바 색에 주하지 않고 보시하며 · · · '로 되어 있지만, 유지역본은 산스크리트 텍스트와 같이 '事에 住하지 말고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주하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색에 주하지 않고 보시해야 한다. · · · '로 되어 있다. 이에 반해서 티베트역은 구마라집역에서와 같이(byan chub sems dpas dnos po la mi gnas par sbyin pa sbyin pa sbyin no), 유지역의 '부주어사'(不住於事)는 경론(대정신수대장경 25, p.782 中)에서 게(偈)를 주석하기를 '자기 자신에 집착하지 않는다'로 하고, '무소주'(無所住)는 '보은(報恩)에 집착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보은(報恩)이란 공양, 공경 등을 말한다. 또 '색에 주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과보(果報)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③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 :
우리들의 '눈(眼)·귀(耳)·코(鼻)·혀(舌)·몸(體)·뜻(意)'을 6근(六根)이라 하는데, '색(모양) · 성(소리) · 향(냄새) · 미(맛) · 촉(느낌) · 법(계법')의 (육경에 의한)6요소는 육근을 통하여 몸속으로 들어가 우리들의 본성인 청정하고 깨끗한 마음을 더럽히고 진성(眞性)을 덮어 흐리게 하는 6개의 요소라 하여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육진(六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색(色;R pa) : 일정한 모양과 색채가 있는 시각적, 직감적인 일체의 물질 을 말한다. '부주색'(不住色)이란 이런 색에 구애받지 않는, 즉 머무름이 없는 것이란 뜻이다.
2. 성(聲) : 귀로 듣는 청각적인 대상, 즉 소리를 말한다.
3. 향(香;Ganda) : 건타(乾陀)라고 음역하기도 하는데, 코로 맡아서 후각적으 로 느껴 분별하는 냄새를 말한다. 냄새는 호향(好香), 등향(等香), 오향 (惡香), 부등향(不等香) 등 4종으로 나눈다.
4. 미(味) : 혀로 느끼는 미각적인 미욕(味慾)을 말한다. 즉 맛있는 음식을 많 이 먹고 싶어하는 욕심이다. 또 맛이라는 것은 심식(心識)을 물들게 하여 번뇌를 일으키기도 한다.
5. 촉(觸;Spra tavya) : 촉각의 대상, 감촉되는 것을 말한다. 즉 닿아서 느껴 아는 것이다. 굳은 것(堅), 축축한 것(濕), 더운 것(煖), 흔들거리는 것 (動), 매끄러운 것(滑), 껄끄러운 것(澁), 무거운 것(重), 가벼운 것(輕), 차가운 것(冷), 배고픈 것(肌), 목마른 것(渴)의 11종으로 나눈다.
6. 법(法;Darhma) : 달마(達磨)라 음역하기도 한다. 궤범(軌範)을 주로 하여 규칙을 법이라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법 · 정법 · 교법'이라 하고,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을 계법(戒法)이라 하고, 그 규정에 따라서 수행하는 의식을 수법(修法)이라 한다.
쉽게 말해 규칙을 법이라 하는데, 여기에서는 곱다, 밉다, 옳다, 그르다 하는 따위의 마음의 대상이 되는 정신작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④ 상에 머무르지 않아야(不住於相) :
상(相)이란 nimitta로서 마음의 상상이 외계에 나타난 사물의 모양, 꼴, 형태 등을 말한다. 유지역본은 산스크리트본과 같아서 '보살 응여시보시 부주어상상'(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想)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구마라집역본에는 相 하나만 있다. 사물의 표상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론(대정신수대장경 25, p.782 中)에서도 '게(偈)를 주석하기를 시물(施物), 수자(受者)를 보지 않는다'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머무르지 않아야'란 말은 보시를 할 때에는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보시함에 있어서 거기에 대한 어떤 보람이나 또는 어떤 희망이나, 내가 베풀었다는 자부심을 마음속에 남기지 않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삼륜청정(三輪淸淨) 또는 삼륜공적(三輪空寂)이라하여, 대단히 중요시 하는 법도이다.
삼륜(三輪)이란, 베푸는 사람 즉 시자(施者), 받는 사람 즉 수자(受者), 베푸는 물건 즉 시물(施物)의 세 가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청정(淸淨)은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공적(空寂)은 마음속에 아무것도 얽매임이 없는 공허의 상태를 말한다.
⑤ 복덕(福德) :
복은 복리, 善을 수행하는 이를 도와 복되게 하는 것이고, 德은 얻었다는 뜻이다. 즉 복을 얻었다는 뜻으로 복덕이라 한다.
⑥ 사유(四維) : 간방
유(維)는 방우(方隅), 즉 모퉁이를 말한다. 네 구석의 방향.
동북(東北)의 간(艮), 동남(東南)의 손(巽), 서북(西北)의 건(乾), 서남(西南)의 곤(坤)의 4개의 간방(間方)을 말한다.
동 · 서 · 남 · 북의 사방(四方)과 상(上) · 하(下)를 합해 육합(六合)이라 하고, 여기에 사유인 네 모퉁이를 넣어 10개 방향을 시방(十方)이라 한다.
시방세계(十方世界)라 하면 '온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시방정토(十方淨土)라 하면 '무량무변한 여러 부처의 정토'를 말하는 것이다.

5.장
 ① 신상(身相) :
산스크리트어는 Lakasnasampad로서 신체적 특징을 말한다. 상구족(相具足) 또는 상성취(相成就)로 번역된다. 구마라집역본은 신상으로 번역하고 있다.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을 의미하는 相은 32상(相)으로 말해지고 있다. 그래서 유지 · 급다 · 현장 · 의정 등은 모두 상구족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독일어로는 징표라는 의미의 Merkmal로 번역하고 있다.

② 견제상비상(見諸相非相) :
이것을 구마라집역본에서는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로 안다'고 읽고 있지만, 진제역은 유상무상(有相無相), 현장역본은 이상비상(以相非相)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相의 구족은 속제(俗諦), 비상구족(非相具足)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③ 사구게(四句偈) :
게는 범어 가타(伽陀;gatha)의 음역으로 사구게는 게송(偈頌)의 형식인데, 여기서
송(頌)이란 게의 뜻번역, 운문체의 문장이란 뜻으로 이를 '화범쌍창'(華梵雙唱)이라 한다.
화범쌍창이라 함은 동일한 내용을 중국어와 범어로 동시에 제창한다는 뜻으로서, 게(偈)는 범어이고 송(頌)은 중국말이기 때문이다. 보통 게송은 경전구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주로 운문체의 형식에 의해 경전의 교리나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데 사용된다.
☞송(頌)에는 본문에 있던 것을 정리해서 운문으로 바꾸어 놓는 응송(應頌)의 경우와 본문과는 관계 없는 사실이 게송으로 나타나는 고기송(孤起頌)의 두 가지 경우가 있다.
경 하나에 여러 게송이 나오는 것이 상례로서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속하는 것을 사구게(四句偈)라 한다. 따라서 지금 여기 나오는 게송을 사구게라 함은 옛부터 많이 읽혀지는 중요한 대목이라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의 사구계 내용을 보면,
첫째와 둘째 귀절은 현실의 허망함을, 셋째와 네째 귀절은 허망한 내면에 허망치 않은 존재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 사구게는 이 경의 골수일 뿐만 아니라 불교의 교리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모든 사물을 관찰할 때에 공(空) · 가(假) · 중(中), 삼제(三諦)의 원칙에 의한다.
공(空)은 모든 현실을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모든 물건들을 부수거나 태워 버린 뒤의 허공의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 즉 모두가 잠시 일시적으로 인연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요 절대적인 실체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가(假)는 有라고도 하므로 空의 반대 현상이다. 모든 사물이 空한 자리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의 현상을 그대로, 임시·거짓으로 모인 인연이 존속하는 한, 존속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空의 반대현상인 有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흔히 [있다]고 말하는 따위의 완유(頑有)는 아니다.
중(中)은 중도(中道)로서 空인 동시에 有요, 有인 동시에 공(空)임을 바로 알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진공묘유(眞空妙有)를 말한다. 이러한 이치를 하나의 거울로써 예를 보면,
거울속에 비친 그림자는 아무리 울긋불긋하여도 그 실체가 공하다. 그 공하다는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 거울에 일시적인 인연이 맞아서 한 사물이 비친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空인 것이다.
다음 거울속의 그림자가 공하여 실체가 없는 것임을 알았으니, 인연이 비쳐진 그 그림자는 분명 다양하고, 그 다양한 그림자는 보는 이의 감정을 돋우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며 자재자유(自在自由)한다. 그러므로 아주 없다는 생각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있는 그림자의 상태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假인 것이다.
끝으로 그렇다면 거울속의 그림자는 실재로는 없는 것이나 현실적으로는 없지 아니하니 없는 듯하되 있고 있는 듯도 하되 없다고는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이라 할 때에 공에 치우치지 않고 가유(假有)를 전제한 공이어야 하며, '있다'라고 할 때에 '있다'라는 사실에만 치우치지 말고 공을 전제한 가유(假有)이어야 한다.
이렇게(바르게) 보는 방법이 곧 중도(中道)이다.

이 사구게를 다시 삼제[三諦; 공(空) · 가(假) · 중(中)]에 의해 게(偈)를 나누어 보면 첫째와 둘째 귀절은 空이고, 세째 귀절은 假이며, 네째 귀절은 中道라 하겠다.
첫 귀절에 '온갖 겉모양(凡所有相)'이라 함은, 부처님의 32相을 비롯하여 모든 형상있는 것을 총망라한 것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
둘째 귀절에 '모두가 허망하다(皆是虛妄)'함은 그러한 겉모양은 모두가 허망하여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인연따라 임시 건립(모양을 이룬, 화합)된 것인데, 우리들의 허망한 분별심 때문에 실제로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무상(無常)
세째 귀절에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로 안다(若見諸相非相)'함은 위의 두 귀절의 말씀에 의하여 눈앞에 보이는 겉모양들이 보기에는 있는 듯하나 실제로는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는 것이니, 이런 경지를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한다.
 
6.장

① 실신(實信) :
범본에는 bhutasamjnan utptdayisyanti로 '진실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유지역본은 '생실상(生實相)'으로, 진제역 · 급다역본은 '생실상(生實想)'으로 하고 있다.

② 후오백세(後五百歲) :
원어는 pa cim y m p nca- aty m이다. 제2의 오백년을 지칭하는 것.
부처님(석존)은 자신이 열반한 뒤에 다가 올 일들을 500년씩 다섯번으로 잘라서, 그 각각의 500년을 1기로 하는 예언을 하셨다. 이것을
오종오백년(五種五百年), 오오백년(五五百年), 오오백세(五五百歲)라 한다.
첫 500년 동안은 해탈견고(解脫堅固)하다고 하셨다. 즉 지혜가 있어서 해탈의 果를 증득한 사람이 많이 나고 정법이 세상에 행해지며, 교(敎)의 수행과 증과(證果)의 셋이 존재하는 시기라 하여 정법시(正法時)라 하였다.
두번째 오백년 동안은 선정견고(禪定堅固). 곧 가르침이나 수행을 충실하게 닦는 사람이 많아 불법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敎)와 수행은 있으나, 증과(證果)가 없는 시기이고, 그 후로는 말법(末法)의 시기로서 교는 있으나 수행도 증과도 없는 멸법(滅法)의 시대가 온다고 하셨다.
이 설에 따르면 제2의 500년은 상법(相法)의 시대가 된다. 따라서 이 시대에 이르게 되면 불교가 어지러워지고 변동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세번째 500년 동안은 다문견고(多聞堅固)의 시대, 곧 불경을 많이 배워 독송 · 학습하는 사람이 많은 시기라는 것이다.
네번째 500년 동안은 절이나 탑을 세우는 사람이 많이 날 것이므로 탑사견고(塔寺堅固)의 시대라 하셨다.
다섯번째 500년은 점점 불법이 쇠미하여 불법에 대한 논쟁이 많아질 것이라 하여, 투쟁견고(鬪爭堅固)의 시대라 하였다. 이 500년 동안은 가르침은 있으나 수행도 증과도 없는 시기라 하여, 말법시(末法時)라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후오백세는 다섯번째 500년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③ 계를 지키고 복을 닦는(持戒修福) :
계(戒)란 범어 실라(Sila)의 의역인데, 불교도로서 해서는 안되는 금제(禁制), 즉 불교도의 도덕을 말하는 것이다. 계에는,
대승계(大乘戒)에는 삼귀계(三歸戒)가 있는데, 삼취정계(三聚淨戒), 십중금계(⇔십중대계; 十重禁戒), 48경계(四十八輕戒)를, ☞ 참고내용
소승계(小乘戒)에는 5계, 8계, 10계 등의 재가계(在家戒)와 비구의 250계, 비구니의 348계 등이 있다. - 지계는 계율을 잘 지켜서 성실하게 수양을 하는 것이고, 수복(修福)은 공덕을 쌓아 복과 덕을 닦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소승계(小乘戒)로 표현이 되는 내용을 살펴보면,
비구: 250 계_(남자스님이 지켜야하는 필수 계율)
비구니: 348 계_(여자스님이 지켜야하는 필수 계율)
사미: 10 계_(미숙한 남자스님이 지켜야하는 필수 계율) ☞ 십계 ↓
사미니: 10 계_(미숙한 여자스님이 지켜야하는 필수 계율)
우바새: 5 계_(남자신도가 지켜야 할 필수 계율) ☞ 오계/십계(五/十戒)
우바이: 5 계_(여자신도가 지켜야 할 필수 계율)
보살: 48 계_(누구나 받을 수 있는 선택 계율)
모든 불자: 10 선계_(계를 받지 않아도 지켜야하는 계율) ☞ 10선 참고내용
삶의 모습 속에서의 가르침(지켜야 할)내용, 즉 세간의 실천(가르침; 계율)법을 뜻하는 내용인 것이다.

④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수 있는 좋은 因(요인), 즉 그 원인의 뿌리라는 뜻으로
불교에서는 행업(行業)에 선근을 심으면 반드시 선과(善果)를 맺고, 악인(惡因)으로는 반드시 악과(惡果)를 얻는다는 인과응보의 윤리관을 내세운다.
선한 과보를 얻기 위해서는 선과의 근본이 되는 선근을 심어야 한다.
온갖 선을 내는 근원인 세 가지를 삼선근(三善根)이라 하여,
1)_탐하지 않고(無貪), 2)_시기하지 않고(無瞋), 3)_어리석지 않은(無癡) 세 가지를 들고 있다. 그래서 탐(貪)하고 시기하고(瞋) 어리석은(癡) 것을 인간의 삼독심(三毒心)이라 말하고 있다.

⑤ 여래는 다 알고 다 본다(如來 悉知悉見) :
'여래는 다 알고 다 본다'함은, 부처님의 말씀을 더욱 믿게 하려는 다짐의 말씀으로서, '선근을 심은 중생은 나중 오백세에도 이 經을 그대로 믿으리란' 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방편의 말씀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할까봐
'다 본다' 하심으로써 그저 막연한 짐작이 아니요, '다 안다'고 하심으로써 눈앞에 보이는 것 뿐만이 아님을 확실히 하신 것으로, 부처님은 거짓이 없다. 진실의 상징인 여래의 명예를 걸고 이 사실을 보증한다. 그러므로 의심하지 말고 그저 믿으라는 뜻이 담겨있다 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세상의 사물을 관찰하는데 4가지 기준을 갖고 있다. 이를 사량(四量)이라 하는데, 현량(現量) · 비량(比量) · 사량(似量) · 성언량(聖言量)이 그것이다.
 1. 현량(現量)은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소를 보고 소인줄 아는 것이다.
 2. 비량(比量)은 조그마한 단서에 의해 추측하여 아는 것으로 담넘어 뿔을 보고 그 밑에 소가 있을 줄 짐작하는 것이다.
 3. 사량(似量)은 잘못된 추측으로서 현량과 사량 양자의 경우에 다 걸린다.
즉 현량의 경우의 사량일 경우 소를 보고 말인 줄로 생각하는 것으로, 이를 사현량(似現量)이라 한다. 그리고 비량인 경우의 사량일 경우 담넘어 뿔을 보고도 죽순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이를 사비량(似比量)이라 한다.
 4. 그러나 이들은 모두 현상계를 관찰할 때의 일로서 부처님의 말씀이나 그밖의 다른 성인들의 말씀에 의해 그대로 믿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 성언량(聖言量)이라 한다.
예컨대 극락세계에 연꼿이 있다든가, 지옥세계가 어떠어떠하다든가 하는 것은 현량이나, 비량으로 알 바가 아니므로 성언량에 의해서 인식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의 경우도 성언량이다.
즉 오늘날의 세상을 말세라고들 많이 말하고 있지만, 그 중에는 이 경의 말씀을 진실이라고 믿는 자가 있을 것이고 그 사람은 과거에 많은 선근을 심은 사람임을 성언량에 의해 믿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⑥ 법상(法相) :
원어는 다르마-삼즈나(dharma-sa jn )이다. 모든 법의 모양을 말하고, 만유(萬有)의 그 모양 자태를 법상(法相)이라 하는데, 만유(萬有)는 그 본바탕은 한 가지이나 그 외부에 나타난 모양은 각각 다르다고 하는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법(dharma)은 이법(理法) · 경전(經典) · 설법(說法)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으나 특히 이법을 의미하는 때가 많다. 여기에서는 '실세가 없는 물건'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일체법(一切法)

⑦ 뗏목의 비유(筏喩) :
생사의 고락, 윤회의 괴로운 '이 언덕(此岸)'에서 티없이 깨끗한(淸淨無垢) '저 언덕(彼岸)'으로 가기 위해 괴로움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데에는 많은 수행이 필요하다. 즉 [베풀고(布施), 계를 지키고(持戒), 참고(忍辱), 노력하고(精進), 마음을 가라앉히고(禪定), 지혜를 개발하는(智慧)] 등 많은 수행을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고해라는 바다를 건너 저 언덕에 이르는 데 필요한 뗏목(筏)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뗏목은 저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저 언덕에 건너간 후에는 이 뗏목은 필요가 없게 된다.
또한 뗏목이 물에 흐르다가 한 모퉁이라도 걸리게 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는 것과 같이, 중도에서 수행을 게을리하면 정진(精進)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이 뗏목의 비유는 불경 도처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타고 간 뗏목은 일단 버리고 나면, 잊어버리는 것과 같이, 만유(萬有)에 대한 집착을 갖지 말아라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집착을 버려라'고 하는 가르침도 결국은, 또 다른 집착일 뿐이라는 것을 설하기 위하여 뗏목의 비유법을 설하신 것이다.
<중아함경 제54권 아리홀경>에서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장야(長夜)에 벌유(筏喩)의 법을 설하여 기사(棄捨)하게 하고자 하며, 받아들이지 않게 하고자 한다. ···세존은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내가 장야에 벌유의 법을 설하여 기사시키고자 하고, 받아들이지 않게 하고자 한다.
만일 그대들 중 나의 장야에 벌유의 법을 설함을 듣는 자는, 마땅히 이로써 이 법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하물며 비법(非法)에 있어서랴.'
<대정신수대장경 p.1764 中 下, MN. vol.1>라고 설하고 있다. 또 <중아함경 제38권, 대정신수대장경 2, p.759 上 참조>라고 하고 있다.

7.장
① 현인(賢人) · 성인(聖人) :
현자(賢者)와 성자(聖者)를 말한다. 현화(賢和)와 성정(聖正)이라고도 한다.
현자(賢者): 불법을 닦아 범부에서 차차 선(善)으로 악에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아직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여 범부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를 현자(賢者)라 하고,
성자(聖者): 이미 진리를 깨닫고 미혹을 끊어 범부의 성품을 버린 것을 성자(聖者)라 한다. 현자에게는 그 구별에 따라 삼현(三現)이 있고, 성자에게는 십성(十聖)이 있다.
<참고내용> : 삼현 · 십성
신라시대의 이름난 승려 10사람을 일컫는 신라의 십성(新羅十聖) :
아도(阿道/我道) · 염촉(厭觸) · 혜숙(惠宿) · 안함(安含) · 의상(義湘) · 표훈(表訓) · 원효(元曉) · 혜공(惠空) · 자장(慈藏) · 사파(蛇巴)를 이름한다. 황룡사(皇龍寺) 금당(金堂)에 십성의 탑과 금당의 벽에 영정이 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삼현(三玄)은 중국의 고전 '주역(周易) · 노자(老子) · 장자(莊子)'를 이름하는 말.

② 무위의 법(無爲法) :
원어는 아삼크리타 다르마(Asa sk ta-dharma). 만들어진 것으로 있지 않은 존재. 곧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존재라는 뜻이다.
지금 눈앞에 현상으로 나타나 있는 존재인 유위의 법(有爲法;Sa sk ta-dharma이 아니라, 현상의 배후에 있는 '절대적인 것 · 무한한 것 ·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무규정적인 것'을 말한다. 즉 인연으로 인해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지 않는 법을 말하는 것이다.
'있다 · 없어졌다 하는 법'이 상대세계의 법이라면, 이 상대성의 원리를 초월한 절대경지의 법이 무위의 법인 것이다. 무위라 함은 모든 법의 진실체(眞實體)를 말하는 것이고, 위(爲)는 위작(僞作), 조작(造作)의 뜻으로서 인연의 조작의 뜻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간에 생주이멸(生住離滅),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사상(四相)의 변천을 거치는데, 이런 것이 없고, 하는 것이 없고, 조작 할 것도 없는 경지이므로 무위법(無爲法)이라 하는 것이다.

원문의 asmakrta-prabhvita hyarya-pudgalah를 '구마라집'은 '일체의 현성(賢聖)은 모두 무위법으로서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고, 진제는 '왜냐하면 일체의 성인은 모두 무위법에서 현현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급다는 '그것은 무엇에 의해서인가, 무위법에 의해 성인은 현명(顯明)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며, 이후 현장이나 의정도 prabhavita를 현현(顯現)으로 번역하고 있다.
콘제는 그의 저서 '금강반야경'의 주해에서 '절대적인 것이 성자들을 드높인다(an absolute exalts the holy persons)'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성자들이란,
"一相無相分에서 열거되는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의 도"를 획득한 네 종류의 현성들을 말하는데, 그들은 절대적인 것에서 나와 위대한 힘으로 되고, 그로 인해 우세하며, 그 관계의 결과로서 탁월하며, 무제약적인 것에 의해 인정되고 특징지워지고 확립된다는 용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콘제는 우레자의 '왜냐하면 귀인(貴人)은 무위에 의해 특징지워지기 때문이다'라는 번역을 들어 자신의 번역에 가장 가깝다고 하고 있다. 한편 티벳역에서는 '모든 성인은 무위법에 의해 開始되고 있기 때문이다'라 하고 있다.

③ 차별이 있다(有差別) :
만상의 근본원리나 진리의 본체는 평등하다고 한 데에 대해 만유(萬有)의 차별현상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부처님의 법과 성문(聲聞) · 연각(緣覺)의 법이 각각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성문(聲聞)은 부처님의 음성을 직접 듣거나 교법을 공부하는 사람이고,
연각(緣覺)은 스승없이 주위의 사물을 보고 인연현상을 파악하여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 자로서 전생에 많은 공부가 있었던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성문이나 연각이 되면 다 같이 무위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지만, 대각(大覺)을 성취해 가는 과정에서는 그 깨달음에 깊고 얕은 차이, 크고 작은 차이가 있으므로 다 같은 성현이라도 부처가 되기 전에는 무수한 차별이 있다는 말이다.

여래의 설법은 모두 다 파악할 수도, 설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고(非法) 또한 법 아님도 아니어서(非非法) 반드시 정한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소승을 대하면 소승법을 설하고, 대승을 대하면 대승법을 설하며, 축생을 대하면 축생도를, 아귀에게는 아귀도를 때와 장소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무량무수한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각각 차별을 두어 설 하신다는 뜻이다.☞불가설(不可說)

④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뇩多羅三먁三菩提) :
위 없이 높고 평등한 바른 깨달음으로, 직역하면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이란 뜻이고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또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한역한다.
범부는 불각(不覺)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무상정등정각은 미계(迷界)를 여의고 각지(覺智)가 원만하여 일체의 진상을 모두 아는 부처님의 전지전능한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뇩다라는 '위가 없다', 즉 무상(無上)이고, 삼먁은 '바르고 평등하다'는 뜻으로 정등(正等)이고,
삼보리는 세 가지의 道, 즉 성문보리(聲聞菩提) · 연각보리(緣覺菩提) · 제불보리(諸佛菩提)를 말하는데, 모든 진리를 똑바로 밝게 깨달은 부처의 마음(正覺)을 뜻한다.
따라서 부처님의 무상승지(無上勝地)를 말하는 것이다.
한편 조선 초기에 간행된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서 육조 혜능은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아(阿)는 무(無)를 말하고, 뇩다라(뇩多羅)는 상(上)을, 삼(三)은 정(正)을, 막(막)은 변(偏)을, 보리(菩提)는 지(智)를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⑤ 성문(聲聞) · 연각(緣覺) · 벽지불 :
범어(梵語) Pratyeka-buddha 獨覺(독각)이라 번역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道(도)를 깨치고, 고요와 고독을 즐기므로 설법교화를 하지 않는 성자이다. 성문과 더불어 이승(二乘)의 하나, 또는 보살까지 합하여 삼승의 하나가 된다.
독각(獨覺)에는 -
① 部行獨覺(부행독각)과, ② 麟喩獨覺(인유독각)-의 이종이 있는데,
부행독각(部行獨覺) 은 앞서 성문 이었을 때 不還果(불한과 : 아나함果)까지 얻고 제四 아라한과를 증할 때에 부처님의 교도를 받지 아니하고 홀로 스스로 깨친 것을 말하며,
인유독각(麟喩獨覺)은 홀로 살면서 100대겁(大劫) 동안 수행하여 선근공덕을 닦아 마침내 홀로 깨친 것을 말한다.
여기서 부행(部行)이라 함은 성문이었을 때 여럿이 모여 단체수행을 한 것을 말하고, 인유(麟喩)라 함은 처음부터 짝이없는 독주자(獨住者)임을 말하는 것이다. _[벽지불은 오직 自利(자리)의 행만이 있고 利他(이타)의 생각이 없으므로 대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 없으며, 따라서 불과(佛果)를 이루지 못하는데 이것을 벽지불의 捨悲障(사비장)이라 하는 것이다]
 
8.장
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원어는 Tris hasramahas hasrolokadh tu. 끝없이 넓은 우주라는 뜻으로 일대삼천세계(一大三千世界)라고도 한다.
구사론(俱舍論)에 말하기를 [四大洲와 日月과 蘇迷盧와 欲天과 梵世와를 各 一千이, 名이 一小世界요, 此小千의 千倍를 說明 中千界요, 此의 千倍가 大千이니, 皆 同一成壞니라.] '사대주와 해 · 달과, 수미산과 육욕천(六欲天)과, 초선천(初禪天)을 모두 천곱하면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곱하면 중천세계라 부르고, 중천의 천곱을 대천세계라 부르니 모두가 똑같이 생겼다 사라진다'라 하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구조설'로, 넓고 넓은 공간에는 향수해(香水海)라는 바다가 있고, 그 바다에는 여러개의 사대주(四大洲)가 그룹을 지어 존재하는데, 사대주라 함은 '남섬부주(南膽部洲) · 서구다니주(西瞿陀尼洲) · 북구로주(北拘盧洲) · 동불파제(東弗婆提)'로서 한 대륙을 동 · 서 · 남 · 북으로 나누어 말한 것이다.
이 4대주를 중심으로 하여 여덟 겹의 바다가 있으니, 이를 팔향수해(八香水海)라 하고, 그 향수해 사이마다 일곱 겹의 산이 둘려 있으니, 이를 칠금산(七金山)이라 하는데, 바깥쪽으로 마지막의 것을 철위산(鐵圍山)이라 하여 해와 달보다 높이 솟아 마치 어떤 집의 높은 담과도 같다 한다.
또한 옆의 4대주도 그 구조가 같으므로, 결국 철위산과 철위산이 인접해 있게 되고 철위산 사이에는 해와 달이 비치지 못하여 지옥을 이룬다고 한다.
'4대주'의 한복판에는 수미산(蘇迷盧)이라는 높은 산이 있는데, 그 높이는 8만 4천 유순(由旬)이라고 한다. 한 유순은 평균 60리에 해당한다 하며, 해와 달은 그 수미산의 중턱 높이를 지나간다고 한다.
한 4대주, 즉 한 철위산이 둘러싼 공간위를 육욕천(六欲天)이 덮고 있으며, 육욕천은 욕망을 갖고 있는 중생이 사는 욕계(欲界)에 해당하는 여섯 층의 하늘을 말하는데, 곧 사왕천(四王天) · 도리천(도利天) · 도솔천(도率天) · 야마천(夜摩天) ·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등이다.
이 육욕천위에는 다시 범세천(梵世天)이라 하여 색계(色界)의 네 하늘이 있는데, 색계라 함은 욕심이 없어진 이가 태어나는 하늘이다. 이 하늘 사람들은 얼굴이 수려하고 미색이 훌륭다 하여 색계라 하는 것인데,
여기서 네 하늘이라 함은 초선천(初禪天) · 이선천(二禪天) · 삼선천(三禪天) · 사선천(四禪天) 등이다. 이 가운데 초선천의 넓이는 한 철위산의 범위와 대등하다 하니, 이것이 한 4대주의 우주권이다.
이러한 4대주권이 千이 모이면 소천세계요, 이 소천세계가 千이 모이면 중천세계요, 이 중천세계가 千이 모이면 대천세계가 되니, 여기서 말한 삼천대천세계는 곧 대천세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② 칠보(七寶) :
금 · 은 · 유리 · 파리(坡梨) · 차거(車渠) · 적주(赤珠) · 마노(瑪瑙)를 말한다.
<장아함경 제18권 팔염부제주품(八閻浮提洲品), 대타탄경(大楕炭經) 등 참조> 칠보 하나 하나에 대해서는 모든 경전이 반드시 똑같지는 않다.⇒ '무량수경 상권'에는 파리와 적주 대신에 산호와 호박이 첨가되어 있고, '법화경 제4권 수기품(授記品)'에는 적주 대신에 매괴가, '대아미타경'과 평등각경(平等覺經) 제1권에는 적주와 마노 대신에 산호와 호박이 들어있는 등 일정치가 않다.
전륜성왕(轉輪聖王)이 가지고 있다고 전하는 칠보로는 '윤보(輪寶) · 상보(象寶) · 마보(馬寶) · 여의주보(如意珠寶) · 여보(女寶) · 장보(將寶) · 주장신보(主藏臣寶)'를 말한다.

③ 사구게(四句偈) : ☞게·송
사구(四句)로 된 게문(偈文)을 말하는 것으로 게(偈)라는 것은 원어 gatha의 음역이다. gatha는 가타(伽陀), 게송(偈頌), 풍송(諷頌)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gatha는 본래 부처님의 공덕이나 교리를 찬미하는 노래나 글귀로서 이 글귀가 '네 구'로 되어 있을 경우 사구게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사구문(四句門), 사구분별(四句分別)이라고도 한다.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사구게는 정확히 어느 사구게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금강경에는 다음 네 가지의 사구게(四句偈)가 있기 때문이다. 즉
 1.「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범소유상 개시허망 (凡所有相 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2. 「제10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3.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4. 「제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일체유의법 여몽환포영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금강선론(金剛仙論) 제4권 대정신수대장경 제25, p.821]에는 '여기에서 사구게라는 것은 偈와 장행(長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법신의 理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사구의 게라 한다. 인연사(因緣事) 등을 설하는 경문으로서 사구의 게라 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금강경찬요간정기(金剛經纂要刊定記) 제4권 대정신수대장경 제33, p.205]에서는
'句로써 일의(一義)를 밝히고, 일의로써 일구로 삼으면 사의(四義)로써 마땅히 일게(一偈)를 이룬다. 어떤 이는 일이(一異) · 유공(有空) · 상무아(常無我) · 무인(無人) · 무중생 무수자(無衆生 無壽者)로써 사구를 이룬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등으로써 사구를 이룬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으로써, 어떤 이는 단지 경전 한가운데에서 취하여 그 경문으로써, 또 어떤 이는 단지 처음의 여시(如是)로부터 끝의 봉행(奉行)에 이르기까지가 마땅히 사구를 이룬다고 말한다'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한다면 유무(有無) 등으로 간추려서 사구를 이룬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첫째는 유(有)의 구(句), 둘째는 무(無)의 구(句), 세째는 역유역무(亦有亦無)의 구(句), 네째는 비유비무(非有非無)의 구(句) 등이다. 이러한 것은 문의(文義)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최묘(最妙)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의(四義)래야 실상(實相)에 잘 통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참고로 덧붙인다면, 게에는 풍송(諷頌) 또는 중송(重頌)이라는 것과, 고기송(孤起頌)이라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풍송은 산문체로 된 경전의 일절이거나 총결(總結)한 끝에 아름다운 글귀로써 그 뜻을 읊어놓은 운문(韻文)이고,
고기송은 부중송게(不重頌偈)라고 하여 본문의 내용을 거듭 말한 중송에 대해 본문과 관계없이 노래한 운문이다.

④ 받아 지녀서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受持爲他人說) :
'받아지녀서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이라 함은 오품제자(五品弟子)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오품제자라 함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부처님의 법을 듣고 기꺼이 믿음을 내는 수희품(隋喜品), 부처님의 법을 즐기어 독송하는 독송품(讀誦品), 그 법을 남에게 이야기 해주는 설법품(說法品), 마음으로 진실한 법을 관찰하면서 육바라밀의 법을 두루 실천하는 겸행육도품(兼行六度品), 그리고 나와 남이 모두 진실의 경지에 이르도록 육바라밀의 행을 구체적으로 닦는 정행육도품(正行六度品) 등 다섯 종류의 불제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받아지닌다'라 함은 수희품의 제자를 말하고, '남에게 말해 준다'라 함은 설법품의 제자를 말한다.

⑤ 일체의 모든 부처(一切諸佛) :
불(佛)은 원어 Buddha의 음역. 각자(覺者) 또는 불타(佛陀)라고도 하고 단지 佛 즉, 부처님이라고도 한다.
스스로 미망(迷妄)을 버려 모든 법의 진리를 깨닫고, 또 중생을 가르쳐 깨닫게 하는 자각(自覺) · 타각(他覺)의 이행(二行)을 원만하게 성취한 이가 불(佛)이다.
원래는 석가모니불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후일 불교의 교리가 발달함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의 존재를 가르키는 말이 되었고, 드디어 시방(十方)의 여러 부처님으로 발전하여 그 수가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가르키는 말로 되었다.
처음엔 역사적인 한 인물을 지칭하던 말이 점점 이상화되어, 유형 · 무형, 온갖 방면으로 원만한 인격적 존재를 가르키는 말로 된 것이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일체'에는 모든 사물 전체를 두루 말하는 의미와 제한된 어느 범위의 전부를 말하는 의미 두가지가 있는데, 여기서 '일체제불'이라고 했을 때의 '일체'란 사물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9.장

① 수다원(須陀洹) :
수로타파나(Srotapana)의 음역. 수다원이란 열여섯 가지 마음을 가지고 88종의 견도혹(見道惑)이라는 번뇌를 끊고 처음으로 성인의 지위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문으로 입류(入流)라고도 한다.
16가지의 마음이라는 것은,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의 고(苦) · 집(集) · 멸(滅) · 도(道) 등 사제를 닦아나가기 위한 마음의 자세인데, 욕계에서 한 사제를 닦고, 색계와 무색계를 합하여 한 사제를 닦아 여덟이 되고, 사제의 각각의 제(諦)에 는 인(忍)과 지(智)가 부가되어 있으므로, 모두 16가지가 되는 것이다.
인(忍)이란 확인하고 추진한다는 뜻이며, 지(智)란 완전히 성취한다는 뜻이다.☞인(忍)
욕계에서는 모든 제에다 법(法)자를 붙이고, 색계 · 무색계는 총괄하여서 상계(上界)라 하고, 이 상계에서는 류(類)자를 붙이는데, 여기서 류(類)는 "유례한다" 또는 "준한다"는 뜻으로서 요컨대 상계는 욕계에서 유례하여 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16心을 끊어야 할 88종의 견도혹(見道惑)이란,
도(道) 즉 진리를 보지 못하게 막는 번뇌를 말한다. 이것의 주요 성분은 [ 탐(貪;탐욕) · 진(瞋;성냄) · 치(痴;어리석음) · 만(慢;교만) · 의(疑;망서림) 등 다섯가지 ]의 무서운 번뇌(오둔사)와
[ 신견(身見;'나'가 있다는 생각) · 변견(邊見;한쪽에 치우친 생각) · 사견(邪見;인과를 무시하는 생각) · 견견(見見;위의 세가지 생각들을 옳은 것이라고 믿는 잘못된 생각) · 계금취견(戒禁取見;잘못된 수행방법을 옳은 방법으로 아는 생각) 등 다섯가지 ]의 가벼운 번뇌(오리사)이다.
오둔사(五鈍使 : 누구에게나 본능적으로 있는 번뇌)라 하고
오리사(五利使 : 수행하는 과정에서만 나타나는 번뇌)라고 한다.
이렇게 16가지 마음(心)에 따르는 88가지 번뇌가 삼계에 두루 퍼져 있어서 사성제를 닦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인데, 먼저 욕계의 경우를 살펴보면,
고제(苦諦)를 닦을 때 10가지 번뇌가 구족하고,
집제와 멸제를 닦을 때에는 신견, 변견, 계금취견 등을 제외한 7가지 번뇌가 각각 구족하고,
도제를 닦을 때에는 신견, 변견을 제외한 8가지 번뇌가 구족하므로,
결국 이 모두를 합쳐 32가지의 번뇌가 욕계의 견도혹을 이루게 된다. 집제를 닦을 때 신견 · 계금취견을 제외하는 이유는 다듬과 같다.
즉 집제는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하는 방법으로서 이미 고제를 닦았을 때 '이 몸은 괴로움투성이다'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았으므로, '이 몸이 있다'고 생각하는 신견과, '이 몸이 죽은 후에 과연 영혼은 있는가 없는가'라고 하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친 변견과, '갖은 방법으로 잘못된 수행을 해서 괴로움을 면하려고'하는 계금취견은 더 닦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제의 경우 다시 '계금취견'을 넣는 것은, 도제란 도를 실천하는 과정으로서 이 때 가끔 잘못된 수행방법을 옳은 방법이라고 잘못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색계와 무색계의 경우를 살펴보면, 욕계의 구성성분 중 진(瞋)은 기본적으로 제외하는데, 그것은 이 세계에서는 모두가 즐거워서 성낼 일이 없어 성냄이란 번뇌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제의 경우에는 9가지의 번뇌가, 집제와 멸제의 경우에는 각각 6가지의 번뇌가, 도제의 경우에는 7가지의 번뇌가 구족하여 총합 28가지의 번뇌가 있게 된다. 이것은 색계와 무색계 양자에 동일하므로 결국 상계의 번뇌, 즉 견도혹은 56가지가 된다.
그러므로 총괄적으로 보면 위에서 말한 욕계의 견도혹 32가지와 상계의 견도혹 56가지를 합한 88가지 번뇌(견도혹)가 16心에서 나오는 것인데, 수다원은 바로 이 88가지 번뇌를 끊었다는 것이다.

② 사다함(斯多含) :
사크리다가민(Sak d gamin)의 음역. 사크리다가민은 한문으로 일왕래(一往來)로 번역되는 것으로서 '한번 다녀간다'는 뜻이다. 사다함은 성문(聲聞)의 네 지위 중 둘째 과위인데, 이 지위에 오르면 이 인간세상에 한번만 더 왔다 감으로써 열반에 이르러 생사(生死)를 면하게 된다.
수다원은 16가지의 마음으로 삼계에 두루있는 88가지의 견도혹(見道惑)을 끊었지만,
사다함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삼계에 널리 퍼져있는 수도혹(修道惑)을 끊는다.
수도혹(修道惑)이란 도를 닦는 과정에서 감정이나 의식의 미세한 작동이 일어나 도를 닦지 못 하게 하는 번뇌이다. 앞서 말한 견도혹이 후천적인 악습(惡習)이라고 한다면, 수도혹은 선천적인 악습(惡習)이다.
수도혹은 욕계의 탐(貪) · 진(瞋) · 치(痴) · 만(慢)과 색계, 무색계 각각의 탐(貪) · 치(痴) · 만(慢), 즉 총 10가지로 주성분을 이루고 있는데, 너무나 세밀하여 그대로는 끊기가 어려우므로 욕계에 속해 있는 네가지 번뇌(四惑)를 일률적으로 아홉등분하여 차츰 차츰 끊으니,
이를 욕계의 구품수혹(九品修惑) 또는 사혹(思惑)이라 한다.
사다함은 이 구품 중 '육품'까지를 6生에 걸쳐 끊는다.
구품수혹이란,
상상품(上上品) · 상중품(上中品) · 상하품(上下品), 중상품(中上品) · 중중품(中中品) · 중하품(中下品), 하상품(下上品) · 하중품(下中品) · 하하품(下下品)을 말하는데,
먼저 상상품을 끊기 위해서는 二生, 즉 두차례 태어나야 하고, 다시 상중품, 상하품, 중상품을 끊기 위해서는 각각 一生씩이 요구되며, 중중품 · 중하품을 끊기 위해서는 이 둘을 합쳐서 一生이 요구되고, 나머지 하상품 · 하중품 · 하하품을 끊기 위해서도 역시 또 한 生이 요구된다.
사다함은 6生에 걸쳐 6품까지를 끊은 성문이므로 나머지 3품을 끊기 위해 한 生만 걸치면 된다.
따라서 이로 인해 사다함을 일왕래(一往來), 즉 '한번 다녀간다'고 하는 것이다.

③ 아나함(阿那含) :
아나가민(An g min)의 음역. 아나함은 성문의 세번째 지위로서 불래(不來)라 한역한다. 즉 인간세상에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욕계의 9품수혹 중 6품을 끊고 사다함이 된 성문이 나머지 3품을 끊기 위해 다시 태어나 一生동안 다 끊어 아나함이 되고서는, 색계의 제4선천(第四禪天)의 일부인 오나함천(五那含天=무번천, 무열천, 선현천, 견견천, 색구경천)에 가서 태어나게 된다.

④ 아라한(阿羅漢) :
아르한(Arhan)의 음역. 아라한은 성문의 마지막 지위로서 수행이 최고의 극치에 이른 성인이다. 아라한은 '무적(無賊) · 불생(不生) · 응공(應供)'이라 번역하는데,
무적이라 함은 번뇌의 도적이 깨끗이 없어졌다는 뜻이고,
불생이라 함은 다시는 인간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며,
응공이라 함은 인간세계와 하늘계에서 어떠한 공양이라도 받아도 타당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아라한이 끊어야 할 번뇌는 색계와 무색계의 수도혹으로서 탐(貪) · 치(痴) · 만(慢) 등 세 가지가 주구성성분이 된다.
이미 아나함의 과위를 얻은 이가 오나함천에 태어나 살피니, 아직 상계의 수도혹이 남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냥 끊기는 너무 미세하여 색계의 것을 넷으로, 무색계의 것도 넷으로 하여 총 여덟가지로 나누고, 이들 여덟가지 몫을 다시 각각 아홉등분으로 나누어 모두 72품으로 하는데,
이 중에서 71품까지를 끊으면 아라한향(雅羅漢向)이라 하고 72품을 다 끊어야 아라한이라 하는 것이다.

⑤ 무쟁삼매(無諍三昧) :
무쟁은 원어 아라나(Ara a)의 의역으로 "다툼이 없다"는 뜻이다. '다툼이 없다'는 것은 마음속에 갈등이 없다는, 즉 미혹이 없다는 것이다.
삼매(三昧)는 원어 사마디(Sam dhi)의 의역으로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또 마음을 바르게 하여 하나의 대상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일사불란한 정신통일의 경지를 말한다. 무쟁삼매는 몰입무아(沒入無我)상태로, 한마디로 마음속에 티끌만한 갈등이 없는 상태이다.

⑥ 아란나(阿蘭那) :
원어 아란야(Ara y )의 음역. 아란야(阿蘭若) 또는 아련야(阿練若) 등으로도 음역한다. 적정처(寂靜處), 무쟁처(無錚處), 원리처(遠離處)라고 의역한다.
즉 소음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서 수행하기에 적당한 숲, 들, 모래밭 등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마을에서 소의 울음소리가 겨우 들릴정도로 떨어진 곳으로 정한다. 인가와 너무 먼 곳은 탁발(托鉢)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일체의 욕망과 번뇌를 끊어버리고 무쟁삼매의 수행을 하는 것이 아란나행(阿蘭那行)인 것이다.
 
⑦ 아인사상 :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의 네개를 아인사상(我人四相) 또는 사상(四相)이라 하는데, 이것들은 중생들이 범하기 쉬운 집착상으로 이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이며, 또한 이러한 집착상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의 말이다.☞상속무상(相續無常)
아상(我相)은 '나'라는. 또는 '내것' 이라는, '나'로부터 출발하는 相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인상(人相)도 아상처럼 집착하는 모습의 하나인데, '남'을 의식하는 데에서 오는 행동과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나와 남' 이라는 것으로 출발하는 차별심 · 분별심 등을 말하게 된다.
중생상(衆生相)은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등 현실주의적인 행동이나 상념의 집착 相을 규정하는 말이다.
수자상(壽者相)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길든 짧든간에 일정한 수명을 (하늘 또는 선천적으로) 받아 그 수명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의 집착 相을 말한다.

⑧ 삼매(三昧) :
범어(梵語) samaani 音을 따 三摩地(삼마지), 三摩耶(삼마야) 또는 三昧(삼매)라고 한다.<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즉 [마음속의 산란함을 끊고 한곳에 마음을 모아 조금이라도 흔들림 없이 바른 마음, 망념이 없는 부동심의 경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삼매란 세 가지를 잊어 버릴  정도로 몰두한 상태, 즉
① '관세음보살'을 부르다 주변을 잊어 버린 상태. ②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자신을 잊어 버린 상태. ③ '관세음보살'을 계속 부르고 있으나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다는 그 자체도 잊고 한 점의 망념도 없이 정신은 오직 선명하면서도 성성히(분명하게) 깨어있는 상태로 적멸(고요)의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수행 행법 및 삼매

10.장
① 연등불(燃燈佛) :
원어는 디판카라 타트하가타(Aipankara-Tath gata). 과거세의 부처님으로 세존 이전에 나타났다고 전설적으로 전하는 24명의 부처님 가운데 한 분으로 정광불(淨光佛)이라고도 한다.
세존이 전생에 스미다라는 보살로서 보살도를 닦는 한 고행자였을 때, 개척중인 험한 길바닥에 누워 연등불로 하여금 자기 머리털을 밟고 지나가게 했다고 한다.
연등불은 세존에게 '너는 후에 석가족에 태어나 성자가 되리라'하는 수기(授記)를 주었다고 한다. '데비사바론' 제178권에 보면,
'묻기를, 이 四바라밀다를 닦을 때 각각 겁아승기야(劫阿僧企耶)에 있어서 몇 명의 부처님을 만났는가? 답하기를, 초겁아승기야(初劫阿僧企耶)에 있어서 칠만 오천명의 부처님을 만났는데, 맨처음을 석가모니라 부르고 맨 나중을 보수(寶鬚)라 부른다.
제2겁아승기야에서는 칠만 육천명의 부처님을 만나는데, 맨 처음을 보수라 부르고, 맨나중을 연등(燃燈)이라 한다.
제3겁아승기야에서는 칠만 칠천명의 부처님을 만나는데, 최초는 연등이고 최후는 승관(勝觀)이라 부른다.
상이숙업(相異熟業)을 닦는 91겁 중에서 여섯 명의 부처님을 만나는데, 최초는 승관이고 최후는 가섭파(迦葉波)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석가보살에 의해서 설해지는 것을.'라고 되어 있다.
만일 다른 보살이라면 부정(不定)이다. 이와 같이 석가보살은 가섭파보살시대에 있어서 四바라밀다를 먼저 나누어서 충족시키고, 이제 상이숙업을 잘 원만하게 하여, 이 첨부주(瞻部洲)에서 죽어, 도사다천(睹史多天)에 태어나, 천취(天趣)의 마지막 이숙(異熟)을 받는다_[중일아함경 제11,13,40권, 수행본기경, 대지도론 제4권 등 참조] ☞내용 처음부터

② 불토를 장엄한다(莊嚴佛土) :
장엄이란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가꾸고 꾸미며, 또 훌륭한 공덕을 쌓아서 몸을 장식하고 꽃과 향을 부처님께 올려서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불토는 부처님 계시는 맑고 깨끗한 국토를 말한다. 불토에는 세간불토(世間佛土) · 신불토(身佛土) · 심불토(心佛土)의 세 가지가 있다. 세간불토는 절을 짓고 경을 간행하고 보시를 하고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신불토는 모든 사람들을 두루 공경하는 것이고,
심불토는 마음이 청정한 것을 말한다.
세간불토와 신불토의 두 장엄은 유상(有相)한 것이므로 물질적인 것이지만, 심불토는 무상(無相)한 것이므로 정신적인 것이다. 여기서는 부처님이 물질적인 장엄을 물으신데 대해 수보리존자가 정신적인 것으로써 답한 것이다.

③ 수미산왕(須彌山王) :
원어 수메르 파르바타(Sumeru-parvata)의 음역. 수미루(修迷樓), 소미로(蘇迷盧)라 음역하기도 하고, 묘고(妙高), 묘광(妙光) 등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고대 인도의 신화적 우주관에서 전해 오는 아주 큰 산(수미산)이다.
이 세계의 제일의 큰산 밑에는 아래쪽에 풍륜(風輪), 그 위에 수륜(水輪), 그 위에 금륜(金輪)이 있고, 또 그 위에 아홉개의 산(九山)과 여덟개의 바다(八海)가 있다고 전한다. 그 중심이 수미산이라는 큰 산이며, 우주에서 제일 높고 크고 또 중심이 되는 산이다. 높이는 8만 4000유순(1유순은 약 60리)이고, 해와 달이 이 산의 중턱을 지난다고 한다.
산의 정상에는 제석천(帝釋天)이 살고 있으며, 중턱에는 사천왕(四天王)이 살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수미산왕이라고 한 것은 수미산이 모든 산 가운데 가장 높고 크기 때문이다.[장아함경 제18권 염부제주품(閻浮提洲品), 입세아비담론(立世阿毘曇論) 제2권 수량품(數量品) 등 참조]

 
11.장
① 항하(恒河) :
원어 강가(Gang)의 음역. 인도의 설산(雪山)인 히말라야산맥에 근원을 두고, 동남쪽으로 흘러 뱅골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갠지스강(Ganges)강을 말한다.
세존의 비유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강 이름의 하나로, 갠지스강은 길이는 2511km로 인도에서 인더스강 다음으로 길고 큰 강이다. 하류쪽은 강폭이 16km나 되어 바다와 같이 넓으며, 그 유역의 땅들은 매우 비옥하여 옛날부터 인도의 제국들이 도읍을 이 강가에 정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수천년을 두고 인도문명의 중심이 되었고,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와 철학이 이 곳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도 인도사람들은 이 강을 매우 신성시하고 있으며, 강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을 삼기도 했다.

② 사구게(四句偈) :
사구(四句)로 된 게문(偈文)을 말하는 것으로 게(偈)라는 것은 원어 gatha의 음역이다. gatha는 가타(伽陀), 게송(偈頌), 풍송(諷頌)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gatha는 본래 부처님의 공덕이나 교리를 찬미하는 노래나 글귀로서, 이 글귀가 네 구로 되어 있을 경우 사구게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사구문(四句門), 사구분별(四句分別)이라고도 한다.
넓게 생각하여>>>금강경 내의 '사구(四句)로 된 게문(偈文)'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내용 중에 네 구절'만이라도 받아지녀서 남을 위해 설해 준다고 하면은...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도) 한다.☞[좀더보기]

③ 받아지녀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受持爲他人說) :
'받아지녀서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이라 함은 오품제자(五品弟子)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오품제자라 함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부처님의 법을 듣고 기꺼이 믿음을 내는 수희품(隋喜品), 부처님의 법을 즐기어 독송하는 독송품(讀誦品), 그 법을 남에게 이야기 해주는 설법품(說法品), 마음으로 진실한 법을 관찰하면서 육바라밀의 법을 두루 실천하는 겸행육도품(兼行六度品), 그리고 나와 남이 모두 진실의 경지에 이르도록 육바라밀의 행을 구체적으로 닦는 정행육도품(正行六度品) 등 다섯 종류의 불제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받아지닌다'라 함은 수희품의 제자를 말하고, '남에게 말해 준다'라 함은 설법품의 제자를 말한다.

④ 복덕(福德) :
복은 복리, 善을 수행하는 이를 도와 복되게 하는 것이고, 德은 얻었다는 뜻이다.
즉 복을 얻었다는 뜻으로 복덕이라 한다. ☞공덕(功德)

12.장
① 천(天) :
자기가 지은 업인(業因)에 따라서 중생들이 윤회하는 길을 여섯으로 나누어 6도(六道)라 하는데,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阿修羅) · 인간 · 천(天)'의 여섯을 말한다.
天(천)은 데바(Deva)로서 천상이라고도 하며, 천에 태어나는 것은 인간세상보다 더 좋은 과보를 받는 것이지만 그 곳에도 차별이 있어 욕계천 · 색계천 · 무색계천이 있다고 한다.
여기(금강경)서 말하는 天은 그러한 6도의 천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주재하는 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어떤 특정한 신이라기 보다는 신적인 존재를 총칭하는 표현이다.

② 아수라(阿修羅) :
원어 아수라(Asura)의 음역.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의 하나. 인도 고전의 하나인 '리그베다(Rig-veda)'에서는 가장 수승(殊勝)한 성령(聖靈)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중기 이후에 와서는 무서운 귀신으로 변화·인식되었다.
성품이 사나와 성을 잘 내고 덕이 모자라서 싸우기를 좋아하는 악신(惡神)이라고 생각되어 늘 무서운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는 아수라는 '아소라(阿素羅)·아소락(阿素洛)·아수륜(阿須倫)'이라 음역하기도 하고 '비천(非天)·비류(非類)· 부단정(不端正)'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③ 탑묘(塔廟) :
탑(塔)은 범어 스트우파(Stupa)의 음역이지만, 廟(묘)는 한자어이다. 그러므로 범어와 한자어의 합성어라 하겠다.
☞원어는 차이트야 부후다(Caitya-bh ta)이다. 차이트야는 묘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에서 불타와 불제자들의 유골을 담은 거대한 무덤을 스트우파(Stupa), 즉 탑이라 부르며 유골을 묻지 않으며, 그 밖의 다른 성물인 발우·경전 등을 넣어 보관하는 건물을 차이트야(Caitya)라 불러 구별해 왔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 이 두가지를 혼용하게 되었다. 즉 탑묘란 말의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인 사리탑을 말하는 것이고, 묘는 불상이나 경전 따위를 모신 곳 곧 절을 말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사리(舍利)는 범어 사리라(Sarira)의 음역인데,
신골(身骨) · 유신(遺身) · 영골(靈骨) 등으로 의역한다. 사리는 전신사리(全身舍利) · 쇄신사리(碎身舍利) · 생신사리(生身舍利) · 법신사리(法身舍利) 등 네 가지로 구별된다.
전신사리는 다보불(多寶佛)과 같이 온 몸이 그대로 사리인 것이고,
쇄신사리는 석가불의 사리와 같이 몸에서 나온 낱알로 된 것이고,
생신사리는 여래가 멸도한 뒤에 전신사리나 쇄신사리를 남겨 사람과 하늘이 공양하게 하는 것이며,
법신사리는 대승 · 소승의 경전으로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오묘한 교법을 가리킨다.
원래는 신골이나 주검을 모두 사리라고 했는데, 후세에 와서 다비한 뒤에 나오는 작은 구슬 모양의 쇄신사리만을 말하게 되었다.

탑을 만드는 것은 퍽 오래된 일이지만, 석굴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가섭불(迦葉佛)의 사리를 모시기 위하여 흙을 쌓아 만든 것이 최초라고 하며, 2 3세기 경에 인도의 아소카왕이 8만 4000의 탑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탑은 반구형(半球形)으로 쌓아 그 꼭대기에 수직으로 구멍을 뚫어 지평에 이르게 하고 그 밑바닥에 사리나 또는 값진 보물들을 장치한 다음 주위에 예배할 수 있는 길을 만들고 바깥에는 돌로 난간을 둘렀다.
탑의 건축재료로는 돌 · 벽돌 · 금속 · 나무 등 여러가지를 썼고, 특히 중국에서는 벽돌로 만든 전탑(塼塔), 일본에서는 목조탑(木造塔), 우리 나라에서는 석탑(石塔)이 발달되었다.
부처님의 사리는 여덟 곳에 나누어져 탑속에 봉안되어졌다고 하며, 그 하나가 우리나라의 경남 양산 통도사에 봉안되어져 있다고 전한다. 탑은 유골을 묻지 않고도 오직 특별한 영지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또는 그 덕을 앙모하여 보은의 공양으로 세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탑은 불교국가에서는 대단히 신성시되어 탑에 대한 예배는 불상에 대한 예배와 동일시 되었다. 고대신라에서 탑돌이 같은 행사가 성행했던 것은 이것에 연유하는 것이다.
즉 (금강경)에서 말하는 '탑묘와도 같이'는 '최대의 존경과 예배를 받는 탑묘와 같이 존경을 받는'이라는 뜻이다.

④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 곧 부처가 있고 존중받을만한 제자가 있는 곳(若是經典所在之處 卽爲有佛若尊重弟子) : 이 구절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 긴요한 것만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당의 혜정(慧淨)이 지은 [금강경주소(金剛經註疏), 3卷]: 有經之處則有佛敎 佛敎不異經敎也 可重之者是弟子 弟子卽是菩薩也 有佛顯有能說 有菩薩顯有能受 兩聖居中 處可尊(尊重弟子如文殊普賢也)
2. 송의 장수(長水)가 지은 [간정기(刊定記), 제7권]: 意云 如此經文 隋在何處 卽爲有及諸弟子
3. 명의 광신(廣伸)이 지은 [금강경총(金剛經총), 2권]: 此經所在之處 卽佛與文殊等尊重弟子之所在 以一切聖賢皆證無爲 經顯無爲 豊非聖賢所在
4. 명의 원과(圓果)가 지은 [금강경음석직해(金剛經音釋直解), 1권]: 一切諸佛 皆依般若而證故云 此經在處 卽爲有佛也 是人若能恭敬此經 卽爲尊重弟子也
5. 청의 서발전차(徐發詮次)가 지은 [금강경정설(金剛經呈說), 1권]: 有佛所在 當以弟子事師之意尊重焉 若尊重弟子 言若弟子之尊重本師
6. 청의 설봉대사(雪峯大師)가 지은 [금강경주석(金剛經註釋), 1권]: 以四句偈等及全經隋地解說 卽使此經 留於其地 使同如來身歷之地 未 有佛 而佛寶卽在 且不特佛在 幷及所持戒修福 而爲人所尊重之弟子 亦無不在矣 若字作及字解 尊重弟子意作諸菩薩摩訶薩
7. 청의 박완이 지은 [금강경심인소(金剛經心印疏), 2권]: 此經所在 及法寶也 卽爲有佛正佛寶也 尊重弟子 爲僧寶也 斯則三寶備足一處全彰 則其處勝愈可知矣
8. 세종조의 언해본: '이 經(경) 典(텬) 잇고 부텨와 존(尊)重(짜) 弟떼 이슈미니라.'
9. 이운허(李耘虛)스님 역본(譯本): '이 경이 있는 데는, 곧 부처님이 계시고 거룩한 부처님제자가 계신 데가 되나니라.'
10. 신소천(申韶天)스님 역본: '만일 이 경전이 있는 바 곳이면, 즉 부처님 계심이 되어서 제자가 존중히 여김같으니라.'
11. 기산(奇山)스님이 엮은 [금강반야바라밀경]: '이 같은 경전이 있는 데는 곧 부처님과 제자가 존중히 여김같으니라.'

살펴본 바 대로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여기서 문제는 '존중'이라는 두 글자에 있다.
하나는 '제자가 부처님을 존중하는 것과 같다'는 설과, 또 하나는 '이 경이 있는 곳에는 문수 · 보현 같은 대보살로부터 존중을 받을 만한 승보도 있다'는 설 두가지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위역본(魏譯本)에는 '若是經典所在之處 則爲有佛若尊重似佛'이라, 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시 말하면 '이 경이 있는 곳에는 따라서 부처님이 계시게 되어 마치 제자들이 부처님을 존중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된다.

⑤ 문수·보현(文殊·普賢) :
모든 보살들은 다 각각 부처님 공덕 가운데 어느 한 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이 그 보살의 특징이 된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표방하므로 본래 성불한 천진면목(天眞面目), 곧 體性(체성)을 가리키고, 보현보살은 신훈(新薰)의 닦아가는 육도만행(六度萬行)을 표방하므로, 모든 법(法)이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작용을 가리킨다.

13.장
① 티끌(微塵) :
원어는 라야스(Rajas). 이것을 구마라집역본을 비롯한 여러 한역본에서는 미진(微塵)이라고 하고 있다. 즉 아주 작은 먼지인 티끌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미진을 미(微)라고도 하는데, 색법(色法)의 가장 작은 것은 극미(極微)이다.
극미는 오직 한 개 만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고, 반드시 일곱개의 극미가 한덩어리가 되어 미(微)로 되어야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는 곧 이 미진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극미와 미진은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소립자, 원자, 분자의 개념과 비슷한 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가 부서지면 필경 티끌로 화하게 될 것이고, 우리 눈에 보이는 천지만물은 모두가 미진(의 모임)에 불과한 것이라 할 것이다.

② 32상(三十二相) : 참고☞삼십이 응신(32應身)
원어는 Dv tri atmah puru -lak a ni. 보통 사람과 다른 부처님이 가지고 계신 32가지의 훌륭한 상을 말한다. 32대인상 또는 32대장부상이라고도 한다. 이 상을 갖춘 사람은 세간에서는 전륜성왕이 되고 출세간에서는 부처가 된다고 한다.
부처가 갖춘 32상이란,
1) 발바닥이 판판하고, 2) 손바닥에 수레바퀴같은 손금이 있고, 3) 손가락이 가늘면서 길고, 4) 손발이 매우 부드럽고, 5) 손가락·발가락 사이마다 엷은 비단결같은 막이 있고, 6) 발꿈치가 둥글고, 7) 발등이 둥글고 도톰하고, 8) 종아리가 사슴다리같이 미끈하고, 9) 팔의 길이가 길어서 펴면 손이 무릎까지 내려가고, 10) 생식기가 오무라들어 몸안에 숨어있는 것이 말의 그것과 같고,11) 키가 두 팔을 편 길이와 같고, 12) 털구멍마다 새까만 털이 나 있고, 13) 몸의 털이 위로 쏠려 있고, 14) 온몸이 황금색이고, 15) 몸에서 솟아나는 광명이 한 길이나 되고, 16) 살결이 보드랍고 매끄럽고, 17) 두 발바닥· 두 손바닥· 두어깨·정수리가 모두 둥글고 평평하고 두텁고, 18) 두 겨드랑이가 편편하고, 19) 몸매가 사자와 같이 균형이 잡혀 있고, 20) 몸이 곧고 단정하고,21) 두 어깨가 둥글고 두툼하고, 22) 치아가 40개이고, 23) 치아가 가지런하며 빽빽하고, 24) 송곳니가 희고 크고, 25) 양 뺨이 사자처럼 생겼고, 26) 목구멍에서 달콤한 진액이 나오고, 27) 혀가 길고 넓고, 28) 목소리가 맑고 멀리 들리고, 29) 눈동자가 바르고 검푸르고, 30) 속눈썹이 소의 속눈썹처럼 시원스럽고, 31) 두 눈썹 사이에 흰털이 나 있고, 32) 정수리에 살상투가 있다는 것이다.

전륜성왕과의 차이에 대해서는, '대비바사론 제177권'에서
'묻기를, 보살소득(所得)의 32상과 륜왕상(輪王相)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답하기를, 보살소득에 뛰어난 것이 있다.
첫째는 치성(熾盛)인 것, 둘째는 분명한 것, 셋째는 원만한 것, 넷째는 處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오사(五事)의 뛰어난 것이 있는데, 첫째는 처(處)를 얻는 것, 둘째는 지극히 단려(端麗)한 것, 셋째는 문상(文象)이 심오한 것, 넷째는 승지(勝智)에 수순(隨順)하는 것, 다섯째는 이염(離染)에 수순하는 것 등이다'라고 언급되어 있다.[대정신수대장경 25, p.91 上]
그리고 32상의 인연에 대해서는 '대지도론' 제11권에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보시는 32상의 인연이다. 왜냐하면 보시할 때 마음이 견고하기 때문에 족하안립(足下安立)의 상을 얻고, 또 보시할 때 오사(五事)로서 수자(受者)를 에워싼다. 이 권속의 업(業) 인연으로 족하륜상(足下輪相)을 얻는다.
대용맹력으로써 보시하기 때문에 족(足) · 광(廣) · 평(平)의 상을 얻는다.··· 이것을 32상의 인연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대지도론 제29권에서는 32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마하연 가운데서 32사의 업인연이란 것은 묻기를, 시방(十方)의 제불 및 삼세의 제법(諸法)은 모두 무상(無相)의 상이다. 무엇 때문에 32상을 설하는가 ? 일상(一相)조차도 實이 아니거늘, 하물며 서른 두가지를 말하는가 ? 답 하기를,

불법에 이제(二諦)가 있는데,
하나는 세제(世諦)이고 또 하나는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다. 세제 때문에 32상을 설하고, 또 하나는 '제일의제'이기 때문에 무상(無相)을 설한다.
두 종류의 도가 있는데, 하나는 중생으로 하여금 복을 닦게 하는 도(福道)이고, 또 하나는 지혜를 닦게 하는 혜도(慧道)이다. 복도 때문에 32상을 설하고, 혜도 때문에 무상을 설한다. 생신(生身) 때문에 32상을 설하고, 법신(法身) 때문에 무상을 설한다.
두 종류의 인연이 있는데, 하나는 복덕의 인연이고, 또 하나는 지혜의 인연이다.
복덕의 인연으로써 중생을 인도하고자 하기 때문에 32상의 신(身)을 사용하고, 지혜의 인연으로써 중생을 인도하고자 하기 때문에 법신을 사용한다.
두 종류의 중생이 있는데, 하나는 제법(諸法)이 가명(假名)임을 알고, 또 하나는 명자(名字)에 집착한다. 명자에 집착하는 중생 때문에 32상을 설하고, 가명임을 아는 중생 때문에 무상을 설한다.[대정신수대장경 25, p.274 上] ☞일승(一乘)

부처님의 32상(위↑)외에 80종호(種好) 또는 80수형호(隨形好)라고 하는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히 훌륭한 것 80가지가 부처님의 몸에 있다고 한다. 즉 손톱이 좁고 길고 엷고 구리빛 윤이 나는 것, 신통력으로 스스로 유지하고 남의 호위를 받지 않는 것 등등이다. 이것은 經, 論에 따라서 해석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80종호 내용보기
또 삼십이응신(32 應身)이라고 하는 것도 있다. 곧 관세음보살이 관자재 대자대비(觀自在 大慈大悲)하여 중생을 구하기 위해 32가지 몸으로 변하여 나타난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데, 중생을 제도하는 상대에 따라서 혹은 부처로,
혹은 천대장군(天大將軍)으로, 혹은 왕으로, 혹은 재상으로, 혹은 장자(長者)로, 혹은 비구로, 혹은 비구니로, 혹은 우바새 · 우바이로, 용으로, 야차로, 선녀로, 미녀로, 동자로, 사미승으로, 사자로, 심지어는 비인(非人)으로까지 32形으로 변신한다는 것이다.

14.장
① 오안(五眼)이란 :
육안(肉眼) · 천안(天眼) · 혜안(慧眼) · 법안(法眼) · 불안(佛眼)을 말함.☞좀더보기

①'① 혜안(慧眼) :
오안(五眼) 중 하나로 '우주 사물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말한다. 이들 중 혜안은 만유(萬有)의 현상은 모두 空한 것이며, 본래 생기지도 않고(不生) 없어지지도 않음(不滅)을 깨달아 모든 집착을 여의고 차별적인 현상세계를 보지 않는 지혜의 눈인데, 이것은 성문과 연각 등 이승(二乘)의 지혜만을 얻은 까닭에 중생을 제도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성문(聲聞)이란 부처님의 음성을 직접 듣거나 교법을 공부하는 사람이고,
연각(緣覺)이란 스승없이 주위의 사물을 보고 인연현상을 파악하여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 사람으로서 전생에 많은 공부가 있었던 사람을 말한다.
'육안'은 우리들의 감각적인 눈으로서 차별적인 현상계의 것만 보는 눈이고, '천안'은 아무리 먼 곳의 것이라도 막힘없이 보는 눈이며, '법안'은 세속제의 법만을 두루 보는 눈이며, '불안'은 모든 사물에 차별을 두지 않고 평등하게 보는 눈이다.

② 신심이 맑고 깨끗하다(信心淸淨) :
악행으로 인해 생긴 허물이나, 번뇌(煩惱)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깨끗함을 청정이라 한다. 믿음이 불순하면 진실한 믿음이라 할 수 없다. 진실한 믿음이란 맑고 깨끗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실상(實相)을 보게 된다. 거짓이 없고 참되기 때문에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청정에는 자성청정(自性淸淨)과 이구청정(離垢淸淨)의 두 가지가 있다.
[참고]☞ 이구(離垢)는 마니(摩尼寶珠)를 뜻하는 것으로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보주(寶珠), 모든 더러움 · 악(惡) · 재앙을 없애주는 힘을 지닌 것으로, 이구청정이라 함은 모든 '악 추악함과 더러움에서 벗어난 세계(상태)'를 의미한다.

③ 제일바라밀(第一波羅蜜) :
바라밀이라는 말은 원어 파라미타(P ramit )의 음역인데, 그 뜻을 도피안(到彼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도피안(到彼岸)이란 불교에서 이상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의 길을 통틀어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제일바라밀은 육바라밀(六波羅蜜) 중의 첫째인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일바라밀을 으뜸가는 바라밀 또는 최고 완성이라고 풀이하는 이도 있다.

④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
원어 크산티파라미타(Ksantiparamit )의 음역.찬데바라밀이라고도 하고, 그냥 줄여서 인바라밀이라 하기도 한다. 인욕은 크산티(K nti)의 의역. 육바라밀 중의 셋째 바라밀로서 온갖 모욕과 번뇌를 참고 견디고 원한을 일으키지 않는 수행을 하여 열반의 피안에 도달하는 도의 하나이다.☞인(忍)

⑤ 가리왕(歌利王) :
막스 뮐러본에는 Kalinga-raja, 티벳본에는 Ka-lin-gahi rgyal-po라고 되어 있지만, 코오탄본과 길기트본에도 Kali-raja라고 되어 있다. 카링가는 나라이름이라고 하지만 어느 사이에 카리와 혼동된 것인지 모른다. 나집역본과 유지역본은 가리(歌利), 현장본은 갈리, 급다본은 악왕(惡王)이라 번역하고 진제본은 가능가(迦陵伽)라고 하고 있다.

[대비바사론] 제182권에는,
일찌기 듣기를, 과거 현겁(賢劫) 중에 왕이 있었는데 갈리라고 이름한다. 어느 때에 인욕이라 불리는 선인이 삼림숲에서 고행을 성실히 닦고 있을 때, 갈리왕은 숲속에서 유희하고 제멋대로 즐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갈리왕은 피곤하여 잠이 들고, 궁안의 모든 여자들은 화과(花果)에 빠져 수풀속에서 놀다가 멀리서 선인이 몸을 단정히 하고 고요히 사색함을 보고, 그 곳으로 나아가 선인에게 예배하고 주위를 돌며 그 옆에 앉았다.
선인은 욕망의 과오에 대해 설하고 ··· 왕은 잠에서 깨어 궁녀들이 보이지 않으므로 살펴 본 즉, 모든 궁녀들이 선인의 주위에 둘러 앉아 있음을 보고 크게 성내는 마음을 내어, 이것은 바로 어떤 대귀(大鬼)가 나의 궁녀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 선인은 대답하기를, '나는 선인이다.'
또 묻기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대답하기를,
'인욕도(忍辱道)를 수행하고 있다.'   왕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내가 성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인욕을 수행한다고 말하는구나. 그렇다면 이제 시험을 해봐야겠다.'
그리하여 또 묻기를, '그대는 비상비상처(非想非想處)를 얻었는가 ?'
답하기를, '성취하지 못했다.' 왕은 더욱 성이 나서 말하기를,
'그대는 아직 속인이거늘 어찌 정(情)을 제멋대로 하여 나의 궁녀들과 즐기는가 ? 또 그대는 인욕을 닦는 사람이라고 말한즉 한 팔을 내 놓아야만 한다. 능히 참겠는가, 못참겠는가 ?'
그 때 선인은 곧 한 팔을 내밀고, 왕은 칼을 치켜들어 내리치자 한 팔이 땅에 뚝 떨어졌다. 왕은 또 다시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
선인은 답하기를, '나는 인욕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러자 왕은 또 다시 팔을 잘라버리고 앞에서와 같이 다시 묻자, 선인은 또 앞에서와 같이 '나는 인욕을 닦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와 같이 계속하여 양발을 자르고, 양귀를 자르고, 또 코를 자르기를 계속했다.
선인의 몸을 [3분의 2] 가량 베어져 버리고, 상처투성이를 만들고 나서야 왕의 마음은 가라 앉았다.
선인(仙人)은 말하기를, '왕은 지금 무엇 때문에 스스로 피염(疲厭)을 내는가 ?
예컨대 내 몸을 모두 절단하여 겨자씨 내지는 먼지와 같이 만든다 하더라도 나는 한 생각도 분노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말하는 바의 인욕에 결코 두 가지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또 나는 이러한 원을 말한다.
그대는 지금 나를 무참하게, 내 몸을 일곱 마디로 잘라내어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미래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때에, 대비심(大悲心)을 내어, 그대가 청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최초로 그대에게 칠종도(七種道)를 수행하게 하여 칠수면(七隨眠)을 단멸하게 하겠다.'라고,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때의 인욕선인이 지금의 세존 '석가모니'이고, 갈리왕은 지금의 구수고진나(具壽稿陳那)임을 (대정신수대장경 3, p.25 上 下)에 되어 있다.
한편 또 같은 문장으로 [현우경(賢愚經)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pp.359 360]이 있고, 그 외에 [출요경(出曜經) 제23, 대정신수대장경 4, p.731 上 中]과 [육도집경 제5권, 대정신수대장경 3, p.25 上 下]이 있다.
또한 [대지도론 제14권, 대정신수대장경 25, p.166 下, 제26권, 대정신수대장경 5, p.252 上]을 참조. 왕의 이름을 Kali라 하지 않고, Kalabu라고 하는 Kasi-raja라는 단어는 자타카(Vol. 3, Kjantivadi-jataka, pp.39 43)에 있다.

대당서역기 제3권 오장나국(烏丈那國)에서는, '막킬리(Mangkil)성의 동쪽 45리에 졸저파(卒楮波)가 있다. 매우 영서(靈瑞)하다. 이 곳은 부처님이 옛적에 인욕선인이었을 때, 여기에서 갈리왕 때문에 지체(肢體)를 할재(割載)당한 곳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⑥ 공덕(功德) :
원어 구나(Guna)의 의역. 구나(求那), 구낭(懼囊)이라 음역하기도 한다.
좋은 행을 지어 쌓은 공(功)과 불도를 수행한 덕(德)을 말한다.
공(功)은 공능(功能)이라고 하여, 功을 베푸는 것이고 그 대가가 자기에게 돌아옴을 덕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는 惡이 다함을 功이라 하고 善이 가득함을 덕이라 하는데, 덕은 얻었다는 뜻이고 공을 닦은 뒤에 얻는 것이므로 공덕이라고 말하고 있다.
복덕(福德)과 같은 뜻으로도 쓰이고, 福은 복리(福利), 즉 善을 수행하는 이(者)를 도와서 복되게 하는 것이고 복의 덕이므로 복덕이라 한다.

⑦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네개를 아인사상(我人四相) 또는 사상(四相)이라 하는데, 이것은 중생들이 범하기 쉬운 집착상을 경계하는 말이다. 아상은 '나'라는 相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인상(人相)도 아상처럼 집착하는 모습의 하나인데, '남'을 의식하는 데에서 오는 행동과 생각을 말한다. 중생상(衆生相)은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등 현실주의적인 행동이나 상념의 집착을 규정하는 말. 수자상(壽者相)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길든 짧든간에 일정한 수명을 하늘에서 받아 그 수명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의 집착을 말한다. ☞좀더보기

15.장
① 초일분(初日分) : 불교에서...
하루 중 자는 시간을 뺀 새벽부터 초저녁까지를 셋으로 나누는데, 새벽 3시(寅時)부터 아침 9시(辰時)까지를 초일분(初日分)이라 한다.
② 중일분(中日分) :
하루 중 자는 시간을 뺀 새벽부터 초저녁까지를 셋으로 나누는데, 오전 9시(巳時)부터 오후 3시(未時)까지를 말한다.
③ 후일분(後日分) :
하루 중 자는 시간을 뺀 새벽부터 초저녁까지를 셋으로 나누는데, 오후 3시(申時)부터 9시(戌時)까지를 말한다.

④ 백천만억겁(百千萬億劫) :
원문은 칼파 코티 니유타 사타 사하스라니(Kalpa-koti-niyuta- ata-sahasray)이다.
겁(劫)은 칼파(Kalpa)의 번역어로, 겁파(劫波, 劫破, 劫파) 또는 갈랍파(갈臘波)라고 음역하고 분별시분(分別時分), 분별시절(分別時節), 장시(長時), 대시(大時) 등으로 의역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일겁(一劫)은 범천(梵天)의 하루가 되고, 인간세계의 4억 3200만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일겁은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긴 시간, 즉 무한한 긴 시간을 표시하는 말이다.
코티(Koti)는 십만억(十萬億)으로 번역되고, 니유타(Niyuta)는 나유타((Nayuta)라고도 하는 것으로서 조(兆) 또는 나유타(那由他)라고 그대로 음역해 사용하기도 한다. 사타( ata)는 百이고, 사하스라(sahasr )는 千이다.
그래서 원문을 직역하면 '백의 천의 십만억조의 많은 겁', 즉 '백 곱하기, 천 곱하기, 만 곱하기, 십만 곱하기, 억 곱하기, 조 또 그 많은 겁'이라는 말로 표시할 수밖에 없다.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뜻하는 말이다.

불교에서 겁(劫)이란 말에 대해서,
개자겁(芥子劫), 반석겁(磐石劫)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일개자겁(一芥子劫)은, 그 둘레가 40리가 되는 성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장수천인(長壽天人)이 3년마다 한 알씩 가지고 가서 죄다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일반석겁(一磐石劫)이란, 둘레가 40리나 되는 바위를 천인이 무게가 3수(銖)되는 천의(天衣)로써 3년마다 한번씩 스쳐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한편 겁에는 '대 · 중 · 소'의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둘레 80리를 일중겁(一中劫), 둘레 120를 일대겁(一大劫)이라 하기도 한다.
일소겁(一小劫)은 사람의 나이가 8만 4000세부터 백년마다 한 살씩 줄여서 10세에 이르고 다시 백년마다 한 살씩 늘여 그 나이가 8만 4000천세에 이르는, 즉 한 번 줄고 한 번 느는 동안을 일소겁이라 한다.
☞ 20소겁을 일중겁(一中劫), 4중겁을 일대겁(一大劫), 또 한 번 늘거나 한 번 주는 것을 일소겁, 한 번 늘고 한 번 주는 동안을 일중겁, 성겁(成劫), 주겁(住劫), 괴겁(壞劫), 공겁(空劫)이 각각 20중겁 합하여 일대겁이라 말하기도 한다.

⑤ 대승(大乘) · 최상승(最上乘) :
대승은 마하야나(Mahayana)의 한역. 마하연나(摩阿衍那)라고 음역한다.
승(乘)이란 '타다 · 태우다' 또는 '싣고 운반하다'의 뜻이다. 중생들의 '나고 죽고 하는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게 한다'는 뜻에서 대승이니 소승이니 하는(탈 것의) 말을 쓰는 것이다.
대승은 불도를 깨달아서 제 한 몸을 건지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서 일체 중생까지도 건지기를 바라는 교리인데, 이런 교리를 가지는 불교를 대승불교라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법을 수행함에 있어서 相에 집착하여 닦는 것이 소승이라 이름하며, 대승은 상을 떠나서 도를 닦고 지옥과 극락이 둘이 아님을 깨닫고 닦는데 비해, 지옥을 싫어하고 극락을 좋아하여 도를 닦는 것이 소승이다.
이 대승 가운데서도 가장 도가 높은 것이 최상승이다.
최상승에 대해, [금강경오가해]에서 육조 혜능은, "때묻은 법, 싫어해야 할 속된 법을 보지 않는 것이며, 구해야 할 거룩한 법을 보지 않는 것이고, 구해야 할 중생을 보지 않는 것이다.
또한 열반이 있어서 증득한 것을 보지 않고, 중생을 제도했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또한 중생을 제도하지 않았다는 마음도 두지 않는 것이니, 이를 최상승이라 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일본의 불교학자 나카무라(中村元)는, '대승이라는 것은 중생들을 태우고 생사의 고해를 건너 불교의 이상경(理想境)인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는 교법 가운데서 그 교리나 교설이 크고 깊어서 이것을 받아들이는 그릇도 큰 그릇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대승이라 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대승에는 권대승(權大乘)과 실대승(實大乘) 두 가지가 있다.
권대승은 권교대승(權敎大乘)이란 말로서, 여래의 진실한 교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중생을 진실한 교법으로 끌어들이려는 방편수단이다. 법상(法相) · 삼론(三論) 등의 교의를 설하는 대승교법을 의미하고, 이상경인 피안에 이르게 하는 교법 중에서 '교(敎) · 리(理) · 행(行) · 과(果)'들이 모두 깊고 넓고 커서 이를 수행하는 승려나 중생들이나 구도자가 대기이근(大器利根)인 기류(機類)를 요하는 것을 말한다.
실대승교는 대승교 중에서 방편을 겸하지 아니한 교의를 말한 교이다. 천태종(天台宗) · 화엄종(華嚴宗) · 선종(禪宗) 등이 이에 속한다.
대승과 반대(시대적으로 구분·비교)되는 것이 소승인데, 소승(小乘)에는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 두 가지가 있다.
성문승은 사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사과(四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하고, 연각승은 12인연을 깨달아 벽지불과(僻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교체로 하고 있다. 인도의 상좌부, 대중부 등 20분파와 동토(東土)의 구사종(救士宗), 성실종(成實宗), 율종(律宗) 등이 있다.

⑥ 작은 법을 즐기는자(樂小法者) :
원문은 hina-dhamaktikaihsattvaih. 하이나(hina)를 "열등한"이라고 번역하고 하이나야나(hinyana)를 "소승"이라고 번역하듯이, 이 원문의 하이나는 소법 즉 작은 법이라고 의역한다. 소법(작은법)이란 소승을 말하는 것이다.
소승을 즐기는 자란, 자기 한 몸의 열반과 극락세계에 태어나겠다는 생각만 하는, 도를 구하는 생각이 좁고 작은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과 같은 4상의 주견을 버리지 못 하고 상에 집착하여 상이 있는 작은 과(果)만 생각할 뿐 과가 보이지 않는 불과(佛果)를 얻을 생각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경이 귀에 들어가지 않아서 이것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또 남에게 설하지도 못 한다는 것이다.

⑦ 둘러싸고 돌며(作禮圍요) :
작례(作禮)는 예배드린다는 말이고, 위요(圍요)는 둘레를 빙빙 도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그 둘레를 빙빙 돌면서 합장하고 예배한다는 뜻이다.
인도에서는 오체투지(五體投地)라 하여 두 팔, 두 다리와 머리의 오체를 땅에 던지고 절하는 풍습이 있고 또 어떤 존경의 대상을 중심으로 하여 둘레를 돌면서 절하는 예법이 있는데, 이것은 귀의(歸依)의 뜻을 표하는 것이다.
또 이밖에도 우요삼잡(右繞三잡)이라 하여 귀인에게 존경의 뜻을 표할 때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귀인쪽으로 향하여 그 주위를 세 번 도는 예법이 있다. 또 군대가 개선해서 돌아왔을 때에도 귀국하는 즉시 성벽의 주위를 세 번 오른쪽으로부터 돌고 성안으로 들어가는 예법도 있다고 한다.
보리수(菩提樹) 등을 향해 예배할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한다. 아시아 각국의 불교에서는 이 규정을 지켜 탑이나 본존불을 중심으로 오른쪽 어깨를 향한 채 도는 행사를 행하는 풍습을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탑을 중심으로 돌면서 예배하는 탑돌이 행사도 여기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16.장
① 전생에 지은 죄업(先世罪業) :
선세(先世)는 현세에 태어나기 전의 세상, 즉 전세(前世)를 가리키는 말이다.전생(前生) · 숙세(宿世)라고도 한다. 선세의 죄업이란 선세에 말 · 행동 · 생각 등에서 지은 모든 죄악을 말하는 것으로, 죄업에는 경죄(輕罪)와 중죄(重罪)의 2종이 있으며, 전생에서 죄를 짓거나 선을 베풀거나 하면 금생(今生)에서 그 선업 혹은 악업에 따라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는 뜻으로 선악의 결과 생기는 것이 업 또는 업보이다. 업(業)은 원어 카르마(Karma)의 번역어로서 갈마(갈磨)라 음역한다. 이 업은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으로 나뉘고, 선업을 열 가지로 나누어서 10선업(十善業)이 있다. 보통 악업만을 단순히 업이라 할 때가 많다.

②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다(應墮惡道) :
악도는 악취(惡趣)라고도 하며, 나쁜 일을 한 죄의 응보로 장차 태어날 곳을 뜻하는 것이다. 악도에는 삼악도(三惡道), 사악도(四惡道), 오악도(五惡道) 등이 있는데,
삼악도는 지옥 · 아귀 · 축생을 말하고,
사악도는 삼악도에다 아수라를 더하고,
오악도는 삼악도에다 인간계(人間界) · 천상계(天上界)를 더한 다섯 미계(迷界)를 말한다. 인간세상과 천상세상은 선악의 잡업(雜業)에 따라 간다고 한다.
지옥 · 아귀 · 축생은 순전히 악업으로만 가는 곳이며, 모두가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삼독에 기인한 헤매임의 인연으로 가서 태어나는 곳이므로 악도라고 한다.

③ 아승지(阿僧祇) :
범어 아삼크히야(Asa khya)의 음역어이다. 아승기야(阿僧企耶), 아승기야(阿僧祇耶)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또 승기(僧祇), 무수(無數), 무앙수(無央數)라고도 번역한다.
산수로서는 표현할 수가 없는 가장 많은 수를 가리키는 '인도어'로 아승기겁은 겁의 수가 아승기란 말이다.

④ 팔백사천만억 나유타(八百四千萬億那由他) :
나유타(Nayuta)는 니유타(Niyuta)라고도 하는데, 나유타로 음역한다. 불교에서는 가장 많은 수를 나타낼 때에는 반드시 어떤 수 앞에다 '84'를 붙이고 있다. 1나유타는 천만억을 가리키는 수라고 하니, 팔백사천만억 나유타라고 하면 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수이다.
10억을 1낙차라고 하고, 10낙차를 1구지, 10구지를 1나유타라고 한다. 이렇게 계산하면 1나유타는 천만억을 가리킨다. 그런데 또 다른 일설에는 1나유타는 아유타(阿由他)의 백배, 수천만 혹은 천억, 만억이라는 설도 있으니 모두 일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를 생략한 말로, 동류인(同類因)으로 생기는 결과를 과(果),
이숙인(異熟因)으로 생기는 결과를 보(報)라고 한다. ☞참고사전(果報)

17.장
① 어떻게 그 마음을 바로 머물게 하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굴복시켜야 하오리까(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 얼핏 보기에는 제17 구경무아분과, 제2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의 말씀이 같으나, 그 내용은 각기 다른 의미이다.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의 내용은 _단순히 어떻게 머무르고, 어떻게 수행하오리까 ? 하는 물음의 내용이며,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에서는 _어떤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면 진정 '나'가 없어야 하는데, '나'가 없다면 무엇이 머무르고 무엇이 그 마음을 항복시키오리까 ? 하는 의미이다.

② 수기(授記) :
원어 비야카라나(Vyakarana)의 한역. 수기(授記, 受記), 수결(受決), 수별(受別)이라고도 번역한다. 부처님이 어떤 사람에게 '장래에 깨달은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미리 예언하는 것으로 세존은 연등불에게서 '석가모니불'이 되리라는 수기를 받으셨다.

③ 석가모니(釋迦牟尼) :
원어는 사카무니(Sakyamuni). 우리나라에서는 석가모니 혹은 서가모니 등으로 부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석가모니라고 하고 있다. 존경의 뜻으로 세존(世尊) 또는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사카(Sakya)는 종족의 이름, 무니(Muni)는 성자라는 뜻이다.
석가모니는 중인도 가비라(迦毘羅; Kapila)성주인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의 태자로 B.C.623년 4월 8일에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마야부인을 어머니로 탄생하였다.
탄생 즉시 사방으로 7보를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태어난지 7일만에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를 양모로 하여 성장을 했다. 어릴 때의 이름은 교답마(고타마) 혹은 실달타라 했으며, 점차 자라면서 학문과 무예에 능하고 탁월하여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선강왕의 딸 야수다라(Ya odhara)와 결혼하여 아들 라후라(Rahula)를 낳았다.
석가모니는 항상 생로병사를 두고 고민의 나날을 보내다가 29세 때 드디어 출가할 뜻을 내어 성을 탈출하여 동방의 람마성(藍摩城)밖 숲속에서 속세의 옷을 벗어버리고 출가했다.
그 다음 남방으로 비야리, 마갈타를 지나 다니면서 발가바(跋伽婆), 아람가람(阿藍伽藍), 울다라(鬱陀羅) 등의 선인(仙人)을 만나 6년동안 고행을 한 끝에 금욕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불타가야(佛陀伽耶;Buddhagaya)의 보리수 밑에 앉아 사유하여 마침내 크게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그 때 그의 나이가 35세였다. 이후로 스스로 깨달은 교법을 널리 알리고자 먼저 녹야원(鹿野苑)에 가서 아야교진여(阿若교陳如) 등 다섯사람을 교화하고, 그 다음에 가섭, 사리불, 목건련 등을 제도하여 교단을 조직하고, 깨달은 뒤 3년만에 가비라성 벌솔도에 돌아가서 부왕을 뵙고 친족들을 제도했다.
한편 여러나라로 다니면서 빔비사라, 아사세, 바사닉 등 여러 왕들을 교화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다. 중생제도에 일생을 바치고 북방의 구시나라가城 밖 발데하(跋提河) 언덕 사라쌍수 아래 누워 최후의 교계(敎戒)를 하고 난 후 기원전 544년 2월 15일에 80세로 열반하셨다. 그리고 오늘날 '불교'의 '교조'로 모셔지고 있는 것이다.

④ 불토를 장엄케 하리라(當莊嚴佛土) :
불국토를 장엄하는 일이 제10 장엄정토분의 의문으로도 말씀됐고 여기서도 말씀해서 중복되는 감이 있지만, 앞에서는 부처님이 그런 일을 어떻게 하셨는가를 말씀하신 것이고, 여기서는
보리의 법을 얻을 수 없다면 누가 이런 보살행을 하겠는가 하는 내용이니, 앞에서는 얻을 것이 있으리란 집착에서 연유된 법문이고, 여기서는 불국토를 장엄할 사람 즉 보살이 있어야 되겠다는 집착에서 연유된 법문이라 할 수 있다.

⑤ 무아법에 통달한 사람(通達無我法者) :
무아는 원어 아나트만(Anatman)의 번역어. 흔히 범부(凡夫)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상일주재(常一主宰)하도록 작용하는 영구불변의 주체를 아(我)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런 我라는 것을 부정하여 '나'라는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오온(五蘊)이 가정적으로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이라 하며 실아(實我)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을 인무아(人無我)라고 한다.
또 흔히 범부들은 모든 법에 대해서 실아(實我)가 있고 실법(實法)이 있다고 생각하나, 실은 인연화합으로 생긴 가법(假法)이므로 따로 법이라 할 것이 없다. 이것을 법무아(法無我)라 한다.
무아법(無我法)은 내가 없다고 하는 법이니, 법 또한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만상은 법아(法我)가 있다고 하는 생각은 그릇된 생각이므로 모든 법은 전부 무아라 했다. 부처님은 무아법에 통달한 자가 참보살이라고 설하시는 것이다.

18.장
①육안(肉眼) : 오안(五眼)의 하나
중생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육신에 갖추어져 있는 감각적 눈을 말한다.
육안은 사물의 형태나 빛깔을 구별하고 그것들을 어떤 한계안에서만 볼 수 있으며, 가까운 것을 보면 먼 것을 못 보고, 앞을 보면 뒤를 못 보고, 밖을 보면 안을 못 보고, 밝은 것을 볼 수 있으되 어두운 곳의 사물을 볼 수 없는, 즉 종이 한장만 가려도 사물을 바로 보지 못 하는 한계를 지닌 눈이다.

②천안(天眼) : 오안(五眼)의 하나
천상세계(天趣)에 태어나거나 또는 이 세상에서 선정(禪定)을 닦아 얻는 눈으로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한 사물이나 먼 곳에 있는 것까지도 널리 살펴볼 수 있는 눈을 이름하는 것으로, 중생들이 미래에 태어나고 죽는 모습까지도 미리 내다볼 수 있다.
천안을 얻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간세계에서 선정을 닦아 얻는 것으로 이것을 수득천안(修得天眼)이라 하며, 또 하나는 천상에 태어남으로써 얻는 것으로 이것을 생득천안(生得天眼)이라 한다.

③혜안(慧眼) : 오안(五眼)의 하나
우주 사물의 진리를 인식하는 눈이다. 곧 만유의 모든 현상이 공(空) · 무상(無相) · 무작(無作) · 무생(無生) · 무멸(無滅)임을 깨달아 모든 집착을 버리고 차별적인 현상세계를 초월하는 지혜의 눈을 말하는 것이다.
'혜안'은 성문(聲聞)과 연각(緣覺) 등, 이승(二乘)의 지혜로 얻는 까닭에 중생을 제도하지는 못 한다고 한다.

④법안(法眼) : 오안(五眼)의 하나
일체법을 하나로 분명하게 비추어 보는 눈을 말한다.
보살은 이 눈(법안)으로 모든 법의 실상을 잘 알고 중생들을 제도한다고 한다.

⑤불안(佛眼) : 오안(五眼)의 하나
모든 법의 진실된 참모습(實相)을 투명하게 바로보는 부처님의 지혜의 눈을 말한다.
곧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시방(十方)세계를 두루 자상하게 밝혀 볼 수 있는 눈이다.

⑥오안(五眼) :
육안(肉眼) · 천안(天眼) · 혜안(慧眼) · 법안(法眼) · 불안(佛眼)의 다섯가지_(↑위)
오안(五眼)에 대해서, '대지도론' 제3권에서는, [대품반야경] 초품(初品)의
'보살 마하살이 오안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를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무엇인가 다섯 가지가 있는데, 육안과 천안과 혜안과 법안과 불안이다.
육안은 가까운 것은 보고 먼 것은 보지 못 하며, 앞은 보고 뒤는 보지 못 하며, 밖은 보고 안은 보지 못 하며, 낮에는 보고 밤에는 보지 못 하며, 위는 보고 아래는 보지 못 한다. 이러한 장애 때문에 천안을 구한다.
천안을 얻으면 멀고 가까운 것을 모두 보며, 전후 · 내외 · 주야 · 상하를 남김없이 본다. 이 천안은 화합인연생(和合因緣生)의 가명(暇名)의 물(物)은 보지만 실상은 보지 못 한다.
즉 공(空) · 무상(無相) · 무작(無作) · 무생(無生) · 무멸(無滅) 등을 보지 못 한다.
앞에서 처럼 뒤도 또 그러하다. 그리하여 실상을 보지 못 하기 때문에 혜안을 구한다.
혜안을 얻으면 중생을 보지 못하고, 일이(一異)의 상을 멸하고, 모든 집착을 사리(捨離)하여 일체법을 얻지 못하는 바가 없으며 지혜가 안으로 멸한다. 이것을 혜안이라 이름한다. 단 혜안은 중생을 제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분별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법안을 구한다.
법안은 이러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법을 행하여 이러한 도를 얻게 하는 즉, 일체중생 각각의 방편문을 알아 도증(道證)을 얻게 한다. 그러나 법안은 두루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도를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불안을 구한다.
불안은 사(事)로써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가려진 장애가 은밀하다 하더라도 견지(見知)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주 먼 것도 부처님에게는 아주 가까우며, 다른 사람에게는 유암(幽闇)인 것도 부처님에게는 현명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의심스러운 것도 부처님에게는 결정적이며, 다른 사람에게는 미세한 것도 부처님에게는 미세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는 심심(甚深)한 것도 부처님에게는 심천(甚淺)하다.'
'이 불안은 사(事)로써 듣지 못하는 바가 없으며, 사로써 보지 못하는 바가 없으며, 사로써 알지 못하는 바가 없으며, 사로써 어려운 것이 없다. 사유하는 바가 없지만, 일체법 가운데서 항상 불안은 밝게 빛난다.'
'후품(後品)의 오안에 관한 의미 중에서 마땅히 널리 설해야 한다.'라고 해설하고 있는 것이다.[대정신수대장경 25, pp.305 306]

⑦여래는 모든 마음을 다 마음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만 이를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기 때문이니라(如來說諸心皆爲非心 是名爲心) :
마음이란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觸) · 법(法) 등 육진(六塵)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 허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존은 과거의 마음은 포착할 수가 없고, 현재의 마음도 역시 포착할 수가 없으므로, 모든 마음을 다 "마음이 아니다"(非心)라고 하고,
다만 그것을 '이름하여 마음이라 할 수 있는 것' 뿐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 분절(分節)을 '금강경오가해'에서 육조대사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즉

'모든 사람이 다 오안을 가지고 있는데, 마음이 미(謎)하여 가려져 있기 때문에 사물의 실상을 볼 수 없을 따름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미(謎)한 마음을 제거하면 곧 오안이 두루 밝아지므로, 육바라밀을 닦아 실천하라고 설 하셨던 것이다.

미(謎)한 마음을 벗기는 것은 육안이요, 모든 일체 중생이 다 불성이 있음을 보고 가련한 마음을 내는 것은 천안이고,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 혜안이고, 법에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 법안이며, 아주 미세한 업장, 미혹까지 완전히 다 없어져서 밝게 두루 비추게 되는 것을 불안이라 한다.

또 육신 가운데서 법신이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 육안이고, 일체 중생이 반야성품(般若性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천안이고, 반야바라밀이 능히 삼세(三世)의 일체법에 뛰어났음을 보는 것이 혜안이며, 일체의 불법이 스스로 다 구비했음을 보는 것이 법안이고, 모든 법의 진성(眞性)을 밝게 비춰보아, 주관 · 객관이 영원히 제거됨을 보는 것이 불안이라고 한다.'

19.장
①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울만한 칠보로써 보시를 한다면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 이 비유구절은 금강경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즉

제 8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의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를 가득채울만큼 칠보로써 보시를 한다면 (滿三千大千世界七寶以用布施 ···'
제11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의 만일 항하의 모래수 만큼이나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지고 그것으로 보시를 한다면 (以七寶 滿爾所恒河沙數 三千大千世界 以用布施) ···'
제13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의 저 항하의 모래만큼처럼 몸이나 목숨으로 보시를 한다면 (以恒河沙等身命布施) ···
제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의 아침나절에 항사의 모래만큼을 몸으로써 보시하고 (初日分 以恒河沙等身布施) ···
제19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의 만일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울만큼 칠보로써 보시를 한다면 (滿三千大千世界七寶以用布施) ···
제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의 만약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모든 수미산왕만한 칠보를 가지고 어떤 사람이 보시를 한다면 (若三千大千世界中 所有諸須彌山王如是等七寶聚 有人持用布施) ···
제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의 만일 항하의 모래만큼과 같은 칠보를 가지고 보시를 한다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持用布施) ···
제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의 만일 무량아승기세계를 가득 채울만한 칠보를 가져다가 보시를 한다면 (以滿無量阿僧祇 世界七寶 持用布施) ···
_☞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② 복덕(福德) :
복은 복리, 善을 수행하는 이를 도와 복되게 하는 것이고, 德은 얻었다는 뜻이다. 즉 복을 얻었다는 뜻으로 복덕이라 한다.

20.장
① 색신을 다 갖추고 있다(具足色身), 모든 상을 다 갖추고 있다(具足諸相) :
'색신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함은 부처님의 체질에서 보통 사람보다 더욱 잘 생긴 부분 여든 가지를(80種好) 이르는 말이고, '모든 상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함은 부처님의 체질에서 특수하게 뛰어난 부분 서른 두 가지를(32相) 이르는 말이니,
이 색신과 상을 합쳐 상호(相好)라 한다.

② 색신(色身) :
부처님의 32상외에 80종호(種好) 또는 80수형호(隨形好)라고 하는,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히 훌륭한 것 80가지가 몸에 있다고 한다. 즉 손톱이 좁고 길고 엷고 구리빛 윤이 나는 것, 신통력으로 스스로 유지하고 남의 호위를 받지 않는 것 등등이다. 이것은 經, 論에 따라서 해석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③ 제상(諸相) : 부처가 갖춘 32상(相)으로
1) 발바닥이 판판하고, 2) 손바닥에 수레바퀴같은 손금이 있고, 3) 손가락이 가늘면서 길고, 4) 손발이 매우 부드럽고, 5) 손가락·발가락 사이마다 엷은 비단결같은 막이 있고, 6) 발꿈치가 둥글고, 7) 발등이 둥글고 도톰하고,8) 종아리가 사슴다리같이 미끈하고, 9) 팔의 길이가 길어서 펴면 손이 무릎까지 내려가고, 10) 생식기가 오무라들어 몸안에 숨어있는 것이 말의 그것과 같고, 11) 키가 두 팔을 편 길이와 같고, 12) 털구멍마다 새까만 털이 나 있고, 13) 몸의 털이 위로 쏠려 있고, 14) 온몸이 황금색이고,
15) 몸에서 솟아나는 광명이 한 길이나 되고, 16) 살결이 보드랍고 매끄럽고, 17) 두 발바닥· 두 손바닥· 두어깨·정수리가 모두 둥글고 평평하고 두텁고, 18) 두 겨드랑이가 편편하고, 19) 몸매가 사자와 같이 균형이 잡혀 있고, 20) 몸이 곧고 단정하고,21) 두 어깨가 둥글고 두툼하고,22) 치아가 40개이고, 23) 치아가 가지런하며 빽빽하고, 24) 송곳니가 희고 크고, 25) 양 뺨이 사자처럼 생겼고, 26) 목구멍에서 달콤한 진액이 나오고, 27) 혀가 길고 넓고, 28) 목소리가 맑고 멀리 들리고, 29) 눈동자가 바르고 검푸르고, 30) 속눈썹이 소의 속눈썹처럼 시원스럽고,31) 두 눈썹 사이에 흰털이 나 있고, 32) 정수리에 살상투가 있다는 것이다.

21.장
① 내가 말하는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不能解我所說故) :
제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의 '진실한 믿음의 마음을 낼 수 있겠읍니까(生實信不)'라는 말씀과도 비슷한데, 전자의 것은 相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를 믿을 사람이 없겠다는 의미이고, 여기서의 것은 부처님의 본질과 설법의 정의에 대한 풀이를 믿기 어렵겠다는 뜻이다.

② 법을 설한다고는 하나(說法者) :
나집본 이외의 유지본, 진제본, 현장본, 의정본 그리고 범본은 모두 _'법을 설한다는 것은, 법을 설한다는 것은' 라고 반복해서 설명하여, 그 의미로서 해석하고 있다.

③ 혜명(慧命) :
원어는 아위스마트(ayusmat). 원래 '장수(長壽)의'라는 형용사이지만, 부를 때 이름 앞에 붙여서 경어로 쓰기도 하여, 장로(長老) · 대덕(大德) · 존자(尊者) · 구수(具壽) · 정명(淨命)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혜명에 관해서 장수(長水)의 '금강경소기료회(金剛經疏記料會)' 제2권에서는, '색신은 食으로써 명(命)으로 삼고, 법신은 혜(慧)로써 명으로 삼는다.'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법신의 지혜를 수명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오십삼가주(金剛經五十三家註)' 제4권에서는, '진웅(陳雄)이 말하기를, <혜명 수보리를 법화경 신해품에서 살펴보면, 혜란 것은 德을 말하고 명이란 것은 수(壽)를 말한다. 즉 장로의 이명(異名)이다>'라고 하고 있다.
[대비바사론 제18권 대정신수대장경 27, P.914]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존이 바라니사(婆羅泥斯; 鹿苑)에 도달했을 때 오인(五人)이 문득 부처님을 보고, 드디어 제(制)를 세워 말하기를
[··고타마는 해만다구(懈慢多求)로서, 광란하고 실지하고 헛되어서 얻을 바가 없다. 그런데도 지금 또 우리에게 다가와서 유혹하려고 한다. 우리들은 능히 모두가 담론하거나 공경하거나 질문하거나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단지 평상시대로 그가 자리를 깔고 앉든지 말든지 그에게 맡겨 버리자··]라고.
그 때 세존이 가까 다가온 즉, 그에게 위덕이 갖추어져 있음을 보고, 그들은 본래의 생각을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을 맞이하러 나가 드디어 합장공경하여 귀명하였다. ··· 그 때에 부처님은 자리로 나아가 편안히 앉았는데, 그 위광기특(威光奇特)한 모습이 묘고산(妙高山)과 같았다.
그리하여 다섯 사람은 부처님을 공경하여 부르기를 구수(具壽;ayusmat) 또는 고타마라고 하였는데, 부처님은 이에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여래를 호칭함에 있어서 구수라고 하거나 족성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라고.
이에 따르면 아위스마트(ayusmat)라는 호칭은 동년배나 그 이하의 사람에게 사용되었던 것 같다.

④ 이 때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하기를(爾時 慧命須菩提 白佛言) :
이하의 62자는 본래 나집역본에는 없었고 뒤에 보충 삽입된 것이라고 한다.

22.장
① 백불언(白佛言) :
이하의 구는 나집역본과 유지역본이 다르나, 의미상으로는 틀리지 않는다.
유지역본을 보면,
[佛言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耶. 須菩提言 不也. 世尊. 世尊無有小法如來得阿뇩多羅三막三菩提 佛言 如是 須菩提 我於阿뇩多羅三먁三菩提 乃至無有小法可得. 是名阿뇩多羅三먁三菩提]
불언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수보리언 불야 세존. 세존무요소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불언 여시 수보리 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내지무유소법가득 시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라고 되어 있다.

②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뇩多羅三먁三菩提) :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 직역하면 '이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 이란 뜻이고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또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한역한다.
범부는 불각(不覺)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무상정등정각은 _미계(迷界)를 여의고 각지(覺智)가 원만하여 일체의 진상을 모두 아는 부처님의 전지전능한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뇩다라는 '위가 없다', 즉 무상(無上)이고, 삼먁은 '바르고 평등하다'는 뜻으로 정등(正等)이고, 삼보리(三菩提)는 세 가지의 道, 즉
성문보리(聲聞菩提) · 연각보리(緣覺菩提) · 제불보리(諸佛菩提)를 말하는데 모든 진리를 똑바로, 밝게 깨달은 부처의 마음(正覺)을 뜻한다. 따라서 부처님의 무상승지(無上勝地)를 말하는 것이다.

23.
①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다(是法平等 無有高下) :
불교에서 평등이라 함은, 높고 낮고, 깊고 얕고, 크고 작고, 많고 적고 하는 차별이 없는 - 한결같이 법의 근본이 되는 원리.., 만유의 본체를 말하는 것이다.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인간은 물론 축생 · 아수라에 이르기까지도 평등하고 무차별한 본질을 지니고 있음(나와 다르지 않음을 아는 마음자리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지극히 맑고 깨끗하며(탐진치가 일어나지 않아) 얽매임이 없어야만(탐진치에 의한 애욕이나 애착등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자리에서) 평등심을 얻을 수 있다.
부처와 중생이 다른 점이란, 부처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에서 해탈하고 있으며 다른 사물에 흔들림이 없지만, 중생은 제 몸이나 마음에 알맞는 경계, 즉 순경(順境)을 벗어날 때에는, 탐욕이라는 번뇌가 생기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 고통을 주는 경계, 즉 위경(違境)일 때에는 진(賑)의 번뇌가 생긴다.
이러한 순경이나 위경에 있을 경우, 높고 낮음 없는 평등을 지키지 못 하고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 같은 사상(四相)과 함께,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觸) · 법(法) 같은 육진(六塵)에 물들고, 더럽혀지는 것이다.
이리하여 중생은 자기의 자성이 불성인 줄 알면서도, 생각과 행동이 바르지 못 하게 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이러한 육진(六塵)과 사상(四相)에 얽매이고, 집착하는 한, 절대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보리를 이룰 수 없다 라는 내용에 대해 _'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과 구경무아분(究竟無我분),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에 나오는 내용은 모두 다르다.
제 7.무득무설분은 석가여래께서 과위(果位)를 얻으신 것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며, 제 13.여법수지분은 법도 없고 부처도 없으리라는 것에 대한 의문이고, 제 17.구경무아분의 후반은 선혜선인(善慧 仙人)이 연등부처님에게서 수기를 이룬 바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며, 끝으로 제 22.무법가득분에서는 닦을 것도 있고 증득할 것도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② 선법(善法) :
선법이란 생활(수양)에 있어서 자기를 이롭게 하는 법을 말하는 것으로, 악법(惡法)과 반대되는 것이다. 선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불교에서 기본이 되는 것으로 우선 말하는 것으로 오계(五戒)와 십선(十善)이 있다.

오계(五戒)로는
① 중생을 죽이지 말라, ② 남의 물건을 함부로 훔치지 말라, ③ 음란한 짓을 하지 말라, ④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 술을 마시지 말라 등 다섯이며,
십선(十善)으로는
① 살생하지 말 것, ② 도둑질하지 말 것, ③ 사음하지 말 것, ④ 함부로 망녕된 말을 하지 말 것, ⑤ 두 혀로 말(이간질 하는 말)을 하지 말 것, ⑥ 욕하지 말 것, ⑦ 꾸민('외곡 · 포장'한) 말을 하지 말 것, ⑧ 탐욕을 부리지 말 것, ⑨ 성내지 말 것, ⑩ 사견(邪見)을 내지 말 것 등이다.
이상과 같은 선법들은, 모두 '착한 생활 · 착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고, 또한 그날 그날을 반성하여 일상생활에 실천한다면,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며, 이 모두는 따로 해야하는 것이 아닌, 둘이 아닌, 별개의 것이 아닌 것이다.
더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향하여 가는 '삼학 · 육도 · 육바라밀' 수행지침이 있다. 삼학(三學)이란 도를 닦아서 깨달아야 할 세 가지 '계학(戒學) · 정학(正學) · 혜학(慧學)'을 말하는 것으로, 계학과 정학을 거쳐서 비로소 혜학에 이르고, 혜학에서 미계(迷界)의 번뇌를 없이 할 수가 있다는 불가의 가르침이다. ☞삼학(三學)
한편 육도(六道)의 내용과, 행함(行)을 강조한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행(行),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정진 · 선정' 등은, 부처님의 수행가르침(지침서)인 것이다.

24.장
① 사구게(四句偈) :
사구(四句)로 된 게문(偈文)을 말하는 것으로 게(偈)라는 것은 원어 gatha의 음역이다. gatha는 가타(伽陀), 게송(偈頌), 풍송(諷頌)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gatha는 본래 부처님의 공덕(功德)이나 교리를 찬미하는 노래나 글귀로서 이 글귀가 네 구로 되어 있을 경우 사구게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사구문(四句門), 사구분별(四句分別)이라고도 한다.☞[좀더보기]

② 수지위타인설 受持爲他人說 : 받아지녀서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 이라 함은 오품제자(五品弟子)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오품제자라 함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부처님의 법을 듣고 기꺼이 믿음을 내는 수희품(隋喜品), 부처님의 법을 즐기어 독송하는 독송품(讀誦品), 그 법을 남에게 이야기 해주는 설법품(說法品), 마음으로 진실한 법을 관찰하면서 육바라밀의 법을 두루 실천하는 겸행육도품(兼行六度品),
그리고 나와 남이 모두 진실의 경지에 이르도록 육바라밀의 행을 구체적으로 닦는 정행육도품(正行六度品) 등 다섯 종류의 불제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받아지닌다'라 함은 수희품의 제자를 말하고, '남에게 말해 준다'라 함은 설법품의 제자를 말한다.

공덕(功德)은 좋은 일로 쌓은 공(功)과 불도를 수행한 덕(德)을 말한다.
복덕과 같은 뜻으로도 쓰이고, 福은 복리(福利), 즉 善을 수행하는 이를 도와서 복되게 하는 것이고 복의 덕이므로 복덕이라 한다. 功은 공능(功能)이라고 하여, 功을 베푸는 것이고 그 대가가 자기에게 돌아옴을 덕(德)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는 惡이 다함을 功이라 하고 善이 가득함을 덕이라 하는데, 덕은 얻었다는 뜻이고 공을 닦은 뒤에 얻는 것이므로 공덕이라고 말하고 있다.

③ 수미산왕(須彌山王) :
묘고(妙高), 묘광(妙光) 등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고대 인도의 신화적 우주관에서 전해 오는 아주 큰 산이다. 세계의 가장 아래쪽에는 풍륜(風輪), 그 위에 수륜(水輪), 그 위에 금륜(金輪)이 있고, 또 그 위에 아홉개의 산(九山)과 여덟개의 바다(八海)가 있다고 한다.
그 중심이 수미산이라는 큰 산이며, 우주에서 제일 높고 크고 또 중심이 되는 산이다. 높이는 8만 4000유순(1유순은 약 60리)이고, 해와 달이 이 산의 중턱에 돈다고 한다. 그 산의 정상에는 제석천(帝釋天)이 살고 있으며, 중턱에는 사천왕(四天王)이 살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수미산왕이라고 한 것은 수미산이 모든 산 가운데 가장 높고 크기 때문이다. ☞참고보기

25.장
① 실은 여래가 제도할 중생은 없다(實無有衆生 如來度者) :
'중생을 제도하였으되, 제도한 바가 없다' 라는 말씀은, ㉠ 제3 대승정종분(大乘正宗扮)과 ㉡ 제17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이곳 ㉢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에서 모두 세 차례 나온다.
첫번째 것은 내가 중생을 제도한다는 생각을 여의라는 뜻 이요,
두번째 것은 중생을 제도한 이가 바로 나가 아닌가 라는 의문에 대한 것이요,
세번째 것은 참 법계는 평등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이 맞지 않겠구나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② 범부(凡夫) :
원어는 발라 프리타크 쟈나(bala-prithag-janah). 직역하면 '따로 따로 태어나서 사는 사람' 이라는 뜻이라 한다.
범부란 어리석고 슬기가 모자라는 중생을 말하는 것으로 성자의 반대말이다.
이 말은 우자(愚者)로도 번역된다. 불교에서 번뇌에 얽매어 생사를 초월하지 못 한채 미계를 헤매고 있는 어리석은 일반 사람들을 이름하는 것이다. 즉 부처의 이치를 올바르게 깨닫지 못한 자를 뜻 하며, 그 깨우친 정도에 따라서 저하(底下) · 범외(凡外) · 범내(凡內)의 세 단계로 나눈다.
이 분절에서 말하는 범부에 대해 육조(六祖)대사의 해석을 빌면,
☞'나'와 남(他)이 있으면 곧 범부이고, 나(我)나 '남'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범부가 아니며, 마음에 생과 멸이 있으면 범부이고 마음에 생과 멸이 없으면 범부가 아니며, 반야바라밀을 깨닫지 못했으면 범부이고 반야바라밀을 깨달았으면 범부가 아니며, 마음에 주관 · 객관이 있으면 범부이고 주관과 객관을 갖지 않고 있으면 범부가 아니다.'

③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의 네개를 아인사상(我人四相) 또는 사상(四相)이라 하는데, 이것은 중생들이 범하기 쉬운 집착상을 경계하는 말이다.
아상(我相)은 '나'라는 相에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데 오온(五蘊)이 가합하여 이루어진 가변의 존재인 자기 자신을 마치 무슨 실재가 있고 또 "내가 있다"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견해이다,
인상(人相)은 아상처럼 집착하는 모습의 하나인데, '남'을 의식하는 데에서 오는 행동과 생각을 말한다.
중생상(衆生相)은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등 현실주의적인 행동이나 상념의 집착을 규정하는 말이며,
수자상(壽者相)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길든 짧든간에 일정한 수명을 하늘에서 받아 그 수명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의 집착을 말한다.

26.장
① 전륜성왕(轉輪聖王) :
원어는 차크라바르티 라자(Cakra-varti-raja).직역하면 '수레를 굴리는 왕'이라는 뜻으로 전륜왕이라 의역한 것이다.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비행황제(飛行皇帝)라고도 한다.
전륜왕의 몸에는 부처님과 처럼 32상을 갖추고 있고, 그가 즉위하는 때에 하늘로부터 윤보(輪寶; Cakra)를 감득하여 그것을 굴려서 온 천하를 정복한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대망의 왕이다. 윤보(輪寶)란 일종의 무기이며, 금 · 은 · 동 · 철의 네 개가 있다.

금륜왕(金輪王)은 수미 4주(須彌四洲)를 다스리고,
은륜왕(銀輪王)은 동 · 서 · 남의 3주를,
동륜왕(銅輪王)은 동 · 남의 2주를,
철륜왕(鐵輪王)은 남섬부주(南贍浮洲)의 1주를 다스린다고 한다.

전생에 큰 복을 닦은 탓으로 전륜성왕이 되고, 32상을 갖추고 있으나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32상이 다만 색(모양)에 그치는 것이라서 이를 여래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참고/차이

② 모양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以色身 不能見如來) :
'모양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다' 는 말씀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제5.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으로서 여기서는 부처가 되려는 목표에 향하는 수행의 방법으로 겉모양으로서 부처를 보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라는 의미이며,
다음 제10.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의 후반부로 여기서는 부처님이 '부처가 되신 것은 겉모양을 여의었다'는 뜻이요,
셋째 제20.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으로 여기서는 '모두 갖춘 몸매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하여 참 법신에 의해 거짓인 겉모양이 나타났다는 뜻이고,
여기의 제26.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에서는 '겉 모양으로 참 부처를 찾을 수 없다' 고 하는 뜻으로 말씀하고 있다.

③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의 32상외에 80종호(種好) 또는 80수형호(隨形好)라고 하는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히 훌륭한 것 80가지가 부처님의 몸에 있다고 한다. 즉 손톱이 좁고 길고 엷고 구리빛 윤이 나는 것, 신통력으로 스스로 유지하고 남의 호위를 받지 않는 것 등등이다. 이것은 經, 論에 따라서 해석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80종호 내용보기
또 32응신(應身)이라고 하는 것도 있다. 곧 관세음보살이 관자재 대자대비(觀自在 大慈大悲)하여 중생을 구하기 위해 32가지 몸으로 변하여 나타난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데, 중생을 제도하는 상대에 따라서 혹은 부처로, 혹은 천대장군(天大將軍)으로,
혹은 왕으로, 혹은 재상으로, 혹은 장자(長者)로, 혹은 비구로, 혹은 비구니로, 혹은 우바새· 우바이로, 용으로, 야차로, 선녀로, 미녀로, 동자로, 사미승으로, 사자로, 심지어는 비인(非人)으로까지 32形으로 변신한다는 것이다.

27.장
①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뇩多羅三먁三菩提) :
직역하면 '이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이란 뜻이고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또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한역한다.
범부는 불각(不覺)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무상정등정각은 미계(迷界)를 여의고 각지(覺智)가 원만하여 일체의 진상을 모두 아는 부처님의 전지전능한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뇩다라는 '위가 없다', 즉 무상(無上)이고, 삼먁은 '바르고 평등하다'는 뜻으로 정등(正等)이고, 삼보리는 세 가지의 道, 즉 성문보리(聲聞菩提) · 연각보리(緣覺菩提) · 제불보리(諸佛菩提)를 말하는데, 모든 진리를 똑바로 밝게 깨달은 부처의 마음(正覺)을 뜻한다. 따라서 부처님의 무상승지(無上勝地)를 말하는 것이다.

② 흔히 범부들은 모든 법에 대해서 실아(實我)가 있고 실법(實法)이 있다고 생각하나, 실은 인연화합으로 생긴 '가법(假法)'이므로 따로 법이라 할 것이 없다. 이것을 법무아(法無我)라 한다.
무아법(無我法)은 내가 없다고 하는 법이니, 법 또한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만상은 법아(法我)가 있다고 하는 생각은 그릇된 생각이므로 모든 법은 전부 무아라 했다. 또한 맑고 깨끗한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실상(實相)을 보게 된다. 이렇게 거짓이 없고 참되기 때문에 최상의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범부


③ 구족상(具足相) :
(具足色身:색신을 다 갖추고), (具足諸相:모든 상을 다 갖추고)
'색신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함은 부처님의 체질에서 보통 사람보다 더욱 잘 생긴 부분 여든 가지를 골라서 이르는 말이고, '모든 상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함은 부처님의 체질에서 특수하게 뛰어난 부분 서른 두 가지를 골라서 이르는 말이니, 이 색신과 상을 합쳐 상호(相好)라 한다.

28.장
① 일체법이 무아임을 알고(知一切法無我) :
일체법(一切法)이란, 일체 만물이 갖는 진리와 같은 것이다. 이 일체법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무아를 알아야만 한다.
일체법에서 무아임을 알았으면, 인(忍)을 얻을 수 있다. 인(忍)이란 요약해서 말하면, 시기하지 않는 마음(瞋心)을 내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진리에 안주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일체의 법을 인정하면 자연히 무아임을 알게 되며, 따라서 인(忍)을 얻어 행(行)을 성취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일체법(一切法)

② 인(忍) :
원어 크산티(Ksanti)의 의역. 인내, 즉 참는 것 외에, 인가결정(忍可決定)의 뜻으로도 쓰인다.
인가결정이란 인정하여 확실하게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뜻에 맞지 않는 환경이나 어떤 사건에 대해 성내거나 불쾌한 마음을 내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것, 또는 도리에 마음을 순응시키어 편안한 마음으로 머물러, 외부에서 오는 어떠한 조건에 의해서도 동요하지 않는 마음을 말할 때도 있고, 또
확실히 인정하여 확정한다는, 인가(印可)의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인에는 2인(二忍), 3인(三忍), 4인(四忍), 5인(五忍), 6인(六忍), 10인(十忍), 14인(十四忍) 등의 여러 가지가 있다.
2인(二忍)은 중생인이라고 하며, 일체 중생에게 성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보복하지 않고 참는 것을 말한다. 2忍이란 말은 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의 두 가지를 뜻하는 것이다.
생인(生忍)은 남이 나를 욕하고 때리고 해롭게 해도 성내지 않고 잘 참는 것이며,
법인(法忍)은 추위 · 더위 · 굶주림 · 생로병사 등에 대해 번민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잘 참고, 희노애락 등 정신적인 번뇌를 잘 참아내는 것이다.
3인(三忍)은 내원해인(耐怨害忍) · 안수고인(安受苦忍) · 관찰법인(觀察法忍)의 세 가지를 말하고,
4인(四忍)은 무생인(無生忍) · 무멸법인(無滅法忍) · 인연인(因緣忍) · 무주인(無住忍)의 네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무생인(無生忍)은 일체의 법은 모두 다 자성이 공적(空寂)해서 본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깨우쳐서 보살의 계율을 깨뜨리지 않고 참아가는 것이다.
무멸법인(無滅法忍)은 일체의 법은 본래 생기는 법도 없고 또한 멸하는 법도 없는 것이라는 진리를 몸소 인정하면서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인연인(因緣忍)은 일체의 법은 모두 다 인연으로 해서 생기는 것이며,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보살이 이 법을 몸소 인정하게 되면 금계(禁戒)의 죄를 능히 초월한다.
무주인(無住忍)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5인(五忍)은 복인(伏忍) · 신인(信忍) · 순인(順忍) · 무생인(無生忍) · 적멸인(寂滅忍)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대지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다시 또 인을 행하는 사람은 우선 때리거나 욕하는 자를 보면,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같이 하여 그 성내거나 욕하는 것에 더욱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이것을 사랑함이 더욱 더 깊어진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를, '저 사람이 나에게 악을 행하는 그 업인연은 전세에 내 스스로가 지은 것이다. 지금 마땅히 이것을 받아야 한다. 만일 성을 내면 과보를 더욱 지어 나중에도 또 苦가 된다. 언제 이것을 벗어날 것인가 ? 만일 이것을 참는다면 苦를 떠날 수 있으리라. 이 때문에 성을 내서는 안된다' 라고.

이와 같이 모든 인연으로 성냄을 힐책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중생인(衆生忍) 가운데로 들어선다. 들어서고 나서는 이러한 생각을 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에는, 아도 없고 아소(我所)도 없다. 단지 제법이 화합하여 거짓으로 중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수많은 관목인(關木人)의 행위와 같이 능히 동작한다 하더라도 안으로 主가 없다.
身도 또 이와 같아서 단지 피골(皮骨)이 상지(相持)하고 심풍(心風)이 바뀜에 따라 생각들도 생멸하여, 무상공적(無常空寂)으로서 짓는 자도 없다. 본래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이다. 단 진도허광(瞋倒虛狂) 때문에 범부의 마음에 집착함이 있을 뿐이다>라고. 이와 같이 사유하고 나면, 중생은 없다.
중생이 없으면 이미 법이 속할 바가 없다. 단지 인연이 화합할 뿐으로 자성(自性)도 없다. 중생이라는 것은 화합을 견고히 하여 중생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법도 또한 그렇다. 이와 같이해서 법인(法忍)을 얻는다. 이 중생인과 법인을 얻기 때문에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대정신수대장경' 25, p.281 上 中]

③ 복덕(福德) :
복은 복리, 善을 수행하는 이를 도와 복되게 하는 것이고, 德은 얻었다는 뜻이다. 즉 복을 얻었다는 뜻으로 복덕이라 한다.

29.장
①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거나(如來 若來若去若坐若臥) :
여기서는 부처님의 행주좌와(行住坐臥)를 말하는 것인데,
行은 오고 가고 다니는 것, 住는 머무르는 것, 坐는 앉는 것, 臥는 누워서 다리를 뻗는 것인데, 이것을 부처님의 사위의(四威儀)라고 한다.
이 구절은, 겉모습에 나타난 사위의(四威儀)의 동작을 가지고 진정한 여래로 속단하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즉 색신(色身)으로서 - 세존의 육체나 모습을 가지고서, 여래의 법신(法身)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여래는 가고, 오고, 앉고, 눕는 것, 즉 相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그것이 여래를 떠나서 있지도 아니함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30.장
① 그것이 곧 티끌들이 아니라, 그 이름이 티끌들이다(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티끌이라고 해서 티끌이 아니라 하셨다.
즉 티끌(微塵)이 모여서 세계를 만들고, 세계를 부수어 버리면 티끌들이 되는 것이니 곧 티끌이 아니며, 또한 세계 역시 세계라 할 수가 없다. 그 이름이 티끌이요, 그 이름이 세계일 뿐이다.
그러니 티끌이 티끌일 수 없고, 세계가 세계일 수 없는 것이다. 여기 티끌들이 뭉쳐서 된 것이 세계라고 한다면, 그것은 '탐심(貪心)과 진심(瞋心)과 치심(癡心)'인 삼독(三毒)이 뭉치어 된 세계일 것이다.
중생들이 부처님의 가리침을 잘 지키어 수행하고 깨닫는다면 삼독(三毒)은 곧 티끌(微塵)이 되어 없어져 버리게 됨이다.

② 일합상(一合相) :
원어는 핀다 그라하(Pi a-graha). 모든 것을 한 개의 전체라 보고, 그것을 실체인 양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여러 인연으로 말미암아 티끌들이 모여서 물질계를 형성하거나 또는 오온(五蘊)이 한때 가화합(假和合)하여 사람이 되는 것 등을 말하는 것이다
나집역본에서 相은 想으로 되어 있어서 執의 의미를 띠고 있다.
이 일합상이라는 번역은 나집역본과 유지역본 뿐으로서, ㉠ 진제는 취일집(聚一執), ㉡ 직본(直本)은 박취(搏取), ㉢ 현장은 일합집(一合執), ㉣ 의정은 취집(聚執)으로 번역하고 있다.
일성집(一性執; ekatva-graha)이 하나 하나를 실유(實有)로서 고집하는데 대해,
일합집(pinda-graha)은 모두를 하나의 전체로 보고, 그것을 실유로서 고집하는 것을 의미한다.

③ 범부(凡夫) :
직역하면 '따로 따로 태어나서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지혜가 없어서 진리를 증득하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衆生)을 말하는 것으로 성자(聖者)의 반대되는 말이다.
이 말은 우자(愚者)로도 번역되며, 불교에서 '번뇌에 얽매어 생사를 초월하지 못 한채 미계를 헤매고 있는 어리석은 일반 사람'들을 비유하고 있는 말로, 부처의 이치를 올바르게 깨닫지 못한 자를 뜻하고, 그 깨우친 정도에 따라서 저하(底下) · 범외(凡外) · 범내(凡內)의 세 단계로 나눈다.
범부에 대해 육조(六祖)대사의 해석을 빌면,
나(我)와 남(他)이 있으면 곧 범부이고, 나(我)나 남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범부가 아니며, 마음에 생과 멸이 있으면 범부이고 마음에 생과 멸이 없으면 범부가 아니며,
반야바라밀을 깨닫지 못했으면 범부이고, 반야바라밀을 깨달았으면 범부가 아니며, 마음에 주관 · 객관이 있으면 범부이고, 주관과 객관을 갖고 있지 않으면 범부가 아니다.

31.장
① 법상을 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不生法相) :
법상(法相)이라는 것은 우주 만유의 본체보다도 현상을 세밀하게 분류,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불생법상(不生法相)이라는 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사람은 일체법(一切法)에 있어서, 마땅히 세존이 설하는 '아견 · 인견 · 중생견 · 수자견'의 가르침을 크게 파악하여 이를 바르게 알며, 믿고 이해하고, 법상에 대한 그릇된 고집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즉 '아견 · 인견을 버려야 하며, 중생상에서 벗어나야 하며, 수자상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②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의 네개를 아인사상(我人四相) 또는 사상(四相)이라 하는데, 이것은 중생들이 범하기 쉬운 집착상을 경계하는 말이다.
아상(我相)은 '나'라는 相에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데 오온(五蘊)이 가합하여 이루어진 가변의 존재인 자기 자신을 마치 무슨 실재가 있고 또 "내가 있다"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견해이다.
인상(人相)은 아상처럼 집착하는 모습의 하나인데, '남'을 의식하는 데에서 오는 행동과 생각을 말한다.
중생상(衆生相)은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등 현실주의적인 행동이나 상념의 집착을 규정하는 말이며,
수자상(壽者相)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길든 짧든간에, 그 일정한 수명을 하늘에서 받아 그 수명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의 집착을 말한다.

32.장
① 보살심(菩薩心) :
보리심(菩提心)과 같은 말로서 보살의 마음을 말한다.
보살은, '중생을 다 제도하리라, 번뇌를 도두 다 끊으리라, 법문을 모두 다 배우리라, 불도를 모두 다 깨우치리라'라는 내용을 가진 사홍서원(四弘誓願)을 갖고 있다.
즉,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보살 가운데 지장보살처럼 중생의 제도를 위하여 영원히 성불하지 않겠다는 보살도 있다. 따라서 보살심은 이렇게 가이 없는 대자대비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② 꿈이요, 허깨비요, 물거품이요, 그림자 같은 것, 이슬 같고 또 번개와도 같은 것,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
산스크리트 경을 보면, 이 게구(偈句)의 그림자(影) 대신 '구름(雲) · 별(星) · 눈(目) · 등불(燈火)' 등이 들어가 있어 9개의 비유로 되어 있다. 이 게구는 금강경에 있는 게구 중 가장 뛰어난 명구로 손꼽히고 있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금강경 말씀이 바로 이 게구에 모두 집대성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③ 우바새(優婆塞) :
원어 우바사카(Up saka)의 음역으로 우바색가(優婆索迦) · 우바사가(優婆娑迦)라고 음역하기도 허며, 줄여서서 '우바색'이라고 읽기도 한다. 한역으로 근선남(近善男) ·청신사(淸信士)라고 의역한다.
우바새란 출가하지 않고 속가에 있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남자를 말한다. 또한 삼귀계(三歸戒)를 받고 오계(五戒)를 지키며, 선사(善士) · 선인(仙人)을 섬기는 사람을 우바새라 했다고 한다. 삼귀계는 불문에 처음 귀의할 때 하는 의식으로 불(佛) · 법(法) · 승僧)에 귀의함을 말한다.

④ 우바이(優婆夷) :
원어 우바시카(Up sika)의 음역. 우바사(優婆斯)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한역으로는 근선녀(近善女), 청신녀(淸信女)라고 번역한다. 우바이란 출가하지 않고 세속에 있으면서 불법을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여자를 말한다.
우바새처럼 삼귀계를 받고 오계를 지키는 여성을 의미했다고 한다.

⑤ 한결같아서 움직이지 않는다(如如不動) :
찬술 하권<대정신수대장경 33, p.225 上>에서는,
'여여부동(如如不動) 중에서 뒤의 如는 진여(眞如)이고, 앞의 如는 비유를 나타내는 것이다. 화신(化身)이 설법할 때, 유위상(有爲相)을 취하지 않고 진여의 심연으로서 움직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길장도 똑같이, '뒤의 如자는 법성의 如와 같다. 동행자는 마땅히 법성(法性)의 如와 같이 하여, 마음에 동념(動念)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하고 설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금강반야소 제4권, 대정신수대장경 33, p.123 下]

⑥ 천인(天人) :
원어 아프사라(Apsara)의 음역. 비천(飛天), 낙천(樂天)이라고도 하는데, 하늘의 유정(有情)들을 가리킨다. 하늘위를 날아다니며 음악을 연주하고 하늘에 꽃을 뿌리기도 하며 지냄으로써, 세간(世間)의 苦를 벗어나 항상 즐거운 경계에 서 있지만, 그 복이 다하면 5가지의 괴로움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것을 천인오쇠(天人五衰)라고 한다.

① 화관(花冠)이 저절로 시들고,
② 옷에 때가 끼고,
③ 겨드랑이에 땀이 나고,
④ 제(자신의) 처지가 즐겁지 않고,
⑤ 왕녀가 배반한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천인들을 형상화한 것으로는, 경주국립박물관에 있는 봉덕사 성덕대왕신종, 속칭 에밀레종에 새겨져 있는 비천상(飛天象)을 볼 수 있다.

⑦ 진언(眞言) ;
나모바가 발제 발라양바라이다예 암 이리저이실리수로다 비사야 비사야 사바하 원어 만트라(Mantra)의 의역. 이 진언이 있는 것은 나집역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