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맞은 ‘조선총독부 문양’ 봤소?

2008. 6. 11. 02:43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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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이 대통령 맞은 ‘조선총독부 문양’ 봤소?

2008년 6월 10일(화) 오후 5:53 [한겨레신문]



[한겨레] 한일 정상회담의 ‘굴욕’ 제기한 조형균 관장


도요토미 문장 계승 총리실 곳곳서 사용
“의도성 다분…우리 역사의식 깨우쳐야”


“아, 저런! 저럴 수가 있나!”

지난 4월21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기자회견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던 조형균(79·오른쪽 사진) 계성종이역사박물관 관장은 깜짝 놀랐다. 그를 놀라게 만든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 앞에 각기 놓인 연탁 앞면에 붙은 일본 총리실 마크(위 사진). 그것은 일제 식민지 시절 자주 봤던 ‘고시치노 기리’(五七桐)였다.

“내가 잘못 본 것인지는 몰라도 예전 한국 대통령 방일 때의 기자회견장 연단에 그 마크가 등장한 적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자리에 등장할 수 있나. 그날 바로 일본인 친구에게 국제전화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했더니 그분도 놀라면서, 아 그래요? 몰랐는데요, 하더니 거 다분히 의도적인데요, 그러는 거예요.”

문제의 문장은 큼직한 오동잎이 아래로 세 갈래, 그 위에 오동꽃 세 송이가 나란히 솟아 있는 형상인데. 세 송이 꽃 중 가운데 꽃은 꽃잎을 모두 7장, 양옆의 꽃들은 각각 5장씩 달고 있다.

지난 8일 연세대 후문 쪽에 있는 김옥길기념관 지하 1층 ‘삭개오 작은 교회’(담임목사 김경재 전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의 신도 40여명 앞에 선 조 관장은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서게 됐는지 한국 기독교사의 선구자 김교신과 유대인들의 철저한 역사의식까지 엮어 차분하게 설명했다. 문제의 마크와 기자회견 장면 사진까지 준비해 온 그는 말했다.

“여러분, 이 마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건 조선총독부 마크입니다. 본래 이 마크는 또 누구의 것인지 아십니까? 마크의 유래가 더 중요합니다. 이 마크는 바로 400여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켜 온 조선을 초토화하고 수많은 인명 살상과 문화재 약탈을 하고 심지어는 코까지 베어다가 소금에 절여 가져갔던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장입니다.”

조 관장은 그러면서 1910년 8월29일(국치일) 밤 조선 병탄의 주인공들이 벌인 자축연 얘기를 꺼냈다. “당시 데라우치 마사타케 초대 총독이 축배를 들며 즉흥시를 읊었어요. ‘가토와 고니시가 세상에 살아 있다면/ 오늘 밤 떠오르는 저 달을 어떻게 보았을꼬.’ 이에 곁에 있던 이토 히로부미의 심복이 받아 읊었습니다. ‘도요토미를 땅속에서 깨워 보이리라/ 고려산 높이 오르는 일본 국기를.’” 가토와 고니시는 임진왜란 때의 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다. 마침내 도요토미의 꿈을 300년 만에 자신들이 이뤘다는 감개를 읊은 시다.

“모르긴 해도 여태까지 안 그러다가 정색을 하고 이 마크를 살짝 집어넣었다면, 혹은 시치미를 떼고 그랬다면, 미리 우리의 새로 탄생한 정권의 면면들을 심리분석하고 그 컬러를 짚어가지고 요렇게 간교를 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의 경우에 발뺌할 구실을 반드시 만들어 놓고 그럽니다. 그건 우리가 옛날부터 왕실에서 써 내려오던 전통무늬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그 문양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장이고 조선총독부도 사용했으며, 지금 현재 일본 총리실이 그대로 쓰고 있다. 일본은 재일동포가 주 대상인 외국인등록증에도 지문날인을 감추는 가리개처럼 비닐커버에 이 마크를 박아 넣었으며, 대마도에 있는 비운의 덕혜옹주 기념관에도 같은 마크를 달아 놓았다. 이런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별로 없다.

“설사 다른 행사 때는 몰라도, 우리 대통령이 갔을 때는 그것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게 조 관장 생각이다. “적어도 우리한테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유대인과 우리의 차이는 그들의 철저한 역사의식”이라는 조 관장의 역사 일깨우기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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