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山 / 干寶
진여의 달은 어디서나 빛나고
실상은 언제나 꽃이 향기를 품고 있다
물을 한 움큼 쥐면 달은 손안에 있고,
꽃을 희롱하면 향기는 옷에 밴다.
掬手月在水 弄花香滿衣 (국수월재수 롱화향만의)
이 말은 신선과 괴이한 일에 관심을 가졌던 중국 동진(東晉) 때의 간보(干寶)
가 지은'춘산(春山)'이란 시의 한 구절인데, 남송 때의 허당 선사 어록인
<허당록>과 <선림구집>에도 나온다.
이 구절은 두 손으로 물을 드면 달 그림자가 손바닥 안에 분명히 머물고, 꽃
을 희롱하면서 놀면 좋은 꽃 향기가 옷에 깊이 배어든다는 의미이다. 달이
손바닥 안에 머물고 꽃 향기가 옷에 깊이 배어든다는 것은 자기가 물이나 꽃
자체와 하나되는 것이다.
이를 주관과 객관, 나와 사물이 일체가 된다고 해서 '심경일여(心境一如)'
'물아일회(物我一會)'라고 한다. 자기와 타자, 마음과 사물이 별개로 존재하
면서 대립하고 있을 때는 진실성을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상대적인 관념을
없애 한 물건이 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책 읽을 때는 책 자체에 투철하고,
일할 때는 일 자체에 투철하고, 경기할 때는 경기 자체에 투철해야 한다.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하나가 되면 대립관념이 없어지면서 새로운 심경이 전
개되는 것이다. 만약 삼매의 경지에 들지 못한다면 불성을 체득해 본래의 자
기를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주염계에게 창가의 풀을 베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주염계는
"내 의사는 같으니까."라고 답했다. 이는 주염계의 깨달은 경지로서 객관적
대상과 하나된 '심경일여' '물아일체'의 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서 마음껏 희희낙락하며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자기
가 장자임을 잊어버렸다는 것도 그가 나비 자체와 하나된 일여(一如)의 세계
에 있기 때문이다. 소위 선에서 말하는 '무'에 투철하고, '무'와 하나가 된 것
이다.
이처럼 마음을 집중하여 잡념이 끼지 않도록 하는 공부가 중요한데, 선에서
는 이를 '수일무적(守一無適:하나를 지켜 평등하다)'이라고 한다.
또 이 선어는 천지간의 사물 모두가 불심.불성의 현현이므로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물을 뜨는 거기에 불시이 나타나고 꽃을 희롱
하는 거기에 불도가 현현하는 것이다.
이 선어의 앞 구절을 "진여의 달은 어디서나 빛난다."이고,
뒤 구절은 "실상은 꽃이 언제나 향기를 뿜고 있다."이다.
진리는 언제어디서나 자기주변에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이를 간과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진리가 깃들어 있는 사물자체가 돼서 외물(外物)에 마음을 빼앗기
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五燈會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