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마음의 문제다. 마음은 공적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공문(空門)이라 한다. ‘마음의 문으로는 들어가려 하지 않고 옛 종이인 경전만 읽은들, 언제 생사해탈을 하겠는가’라는 약간 조롱조의 시다. 그러나 아름답고도 귀감이 되는 이야기가 전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 당나라 때 복주의 고령사에 신찬(神贊) 스님이 있었다. 처음 출가하여 고향의 대중사라는 절에서 은사인 계현(戒賢) 법사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다가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 스님 문하에 가서 깨달음을 성취하고 돌아와서의 일이다.
말도 없이 예전처럼 시봉을 하면서 지내는데, 하루는 목욕하시는 은사스님의 때를 밀어드리게 되었다. 때를 밀다가 등을 두드리면서 문득 하는 말이, “법당은 참 좋구나. 그런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好好法堂 佛無靈驗).”라고 하였더니 은사스님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신찬은 다시, “영험도 없는 부처가 또한 방광은 할 줄 아는구나(佛無靈驗 也能放光).”라고 하였다.
좋은 법당이란 육신을 두고 말한 것이다. 영험이 없다는 것은 깨달음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방광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말을 하면 들을 줄 알고 꼬집으면 아픈 줄 아는 일이다. 은사스님은 어리둥절하였으나 무슨 뜻인지를 모른 채 며칠이 지났다.
그 후 어느 날 은사스님이 경전을 읽고 있는데, 마침 그 순간 벌 한 마리가 방에 들어와서 열려있는 문으로는 나가지 않고 종이 창문에 가서 부딪치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신찬 스님이 시를 한 수 읊었다. 그것이 위의 게송이다. 은사스님은 이 게송을 듣고 그 때서야 심상치 않은 상좌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신찬 스님은 행각(行脚)을 하면서 백장 스님 문하에서 눈을 뜨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현 스님은 곧바로 대종을 쳐서 대중들을 모으고 법석(法席)을 마련하였다. 상좌를 법상에 올려 앉히고 자신은 밑에서 제자가 되어 법문을 들었다.
신찬 선사는 의연히 법상에 올라 자신이 백장 스님에게 듣고 깨달은 “신령스런 광명은 홀로 빛나서 운운···.” 이라는 법문을 설하였다. 그 법문을 들은 은사 계현 스님은 그 자리에서 크게 깨달았다. 은사가 상좌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이룬 좋은 사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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