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제3권 15/16 보는 성품

2008. 7. 18. 11:3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능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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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 엄 경

    능엄경:제3권 15/16 보는 성품 아난아, 보고 깨닫는 것이 앎이 없어서 물질과 허공으로 인하여 생기나니 네가 지금 기타림에 있을 적에 아침에는 밝고 저녁에는 어두우며 설사 밤중이라도 보름달이 비출 때엔 환하고 그믐에는 어두운데 그 밝고 어두운 것들을 보는 것으로 인하여 분석하나니, 보는 것이 밝고 어두운 형상과 아울러 큰 허공과 똑같이 한 덩어리이냐, 한 덩어리가 아니냐? 혹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며 혹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느냐? 아난아, 저 보는 것이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큰 허공으로 더불어 본래 한 덩어리라면 밝고 어두운 두 가지 실체가 서로 없애서 어두울 적엔 밝음이 없어지고 밝을 적엔 어두움이 없어지리라. 만약 어둠과 한 덩어리라면 밝을 적에는 마땅히 보는 것이 없어질 것이며 반드시 밝음과 한 덩어리라면 어두울 적에는 마땅히 보는 것이 없어질 것이다. 보는 것이 없어지면 어떻게 밝음과 어두움을 보겠느냐? 만약 밝음과 어두움은 다르다고 할지언정 보는 것은 생기거나 없어짐이 없을 것인데 한 덩어리라는 말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이와 같이 보는 정기가 밝음과 어둠으로 한 덩어리가 되지 못한다면 너는 밝음과 어둠, 그리고 큰 허공을 여의고서 보는 것의 근원을 분석해 보아라. 어떤 모양이 겠느냐? 밝음을 여의고 어두움을 여의며 그리고 허공을 여의면 보는 것은 본래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이니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허공, 이 세 가지가 모두 다르다면 무엇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성립되겠느냐?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배치되는데 어떻게 같다고 하겠으며 세 가지를 다 여의면 본래 없는 것을 어떻게 다르다고 하겠느냐? 허공을 보는 것을 나눈다면 본래 한계가 없을 터이니 어떻게 같지 않다고 하겠으며, 어두움을 보고 밝음을 보아도 보는 성품이 변하여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시 자세히 살펴보아라. 미세하게 살펴서 자세히 관찰해 보아라. 밝음은 태양으로부터 오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 데서 오며, 통함은허공에 속하고 막힘은 대지로 돌아간다. 이와 같다면 보는 정기는 어디로부터 생기느냐? 보는 것은 깨달음이고 허공은 완고한 것이므로 화합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보는 정기가 어디서부터 저절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니라. 오묘하게 보고 듣고 아는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동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변두리가 없고 동요하지 않는 허공과, 동요하는 흙.물.불. 바람을 아울러 여섯 가지 원소라고 이름하나니, 그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기고 없어짐이 없느니라. 아난아, 너는 안타깝게도 네가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이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마땅히 이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을 관찰해 보아라. 생기더냐, 없어지더냐, 같더냐, 다르더냐, 생기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냐,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아니냐? 너는 일찍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보는 성품으로서 밝게 깨닫는 것과 깨닫는 정기로서 분명하게 보는 것은 깨끗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 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있으면서 중생의 마음을 따르고, 아는 바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이는 마치 하나의 보는 것이 우주를 두루 보는 것처럼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 보는 것, 접촉하는 것, 그리고 깨달아 아는 것이 밝고 오묘한 덕으로 우주에 두루하고 시방 허공에 원만한 것과 같으니 거기에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또한 그것은 업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으로서 다만 말로만 있다고 할 뿐 진실한 이치는 전혀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