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 엄 경
능엄경: 제4권 2/9 세계와 중생의 시초
깨달음의 밝음과 허공의 어두운 것이 서로 작용하여
요동하기 때문에 풍륜(風輪)이 생겨나서 세계를 잡아
지탱[執持]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공으로 인하여 흔들림이 생겨나고 밝은
것을 굳혀서 막힘이 이루어지나니 저 금은 보배는
밝은 깨달음이 굳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금륜(金輪)이 생겨서 국토를 보전하고 지탱
하는 것이며, 깨달음이 굳어져서 금은보배가 되고
밝음이 흔들려서 바람이 일어나나니 바람과 금이 서로
마찰하므로 불빛이 생겨 변화하는 성품이 되었으며,
금보(金寶)의 밝음이 윤택한 기운을 생기게 하고
불빛은 위로 치솟기 때문에 수륜(水輪)이 생겨 시방
세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불은 위로 오르고 물은 흘러 내려서 서로 발하여
굳어져서 젖은 곳은 큰 바다가 되고 마른 곳은 육지와
섬이 되었으니 이러한 이치로써 저 바다 가운데에서는
불빛이 늘 일어나고 육지와 섬 가운데에서는 강물과
냇물이 늘 흐른다.
물의 힘이 불보다 열세이면 맺혀서 높은 산이 된다.
그러므로 산에 돌이 부딪치면 불꽃이 일어나고 녹으면
물이 되며 흙의 힘이 물보다 열세이면 돋아나서 풀이나
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숲과 늪이 타버리면 흙이 되고 쥐어짜면
물이 된다.
서로 엉켜서 허망하게 발생하여 번갈아 서로 종자가
되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세계가 서로 이러지느니라.
또 부루나야, 밝은 것이 허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깨달음의 밝은 것이 허물이 되니 허망한 것이 이미
성립되면 밝은 이치가 이를 앞지르지 못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듣는 것이 소리를 벗어나지 못하며
보는 것이 색깔을 벗어나지 못하여 빛과 향기, 맛과
촉감 등 여섯 가지 허망함이 이루어지나니 그로
말미암아서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는 것이 나누어져서
같은 업장끼리 서로 얽히고 어울리고 떨어져서 변화를
이루느니라.
보는 것이 밝아서 빛이 발하고 밝게 봄으로 해서 생각이
이루어지나니 다르게 보면 미움이 생기고 생각이 같으면
사랑이 생겨서 그 사랑이 흘러 종자가 되고 생각을 받아
들여 태(胎)가 되어서 서로 어우러짐이 발생하게 되고
같은 업장끼리 끌어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그 인연으로 해서
*갈라람(羯羅籃)과 알포담(遏蒲曇) 등이 생기느니라.
태로 생겨나는 것과 알로 생겨나는 것, 습지에서
생겨나는 것과 화생으로 생겨나는 것이 제각기 응할
바를 따라서 알로 생겨나는 것은 오직 생각으로서만
생겨나고, 태로 생겨나는 것은 정(情)으로 인해 생겨나며,
습기로 생겨나는 것은 합하여 느낌으로서 생기고 화생은
떠나서 응함으로 생기니, 정(情). 생각[想]. 합(合).
떠남[離] 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것들이 다시 서로 변하고
바뀌어서 업을 받는데 그 업을 따라 혹은 날고 혹은
잠기고 하나니 그러한 인연으로 중생이 서로
계속되느니라.
부루나야, 생각과 사랑이 함께 맺어져서 애욕을 여읠
수가 없어서 모든 세간의 부모와 자손이 서로 낳아 끊이지
않나니 이러한 것들은 탐욕(貪慾)이 근본이 되느니라.
탐욕과 사랑이 함께 불어나 탐욕을 그치게 할 수 없으므로
모든 세간이 알로 생겨나는 것, 변화로 생겨나는 것,
습기로 생겨나는 것, 태로 생겨나는 것의 강하고 약한
힘을 따라 번갈아 가며 서로 잡아먹나니 이것들은 살생을
탐하는 것이 근본이 되느니라.
사람이 양을 잡아먹었을 경우 그 양은 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되어, 이러한 열 가지 생명을 지닌
무리들에 이르기까지 죽고 나고, 나고 죽고 하여 번갈아
가며 서로 잡아먹으면서 악업이 함께 생겨 미래의 세계가
다하도록 계속되나니 이러한 것 등은 도적질을 탐하는
것이 근본이 되느니라.
네가 나의 목숨을 저버리면 나는 너의 빚을 갚아서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겁을 지나도록 항상 나고 죽음에 머물며,
너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고 나는 너의 얼굴을 어여삐
여겨서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얽매이게 되느니라.
오직 살생과 도적질 그리고 음욕, 이 세 가지가 근본이
되나니 그러한 인연으로 업장과 과보가 서로
이어지느니라.
부루나야, 이러한 세 가지 뒤바뀜이 서로 계속되는 것은
모두 밝은 깨달음인 밝고 또렷하게 아는 성품이 분명하게
알므로 해서 생기는 현상이며 허망함을 따라 보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나니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하는 현상들이 차례로 변하여 흘러도 이 허망으로
인하여 끝나면 다시 시작하곤 하느니라.“
부루나가 말했다.
“만약 이 오묘한 깨달음과 본래 오묘한 각명(覺明)은
여래의 마음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것이거늘
까닭 없이 산과 강, 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생긴다고 하면 부처님께서는 지금 오묘하고
빈 명각(明覺)을 얻었사온데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의 작용이 있는 번뇌의 습기가 언제 다시
생기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혼미한 사람이 어떤 *취락(聚落)에서
남쪽을 북쪽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과 같나니 이러한
미혹은 미혹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냐, 깨달음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냐?”
부루나가 말했다.
“이렇게 혼미한 사람은 미혹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또한 깨달음으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미혹은 본래 뿌리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으며 깨달음이
미혹으로 생긴 것이 아닌데 어떻게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미혹한 사람이 정말로 미혹하였을 때에
어떤 깨달은 사람이 옳게 지시하여 깨닫게 한다면
부루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비록 미혹하였었지만 그 마을[聚落]에서
또 다른 미혹이 생기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루나야, 시방의 부처님도 역시 그러하니라.
그 미혹은 근본이 없어서 그 성질이 필경 빈 것이니
옛날에는 본래 미혹하지 않았었으나 미혹이 있는 듯한
데서 깨닫나니 미혹을 깨달아 미혹이 없어지면 깨달은
사람에게는 다시는 미혹이 생기지 않느니라.
또한 눈병이 난 사람이 허공의 꽃을 보는 것과 같아서
눈병이 없어질 것 같으면 그 꽃은 허공에서 저절로
없어지나니 갑자기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저 허공의
꽃이 없어진 빈자리에서 그 허공의 꽃이 다시 생기기를
기다린다면 너는 그러한 사람을 볼 적에 어리석다고
하겠느냐, 지혜롭다고 하겠느냐? “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거늘 허망으로 인하여 생기고
없어짐을 보는 것이니 그 꽃이 허공에서 없어짐을
보는 것도 이미 뒤바뀐 것인데 다시 나오기를 기다린다면
이는 실로 미친 바보짓입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미친 바보짓을 하는 사람에게 어리
석다느니 지혜롭다느니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면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의
오묘하게 깨달은 밝은 허공에서 어느 때에 다시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가 나옵니까?’라고 묻느냐?
또 마치 광석에 순금이 섞여 있다가 그 금이 완전하게
순금이 되고 나면 다시는 광석에 섞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마치 나무가 불에 타서 재가 되면 다시는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열반도
역시 그와 같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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