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심법요 (傳心法要)
3. 근원이 청정한 마음
본래 부처 자리에는 실로 그 어떤 것도 없다.
툭 트이고 고요하여 밝고 오묘하며 안락할 따름이다.
스스로 깊이 깨달으 면 당장 그 자리이므로 원만구족하여
다시 모자람이 없다.
설사 3아승지겁을 정진 수행하여 모든 지위를 거치더라도
한 생각 증득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원래 자기 부처를
깨달을 뿐 궁극의 경지에 있어서는 어떠한 것도 거기에
더 보탤 것 이 없다.
깨닫고 난 다음 지난 세월의 오랜 수행을 돌이켜 보면
모두 꿈속의 허망한 짓일 뿐이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내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에 있어서 실로 얻었다
할 것이 없느니라 만약 얻은 바가 있었다면
연등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수기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니
이것을 깨달음이라 한다'고 하셨다.
본래 청정한 이 마음은 중생의 세계와 부처님의 세계
산과 물, 모양있는 것과 없는 것 및 온 시방법계가 다 함께
평등하여 너다 나다 하는 생각이 없다
이 본래 근원이 청 정한 마음은 항상 두렷이 밝아
두루 비추고 있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見聞覺知]으로 마음을 삼고
그것에 덮이어서 끝내는 정교하고 밝은 본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에라도 무심하기만 하면
본 마음자리가 스스로 나타나서 밝은 햇살이 공중에
떠오르듯 시방법계를 두루 비추어 장애가 없게 된다
그러므 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일거일동을 마음이라고 오인하는 것이다
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텅 비워 버리면
마음 길이 끊기어서 어느 곳에라도 들어갈 틈이 없느니라.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곳에서 본래 마음을
인식할지라도 본래 마음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데에 도
속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떠나 있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가운데 다만 견해를
일으키거나 생각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그렇다고 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떠나 마음이나
법을 찾아서도 안되며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버리고 법을 취해서도 안된다.
그리하면 즉(卽)하지도 않고 여의지도[離] 않으며
머물지도 집착하지도 않으며, 종횡으로 자재하여
어느 곳이든지 도량 (道場)아님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부처님께서 마음 법을 전한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 밖에 따로 깨닫고 취할 만한 법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마음을 가지고 법을 찾으면서 마음이 곧
법이고 법이 곧 마음인 줄 알지 못한다 마음을 가지고
다시 마음 을 찾지 말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는 천만 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깨칠 날은 없을 것이다
당장 무심함만 같지 못할 것 이니 그 자리가 본래 법이다.
마치 힘센 장사가 자기 이마에 보배 구슬이 있는 줄을
모르고 밖으로 찾아 온 시방세계를 두루 다니며 찾아도
마침내 얻지 못하다가 지혜로운 이가 그 것을
가르쳐 주면 본래 구슬은 예와 다름이 없음을
보는 것 과 같은 일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도
자기 본심을 미혹하여 그것이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찾아다니면서 의식적으 로 수행을 하며
차례를 밝아서 깨달으려고 하지만 억겁 동안
애써 구한다고 해도 영원히 도를 이루지 못할터인즉
당장 무심함만 못하다
일체의 법이 있다 할 것도 얻었다 할 것도 없고
의지할 것 도 머무를 것도 없으며 주관이니 객관이니
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아야 한다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그 자리가 바로 깨치는 자리다
그때 가서는 다만 본래 마음인 부처 를 깨달을뿐
많은 세월을 거친 노력은 모두 헛된 수행이다
마치 힘센 장사가 구슬을 얻은 것은 자기가 본래
갖고 있던 구슬을 얻은 것일 뿐 밖으로 찾아다녔던
노력과는 상관이 없 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내가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를 실제로는 얻었다 할 것이
없으나 사람들이 믿 지 않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에
다섯 가지 눈[五眼]과 다섯 가 지 말[五語]로써
끌어다 보였노라
이것은 진실되이 허망하지 않은 것이니
이것이 맨 으뜸되는 뜻의 이치[弟一義諦]이니라'
고 하셨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