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심법요 / 5.허공이 곧 법신

2008. 7. 23. 11: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전심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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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법요 (傳心法要)

    5.허공이 곧 법신 팔만 사천 법문은 팔만사천 번뇌를 치료하는 것으로서 다만 대중을 교화 인도하는 방편일 뿐 일체 법이란 본래 없다 그러므로 여의는 것이 곧 법이요 여의줄 아는 이가 곧 부처 이다 일체 법을 여의기만 하면 얻을 만한 법이 없으니 도를 배우는 사람이 깨닫는 비결을 터득하고자 한다면 마음에 어 느 것이라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한 비유가 바로 이것이다 법신이 곧 허 공이며 허공이 곧 법신인데도 '법신이 허공계에 두루하고 있 다'고 하면 사람들은허공 가운데에 법신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법신 그대로가 허공이며 허공 그대로가 법신임을 모른다 만약 결정코 허공이 있다고 한다면 법신은 허공이 아 니다 그렇다고 결정코 법신이 있다고 한다면 법신이 허공이 아니다 다만 허공의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허공이 곧 법신 이니라. 법신의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법신이 곧 허공이니라 허공과 법신은 전혀 다른 모양이 없으며 번뇌와 보리도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이니 일체의 모양을 여윔이 곧 부처이니라. 범부는 경계를 취하고 도를 닦는 사람은 마음을 취하나니 마음과 경계를 함께 잊어야만 참된 법이다 경계를 잊기는 오 히려 쉬우나 마음을 잊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들이 마음을 감 히 잊어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공(空)에 떨어져 부여 잡을 바 가 없을까 두려워해서인데 이는 공이 본래 공이랄 것도 없 고 오로지 한결 같은 참된 법계[一眞法界]임을 몰라서 그런 갈 견해이니 밖으로 경계를 좇으면서 그것을 마음이라고 잘 못 알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것은 도둑을 제자식으로 잘 못 아는 격이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계.정.혜를 세워 말씀하 신 것인데 애초부터 번뇌가 없다면 깨달음인들 어디 있겠느냐?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일체법을 말씀하신 것은 일체의 마음을 없애기 위함이로다 나에게 일 체의 마음이 없거니 일체 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셨 다. 본래 근원이 청정한 부처에다가는 다시 어떤 것도 덧붙이 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허공이 수많은 보배구슬로 장엄 할지라도 마침내 머무를 수 없는 것과 같다 불성(佛性)도 허 공과 같아서 비록 무량한 공덕과 지혜로써 장엄한다 하더라 도 마침내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본래 성품이 미혹되 어 더더욱 보지 못할 뿐이다. 이른바 심지법문(心地法門)이란 만법이 이 마음을 의지하여 건립되었으므로, 경계를 만나면 마음이 있고 경계가 없으 면 마음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깨끗한 성품 위에다가 경계에 대한 알음알이를 굳이 짓지 말라 또 '정혜(定慧)의 비추는 작용이 역력히 밝고 고요하면서도 또렷하다[寂寂惺惺]'든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 [見聞覺知]'는 것은 모든 경계 위에서 알음알이를 짓는 것이니 이 말은 임시로 중하근기의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몸소 깨닫고자 하는 사 람은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것은 모두 경계의 법이므로 유견(有見)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일체 법에 대해서 있다거나 없다는 견해를 짓지만 않으면 곧 법을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