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法句經) - 02. 교학품(敎學品)

2008. 8. 1. 11: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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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구경(法句經) - 02. 교학품(敎學品)[29장]

  

제27장:

여이후언 사불강양 법설의설 언이막위

慮而後言 辭不强梁 法說義說 言而莫違

 

깊이 생각한 뒤에 비로소 말하되 그 말은 언제나 거칠지 않고

법을 설명하고 이치를 설명하되 말한 것은 행하여 어기지 말라

 

제28장:

선학무범 외법효기 견미지자 계무환고

善學無犯 畏法曉忌 見微知者 誡無後患

 

잘 배워서 어기지 않고 법을 두려워 꺼릴 줄 알며

그윽한 것을 보아 아는 사람은 언제나 경계하여 뒷걱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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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범부중생들은 이것이다 하면 이것에만, 저것이다 하면

저것에만 치우쳐서 양 극단적인 이해와 생각에 머물기 쉽다.

깊은 사유 없이 중관의 대승료의한 도리를 이해하고 설명 하기는

쉬운 것이 아니며. 또한 말과 행동이 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진실로 대인적인 수행의 덕목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 조금 알고 이해한 것을 다 안 것처럼 주장을 펴고

스스로는 온갖 모순된 행을 자각하지 못하면서도 자기주장에

비판적이면 거칠게 반박하고 그럴듯한 괴변으로 자기합리화

할려고 한다. 

 

한점의 의혹도 없는 진리를 논하고 알고자 할 진데 어찌

그럴 수 있겠나. 그것은 진실로 세속적이며 자신의 수준과

한계를 망각한 토론의 천박성을 나타내는 행동이며.

의롭지 못한 행동이다.

 

세속의 미혹한 범부가 최상의 지혜인 무상정각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지식이 필요하다. 마치 먼길을 떠나는 나그네가

주소나 지도가 필요하듯이, 거친 바다를 건널 사람이 

큰 배와 항해 기술이 필요하듯이 완전한 배움과 이해를 얻기

전에는 완벽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요. 진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배우고 �힌다는 자세로 자기가 아는

만큼에 대한 한계를 자각하고, 정법 료의만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곧 궁극적인 절대적 결론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반론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증산만에 머물려서도 않될것이다.

 

위에서 부처님은

“잘배워서 어기지 않고 법을 두려워 꺼릴 줄 알며 그윽한 것을 보아

아는 사람은 언제나 경계하여 뒷걱정이 없다고“했는데, “잘 배워야

한다”는 것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일체의 도를 잘 배워야 한다는 것이고

부처님의 도란 곧12연기. 오온. 사제. 37조도법을 말하는 것이며,

“어기지 않고 법을 두려워 꺼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불법(법=12연기. 오온. 사제.팔정도. 37조도법)을 수행하지 않고

어긴다는것은 결국 생사에 잡염(雜染)되어 윤전(윤회 전생)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불법을 잘 배워 언제나 생사에 물들어 윤회에 빠질까 경계하여

방일 하지 않고 꾸준한 수행으로 완전한 해탈을 이루게 되면

다시는 생노병사의 고해에 윤전(輪轉)될 뒷걱정이 없게 된다는

방일 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경책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보길 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