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록 시중 3-3

2009. 1. 22. 00:0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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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馬祖錄 시중(示衆) 3-3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도(道)는 닦을 것이 없으니 물들지만 말라, 
무엇을 물들음이라 하는가. 
생사심으로 작위와 지향이 있게 되면 모두가 물들음이다. 
그 도를 당장 알려고 하는가. 
평상심(平常心)이 도이다. 
무엇이 평상심 이라고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取捨)가 없고, 
단상(斷想)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는 것이다. 
경에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범부의 행동도 아니고 성현의 행동도 아닌 
이것이 보살행이다.' 
지금 하는 일상생활과 인연따라 중생을 이끌어주는 
이 모든 것이 도(道)이니, 
도가 바로 법계(法界)이며 
나아가서는 향하사만큼의 오묘한 작용까지도 
이 법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심지법문을 말하며, 
무엇 때문에 다함 없는 법등(法燈)을 말하였겠는가. 
그르므로 일체법은 모두가 마음법이며, 
일체의 명칭은 모두가 마음의 명칭이다. 
만법은 모두가 마음에서 나왔으니 
마음은 만법의 근본이다

경에서도 
'마음을 알아 본원(本源)이 통달하였으므로 
사문(沙文)이라한다'고 하였으니, 
이 본원자리에서는 명칭도 평등 
하고 의미도 평등하며 일체법이 다 평등하여 
순수하여 잡스러움이 없다. 
만일 교문(敎門)에서 시절따라 자유롭게 
법계를 건립해 내면 모조리 법계이고, 
진여(眞如)를 세우면 모조리 진여이며,
이치(理)를 세우면 일체법이 이치이며, 
현상(事)을 세우면 일체법이 현상이 된다. 
하나를 들면 모두 따라와 이사(理事)가 다름이 없이 
그대로 오묘한 작용이며, 더 이상 다른 이치가 없다. 
이 모두가 마음의 움직임이다. 

********원오당 한소리******** 평상심이 도다(平常心是道)라고 하셨다. 그러나 믿지 아니함으로 경에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인용하였다. 모든 것은 다 마음의 다른 이름이라고. 이것을 명색(名色)이라고 한다. 즉 사람이 평생을 배우고 익히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이 다 형상의 이름을 외우고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형상은 이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린 이 명색에 빠져 이름만 들어면 그것이 실지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 나타난 한 마음을 마음이 아니라 색이라 하며 안다고 이름을 붙여 명색에 빠져 내 마음을 잃어 버린다. 그래서 이름과 형상에 빠지지 않고 모든 이름은 이름일 뿐이고 어느 것이든 다 내마음의 소현임을 알아 평등하고 차별없이 그대로를 인증하는 것이 즉 본원으로 회광반조하여 일체법이 다 내 마음의 작용임을 알아 그대로 여여한 마음을 드러냄으로 바로 사문(沙門)이라고 하신다. 이 드러난 형상은 이름도 시비도 차별도 없이 그대로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으로 의미도 평등하며 일체법이 다 평등하여 순수하여 잡스러움이 없다. 바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인 것이다. [만일 교문(敎門)에서 시절따라 자유롭게 한 마음을 스스로 일으켜]라고 하신것은 바로 생사심으로 한 마음을 일으키면 모두다 일체 유위법이 됨으로 즉 작용이 바로 법이며 생사심인 것이다. 그래서 [법계를 건립해 내면 모조리 법계이고, 진여(眞如)를 세우면 모조리 진여이며, 이치(理)를 세우면 일체법이 이치이며, 현상(事)을 세우면 일체법이 현상이 된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니 한 마음을 일으키면 모든 마음이 함께 움직이므로 [하나를 들면 모두 따라와 이사(理事)가 다름이 없이 그대로 오묘한 작용이며, 더 이상 다른 이치가 없다.] 하신 것이다. 바로 이치적(理致的)으로 보나 사실적(事實的)으로 보나 다 마음의 작용인 것이다. 공적이나 색적이나 모든 것이 한마음의 작용임으로 일체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개시 불법(皆是佛法)]인 것이다. 그래서 마조스님도 [이 모두가 마음의 움직임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용(用)에 즉한 체(體)의 도리를 설하시고 계신것이다. 나무아미타불_()_

 

원오스님


Richard Abel 의 피아노 연주곡/L'amour En Heritage